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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깃털의 원조는 공룡

시노사우롭테릭스부터 시조새까지

 

새는 공룡이다. 이것은 사실이다.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이미 32년 전인 1986년에 밝혀진 사실이다. 새가 공룡이라는 사실을 처음 증명한 사람은 미국 예일대 고생물학자인 자크 고티에 교수다.

 

고티에 교수는 새와 일부 육식 공룡이 공통적으로 앞발목을 부채꼴로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런 동작이 가능한 것은 바로 앞발목 뼈가 반달모양으로 생긴 덕분이다. 프라이드치킨에 있는 날개 부위가 부메랑처럼 접혀있는 이유도 이와 같다.

 

고티에 교수는 새를 포함해 반달모양의 앞발목 뼈를 가진 공룡들을 모두 묶어서 마니랍토라(Maniraptora)류로 정의했다. 이는 라틴어로 ‘손 약탈자’라는 뜻이다. 여기에는 영화 ‘쥬라기공원’의 단골 배우인 벨로키랍토르(Velociraptor)부터 ‘창조론자의 악몽’으로 상징되는 시조새(Archaeopteryx)까지 다양한 종류가 포함된다.

 

 

 

中 랴오닝성에서 공룡 깃털화석 첫 발견 
 

흔히 깃털은 새의 전유물로 여겨진다. 실제로 깃털 없는 새를 상상하기는 쉽지 않다. 마치 바퀴가 빠진 자동차 같다고나 할까. 새가 처음 공룡으로 분류됐을 때 대부분의 과학자들도 그렇게 생각했다. 어느 작은 육식 공룡이 새로 진화하면서 깃털로 덮이게 됐다고. 하지만 화석 하나가 이런 고정관념을 단번에 깨버렸다. 바로 온몸이 깃털로 뒤덮인 작은 공룡의 화석이었다.

 

이 화석이 발견된 것은 1996년 8월, 장소는 중국의 랴오닝성(遼寧省)이었다. 재밌게도 화석을 발견한 사람은 과학자가 아닌 농부였다. 그는 농사를 짓지 않는 날에는 밭 중간에 만들어 놓은 깊은 땅굴에 들어가 화석을 채취하곤 했다. 말로만 들으면 예능 프로그램인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에나 나올 법한 인물 같다. 하지만 랴오닝성에는 밭에서 채취한 화석을 팔아 용돈을 버는 농부들이 적지 않다.

 

 

농부는 고양이만 한 공룡 화석을 중국의 고생물학자들에게 팔았고, 화석을 구입한 학자들은 이것을 연구해 세상에 알렸다. 이 공룡은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합친 ‘중국의 도마뱀 날개’라는 뜻의 ‘시노사우롭테릭스(Sinosauropteryx)’라는 길고도 복잡한 학명을 부여받았다. 헷갈리게도, 이름의 뜻과 달리 날개는 전혀 갖고 있지 않다. 오히려 두 팔은 짧다.

 

시노사우롭테릭스는 약 1억2460만 년 전에서 약 1억2200만 년 전까지, 그러니까 백악기 전기 때 살았던 공룡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깃털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깃털은 시노사우롭테릭스의 정수리부터 목과 등, 그리고 꼬리를 뒤덮은 채 발견됐다. 하지만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닭의 깃털처럼 크고 복잡한 깃털과는 다르다. 오히려 병아리의 짧고 보송보송한 솜털 같은 단순한 깃털이었다.
짧은 팔과 솜털 같은 깃털로는 하늘을 날 수 없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최초의 깃털이 보온 용도였을 것으로 확신한다. 백악기 전기의 랴오닝성 일대는 잦은 화산 폭발로 인해 다른 지역에 비해 추웠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깃털로 덮인 시노사우롭테릭스는 당시에 벌거벗은 다른 공룡들보다 훨씬 따뜻한 나날을 보냈을 것이다.

 

 

 

보온과 구애에 깃털 쓴 ‘타조 공룡’
 

시노사우롭테릭스보다 조금 더 진화한 오르니토미모사우루스류(Ornithomimosauria)는 작은 머리와 긴 목, 긴 다리를 가지고 있어서 마치 타조를 연상시킨다. ‘타조 공룡’이라는 별명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영화 ‘쥬라기공원’에서 초원을 무리지어 뛰어다니는 갈리미무스(Gallimimus)가 바로 여기에 속한다.

 

20년 전까지만 해도 타조 공룡과 타조를 구분하는 방법은 간단했다. 날카로운 앞발톱과 길쭉한 꼬리를 가지고 있으면 타조 공룡, 이런 것들이 없고 대신에 깃털로 덮여 있으면 타조였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이제는 타조 공룡의 화석에서도 깃털의 흔적들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2012년 캐나다 캘거리대의 고생물학자 달라 젤레니츠키 교수팀은 타조 공룡의 깃털 흔적을 처음으로 보고했다. 이들이 보고한 타조 공룡의 종류는 오르니토미무스(Ornithomimus)였다. 사람보다 조금 큰 공룡으로 이빨이 없는 대신 각질로 된 부리를 가졌으며, 지금으로부터 약 7650만 년 전에서 약 6650만 년 전까지 북미 대륙에서 살았다. doi:10.1126/science.1225376

 

 

깃털은 오르니토미무스의 목과 등 부위에 보존돼 있었다. 살아생전에는 온 몸을 덮고 있었을 것이다. 이 공룡의 몸을 덮은 깃털은 시노사우롭테릭스의 것과 비슷한 솜털이었다. 확실히 보온용이다.
하지만 연구팀은 또 다른 종류의 깃털 흔적을 찾았다. 오르니토미무스의 앞다리 뼈(요골·radius) 아래에서 검은 직사각형의 얼룩들을 확인했다. 지저분한 자전거 바퀴자국 같은 얼룩들은 깃대가 있는 큰 깃털들이 붙었던 자리가 탄화된 것이다. 날개깃이 붙어 있는 오늘날의 새 뼈에서도 비슷한 흔적들을 찾아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연구팀은 성체에 칼깃형 깃털이 있었다고 본다. 마치 새의 날개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오르니토미무스는 새처럼 앞다리 깃털을 이용해 하늘을 날 수 있었을까. 오르니토미무스는 시노사우롭테릭스에 비해 앞다리가 긴 편이지만, 몸무게가 약 180kg이나 되기 때문에 나는 건 불가능하다. 더군다나 함께 보고된 어린 오르니토미무스의 경우 이런 앞다리 깃털이 전혀 없다. 결국 어른에게만 필요했던 구조인 셈이다. 연구팀은 이 타조 공룡이 앞다리 깃털을 이용해 이성을 유혹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즉, 새의 날개는 애초에 보온과 더불어 사랑(구애)을 위해 진화했다는 해석이다.

 

 

 

멜라노솜 형태 따라 공룡 깃털 색 결정  
 

오늘날에도 구애를 위해 깃털을 이용하는 새들이 많다. 가장 유명한 예로는 인도에 사는 인도공작(Pavo cristatus)이다. 수컷 인도공작은 20개 정도 되는 긴 꽁지깃을 크게 펼쳐서 암컷을 유혹한다.

 

반면 뉴기니의 열대우림에만 서식하는 기드림극락조(Pteridophora alberti) 수컷은 눈 뒤쪽으로 안테나처럼 생긴 깃털 한 쌍이 있다. 수컷은 몸길이의 두 배나 되는 이 깃털을 앞뒤로 흔들며 뽐낸다. 여기에 노래까지 곁들이지만 그다지 듣기 좋은 소리는 아니다(손톱으로 철판을 조금씩 긁는 소리와 비슷하다).

 

 

깃털로 유혹을 하는 새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노래를 잘 못한다는 점도 있지만, 바로 깃털이 화려하다는 것이다. 아름다운 깃털은 수컷 자신이 얼마나 건강한지 보여주는 일종의 전광판이다. 암컷은 자신의 기준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외모를 가진 수컷을 선택한다. 그렇다면 과거의 공룡은 어땠을까. 마찬가지로 화려했을까.

 

10년 전까지만 해도 고생물학자들은 공룡의 색을 알 길이 없었다. 화석에는 거의 뼈만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피부 화석이 발견된다고 해도 패턴이 찍혀 있을 뿐, 색은 남아 있지 않았다. 칙칙한 초록색이나 회색, 호피 무늬, 또는 분홍색에 하트 무늬가 있는 공룡을 그려도 우리는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공룡의 색을 복원할 수 있는 기술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2010년 중국 베이징자연사박물관의 고생물학자 췐궈 리 연구원팀은 주사전자현미경(SEM)을 이용해 공룡의 깃털 화석에 보존된 멜라노솜(색소세포를 만드는 세포 소기관)을 관찰하는 데 성공했다. 이들이 관찰한 공룡은 안키오르니스(Anchiornis)로, 약 1억6000만 년 전인 쥐라기 후기에 중국에서 살았던 비둘기만 한 공룡이다. 긴 날개깃이 솟아 있는 다리와 깃털로 이뤄진 볏을 가졌다.

 

연구팀은 안키오르니스의 깃털에서 두 종류의 멜라노솜을 찾았다. 하나는 소시지처럼 생긴 멜라노솜이고, 다른 하나는 작고 둥근 단팥빵처럼 생긴 멜라노솜이다. 소시지형 멜라노솜은 검정 색소를 만드는데, 몸을 덮는 깃털에서 발견됐다. 반면 단팥빵 모양의 멜라노솜은 붉은 색소를 만들며, 이는 볏에서 확인됐다. 이를 종합하면 안키오르니스는 검정색의 몸에 붉은 볏을 갖고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doi:10.1126/science.1186290

 

과학자들은 이 공룡의 붉은 깃털이 이성을 유혹하는 용도였다는 점에 대해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 사람이 봐도 정말 아름답다. 암컷 공룡의 마음을 훔치기에 충분할 만큼 말이다.

 

 

 

최초 비행 공룡은 1억5000만 년 전 시조새 
 

안키오르니스는 앞다리에도 긴 깃털들이 솟아있었다. 하지만 단순히 뽐내기 용도인 타조 공룡의 것과는 다르다. 이 공룡의 앞다리 깃털은 놀랍게도 비행에 적합한 깃털이다.

 

깃털이 비행용인지 아닌지는 깃대의 위치를 보면 알 수 있다. 날 수 있는 새들의 날개깃은 깃대를 중심으로 한 쪽이 얇고 한 쪽이 넓은 비대칭이다. 그리고 비대칭형 깃털의 단면은 유선형이다. 이런 모양은 공기를 가르며 나갈 때 저항을 최소화시켜 비행에 적합하다. 이쯤 되면 안키오르니스의 앞다리를 날개로 표현해도 무방하다. 그렇지만 과연 안키오르니스는 날개를 이용해 하늘을 날 수 있었을까.

 

비행을 하려면 깃털만큼이나 중요한 게 있다. 바로 날개 모양이다. 하늘의 곡예사인 오늘날의 새는 날개 끝의 깃털이 가장 길다. 안키오르니스의 경우 날개 끝이 아닌 앞발목 부위의 깃털이 가장 길다. 어정쩡한 모양이다. 그래서 학자들은 안키오르니스가 비행이 아닌 활공만 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진정한 비행은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깃털과 마찬가지로 비행 능력 또한 새가 아닌 작은 공룡일 때부터 가능했다. 비행이 가능했던 공룡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은 진화론의 감초로 불리는 시조새다. 

 

이것부터 알고 넘어가자. ‘최초의 새’로 잘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시조새는 새가 아니다. 시조새는 조익류(Avialae)에 포함된다. 마니랍토라류 중에서 아래턱 이빨이 20개 이하인 무리다. 새도 여기에 포함된다. 하지만 정강이뼈와 허벅지뼈가 하나로 합쳐진 경족근골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시조새와 구분된다. 시조새는 새의 조상이 아닌 새의 친척이라고 보면 된다.

 

 

시조새는 비행에 적합한 날개깃을 가졌다. 비대칭인데다가 가장 긴 날개깃이 날개의 끝 쪽에 위치한다. 올해 3월 체코 팔라츠키대의 조류학자인 데니스 보텐 연구원팀은 시조새의 날개 뼈 단면 형태를 자세히 분석한 연구결과를 공개했다. 연구팀은 시조새 뼈를 69종의 현생 새와 각종 육식 공룡, 초식 공룡, 그리고 악어와 익룡의 뼈와 비교했다. 그 결과 시조새의 뼈는 힘차게 날아올라 짧은 거리를 날 수 있는 꿩, 칠면조, 인도공작의 뼈와 비슷했다. doi:10.1038/s41467-018-03296-8 이는 새의 친척인 시조새의 힘찬 날갯짓이 새와 시조새의 공통조상에서 기원했다는 뜻이다. 

 

보텐 연구원은 시조새가 등장하기 이전, 그러니까 적어도 1억5000만 년 전보다 이전에 날갯짓이 시작됐을 것으로 추정했다. 가장 오래된 새의 화석은 약 1억2100만 년 전 지층에서 발견됐다. 공룡의 비행은 새보다 최소 2900만 년이나 앞서 등장했다는 얘기다.

 

깃털은 눈 다음으로 동물이 만들 수 있는 가장 신기한 구조다. 화려하면서도 복잡하고, 섬세하면서도 강하다. 투박한 공룡에게 이리도 아름다운 게 나오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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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박진영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박사과정 연구원
  • 기타

    [에디터] 서동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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