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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가장 흔한 빨간집모기의 항변

[모기 박멸 카운트다운]

“안녕하세요. 모기애오.어엇. 벌써 도망가지 마새오. 전 여러분 안 물어오. 아직 어리거든오. 매일같이 쪼끼는 게 억울해서 제 소개 좀 제대로 하려는대…, 게속 벌레체 스면 여러분 모 알아들으니 인간말 번역기 틀어 마춤법 맞게 쓸개오. 잠시만오. 샤샤샥!”

 

알부터 성충까지 완전변태 곤충

 

 

나는 빨간집모기. 알부터 성충까지 완전변태 곤충이다. 사는 곳은 충북 청주. 도시에 사는 모기들 가운데 열에 여덟은 나와 같은 종의 모기들이라, 아마 독자 여러분들도 내 모습이 익숙할 것이다.
내가 있는 이곳은 질병관리본부에서 우리 모기들을 연구하기 위해 마련한 거처다. 정확히는 사육실에 가깝다. 우리는 수억 년 전부터 지구에서 살고 있는데, 고작 100만 년 전에 나타난 인간들이 우리를 너무 싫어한 탓에 여기서 연구 대상으로 사육되고 있다. 작고 여린 우리들은 주둥이 끝부터 꼬리 끝까지 이곳에서 낱낱이 파헤쳐지고 있다.


여기 사육실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모기 삼총사’가 살고 있다. 세 방에 각각 나눠져 있는데, 이 방에는 나와 같은 빨간집모기들만 있고 옆방에는 내 사촌격인 작은빨간집모기가 살고 있다. 그 옆방에는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아디다스 모기’라는 별명으로 종종 불리는 흰줄숲모기가 살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각 방에 놓인 3층짜리 선반에 성장 단계별로 나뉘어져 살고 있다. 우리는 파리목에 속하는 곤충 중에서도 ‘알-유충-번데기-성충’의 단계를 거치는 완전변태류에 해당돼 성장 단계를 구분하기 쉽다. 


가장 어린 유충은 선반 맨 아래 칸에, 다 자란 성충은 선반 가장 위 칸에 있다. 나는 날개 달린 성충이라 3층에 놓인 사육망 안에서 살고 있는데, 여기서 몸이 더 커지면 아예 건너편 선반으로 옮겨질 예정이다.

 


꼬리 들고 흔들어~, 쉐낏!

 

나의 유충 시절, 흔히 장구벌레라 불리는 그 시절을 살짝 떠올려보자면 1주일 내내 물속을 헤엄쳐 다녔다. 물속 깊이 들어가지는 않고 웬만하면 수면 근처에 찰싹 붙어 지냈다. 바깥 공기를 마시며 호흡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호흡할 수 있는 기관이 꼬리 끝에 있는지라 항상 꼬리를 수면 위로 향하게 자세를 잡고 헤엄을 친다.


유충 시절에는 별 다른 걸 먹지 않았다. 물속에 있는 플랑크톤이나 유기물을 걸러서 먹는데, 아주 조금만 먹어도 사는 데 지장이 없다. 사실 인간들이 흔히 오염된 물이라고 칭하는 곳이 우리에게는 유기물 먹이가 풍부한 낙원이다. 여기 사육실은 물고기 사료를 갈아서 주곤 한다. 


물의 양이 많을 필요도 없다. 어차피 수면부에 살기 때문에 물이 얕아도 된다. 우리 몸집이 워낙 작고 먹이도 많이 필요 없어 웅덩이가 넓을 필요도 없다. 오히려 우리의 천적이 살지 못할 만큼 아주 좁은 물웅덩이가 생존에는 더 유리하다.


다만 딱 하나, 물이 흐르면 안 된다. 수서곤충 체면에 민망하긴 하지만, 사실 대부분의 모기 유충들은 수영을 잘 못한다. 물이 흐르면 아무 저항도 못한 채 그냥 물이 흘러가는 대로 떠내려 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물은 반드시 고여 있는 상태여야만 한다. 폐타이어에 아주 약간 고인 물 정도면 유충에게는 훌륭한 서식 환경이고, 폐수가 쌓이는 아파트 정화조는 그야말로 천국이다. 


여기 사육실에는 가로세로 30~40cm의 얕은 쟁반에 물이 고여 있고, 이 쟁반에서 유충 수백 마리가 자라고 있다. 쟁반이 여러 개 있으니 이 공간에만 수천 마리가 살고 있을 것이다. 유충들은 수일 내로 번데기가 된다. 완전변태하는 곤충들이 그렇듯, 우리도 번데기 과정을 통해 겉모습이 획기적으로 변한다. 꼬리에 있던 숨구멍이 머리 쪽으로 옮겨지고, 날개도 새로 생긴다. 


보통 다른 곤충의 번데기는 껍질 안에 갇혀 옴짝달싹 안하지만, 우리는 번데기 시절에도 물에서 헤엄치며 다닌다. 그것도 매우 격하게. 만약 헤엄치지 않는다면 물속으로 가라앉아 죽고 만다. 그래서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헤엄쳐야만 한다.


종에 따라 다르지만 이렇게 자랄 때까지 5~14일이 걸린다. 이때 매우 중요한 것이 기온과 습도다. 기온이 높을수록 성충이 되는 기간이 짧아지고, 습도가 높을수록 성충의 수명이 길어진다. 한국의 여름처럼 고온다습한 환경이야 말로 우리 모기들이 빨리 자라고 오래 살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란 얘기다.

 


동물 피 필요한 모기는 200종

 

 

우리는 인간의 피를 빠는 해충으로 유명하지만, 사실 우리의 주식은 따로 있다. 바로 꽃의 꿀이나 나무의 진이다. 이를 통해 성충은 당분을 섭취하며 자란다. 꽃의 꿀을 빨 때 자연스럽게 우리 다리에 꽃가루가 붙고 이 과정에서 수분도 이뤄진다. 벌이나 나비처럼 우리 역시 식물과 ‘윈윈’하는 막역한 사이인 것이다. 물론 이곳 사육실에는 꽃은 없고 대신 설탕물을 준다. 


우리 종족들 중에서 동물의 피가 필요한 모기는 전 세계 3500종 가운데 단 200종뿐이다. 200종도 대부분 교미한 암컷만 해당한다. 이들 암컷은 알을 배기 위해 단백질을 필요로 하는데, 이를 동물의 피로 보충한다. 따지고 보면 피를 섭취하기 위해 우리도 목숨을 걸고 동물에게 날아가는 셈이다. 그 외에 수컷이나 교미하지 않은 암컷은 굳이 동물 피를 빨 필요가 없다. 


동물 중에서도 온갖 도구로 무장한 인간은 우선순위가 아니다. 차라리 2억 년 전 공룡의 피를 빠는 게 더 쉬웠을 것이다. 사실 우리가 처음부터 인간의 피를 빤 것은 아니다. 피가 필요한 모기들은 대부분 종을 가리지 않고 동물의 피를 섭취하기 때문에 주변에서 흔히 보이는 동물을 목표로 삼았다.


그런데 주변의 동물들이 점점 사라져갔다. 회색 건물들이 빼곡하게 세워진 도시는 더 심각했다. 주변에 보이는 동물이라고는 당연히 인간이 가장 많았다. 우리도 정말 어쩔 수 없이 세대를 이어가기 위해 인간 소굴로 뛰어들었다.


나날이 발전하는 인간 문명은 우리도 변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원래 주변 환경에 따라 체온이 변하는 변온동물이어서 기온이 따뜻한 시기에만 사는 여름 곤충인데, 도시 곳곳이 사시사철 따뜻해지다 보니 우리도 봄이고 가을이고 시시때때로 살 수 있게 됐다.


우리 빨간집모기와 형제격인 지하집모기는 지하철역에서 진화한 신종이다. 육상에서 살던 빨간집모기 중 일부가 별다른 동물도 식물도 없는 지하로 내려갔는데, 그곳에서 쥐와 인간의 피를 빨아 먹기 시작했다. 걔들은 특이하게 따뜻한 지하에서 겨울잠도 안 잤고, 암컷이 피를 빨지 않아도 알을 낳을 수 있었다. 모기들이 지금처럼 득달같이 인간을 향해 대롱을 쏘는 게, 어찌 보면 당신들 인간의 업보일 수도 있다.


연간 70만 명, 사망 원인 1위

 

인간들은 우리를 생태계에서 박멸 1순위인 해충으로 꼽고 있다. 인간의 살에 앉아 피를 빨고 가렵게 만든다는 이유도 크지만, 그보다는 우리가 수많은 치명적인 질병과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한 통계에 따르면 우리가 한 해에 70만 명이 넘는 인간을 죽인다고 한다. 인간 사망 원인 1위가 모기라나 뭐라나. 


한 가지 분명히 해두자면 우리가 병을 만드는 건 아니다. 단지 병원균을 옮길 뿐이다. 그래서 우리를 질병 ‘매개체’라고 한다. 예를 들어 말라리아는 말라리아 원충이라는 녀석이 만든 것인데, 우리가 여러 사람을 흡혈하면서 이 원충들을 옮기는 것이다. 뭐, 우리가 말라리아를 퍼뜨리는 데 상당한 역할을 했다는 건 나도 인정한다.


그래서 인간들이 대대로 우리를 싫어했다. 고대 그리스에는 우리를 ‘anōphelē′s’라고 불렀는데, ‘쓸데없는(good-for-nothing)’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고대 그리스의 알렉산더 대왕도, 최강의 정복자 칭기즈칸도 말라리아로 죽었다는 설이 있던데…. 그래서 옛 기록에도 우리를 쫓아내기 위해 별의별 수단을 동원했다는 내용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최근 인간들의 과학기술이 급격하게 발전하면서 우리를 아예 박멸시킬 기술들을 개발하고 있다고 한다. 이곳 사육실도 박멸까지는 아니지만, 우리가 옮기는 질병을 자세히 알아내기 위해 우리를 사육하고 있다. 


우리는 병원체가 섞인 피를 빨고 나면 그 병원체를 다른 동물에게 얼마나 많이 옮기는지 확인받아야 한다. 또 내 몸에 어떤 물질을 넣어 병원체를 옮기는지 안 옮기는지도 확인한다고 들었다. 
이제 나도 며칠 지나 몸이 더 커지면 본격적인 연구 대상이 될 것이다. 그때까지 열심히 설탕물이나 빨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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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서동준 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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