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물리학상 - 빛으로 나노입자 집는 '광집게'

● 빛으로 나노입자 집는 '광집게'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작은 입자를 집는 방법은 없을까. 빛의 힘을 측정하던 아서 애슈킨 미국 벨연구소 연구원(현재 은퇴)은 1970년 우연히 작은 입자를 빛으로 포획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레이저로 세포와 바이러스 포획

당시 빛의 힘을 측정하기란 ‘하늘에서 별 따기’였다. 이론적으로 계산은 할 수 있었지만 실험으로 힘의 크기를 측정한다는 게 매우 어려웠다. 애슈킨 연구원은 작은 입자에 빛을 쏴 입자가 가속하는 정도를 측정해 빛의 힘을 재는 방법을 떠올렸다. 이때 그가 선택한 빛은 레이저였다. 햇빛처럼 모든 방향으로 산란하는 빛으로는 작은 입자를 밀기조차 어렵기 때문에 빛을 한 방향으로 집속시킨 레이저가 제격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심지어 레이저는 방향을 조절하거나 전원을 껐다 켜는 등 조작이 쉬웠다.  
애슈킨 연구원은 레이저로 빛의 힘을 잴 수 있는 실험 장치를 고안했다. 그리고 이 장치 내에서 크기가 약 2.68μm인 유리 입자들을 고루 퍼뜨린 뒤 파장이 약 514nm(나노미터·1nm는 10억 분의 1m)인 레이저를 쐈다. 
그러자 유리 입자들이 레이저의 축(중심부)으로 끌려가면서 빛이 진행하는 방향을 따라 이동했다. 입자들은 물이 담긴 수조의 벽면에 부딪칠 때까지 계속 움직였고, 애슈킨 연구원이 레이저를 끄자 다시 자유롭게 흩어졌다. 
추가 실험에서는 레이저를 양쪽에서 쏴 서로 반대 방향으로 진행하게 했다. 이때는 입자들이 레이저의 축에 모이는 것과 동시에, 양쪽의 레이저가 만나는 정중앙 지점에서 입자가 안정적으로 포획되는 것이 관찰됐다. 빛의 힘을 측정하던 도중, 빛만으로 입자를 가두는 ‘광집게’를 발견한 것이다.
 애슈킨 연구원이 고안한 실험 장치는 빛으로 미세 입자를 집는 기술인 광집게의 초기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반대 방향으로 진행하는 레이저 두 개로는 광집게를 구현하기 매우 어렵다. 특히 두 개의 레이저를 정확히 서로 반대 방향으로 발사하기란 권총 결투에서 총알을 총알로 쏴서 맞추는 것보다 더 어렵다.
그때부터 애슈킨 연구원은 광집게를 쉽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드디어 16년 뒤인 1986년 그는 획기적인 광집게 장치를 개발했다. 더 놀라운 것은 단 하나의 레이저 빔으로 입자를 포획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애슈킨 연구원은 개구수가 높은 대물렌즈를 사용해 레이저 빔을 강하게 집속하면 초점으로 입자들이 포획된다는 걸 발견했다. 


하나의 레이저 빔으로 광집게가 가능하다는 것은 그만큼 쓰임새가 넓어졌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형광현미경 한 쪽에 레이저 모듈만 달면 다른 고정 장치 없이도 작은 시료를 원하는 시간 동안 자세히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애슈킨 연구원은 이를 이용해 적혈구와 바이러스, 박테리아를 포획하는 데 성공하고 연구 결과를 1986년과 1987년 각각 국제학술지 ‘네이처’와 ‘사이언스’에 실었다. 그는 또 원적외선 레이저를 사용해 열 손상을 입는 문제를 최소로 줄였으며, 광집게로 집더라도 바이러스와 박테리아에 생리적인 손상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광집게가 탄생하기 전에는 미세 입자를 조작할 때 두 가지 문제가 있었다. 가령 손가락으로 쌀알을 집어서 옮긴다고 가정해 보자. 만약 손가락이 너무 뚱뚱하다면 정교하게 쌀알을 집어 올리기가 힘들 것이다. 또 손가락이 너무 끈적거린다면 설혹 쌀알을 집어 올리더라도 원하는 곳에 내려놓을 때 손가락에서 잘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때 달라붙어 있으려는 힘은 작은 유체막에 의한 표면장력, 정전기력 그리고 반데르발스 힘이다.
 광집게는 이들 두 가지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한다. 레이저를 쏘면 입자가 마치 자석에 철가루가 끌려가듯이 초점 위치에 잡히게 돼 있어 빛의 초점(약 1μm)보다 큰 입자는 정교하게 집을 수 있다. 또한 레이저의 초점을 스캐너, 홀로그래피 등으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어서 입자도 자유자재로 옮길 수 있다. 원하는 장소에서 입자를 떨어뜨리려면 레이저를 끄기만 하면 된다. 
거의 모든 광학현미경에 장착할 수 있어, 현미경으로 관찰하면서 입자를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다. 현미경이 미시세계를 보는 ‘창문’이라면, 광집게는 미시세계를 만져볼 수 있는 ‘손’인 셈이다.  
1990년대 초에는 스티븐 블락 미국 스탠퍼드대 응용물리및생물학과 교수가 광집게를 개량해 인간이 측정할 수 있는 가장 작은 힘인 피코뉴턴(pN·1pN은 1조 분의 1N) 단위의 힘을 측정하는 데 성공했다. 근육 단백질인 액틴과 미오신 같은 분자 모터의 힘이나, DNA 등 유기체의 기계적인 특성을 연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동일 분야 연구자가 먼저 노벨상 수상

하지만 이렇게 우수한 성과를 냈던 애슈킨 연구원에게도 쓰라린 경험이 있었다. 운명의 장난인지 이 역시 노벨상과 관련이 있다. 1970년 그가 미국 벨연구소에서 빛으로 원자를 포획하는 방법을 연구하던 때였다. 연구팀에 스티븐 추라는 과학자를 합류시켜 자신이 개발한 광압 장치에 대한 기술을 가르쳤다.
그런데 1985년 스티븐 추는 원자를 포획하는 데 성공한 공로로 노벨상을 수상했지만, 애슈킨 연구원을 비롯해 당시 함께 연구했던 과학자들은 인정받지 못했다. 게다가 스티븐 추와 노벨상을 공동 수상한 윌리엄 필립스가 오히려 스티븐 추가 이끄는 연구팀에서 애슈킨 연구원이 일한 것이라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니기까지 했다. 이후 스티븐 추는 2008년 미국 에너지부 장관 자리에까지 오르게 된다. 
애슈킨 연구원은 은퇴한 뒤 뉴저지주에 있는 한 지하실에 실험 장비를 차려놓고 96세인 지금까지도 연구를 계속해왔다. 최근에는 태양열 에너지와 관련된 특허도 두 개 출원했다. 그래도 이번에 광집게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상을 받았으니, 과거의 억울함은 조금 풀어지지 않았을까. 세계 최고령의 나이로 노벨상을 수상한 애슈킨 연구원. 역시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명언을 떠올리게 된다.

 

 

이용구
서울대에서 기계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삼성SDS를 거쳐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 방문연구원을 지냈다. 현재 GIST 기계공학부 교수로 있다. 2000년부터 광집게를 연구했으며, 이외에도 자율주행자동차와 3D 및 4D 프린팅 등을 연구하고 있다. lygu@gist.ac.kr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2018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에디터

    서동준 기자 기자

🎓️ 진로 추천

  • 물리학
  • 기계공학
  • 생명과학·생명공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