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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감기인줄 알았던 코로나바이러스의 진짜 정체

1990년대만 해도 ‘바이러스를 연구한다’고 하면 컴퓨터 바이러스를 연구하는 것으로 종종 오해받았다. 하지만 2002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를 겪으면서 바이러스에 대한 대중의 공포가 커졌고, 질병을 유발하는 바이러스가 컴퓨터 바이러스보다 더 유명(?)해졌다. 감염병에 대한 두려움이 역설적으로 바이러스 본연의 이름을 되찾아준 셈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코로나19(COVID-19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가 찾아왔다.

 

●코로나19
세계보건기구(WHO)는 2월 11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의 공식 이름을 ‘코비드(COVID)-19’로 결정했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Corona Virus Disease)의 영어 줄임말에 발생 연도(2019) 두 자리를 붙인 것이다. 국내에서는 ‘코로나’라는 이름이 익숙하고 코비드를 새로운 질환처럼 받아들일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정부가 ‘코로나19’로 부르기로 했다. 영문 표현은 ‘COVID-19’로 쓴다.

 

인간 감염시키는 일곱 번째 코로나바이러스


코로나바이러스는 흔히 말하는 감기의 원인이 되는 바이러스다. 주로 호흡기와 소화기 감염병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간 코로나바이러스는 대부분 비교적 가벼운 감염 증세를 일으켰지만, 사스와 메르스, 이번에 코로나19까지 심각한 증상을 유발하면서 주목받고 있다.


코로나바이러스의 이름은 왕관을 뜻하는 라틴어 코로나(corona)에서 유래했다. 전자현미경으로 코로나바이러스를 관찰하면 전체적으로 동그란 형태에 곤봉과 같은 돌기가 달린 모습인데, 이 형태가 왕관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바이러스는 유전자가 무엇으로 이뤄졌느냐에 따라 DNA 바이러스와 RNA 바이러스 두 종류로 나뉜다. 코로나바이러스는 RNA 바이러스에 해당한다. RNA는 DNA보다 불안정해 돌연변이가 빨리 일어난다. 독감의 원인인 인플루엔자바이러스와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을 유발하는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도 RNA 바이러스에 해당한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유전적 유사도에 따라 다시 4개 그룹으로 분류할 수 있다. 알파(alpha)와 베타(beta) 그룹은 오직 포유류만 감염시키고, 감마(gamma)와 델타(delta) 그룹은 간혹 포유류에서 발견되기도 하지만 주로 조류를 감염시킨다. 사스와 메르스, 그리고 코로나19는 모두 베타 코로나바이러스에 해당한다. 


지금까지 4개 그룹 가운데 인간에게 감염을 일으키는 코로나바이러스는 알파 2종(HCoV-NL63, HCoV-229E), 베타 4종(HCoV-OC43, HCoV-HKU1, SARS-CoV, MERS-CoV) 등 총 6종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코로나19(2019-nCoV)가 발견되면서 한 종이 추가돼 7종으로 늘었다.


특히 코로나19는 염기서열 분석 결과 베타 코로나바이러스 중에서도 기존에 없던 새로운 종으로 확인됐다. 유전적으로는 박쥐를 숙주로 삼는 사스 코로나바이러스(ZC45, ZXC21)와 거의 유사하지만 실제 유전정보를 담고 있는 부위(ORF 1ab)의 일치율이 90% 미만으로 낮아 계통학적으로 새로운 분기점이 만들어졌다. 


코로나19가 최근에 태어났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중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연구팀은 최근 분리한 코로나19 바이러스 8종의 염기서열을 분석한 결과 이들의 염기서열이 99.98% 일치한다는 결과를 얻어 영국 의학전문지 ‘랜싯’ 1월 30일자에 발표했다. 이는 최근 분리된 바이러스들 사이에 변이가 거의 없다는 뜻으로, 바이러스가 인간에 전파된 시기가 최근임을 의미한다. doi: 10.1016/S0140-6736(20)30251-8

 

스파이크 단백질이 수용체에 결합하며 침투


코로나바이러스를 뜯어보면 약 30kb(킬로베이스페어·1kb는 1000베이스페어) 크기의 양성(positive sense) 가닥 RNA를 유전체로 가지고 있다. 양성 가닥은 세포질 내에서 직접 단백질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RNA를 말한다.


바이러스는 스스로 생존할 수 없는 만큼 숙주세포가 필요하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숙주동물(박쥐, 인간 등 포유류가 대부분이다)의 기관지 세포를 숙주세포로 삼는다. 가령 사스 코로나바이러스는 사람의 섬모 기관지 상피세포와 폐포(허파꽈리) 안의 2형 상피세포를 숙주세포로 삼고, 메르스는 비섬모성 기관지 상피세포와 2형 상피세포를 숙주세포로 삼는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숙주세포에 들어가면 유전체 RNA에서 곧바로 단백질을 만들 수 있어 바이러스 중에서도 가장 효율적인 기작을 가진 종으로 꼽힌다. 유전체 RNA에는 복제효소, 바이러스 껍질, 곤봉 돌기 모양의 스파이크(spike) 단백질 등 바이러스의 증식에 필요한 다양한 정보가 담겨 있다. 
그중에서도 스파이크 단백질은 바이러스가 숙주세포에 침투할 때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바이러스와 숙주세포의 첫 만남은 스파이크 단백질이 숙주세포의 수용체에 결합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스파이크라는 이름도 마치 축구화의 스파이크처럼 스파이크 단백질이 숙주세포의 수용체에 결합해 바이러스가 침투할 수 있는 지지대의 역할을 한다고 해서 지어졌다.


스파이크 단백질이 수용체에 결합하면 내포작용(endo -cytosis·세포가 바깥의 물질을 삼키는 작용)을 통해 바이러스가 세포 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 이때 베타 코로나바이러스는 ‘ACE2’ ‘DPP4’를, 알파 코로나바이러스는 ‘APN’을 주로 수용체로 이용한다. 


세포 안으로 들어온 바이러스는 자신의 유전체를 복제한다. 이때 필요한 단백질이나 공간은 숙주세포의 것을 활용한다. 숙주세포의 소기관을 마치 공유주방처럼 활용하는 것이다. 다만 바이러스의 유전체(RNA)는 DNA를 기반으로 하는 숙주세포의 효소로 복제할 수 없기 때문에 복제효소는 자신의 유전체에 있는 정보로 직접 만들어 사용한다.


동시에 바이러스 유전체를 둘러쌀 껍질을 만드는 작업도 함께 진행된다. 유전체가 가지고 있는 정보를 토대로 바이러스의 껍질을 이루는 스파이크, 막, 외피, 뉴클레오캡시드 등 단백질을 만든다. 
이때에도 숙주세포가 가진 소기관을 활용한다. 숙주세포의 소포체에서는 RNA에서 단백질을 만드는 번역(trans- lation)이 일어나고, 이렇게 만들어진 스파이크 단백질은 골지체로 이동한 뒤 변형(modification)되면서 특정 기능을 하는 단백질의 3차 구조를 만든다. 완성된 단백질은 유전체와 함께 조립돼 숙주세포 밖으로 방출된다. 바이러스 증식이 끝난 것이다. 세포실험에서는 코로나바이러스(HCoV-HKU1)가 이런 식으로 3일간 최대 1만 배까지 증식할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기도 했다. doi: 10.1128/JVI.00947-10 

 

돌연변이나 유전자 재조합으로 변종 만들어


그렇다면 코로나바이러스는 어디서 온 것일까. 인간 감염을 일으키는 7종 가운데 5종(HCoV-NL63, HCoV-229E, 사스, 메르스, 코로나19)은 박쥐에서, 2종(HCoV-OC43, HCoV-HKU1)은 쥐 같은 설치류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알파 코로나바이러스 11종 중 7종이, 베타 코로나바이러스 9종 중 4종이 박쥐에서 유래한 것으로 확인돼 박쥐가 알파와 베타 코로나바이러스의 주요 자연 숙주인 것은 분명하다. 중국, 유럽, 아프리카, 남아시아 등 여러 지역에 서식하는 박쥐에서 알파와 베타 코로나바이러스들이 발견되는 것도 박쥐와 코로나바이러스가 광범위한 지역에서 오랫동안 공생관계를 유지했음을 보여준다. 


박쥐의 몸속에 존재하는 코로나바이러스가 어떻게 종간 벽을 넘어 인간에게까지 전파됐을까. 여기에는 두 가지 해석이 존재한다. 우선 코로나바이러스에 유전적으로 변이가 생겼을 가능성이다. 


중국 우한바이러스연구소 연구팀은 중국 남부 윈난성 지역의 동굴에 서식하는 박쥐에서 바이러스를 채취해 2011년부터 5년간 지속적으로 관찰했다. 그 결과 박쥐 코로나바이러스(SARSr-CoV)가 인간을 감염시키는 사스 코로나바이러스를 만드는 데 필요한 모든 유전적 변이 요소를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즉, 윈난 지역에 서식하는 박쥐의 코로나바이러스가 돌연변이만으로도 충분히 사스 코로나바이러스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doi: 10.1038/s41579-018-0118-9


나머지 하나는 코로나바이러스에서 돌연변이 없이 유전자 재조합만으로 새로운 코로나바이러스가 만들어질 가능성이다. 2015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 연구팀은 쥐에 적응한 사스 코로나바이러스에 박쥐에서 유래한 코로나바이러스(SHC014-CoV)의 스파이크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를 혼합해 키메라 바이러스를 만들었다.


연구팀이 만든 바이러스는 ACE2 수용체를 가진 세포를 감염시켰고, 인간에게 감염되는 사스 코로나바이러스와 비슷한 복제 패턴을 보였다. 또 폐에서 사스와 유사한 질환을 유발한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doi: 10.1038/nm.3985


사스 코로나바이러스의 경우 아직 직접적인 조상은 발견되지 않았다. 학계에서는 코로나바이러스가 (정확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유전자 재조합 비율이 높은 특성을 가진 만큼, 사스 코로나바이러스가 돌연변이보다는 유전자 재조합으로 탄생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감염경로는 박쥐→중간숙주→인간?


현재까지 코로나19도 박쥐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박쥐를 숙주로 삼는 코로나바이러스(ZC45, ZXC21)와 코로나19의 전체 염기서열이 90% 이상 일치하기 때문이다. 반면 숙주세포의 수용체와 결합하는 스파이크 단백질의 유전자는 박쥐의 코로나바이러스와 코로나19가 차이를 보인다. 이 차이로 결합할 수 있는 수용체가 달라지며, 이런 차이가 박쥐를 숙주로 삼던 코로나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전파된 요인일 가능성이 크다.


다만 박쥐에서 인간으로 직접 전파됐는지에 대해서는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 사스 코로나바이러스는 박쥐에서 중간 숙주인 사향고양이를 거쳐 인간에게 전파됐고, 메르스 코로나바이러스도 박쥐에서 중간 숙주인 낙타를 거쳐 인간에게 전파됐다.


코로나19의 경우 최근 천산갑이 중간 숙주일 가능성이 제기됐다. 중국 화난농업대 연구팀은 2월 7일 기자회견에서 천산갑에서 검출한 코로나바이러스가 코로나19 확진자에게서 얻은 바이러스의 염기서열과 99% 일치한다고 밝혔다. 천산갑은 멸종위기종이지만 중국에서는 보양에 좋다는 이유로 밀거래가 이뤄지는 동물 중 하나다.


코로나바이러스가 다양한 동물을 숙주로 삼을 수 있는 이유는 스파이크 단백질 덕분이다. 스파이크 단백질의 유전자 내에는 가장 빈번하게 재조합이 일어나는 절단포인트(breakpoint)가 있어 얼마든지 유전자 재조합이 일어날 수 있다. 절단포인트가 어떻게 잘리냐에 따라 스파이크 단백질이 다른 코로나바이러스가 만들어지고, 그중에서 박쥐나 중간 숙주 동물, 그리고 인간의 수용체에 결합하는 종이 생성될 수 있다.  


가령 사향고양이에서 분리된 사스 코로나바이러스는 인간에게 감염되는 사스 코로나바이러스와 전체적인 유전자 염기서열은 비슷하지만, 스파이크 유전자에서만 차이가 있다. 이 차이가 사향고양이에서 인간으로 바이러스가 전파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코로나바이러스 스파이크 단백질의 이런 특징은 바이러스의 생존과 번식에 매우 중요하다. 특히 바이러스가 특정 숙주에만 감염되는 데는 스파이크 단백질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스파이크 단백질은 수용체 결합 영역(RBD·receptor binding domain)의 아미노산 서열에 따라 수용체 결합 능력이 달라지는데, 가령 사스 코로나바이러스는 숙주세포의 ACE2 수용체를 통해 세포를 감염시키고 바이러스가 수용체에 결합하기 위해서는 RBD의 479번째와 487번째 아미노산이 보존돼있어야 한다.


코로나바이러스 치료제나 백신을 개발하는 인간 입장에서는 스파이크 단백질의 이런 특징을 이용할 수 있다. 현재 코로나19에 감염된 환자에게 사용하는 치료제는 바이러스의 복제와 단백질 절단 과정에 필요한 효소의 활성을 방해하는 항바이러스제가 대부분인데, 스파이크 단백질의 RBD만을 표적(항원)으로 삼는 백신(항체)을 개발할 수도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코로나바이러스는 자연 숙주인 박쥐에서 유전자 재조합을 통해 끊임없이 새로운 종을 만들어내고 있을 것이다. 다양하게 재조합된 코로나바이러스는 언제든 중간 숙주를 거쳐 인간에게 도달하거나 인간에게 직접 침투해 우리의 건강을 위협할 수 있다. 사스와 메르스, 그리고 이번 코로나19가 그 증거다.   


설사 모든 코로나바이러스에 작용하는 범용 백신과 치료제가 나온다고 해도 코로나바이러스의 놀라울 정도로 빠른 변이 속도를 고려하면 백신이나 치료제가 듣지 않는 새로운 코로나바이러스가 등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새로운 바이러스의 등장을 신속하게 확인하기 위한 지속적인 바이러스 감시망을 만들고, 기초연구를 통해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게 현재로서는 바이러스의 위협을 막아낼 유일한 방법이다. 

2020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이영애 기자 기자
  • 남재환 가톨릭대 생명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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