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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신세대 백신 등장

먹는 과일형, 코로 마시는 형, 피부에 바르는 형

현재까지의 백신 개발에도 불구하고 지구에는 아직 해결책을 찾지 못한 질병들이 상당수 존재한다. 예를 들어 세계적으로 2백50만명 이상의 만성 B형간염환자가 병마에 시달리고 있으며, 감기와 독감으로 연평균 1백만여명이 고통받고 있다.

특히 에이즈의 경우 1999년 한해 동안 감염된 사람이 5백60만명으로, 하루 평균 1만5천명의 신규 감염자가 생기고 있는 셈이다(1999년 말 현재 전세계 에이즈 감염자수는 3천3백60만명에 달한다). 에이즈가 처음 밝혀진 1983년부터 1999년까지 사망자수가 1천6백30만명에 이르고 있지만 아직 사람에게 적용할만한 단계의 백신은 개발되지 않고 있다.

포항공대 연구팀의 개가

간염이나 에이즈를 난치병이라 부르는 가장 큰 이유는 이 질환들을 일으키는 병균(바이러스)이 인간의 몸 속에서 지속적으로 변화하기 때문이다. 일단 효과적인 백신이 개발됐다 해도 새로운 변종 병균 앞에서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병균이 변신할 때마다 일일이 여기에 맞는 백신을 만들어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일까. 현재 과학자들은 크게 두가지 방향으로 ‘신세대 백신’을 개발하고 있다. 한가지는 이전보다 더욱 안전하면서 효능이 뛰어난 새로운 형태의 백신(DNA백신)을 만들어내는 일이고, 다른 한가지는 감염 초기에 병균을 없애려는 노력이다. 에이즈의 사례를 통해 이 두가지 경향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최근 국내 연구팀이 개발한 에이즈백신이 효과가 탁월하다는 점이 밝혀져 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1999년 12월 포항공대 성영철 교수팀은 자체적으로 개발한 DNA백신을 원숭이에게 접종시킨 후 가장 강력한 에이즈 바이러스로 알려진 SIV239를 주사한 결과 전혀 에이즈가 발병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많은 학자들은 성교수팀의 연구 결과를 볼 때 획기적인 에이즈백신이 실용화될 날이 멀지 않았다고 전망했다. 도대체 DNA백신이 무엇이길래 이처럼 뛰어난 효과를 발휘하는 것일까.

DNA백신의 원리는 간단하다. 병균에서 DNA(또는 그 일부)만을 골라내 몸에 주입함으로써 면역력을 유도하는 방식이다. 약해진 병균(생백신), 죽은 병균(사백신), 또는 병균이 만든 단백질(단백질백신) 대신 DNA를 넣는다는 말이다.

병균의 DNA를 인간의 세포에 주입한다고 생각해보자. 병균 DNA는 인간의 DNA에 섞여 들어가 자신의 단백질을 만들어낸다. 이때 몸의 면역시스템은 ‘병원성 단백질’을 파괴할 수 있는 항체를 만들어낼 뿐 아니라(체액성 면역) 이 단백질을 생성하는 감염된 세포를 인식해 공격에 돌입하기도 한다(세포성 면역). 생백신에 비해 결코 약효가 떨어지지 않으면서 훨씬 안전한 백신인 셈이다.

DNA백신의 개념은 1990년대 초부터 알려지기 시작했다. DNA백신은 특히 세포 내로 감염되는 병균을 제거하는데 필요한 살상 세포(T세포)를 잘 유도하면서 위험성이 적기 때문에 기존의 백신으로는 예방이 어려운 에이즈, 암, C형간염 등에 대한 이상적인 차세대 백신으로 주목받았다. 또 기존 백신에 비해 효능과 안전성이 우수해 1996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허가 아래 사람을 대상으로 한 실험이 가능해져, 현재 에이즈를 비롯한 천식, B형간염, 말라리아, 독감, 암에 대한 임상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성교수팀은 자체 개발한 에이즈 DNA백신으로 우선 생쥐 실험을 마치고 녹십자와 제넥신(포항공대 생명과학과 벤처기업)의 지원으로 2년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독일 영장류 동물센터에 실험을 의뢰했다. 연구팀은 11마리의 원숭이를 4그룹으로 나눠 3그룹에 성교수팀이 제조한 3종류의 DNA백신을 각각 투여하고 1그룹에는 백신을 주입하지 않았다. 이후 4그룹 모두에게 에이즈 바이러스를 감염시키자, DNA백신을 접종한 한 그룹의 원숭이 2마리에서 바이러스가 모두 제거됐다.

그러나 아직 밝혀야 할 과제들이 남아있다. 무엇보다 병균 DNA가 인간 세포의 DNA에 무작위적으로 삽입될 때 인간 DNA에서 돌연변이가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장기적으로 암과 같은 예기치 못한 또다른 질환이 생길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런 면이 함께 고려돼야 DNA백신을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DNA를 이용해 백신을 개발한다면 안전성과 효율성을 동시에 얻을 수 있다.그래서 과학자들은 차세대백신으로 단연 DNA백신을 꼽는다.


1차 관문을 지켜라

기존 백신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또하나의 방법을 살펴보자. 점막면역(mucosal vaccine)을 강화시키는 일이다.

대부분의 전염성 질환들은 구강을 비롯한 소화기, 호흡기, 비뇨생식기 등의 점막을 통해 전파된다. 병균이 몸에 침투하는 1차 관문인 셈이다.

그런데 현재까지의 백신은 병균이 일단 몸의 특정 부위에 침입한 이후에 이를 제거할 목적으로 개발됐을 뿐이다. 만일 점막에서 효과적으로 면역을 유도할 수 있다면 초기에 감염을 차단해 예방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간첩이 바다를 통해 침투할 때 침투장소에 병력이 배치돼 있어 상륙초기에 침투를 차단하면 크게 힘들이지 않고 섬멸할 수 있다. 하지만 간첩이 내륙으로 일단 침투하고 나면 아무리 강하고 능력 있는 병력을 동원한다 해도 전국적으로 수배해 제거해야 하는 어려움이 따르는 것과 같은 원리다.

점막백신은 병균의 능수능란한 변신을 사전에 제압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진다. 기존의 백신으로는 일단 몸에 침투한 후 변신을 수행하는 병균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이었다. 만일 몸에 침투하기 이전에 병균을 물리친다면 이런 문제가 해결되지 않겠는가.

특히 에이즈백신을 개발할 때 점막면역이 강조되고 있는 이유는 에이즈가 주사기나 수혈을 통하는 것보다 이성간의 성접촉에 의해 주로 전염된다는 판단 때문이다. 에이즈환자와 성관계를 가질 경우 우선 비뇨생식기 주위의 점막에 존재하는 면역세포가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된다. 이 세포가 몸 안으로 들어오면 몸의 면역시스템은 이를 제거하기 위해 방위군(T세포)를 출병시킨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에이즈 바이러스가 T세포에도 침투해 결국 몸 전체로 퍼진다.

실제로 원숭이의 생식기에 에이즈 바이러스를 주입할 경우 비교적 쉽게 발병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또 1999년 현재 한국의 에이즈 감염자 9백64명중 6백여명이 이성간의 성접촉에 의해 감염됐다는 점도 밝혀졌다. 이런 현상들로 미루어 볼 때 앞으로 개발될 에이즈백신은 무엇보다도 점막면역을 잘 유도해야 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어떤 연구자들은 에이즈의 전파를 막을 백신은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백신 개발의 실제적인 목표는 바이러스 감염을 완전히 차단하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하나마 병의 진전속도를 늦추는 정도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생명과학의 많은 발전이 이뤄지고 병균의 발병 메커니즘이 좀더 밝혀지면 난치병을 완벽하게 예방할 수 있는 신세대백신이 개발될 수 있지 않을까.
 

에이즈 같은 난치성 질환을 일으키는 바이러스의 침투를 과연 근본적으로 차단할 수 있을가.최근의 연구성과를 보면 비교적 긍정적인 기대를 걸 수 있다.


먹는 즐거움과 질병 예방 동시 실현

신세대백신은 접종 방법에서도 커다란 변화를 일으킬 것이다. 무엇보다 아이뿐 아니라 어른도 싫어하는 주사를 맞지 않고도 예방접종을 할 수 있는 때가 곧 닥칠 것이다. 실제로 DPT 예방 백신의 경우 피부에 발라서 항체가 생기게 하는 방법이 개발되고 있으며, 유전자조작을 통해 ‘백신과일’로 만들어 먹는 즐거움과 질병예방의 효과를 동시에 얻을 수 있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독감백신의 경우 약독화된 독감바이러스를 간편하게 코로 흡입하는 제품도 속속 만들어지고 있다.

질병은 발병 후 치료하는 것보다 미리 걸리지 않도록 조치를 취하는 것이 최선이다. 백신은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질병예방에 만전을 기할 수 있게 만드는 훌륭한 대안이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백신이 개발된다 해도 몸이 애초에 건강하지 못하다면 그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자신의 건강을 위해 마음과 몸을 가꾸며 쾌적한 환경을 만드는데 힘써야 한다.

2000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배용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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