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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결말 영화 ‘컨테이젼’ 시나리오 따라가나

“늑장 대응으로 사람들이 죽는 것보다는 과잉 대응으로 비난받는 게 낫다.”
- 영화 ‘컨테이젼(Contagion)’에서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엘리스 치버 박사의 대사

1월 설 연휴 전까지만 해도 2002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나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수준으로 정리될 줄 알았던 코로나19(COVID-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가 파죽지세(破竹之勢)로 퍼지고 있다. 1월 27일부터는 전 세계에서 매일 환자 수천 명과 사망자 수십 명씩 늘어나고 있다. 발원지인 중국 우한은 사실상 지역감염 단계이고, 후베이성의 다른 도시들도 상황이 심각하다. 


중국은 집권세력(공산당)에 불리한 내용은 철저히 통제하는 국가로 세계보건기구(WHO)의 조사도 거부하고 있어 실제 상황을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발표하는 환자 수와 사망자 수에 0을 하나 더 붙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중국 당국의 발표 내용을 받아들인다는 전제 아래 최선의 시나리오로 수습돼도 수십만 명의 환자와 수천 명의 사망자가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최악의 시나리오는 지구촌의 대유행(팬데믹)으로 진행되는 것이다.


그런데 코로나19 사태의 최악의 상황을 보는 듯 착각하게 만드는 영화가 있다. 2011년 개봉한 ‘컨테이젼(Contagion)’이다. 할리우드에서 만든 재난영화임에도 미국인 영웅이 세계를 구한다는 뻔한 이야기가 아니라 신종 전염병이 발생해 팬데믹으로 전개되는 과정을 현장에서 찍은 듯 보여주는 페이크 다큐멘터리(fake documentary)에 가깝다. 하지만 영화인 만큼 곳곳에서 과장된 설정도 드러난다. 컨테이젼 속 상황과 비교하면서 코로나19의 앞날을 예상해 본다.

 

 

일은 박쥐에서 시작된다?


영화에는 사스 코로나바이러스의 고병원성을 능가하고 2009년 신종플루바이러스의 강한 전파력을 넘어서는 최악의 신종 바이러스가 등장한다. 이 바이러스는 돼지 사육장  슬레이트 지붕에 매달려 있던 박쥐의 배설물이 돼지에게 떨어지면서 배설물 속의 바이러스와 돼지 몸 안의 바이러스가 재조합을 일으켜 탄생했다. 


실제 코로나바이러스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 2016~2017년 중국 남부 광둥성(후베이성에서 멀지 않다)에서 발생해 치사율 90%를 보인 돼지 급성설사증후군(SADS)을 일으킨 게 코로나바이러스다. 아직 사람은 감염시킬 수 없는 것으로 보이지만 감염성이 있는 박쥐의 코로나바이러스와 섞이면 괴물이 탄생할 수도 있다.


한편 코로나19는 이런 재조합을 통해 탄생한 병원체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사스 코로나바이러스처럼 박쥐에서 중간 숙주를 거쳐 사람에게 전염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과정에서 사람 세포에 침투할 수 있게 돌연변이가 일어났을 것이다.

 

한 사람 몸에 있던 바이러스가 세계로 퍼진다?


영화에서 바이러스 전파는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된다. 홍콩의 한 호텔 주방장은 (체내에서 재조합이 일어난 바이러스를 지닌) 새끼 돼지로 요리를 준비하다가 VIP 손님인 베스 엠호프(기네스 펠트로)가 왔다는 연락에 손을 앞치마에 대충 문질러 닦은 뒤 나가서 악수한다. 


그 뒤 베스는 호텔 카지노에서 칵테일 잔을 만졌다가 놓는데, 그걸 집어 들어 마신 일본인이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귀국 후 일본에 퍼진다. 또 베스가 휴대전화를 두고 자리를 뜨는 걸 본 영국인이 친절하게 휴대전화를 가져다주는데, 이 과정에서 영국인도 감염되고 귀국 후 영국에도 바이러스가 퍼진다. 


사실 손을 씻지 않은 주방장과 악수 한 번으로 베스의 손에 묻은 돼지 체액은 미량일 것이고, 미량의 체액이 묻은 베스의 손이 닿은 술잔이나 휴대전화에 묻은 돼지 체액은 이보다 적은 극미량일 것이다. 따라서 바이러스가 이런 식의 연쇄 감염으로 단번에 세계로 퍼져나간다는 설정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그럼에도 한 사람의 감염이 출발점이 될 수는 있다. 이종 동물에서 바이러스가 사람에 감염되는 일이 드물게 일어나더라도 대부분 전염성이 낮아 퍼지지 않지만, 체내에서 전염성이 높은 돌연변이체가 나오면 주변 사람들이 감염되면서 확산이 시작된다. 또 인체 감염성이 높은 변이 바이러스를 지닌 동물에서 여러 사람이 동시에 감염되는 게 출발점일 수도 있다. 


다만 이 과정에는 시간이 꽤 걸리기 때문에 영화에서처럼 불과 며칠 사이에 세계로 퍼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코로나19의 경우도 2019년 12월 8일 중국에서 첫 환자가 나온 이후(물론 ‘진짜’ 첫 환자는 아닐 수도 있다) 12월 30일에야 중국 우한 중심병원 안과 의사 리원량(李文亮)이 사스 유사 호흡기질환의 창궐을 경고하며(중국 당국은 유언비어 유포 혐의로 체포해 조사했고, 그는 2월 7일 코로나19로 사망했다) 외부에 알려졌다. 중국 밖 나라에서 첫 환자가 나온 건 2020년 1월 13일 태국에서다. 

 

민간요법에 매달린다?


다시 영화로 돌아와 백신도 치료제도 없는 치명적인 신종 바이러스 질환이 등장하자 혼란에 빠진 사람들에게 개나리 추출물이 효과가 있다는 소문이 퍼진다. 신종 전염병 확산을 두고 음모론을 주장하는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앨런 크럼위드(주드 로)는 자신도 병에 걸렸다며 개나리 추출물을 복용하는 장면을 블로그 동영상에 올린다. 


그가 회복되자 사람들은 개나리 추출물을 구하려고 약국으로 몰려든다. 앨런은 병을 이겨냈음에도 여전히 방역 요원 같은 차림새로 돌아다녀 의구심을 갖게 하는데, 당국은 그를 체포해 체내 항체가 없음을 확인하고 동영상이 쇼였음을 자백받는다.


신종 전염병이 돌 때마다 ‘뭐가 좋다’는 식의 민간요법이 기승을 부린다. 코로나19도 예외가 아니어서, 오죽하면 WHO가 ‘미신 타파(Myth busters)’라는 웹페이지를 열어 ‘마늘을 먹으면 감염을 예방할 수 있다’ ‘참기름을 바르면 침투를 막을 수 있다’ 같은 얘기들은 근거가 없다고 알리고 있다(QR코드 참조).

 

 

사재기에 약탈까지 일어난다?


영화를 전염병이 퍼지자 사람들의 불안감이 높아지면서 사재기로 쇼핑카트가 가득 차고 판매대는 텅텅 비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약탈로 파괴된 상가의 모습이 이어진다. 경제가 마비되자 배급이 시작되고, 중간에 물건이 다 떨어지자 줄 서서 기다리던 성난 군중이 배급품을 받아가는 사람들을 덮친다. 영화 속 장면은 절박한 상황이 되면 ‘문명인’이라는 외투가 얼마나 쉽게 벗겨질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중국 우한의 경우 사재기로 마트가 텅 빈 장면은 나온 적이 있어도 약탈 얘기는 없다. 설사 상황이 더 나빠지더라도 그런 상황까지 가지는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공안’이라는 공포의 존재가 중국인의 뇌리에 깊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나라나 미국처럼 자유의 측면에서 평범한 나라들은 오히려 이런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 이미 마스크 사재기로 마스크 가격이 서너 배 뛰었고, 동네 마트에서는 구하기조차 쉽지 않다. 


전염병 창궐로 인한 약탈이나 폭동 사례는 떠오르지 않지만, 자연재해나 우발적 사건이 도화선이 된 예는 있다. 2010년 아이티에서 16만여 명이 사망한 대지진이 일어나 사실상 무정부 상태가 되면서 약탈과 방화, 구호품 탈취 등 극도의 혼란이 이어졌다. 1992년 한 흑인을 집단 폭행한 백인 경찰들이 재판에서 무죄로 풀려난 것을 계기로 발생한 로스앤젤레스(LA) 폭동은 약탈과 방화로 53명이 사망하고 7억5000만 달러(약 9000억 원)의 재산피해가 나기도 했다.

 

 

백신 접종으로 상황 종결?


영화에는 영웅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런 역할을 할 줄 알았던 베스의 남편 미치 엠호프(맷 데이먼)는 신종 바이러스에 감염이 안 되는 체질일 뿐 전염병 퇴치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다음으로 기대했던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의 에린 미어스 박사(케이트 윈즐릿)은 감염 현장을 조사하러 갔다가 본인이 감염돼 허무하게 목숨을 잃는다.


정작 영웅은 바이러스 백신 개발에 성공한 앨리 핵스톨 박사(제니퍼 엘)이지만, 조연으로 가끔 등장해 존재감이 없다. 여하튼 신종 전염병이 등장한 지 133일 만에 백신 접종이 시작되면서 사태는 수습 국면에 들어간다. 


이런 설정은 2009년 신종플루 때 백신 개발과 접종을 떠올리게 하지만 현실적으로 새로운 유형의 바이러스에 대해 이처럼 빨리 백신이 나올 가능성은 희박하다.
코로나19의 경우 우리나라를 비롯한 최근 몇 개 연구팀에서 바이러스를 분리하는 데 성공해 백신 개발의 길을 열었다고 하지만, 경험이 풍부한 독감바이러스와는 달리 코로나바이러스는 아직 백신이 개발된 적이 없어 접종할 수준의 백신을 만들려면 시간이 꽤 걸릴 것이다. 


설사 나오더라도 여러 차례 임상시험을 거쳐야 하는 만큼 올해 안에 제품화될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으로 전망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한편 영화에서는 치료제 얘기가 나오지 않는다. 이번 코로나19의 경우에도 치료제 개발에 대한 기대는 높지 않다. 지금까지는 기존 항바이러스제인 에이즈 치료제나 독감 치료제를 써서 효과를 봤다는 일부 임상 결과가 나오고 있어 일단 중증 환자에게 쓰일 가능성은 있다.

 

글로벌 팬데믹 될까?  


영화 속 바이러스는 치사율이 25%로 불과 며칠 사이에 세계로 퍼져 한 달 만에 2600만 명의 사망자를 냈다. 반면 치사율이 2% 수준인 코로나19는 약 두 달 동안 30개국 2130명의 사망자를 냈고(2월 20일 현재) 그 대부분은 후베이성에서 발생했다. 


코로나19는 후베이성 이외의 중국뿐 아니라 우리나라를 포함한 30개국에 퍼진 상태다. 영화에서처럼 빠른 속도는 아니지만 결국은 글로벌 팬데믹으로 가는 게 아닐까. 이에 대해서는 전문가들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다만 무방비 상태에서 순식간에 팬데믹이 된 영화 속 상황과 달리 코로나19는 각국이 방역에 최선을 다하고 있고 사람들도 개인위생에 엄청나게 신경을 쓰고 있는 만큼 후베이성 이외 지역에서는 지역감염 단계로 넘어가지 않고 소멸되기를 기대해 본다. 영화와 현실의 코로나19 사태가 ‘비슷해 보이지만 완전히 다른 얘기’라는 평가로 귀결되기를 바랄 뿐이다. 

 

※필자소개

강석기. 서울대 화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00~2012년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지내고 있다. 지은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8권)’ ‘늑대는 어떻게 개가 되었나’가 있고, 옮긴 책으로 ‘반물질’ ‘가슴이야기’가 있다. kangsukki@gmail.com

2020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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