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발생한 ‘대구 개구리소년 실종사건’ 은 11년 6개월이 지난 2002년 9월 대구 달서구 와룡산 중턱에서 5명 모두 유골로 발견됐지만, 여전히 미제사건으로 남아 있다.
백골 시체가 발견되는 경우 사건의 초기 수사는 변사자의 신원확인에 집중된다. 사망자가 누군지 알아야 그 사람의 행적과 주변 관계를 파악하고 본격적으로 수사를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백골 시체에서 신원을 확인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가출 신고 후 6년 만에 백골로 발견된, 2008년 경북 봉화군의 사건을 살펴보자.
2008. 06. 07 토사에서 뼈 발견 신고 접수
여름은 녹음의 싱그러움이 번져가는 계절이다. 이런 날 집에만 있기에는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은 마음이 든다. 저마다 산으로 바다로 야외활동을 떠난다. 사람들이 시골을 많이 찾고 또 밖을 돌아다니다 보니, 이 계절에는 사람의 것으로 보이는 물체나 뼈를 발견했다는 신고가 종종 접수된다.
그런데 현장에 도착해 확인해 보면 동물의 뼈인 경우가 많다. 실제 성인과 비슷하게 제작된 인형을 사람으로 오인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런 신고들은 늘 과학수사팀을 긴장하게 만든다. 살인 후 유기의 가능성을 절대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2008년 6월 7일의 신고가 그랬다. 빈집을 수리해 쓰려고 집 뒤편 산 아래 절개지(도로를 내거나 시설물을 건축하기 위해 산을 깎아 놓아 비탈진 곳)에 흘러내린 토사를 치우던 중 사람으로 보이는 뼈가 발견됐다는 신고였다. 신속히 출동 준비를 하는 팀원들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역력했다.
사건 현장은 조그만 야산 아래 주택이었다. 절개지는 집 뒤편과 약 1.5m 떨어져 있었고, 집과 야산 사이에는 절개지에서 흘러내린 듯한 토사가 낮게 쌓여있었다. 처음에 수사팀은 오랫동안 잊힌 무명의 묘가 비에 쓸려서 내려왔을 가능성이 클 것으로 여겼다. 시골에서는 강수량이 많거나 태풍이 들이닥치면 이런 일이 가끔 발생한다.
하지만 발굴 작업을 시작하고 흙을 조금씩 걷어내면서 의문점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다. 일단 묘가 쓸려 내려온 것이라면 낡은 관의 파편이나 수의 등 장례의 흔적이 발견되기 마련인데, 그런 흔적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처음 발견됐을 당시 시체의 자세도 이상했다. 매장된 묘가 비에 쓸려 내려왔다면 절대 만들어질 수 없는 자세였다. 의복이 없다는 점도 마음에 걸렸다. 다른 의복은 전혀 없이 브래지어, 여성용 팬티, 남성 러닝셔츠만이 함께 발견됐다. 팬티에는 혈흔으로 추정되는 얼룩도 있었다. 여성의 경우 혈흔이 생리혈일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어, 혈흔만으로는 섣불리 타살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우선 발굴된 뼈를 모두 모아 자세히 살폈다. 골절의 흔적은 없었다. 골반 모양으로 볼 때 시체의 주인은 여성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골반을 통한 성별 확인은 90~95%의 적중률을 보인다. 뼈가 골절된 흔적은 없었지만, 발굴 상황과 현장 검시 내용으로 볼 때 타살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 일단 형사팀에 정식으로 수사를 요청했다.
▲ 2008년 6월 경북 봉화군에서 집 수리 중 백골이 발견됐다.
발견 당시 백골의 자세를 필자가 직접 재연하고 있다.
2008. 06. 15 치과 기록으로 치아 특성 대조
다음으로 변사자의 키를 추정했다. 일반적으로 신장 추정에는 대퇴골(넙다리뼈)과 경골(정강뼈)을 활용한다. 이번에 발견된 대퇴골은 길이가 44.5cm, 경골은 36cm였다. 뼈로 신장을 추정할 때는 ‘1.26×(대퇴골 길이+경골 길이)+67.09cm(오차범위 ±3.74cm)’라는 공식을 쓴다(과학동아 6월호 ‘검시관의 사건 노트’ 참조).
만약 사건 현장에서 다리나 팔의 뼈 중 일부만 발견될 경우 각 뼈의 종류에 따라 공식을 조정해야 한다. 공식을 이용해 계산한 결과, 변사자의 키는 165~172cm로 추정됐다.
신원을 더 빨리 확인하기 위해 형사팀에 인근 치과의 진료기록 확인을 요청했다. 위턱과 아래턱의 치아를 관찰한 결과 크라운(치과 치료 후 치아가 손상되지 않도록 치아를 인공 틀로 씌우는 시술) 등 치과 치료 흔적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발견된 턱뼈의 치료 흔적과 위치 등을 치과 진료기록 및 치아 X선 촬영 사진과 비교하면 동일인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만약 일치하는 기록을 찾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치아는 여러 정보를 제공한다. 치아의 전체 발생 정도와 마모된 정도를 평가해 나이를 추정할 수 있다. 치아는 사람마다 특징이 명확하고, 진료기록을 쉽게 대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신원 확인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래서 법치의학(forensic dentistry) 분야가 따로 있다.
만약 치과 기록을 확인하지 못했다면 DNA 분석이 나서야 한다. 시체의 신원확인에 많이 사용되는 DNA 분석은 일반적으로 타액이나 혈액, 머리카락, 정액 등에서 시료를 채취한다. 하지만 백골 시체의 경우에는 이미 훼손될 대로 훼손됐기 때문에 이런 시료를 쉽게 구할 수 없다. 이때는 주로 대퇴골이나 치아에서 시료를 채취하는데, 그나마도 그 안에 골수가 남아있어야 한다.
골수를 채취하기 위해서는 뼈를 잘게 잘라야 한다. 먼저 뼈에 묻은 이물질을 제거한 뒤 뼈를 말랑하게 만드는 탈회 과정을 거친다. 약품(EDTA)을 이용해 뼛속 칼슘을 없애고 무르게 만드는 것이다. 뼈 상태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탈회 과정에는 2~3주가 필요하다.
만약 이 방법도 통하지 않는다면, 최후의 수단으로 ‘슈퍼임포즈(superimpose)’ 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 변사체의 두개골을 실종자로 추정되는 사람의 얼굴 사진과 같은 각도로 촬영해 겹쳐보는 것이다. 현재는 유전자나 법치의학 기법이 주로 쓰이지만, 필요하다면 슈퍼임포즈 방법도 사용할 수 있다.
당시 상황에서 가장 신속하게 신원을 확인하는 방법은 치아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형사팀이 가옥의 최종 거주자와 주변 주민을 수소문하고, 또 인근 지역의 치과를 일일이 탐문 수사했다. 그 결과 사건 현장에서 약 22km 떨어진 한 치과에서 A 씨의 진료기록을 찾을 수 있었다. 당시 진료 의사에게 유골의 치아 사진 감정을 요청한 결과 진료기록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다행히 변사자의 신원은 신속히 확인됐다.
2008. 06. 18 용의자로 남편 지목하고 추적
치과 진료기록을 통해 변사자 A 씨의 신원을 확인한 만큼 A 씨의 행적을 확인하는 데 수사 역량을 쏟아부었다. 경찰에 신고된 기록을 확인한 결과, A 씨의 오빠가 2002년 2월 경찰에 A가 가출했다고 신고했다.
당시 수사기록과 A 씨 주변 지인의 진술을 토대로 A 씨의 행적을 다시 추적했다. 가출 신고가 이뤄지기 2년 전인 2000년, A 씨는 우울증으로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알코올 중독으로 치료 중이던 남편 B 씨를 만났다. 그리고 2002년 2월 집을 나가 남편과 동거를 하다가 2002년 11월 결혼했다. 하지만 이후 그의 행적이 묘연했다.
그렇다면 범인은 남편인 B 씨일 수도 있었다. 수사팀은 B 씨의 행적을 집중적으로 조사했다. 제대로 된 직업이 없었던 A 씨와 B 씨는 정부로부터 기초생활급여를 지원받고 있었다. 조사 결과, A 씨 사망 이후 A 씨의 통장으로 지급되는 급여를 B 씨가 받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은행에서 A 씨의 급여를 인출하는 장면도 은행 폐쇄회로(CC)TV에 잡혔다. 용의자를 B 씨로 압축한 수사팀은 경북 안동시의 한 알코올 중독 전문 병원에 입원해 생활 중이던 B 씨를 검거했다.
사건의 경위는 다음과 같았다. 2002년 결혼 이후 A 씨는 B 씨의 아이를 임신했다. 임신 9개월이던 2003년 3월 어느 날, A 씨는 집으로 배달된 B 씨의 등기우편물을 받으면서 B 씨의 도장을 찍어줬다. 이후 귀가한 B 씨는 자신의 도장을 허락도 없이 마음대로 찍었다는 이유로 임신 중인 A 씨를 주먹과 발로 여러 차례 폭행한 뒤 집을 나갔다.
이후 시간이 지나 귀가한 B 씨 앞에 놓인 광경은 하혈한 채 쓰러져 죽어 있는 A 씨였다. A 씨의 사망을 확인한 B 씨는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A 씨를 집 뒤편에 묻어두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집을 떠나 병원에 입원했다.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피해자 A 씨, 아니 피해자들의 한은 뼈가 발견되면서 5년 만에 풀린 것이다.
미제사건 안 만들려면 사소한 증거도 소중히 해야
살인범, 특히 계획적인 살인범의 경우 완전범죄를 꿈꾸며 증거가 될만한 물건들을 버리거나 소각하고, 신원 확인이 어렵도록 지문을 없애며, 시신을 토막 낸 뒤 각기 다른 장소에 유기하는 등 수사 진행을 어렵게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과학수사요원들은 현장에 남아있는 증거를 통해 은폐된 사건의 진실을 파헤친다.
올해 6월에는 경기도 오산에서 신원 불명의 백골 시체가 발견됐다. 수사팀은 치아 상태뿐만 아니라 현장에서 발견된 반지, 귀걸이 등을 토대로 수도권 일대 15~17세 청소년 3만8000여 명을 추린 뒤 일일이 신변을 확인했다.
이들 중 연락이 닿지 않는 사람이 4명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게시물에서 현장에서 발견된 반지와 일치하는 사진을 찾았다. 이후 부모의 DNA와 대조 검사를 통해 변사자의 신원을 확인했다.
이처럼 변사자의 의복이나 소지품부터 흉터, 점, 머리카락, 수술 자국, 수술 시 삽입된 보조 장치나 보형물, 그리고 최근 유행하는 문신까지 여러 증거가 신원 확인에 매우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한 사건이 영원히 미제로 남지 않으려면, 사소한 증거물이라도 빠뜨리지 말아야 한다. 하찮아 보이는 흔적이 어쩌면 사건의 열쇠일 수도 있다.
김대열
대구보건대에서 임상병리학을 전공하고 경북지방경찰청 검시조사관으로 근무하고 있다. 특이한 변사에 관심을 두고 연구하고 있으며, 참수와 극단적 자살에 관한 사례 등에 대한 논문을 집필했다. teaeun3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