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악 깍깍’.
아침부터 까치가 울어댄다. 반가운 손님이라도 오려나 하는 생각에 나가보니, 나무 아래 깃털 하나가 떨어져 있다. 전체적으로 검지만 보라색과 초록색 그리고 파란색까지. 온갖 색이 깃털 하나에 모두 담겨 있다. 사람을 포함한 포유류의 털에는 이런 알록달록한 총천연색을 보기 어렵다.
새의 깃털은 색이 화려할 뿐만 아니라 부위에 따라 생김새도 독특하다. 날개에 있는 깃털은 넓적하고, 턱이나 가슴 깃털은 장식처럼 짧다. 무엇이 새의 깃털과 포유류의 털을 이리도 다르게 만들었을까.
털은 알파 케라틴, 깃털은 베타 케라틴
새는 깃털이 있지만 털은 없다. 이와 반대로, 포유류는 털이 있지만, 깃털은 없다. 너무나도 다른 생김새를 가진 털과 깃털이지만, 주된 기능은 매우 비슷하다. 햇빛이나 먼지 등으로부터 맨몸을 보호하고, 체온을 유지한다. 둘 다 구성성분이 ‘케라틴’이라는 단백질이기 때문이다. 케라틴은 점성과 탄성이 매우 높고, 물에 잘 녹지 않는다. 동물의 손발톱이나 뿔 같은 단단한 부위도 케라틴으로 이뤄졌다.
그런데 왜 깃털과 털은 전혀 다르게 생겼을까. 그 이유는 케라틴 구조에 있다. 털에 있는 케라틴은 흔히 나선형이라고 불리는 ‘알파 구조’를 형성하고 있지만, 깃털에 있는 케라틴은 병풍형, 혹은 평상형으로 불리는 ‘베타 구조’를 이룬다(아래 그림).
재미있게도 포유류의 손발톱과 조류의 발톱 역시 케라틴의 구조가 다르다. 털과 깃털의 차이와 마찬가지로 포유류의 손발톱은 알파 케라틴으로 구성돼 있으며, 조류의 손발톱은 베타 케라틴으로 이뤄졌다. 뿐만 아니라 각질, 뿔, 부리 등 케라틴으로 이뤄진 모든 부위가 포유류에서는 알파 케라틴으로, 조류에서는 베타 케라틴으로 돼 있다.
파충류의 경우 포유류보다는 조류와 더 닮았다. 파충류의 온몸을 뒤덮고 있는 비늘은 깃털과 마찬가지로 베타 케라틴으로 구성돼 있다. 이는 포유류와 조류, 그리고 파충류가 어떤 순서로 진화했는지 보여주는 하나의 단서이기도 하다.
이들 세 부류는 양막류라는 공통 조상에서 시작됐는데, 포유류와 파충류가 갈라져 진화하면서 케라틴의 구조 또한 다르게 진화한 것으로 추측된다. 마찬가지로 조류는 포유류보다는 파충류와 계통적으로 훨씬 가깝기 때문에 깃털, 부리 등이 베타 케라틴으로 이뤄져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파트 2에서 자세히 다룬다).
화려한 깃털 비결은 ‘구조색’
털과 깃털은 모양만 서로 다른 게 아니다. 털보다는 깃털이 훨씬 화려하다. 동물의 털은 대부분 검은색이나 회색, 갈색이다. 또 한 개체가 보유한 털 색깔의 종류나 패턴도 단순한 편이다.
반면 조류의 깃털 색깔은 굉장히 다양하다. 새 한 마리에도 다양한 색의 깃털이 몸을 감싸고 있으며, 심지어 깃털 하나에도 오만 가지 색이 들어 있다. 깃털이 털에 비해 훨씬 화려한 비결은 멜라닌 색소 덕분이다.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이 차이를 단번에 확인할 수 있다. 이은옥 국립생태원 생태연구본부 융합연구실 선임연구원은 “깃털의 작은 깃가지 단면을 현미경으로 보면 케라틴 주변으로 멜라닌이 꽉 차 있지만, 이에 비해 털에는 멜라닌이 듬성듬성 있거나 아예 없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멜라닌 자체는 검은색이나 갈색을 띤다. 깃털이 화려한 이유가 단순히 멜라닌 색소가 많아서만은 아니라는 뜻이다. 이 선임연구원은 “멜라닌은 굴절률이 굉장히 큰 편”이라며 “멜라닌의 크기나 모양이 조금만 달라져도 빛의 굴절각이 달라져 다양한 색으로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색체가 아닌 물질의 구조에 의해 빛이 꺾이면서 나타나는 색을 ‘구조색’이라고 부른다. 이 선임연구원은 “구조색은 깃털과 털 사이의 가장 큰 차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생태계에서 화려한 몸 색깔은 생존에 오히려 해가 된다. 천적의 눈에 쉽게 띄기 때문이다. 신체 부위마다, 그리고 깃털의 영역마다 각기 다른 멜라닌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는 에너지도 많이 소모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가 구조색을 띠게 된 이유로 현재 학계에서 가장 지지받는 가설은 바로 구애다. 새는 짝을 찾기 위해 종마다 자신만의 매력을 뽐낸다. 노래를 하거나, 춤을 추거나, 또는 화려하거나.
이 선임연구원은 “세 가지를 모두 잘 하는 새는 없다”며 “아마 노래나 춤에 뛰어나지 못한 새들이 구조색으로 만들어진 화려한 빛깔의 깃털로 상대를 유혹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외에도 상대를 경계하는 용도, 무리 내의 의사소통, 또는 보호색을 위해서 구조색이 생겼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날갯짓 많이 할수록 깃털 밀도 높아
같은 종류의 깃털이라도 종마다 구조와 기능이 다르다. 2015년 송거 바가시 루마니아 바베스볼라야대 생물및생태학부 박사후연구원은 서식지와 비행 유형에 따라 깃털의 구조를 비교 분석해 그 결과를 영국생태학회가 발행하는 학술지 ‘기능 생태학’에 발표했다. doi:10.1111/1365-2435.12419
연구팀은 2003~2013년 137종 661마리의 날개깃을 수집했다. 이어서 날개깃을 깃대의 너비, 깃가지와 작은 깃가지의 밀도, 그리고 공극률(전체 부피 중 빈틈이 차지하는 비율) 등 네 가지 구조적 특징으로 나눠 분석했다. 연구팀은 이와 함께 종마다 체중, 식이, 서식지, 털갈이, 비행 유형 등의 데이터를 모아 날개깃 구조와의 상관관계를 분석했다.
그 결과 비행 유형과 서식지, 날개 형태, 털갈이 습성은 모두 깃털 구조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어 비행 유형상 참매, 왜가리처럼 날갯짓을 적게 하며 활공을 주로 하는 새들은 날갯짓을 많이 하는 청둥오리, 수리부엉이보다 깃대의 너비가 더 넓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신 날갯짓을 많이 해 위아래로 자주 움직이는 새는 깃가지가 표면을 더 빽빽하게 채우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연구팀은 이에 대해 깃털 사이로 빠져나가는 공기가 적을수록 비행 시 양력을 크게 받을 수 있어서 고도를 높이는 데 유리하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했다.
물총새, 붉은부리갈매기처럼 물에서 서식하거나 물속 먹이를 사냥하는 새의 경우 깃가지와 작은 깃가지의 밀도가 조류 중에서 가장 높았다. 이는 방수 기능을 높이고, 물속으로 들어갈 때 저항을 줄이기 위해 깃털의 구조를 변화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바가시 연구원은 “새들은 비행 유형과 서식지에 최적화된 깃털을 갖도록 진화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먹이 유인하고 창자 보호에도 깃털 사용
새가 깃털을 이용해 몸을 보호하거나 구애를 하고, 비행만 하는 것은 아니다. 새가 깃털을 이용해 할 수 있는 일은 20가지 이상 알려져 있다.
깃털을 이용해 먹이를 찾거나, 먹이를 수월하게 먹는 새들도 있다. 검은해오라기는 얕은 물에서 천천히 걷다 서기를 반복하다가, 날개를 우산 모양으로 만들어 2~3초 간 자세를 유지한다. 그렇게 그늘이 지면 물고기가 그림자 안으로 모여들 뿐만 아니라, 눈부심을 줄여 물고기를 확인하기가 쉬워진다. 검은해오라기는 이 때를 놓치지 않고 길고 뾰족한 부리를 창을 던지듯 물고기의 머리에 재빠르게 꽂는다.
깃털을 먹는 새도 있다. 겨울철 우리나라 연안에서 볼 수 있는 귀뿔논병아리는 깃털 수백 개를 삼킨다. 이 정도면 귀뿔논병아리의 위 절반가량이 깃털로 채워진다. 배가 고파서 깃털을 먹는 것은 아니다.
박진영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박사과정 연구원은 “귀뿔논병아리는 다른 새에 비해 물고기를 많이 먹는데, 뼈나 가시가 소장까지 이동해 상처를 입힐 수 있다”며 “깃털로 위와 소장 사이 통로의 면적을 넓혀 뼈와 가시가 소장에 도달하기 전에 위에서 완전히 분해 되도록 돕는다”고 말했다.
눈 위에서 사는 새에게도 깃털은 유용하다. 북미의 눈 덮인 지역에 서식하는 목도리뇌조는 보온을 위해 다리에도 털이 나 있을 뿐만 아니라, 부리 주변의 털이 콧구멍을 덮어 빨아들이는 공기를 따뜻하게 만든다. 목도리뇌조의 다리에 난 깃털은 눈 위에서 이동할 때도 꼭 필요하다. 날이 추울수록 다리의 깃털은 더 크게 자라는데, 이는 목도리뇌조가 눈 속으로 가라앉지 않도록 한다. 다리 깃털이 일종의 ‘눈 신발’ 역할을 하는 셈이다.
또 펭귄(펭귄도 조류다)이 눈 위를 이동할 때에도 깃털이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펭귄은 총총히 걷기도 하지만, 배를 깔고 미끄러져 슬라이딩을 하기도 한다. 이때 배 부분의 매끄러운 깃털이 썰매 역할을 한다. 그래서 긴 거리를 훨씬 빠르고 부드럽게 움직일 수 있다.
이외에도 천적에게 쫓길 때 꼬리깃을 떨어뜨려 유인하거나, 깃털을 깔때기처럼 모아 소리를 듣거나, 깃털을 비벼 소리를 내는 등 새들은 매우 다양하게 깃털을 활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