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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vs. 2030년 에너지 다이어리

과학동아 에너지 원정대

※편집자 주 .기자의 현재 일상을 바탕으로 2020년과 2030년의 에너지 소비 생활을 재구성했습니다. 일부 설정은 가상임을 알려드립니다. 2020년의 이야기부터 먼저 읽은 뒤 2030년으로 넘어가길 추천합니다!

●2020년 1월 2일 

 

 

1월 2일 휴가를 냈다. 그런데 인공지능(AI) 스피커에 설정해둔 기상 알람을 지우는 걸 깜빡했다. 오전 8시를 조금 앞둔 시각, 음량을 최대로 키워 놓은 알람 소리에 잠에서 깰 수밖에 없었다. 


열린 방문 사이로 보이는 거실에서 엄마는 TV를 틀어 놓고 훌라후프를 돌리며 운동 삼매경이다. 침대 옆으로 고개를 돌리니 컴퓨터 모니터가 대기 상태다. 잠들기 전 기억에 남는 드라마 장면을 찾은 뒤 재생 버튼을 누르면서 외쳤다. “엄마, 배고파. 하나 있는 아들 밥 좀 줘!” 엄마는 요새 새로 태어난 손주를 챙기느라 나는 완전 뒷전이었다. 그렇게 40여 분이 지나자 갈치 굽는 냄새와 함께 밥이 되는 소리가 들렸다. 


밥을 먹으러 식탁으로 향하는 동안, 갈치구이에서 발생한 연기 때문인지 거실 공기청정기의 안내등이 보라색으로 변한 것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일어나면서 집안 곳곳의 전자기기들도 활동을 시작했구나. 내가 자는 동안 전자기기가 쓰던 대기전력이 실제 소비전력으로 바뀐 것이다. 


불현듯 취재하면서 들은 숫자들이 떠올랐다. 제품마다 차이는 있지만 TV 셋톱박스의 대기전력은 약 16W(와트), 에어컨은 약 6W, 전기밥솥은 약 4W다. 


대기전력이 없다고 인증받은 제품으로 교체한 적이 없는 우리 집의 대기전력은 총 100~120W 수준이다. 대기 상태로 1시간 있으면 100~120Wh(와트시)의 에너지를 소모하는 셈이다. 이런 대기전력만 줄여도 매달 전기요금을 1만~2만 원 아낄 수 있다. 그간 나는 이런 대기전력에 얼마나 관심을 기울였던가. 취재와 실천의 불일치다. 순간 ‘현타’가 왔다. 


밥을 꾸역꾸역 입에 넣고 있는데 사촌여동생이 식탁에 앉는다. 친누나가 결혼한 뒤 방이 비자 아예 우리 집에 눌러앉은 사촌여동생은 나보다 더 심하다. 컴퓨터는 물론 태블릿PC에 형광등까지 켜놓고 잠들기 일쑤다. 우리는 전기 절약과는 거리가 먼 남매인 셈이다. 


엄마도 크게 다르진 않다. 스마트폰 앱으로 밤새 노래를 틀어 놓고 주무신다. 전기에너지 소비에 대한 나의 상념이 이어지고 있을 때 엄마가 말했다. “밥 다 먹고 반찬 갖다주러 누나 집에 가자.”
2017년 누나가 결혼하고 2년간 엄마는 신혼집에 총 4번 밖에 가지 않았다. 그런데 조카가 태어나면서 일주일에 서너 번은 누나 집에 간다. 손주 사랑이 이렇게 무섭다.


오늘은 조금 빠른 지름길을 두고 단골 주유소가 있는 우회로를 택했다. 신용카드 혜택으로 결제 시 리터(L)당 60원을 할인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두 번째 현타. 대기전력 줄이는 데는 관심이 없던 내가 어느 주유소가 몇십 원 더 싼지는 까다롭게 따지고 있다. 기름 같은 화석연료도 결국 에너지인데 말이다.  


이동하는 차 안. 내가 하루 동안 쓰는 에너지는 얼마나 될지 머릿속으로 계산해 봤다. 지난달 전기요금이 얼마였더라. 고지서에는 2019년 12월 총 전력에너지 사용량이 620kWh(킬로와트시)로 나왔다. 누진제 중 가장 높은 3단계가 적용됐다. 전기요금은 6만5000원이었다. 겨울이다보니 4인 가구 평균사용량(350kWh)을 크게 상회했다. 


식구 세 명이 살고 있으니 이 중 3분의 1인 약 206kWh가 내가 사용하는 전력량일 것이다. 여기에 연비가 L당 평균 10km인 가솔린차로 하루에 약 50km를 운전하니 한 달간 화석연료만 약 150L를 소비한다. 이렇게 따지면 나는 연간 집에서 총 2472kWh의 전력에너지를 사용하고 1800L의 석유를 쓴다. 가스와 수도 사용량은 포함시키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한국인 1인당 에너지 소비량이 2017년 기준 5.73TOE(석유환산톤·1TOE는 1000만kcal)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평균(4.10TOE) 대비 약 40% 높다는 최근 기사 내용이 떠올랐다. 나도 이 숫자가 나오는 데 일조(?)했을 것이라는 자책과 함께 말이다. 2020년 신년 계획으로 에너지에 관심 갖고 에너지 줄이기를 추가해야 할 것 같다. 누나 집 베란다에 있던 태양전지판을 한번 달아볼까….

 

●2030년 1월 2일 

 

 

2030년 1월 2일. 엄마가 나를 부른다. 


“우리 전기요금이 지난달에 1만 원도 안 나왔어. 너무 조금인데, 맞는 거야?” 


“엄마, 전기를 팔아서 그렇다고 지난번에 얘기했잖아요.” 


에너지 생산과 소비 관점에서 요즘 나는 에너지 소비자인 동시에 생산자다. 에너지 소비자이기만 했던 2020년과 비교하면 많이 달라졌다. 사실 지금은 많은 사람이 나처럼 소소한 에너지 생산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 


직업을 에너지 업계로 전환한 것은 아니다. 3년 전 창문에 설치한 태양전지판 덕분이다. 태양전지셀 16개로 구성된 태양전지판을 해가 잘 드는 베란다 쪽 창문 세 개에 하나씩 설치하면서 우리 집은 전기를 생산하는 가구가 됐다. 


내가 태양전지판을 설치했던 2027년에는 최고 효율이 29%였다. 2020년 태양전지판의 효율이 최고 25%였던 것과 비교하면 놀라운 발전이다. 내가 설치한 태양전지판의 셀 한 개에서는 초당 0.3kW의 전력을 생산한다. 


사용하고 남은 전력은 태양전지판에 함께 달린 에너지저장장치(ESS)에 저장해뒀다가 정부 정책에 따라 kW당 40원을 받고 한국전력에 판다. 실제 사용분에서 남은 전력량을 차감해 주니 꽤 이득이다. 


최근 태양전지판은 효율이 33%까지 올랐다고 한다. 이론적으로 에너지 변환효율이 30~40%는 정말 높은 수치다. 디자인은 또 어떤가. 창문이나 옥상에 별도로 태양전지판을 설치할 필요가 없어졌다. 단열 효과를 위해 삼중창으로 설계된 유리 사이에 투명한 태양전지판을 끼워 넣을 수 있어 디자인 감성을 해치지도 않는다. 물론 이 투명 태양전지판의 가격이 아직은 사악해서 일반 태양전지판을 설치하는 것보다 4배 정도 비싸다. 


10년 전과 비교해 나의 에너지 소비 패턴은 크게 달라졌다. 우선 전력관리가 자동화됐다. 안 쓰는 전원코드를 직접 뽑는 등 집안에서 새고 있는 전기를 막기 위해 내가 노력해야 했다면,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 인공지능(AI) 센서가 우리 집의 에너지 소비 패턴을 이미 수년간 끊임없이 학습했고, 그 결과 최적의 전력만 쓰도록 관리해 준다. 


 최고 전력 수요에 도달하는 여름과 겨울철 냉난방비도 걱정을 덜었다. 태양전지판과 함께 설치한 4kW짜리 소형 ESS는 낮에 발전한 전기에너지를 저장하고 있다가, AI의 계산에 따라 필요할 때 다시 공급한다. 한국전력에서 공급받는 전력을 과도하게 사용하지 않도록 막아주는 것이다.   


 그리고 수소차를 구입했다. 수소차가 처음 개발된 2015년에는 대당 가격이 약 1억5000만 원이었다. 수소를 충전할 시설도 충분히 갖춰져 있지 않았다. 수소 버스 등 수소차가 조금씩 도입되던 2020년 무렵에는 정부 보조금과 지자체 보조금을 모두 지원받으면(약 3500만 원) 추가 옵션에 따라 다르겠지만 총 4000만 원 정도를 내고 수소차를 구입할 수 있었다. 이전보다는 가격이 내렸지만, 여전히 고가였다. 수소 생산 효율을 높이는 촉매인 백금이 너무 비싼 게 가장 큰 이유였다. 


그런데 지금은 수소를 반응시키기 위해 비싼 백금을 안 써도 된다. 값도 싸고 반응성도 뛰어난 다른 촉매가 개발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소차 가격이 절반 이하로 뚝 떨어졌다. 10년 전처럼 정부 보조금이 지원되지 않는 대신 다른 혜택이 많다. 주차비와 고속도로 통행료도 반값으로 할인된다. 


기름값도 훨씬 덜 든다. 2020년 수소 1kg으로 약 100km를 달렸던 SUV형 수소차의 성능이 30% 향상돼 이제는 130km를 주행할 수 있다. 한 달에 한 번은 캠핑을 가고 있어 주행거리가 매달 최소 1200km는 되는데, 가솔린차였으면 기름값이 감당이 안 됐을 것 같다. 


현재 정부는 국민 1인당 에너지 사용량이 2035년경 7.3TOE에 이를 것으로 예측한다. 세계적으로도 에너지 사용량은 점차 늘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에너지 소비자에서 생산자로 전환돼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40년 지구와 지구에서 살아갈 우리를 위해서 말이다. 

2020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김진호기자 기자
  • 만화

    박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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