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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절된 아이디어는 어떻게 (이그)노벨상을 받았나

10월 3일 오후 2시, 서울 광화문 동아일보 사옥.


한 남자가 거대한 여행가방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냈다. 생긴 것이 영락없는 비데다. 기자와 눈을 마주친 그가 멋쩍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박승민 미국 스탠퍼드대 의대 비뇨기의학과 강사입니다. 대소변을 측정해 건강을 관리하는 ‘스마트 변기’를 발명한 공로로 이번에 이그노벨상 공중보건상을 받았습니다.” 스마트 변기가 뭐길래 이그노벨상을 받은 걸까. 그 자리에서 확인해보기로 했다.

 

먼저 박 박사에게 발명품을 설치할 수 있도록 세라믹 변기를 건넸다. 오늘의 인터뷰를 위해 을지로 2가의 한 욕실 업체에서 특별히 대여해온 제품이다. 박 박사는 능숙하게 스마트 변기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평범한 비데처럼 생겼다고 말하자 박 박사가 끄덕이며 “시판되는 비데를 개조해 만든 시제품”이라 했다. 전원을 연결하니, 우와! 내부의 LED가 켜지며 변기 안쪽이 신비한 푸른빛으로 물들었다. 변기 사용 경력 30년만에 처음 보는 광경이다. 푸른 변기 옆에 서서 박 박사가 설명을 시작했다.

 

“스마트 변기는 대소변을 관찰해 변기 사용자들의 건강을 관리하기 위해 만든 제품입니다. 비데 세정기 위치에 달려있는 카메라가 사용자가 배출하는 대소변을 실시간으로 관찰하죠. 대변의 크기, 형태, 색깔 등을 기록해 사용자의 건강 상태를 추측합니다.”

 

건강 진단에는 침이나 땀, 피와 같은 몸에서 나온 물질이 필요하다. 이것들에 들어있는 단백질과 같은 화학물질을 분석해 몸 상태를 자세하게 알 수 있다. 가장 널리 쓰이는 것은 피다. 그러나 피를 뽑아봤다면 알 것이다. 혈액 채취는 숙련된 전문가의 손길을 필요로 하면서도 고통을 동반하는, 쉽지 않은 방법이다.

 

박 박사는 몸이 만든 또 다른 물질, 대변과 소변에 주목했다. 대소변을 보기만 해도 건강에 대해 많은 걸 알 수 있다는 게 박 박사의 생각이다. 대변의 굳기를 보면 한 사람의 식습관을 유추할 수 있고, 소변의 색깔로는 요도염이나 방광염, 신장 질환 등을 알 수 있다. 남성은 소변의 배출 속도와 시간을 통해 전립선 이상 여부도 확인할 수 있다.

 

“매일 모이는 대소변 데이터로 번거로운 검사 없이 몸의 이상을 잡아내는 것이 스마트 변기의 궁극적 목표입니다.” 연구자의 입장에서 대소변은 물로 씻어내버리기에는 너무 아까운 생체 정보의 보고란 뜻이다.

 

 

똥 사진 수집도 엄연한 연구입니다!

 

박 박사의 학부 전공은 물리학이었지만, 대학원에서 미세유체를 다루는 의공학으로 방향을 틀었다. 스탠퍼드대 의대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혈액 진단 기술을 연구하던 그에게 스마트 변기란 아이디어가 찾아온 것은 2018년, 스승 고(故) 샌지브 갬비어 스탠퍼드대 의대 영상의학과장 덕분이었다.

 

“사실 스마트 변기에 대한 아이디어는 이르면 80년대에 나왔지만, 구체적인 연구는 없었습니다. 아마도 변기와 대소변이 터부시되는 주제였기 때문이겠죠.” 박 박사는 영상의학계의 전설적인 인물인 갬비어 교수의 격려로 스마트 변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처음이다 보니 기상천외한 장애물이 한둘이 아니었다.

 

우선 연구팀은 대소변에서 어떤 방식으로 데이터를 모을지부터 고민해야 했다. 대소변 표본을 직접 채취할까? 혹은 소변 검사용 막대를 부착할까? 이런 방법은 관리가 힘들다는 문제가 있어, 연구팀은 카메라로 형태를 관찰하는 방법을 택했다. 그러나 카메라로 대소변을 찍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사람들이 변기에 앉으면 엉덩이가 외부의 빛을 가려 내부가 어두워졌기 때문이다. 변기 내부에서 엉덩이 개기일식이 일어나는 셈이다. “저희가 변기 내부에 LED 조명을 설치한 이유죠.” 박 박사가 영롱한 푸른빛의 스마트 변기를 가리키며 말했다(실제 사용할 때는 백색광이 나온다).

 

연구팀의 다음 임무는 스마트 변기의 인공지능(AI)에게 대변의 형태를 학습시키는 것. 오늘날 대변 연구자들은 1997년 케네스 히튼 영국 브리스톨 왕립병원 의대 내과의가 발표한 ‘브리스톨 대변 척도’에 따라 대변을 분류한다. 이 척도는 ‘변이 장내에 오래 머무를수록 수분을 잃고 단단해진다’는 점을 이용해 대변을 일곱 가지로 분류한다. 해당 분류를 통해 대변의 형태만 알아도 변기 사용자가 변비인지, 심각한 장 질환을 앓고 있는지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스마트 변기가 대변의 형태를 학습하면 사용자의 건강 상태도 체크할 수 있을테고, 그러려면 스마트 변기의 AI에게 똥의 형태를 가르쳐줘야 했다.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AI를 학습시키려면 똥 사진을 수천 장 구해야 했어요. 도대체 어떤 사람이 자기 똥 사진을 인터넷에 올린단 말입니까?”

 

그러나 올린 사람이 있었다(세상은 넓고 인터넷은 이상하다)! 박 박사는 인터넷으로 길고 긴 여행을 떠난 끝에 2만여 장에 달하는 똥 사진을 수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아르바이트로 모집한 의대생들과 함께 AI가 인식할 수 있도록 사진에 나온 똥의 외곽선을 따는 작업을 거쳤다. 결과는 훌륭했다. 연구팀이 공개한 스마트 변기 영상에서는 스마트 변기 AI가 마치 보행자를 인식하는 자율주행차처럼 변기 아래로 떨어지는 똥을 실시간으로 인식했다. 스마트 변기는 생물학은 물론 기계공학, 컴퓨터 공학이 합쳐져야 가능한 발명품이었다.

 

성공적인 연구, 잇따른 좌절

 

더 심각한 난관은 사용자 구별 단계에서 발생했다. 방금 용변을 본 사람이 누구인지 어떻게 알아낼 것인가? 연구팀은 물을 내리는 레버에 지문인식 스캐너를 장착하는 등 여러 시도를 했다. 가장 급진적인 시도는 ‘항문 주름 인식 스캐너’였다. 항문 주름이 사람마다 천차만별로 다르게 생겼기 때문에, 카메라와 연결된 AI가 항문을 관찰해서 사람을 인식한다는 아이디어였다. 물론 반발이 심했다. 애초에 누가 용변 장면 촬영도 모자라, 항문 주름까지 보여주려 하겠는가? “사람들의 거부감이 심했고, 이에 대한 윤리적 문제도 제기됐죠. 현재는 변기와 핸드폰을 연동해 데이터를 분류하려고 시도 중입니다. 누구든 화장실에 갈 때는 핸드폰을 들고 가니까요.” 박 박사의 설명이다.

 

좌충우돌 끝에 2020년 4월에 출판된 스마트 변기 연구는 학계는 물론 대중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기사 작성일인 10월 4일 현재, 논문 피인용수는 114번에 달한다. doi: 10.1038/s41551-020-0562-5 처음으로 이그노벨상 위원회에 추천을 받은 것도 이 시기였다.

 

그렇다고 해서 성공이 찾아오지는 않았다. 오히려 반대였다. 스마트 변기의 가능성을 알아본 갬비어 교수가 논문 출판 세 달 후 암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고, 후임 지도교수를 포함한 학계의 반응도 시들해졌다. 유수의 국제학술지에 논문이 실렸음에도, 연구비 지원 사업에서 떨어지고 교수 임용에서 탈락하기 일쑤였다. 이유가 뭐였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박 박사는 “미국과 한국의 여러 대학 면접에서 ‘너무 튀는 주제’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 군데, 미국항공우주국(NASA)에서는 공동 연구를 제의했다. “NASA는 10년 내로 유인 심우주 탐사 계획을 추진하려 해요. 장기간의 우주 탐사에서 건강을 체크하기 가장 적당한 방법이 스마트 변기라고 생각한 거죠.”

“노벨상? 엉뚱한 연구가 이끌 수도”

 

이그노벨상은 스마트 변기 논문을 발표한 지 3년 만에 찾아왔다. 놀랄 일은 아니였다. 박 박사는 “처음 논문을 냈을 때부터 이그노벨상 감이라 생각했는데 그후로 소식이 없었다”며, “이그노벨상을 받길 기다리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그노벨상은 ‘괴짜 과학자들에게 주어지는 상’이라는 인식이 강한데, 수상이 꺼려지지는 않았을까. 이에 대해 박 박사는 이그노벨상 수상 이후, 연구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이 많아졌다고 밝혔다. “제 연구를 소개한 유튜브 영상을 보면 ‘참신한 아이디어인데?’ 같은 댓글이 많이 달려 있어요. 이런 분들이 많을 수록 스마트 변기가 현실이 될 가능성이 커지죠.” 이그노벨상이 연구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 개선에 도움이 된다는 설명이다.

 

화장실은 보건 문제의 중심에 있다. 단적인 예가 친환경 화장실 개발 프로젝트 ‘리인벤트 더 토일렛(Reinvent the Toilet)’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창립자 빌 게이츠가 만든 ‘빌앤멜린다게이츠재단’은 저개발 국가의 보건과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친환경 화장실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박 박사의 스마트 변기도 공중 보건 개선에 보탬이 될 수 있을까.

 

이미 박 박사는 스타트업과 힘을 합쳐 스마트 변기를 만들고 있다. 내년에 시제품이 나오면 요양원 등 노인복지시설에서 효용을 검증할 예정이다. “노인들의 20~30%가 변비를 겪고 있습니다. 변 상태를 직접 관리하기는 어려운데, 스마트 변기를 통하면 적합한 식습관이나 운동요법을 추천할 수도 있겠죠.”

 

박 박사와 인터뷰를 한 10월 3일은 2023년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되는 시기였다. 화제는 자연스레 전날 mRNA 백신 연구로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과학자들로 넘어갔다. 이번 노벨상 수상자들도 미국국립보건원(NIH)에서 한 번도 연구비를 지원받지 못한 연구에 30년을 매달리지 않았던가. 박 박사는 4시간에 걸친 인터뷰를 노벨상 이야기로 매듭지었다.

 

“일본에 노벨상 수상자가 많은데 우리나라는 왜 없냐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죠. 하지만 일본은 사실 이그노벨상에서도 앞서 있습니다. 올해까지 17년 연속으로 이그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어요. 저는 그렇게 다양하고 엉뚱한 연구를 용인해주는 분위기가 노벨상 수상과도 관련 있다고 생각해요. 한국에서도 평범한 바운더리 바깥의 연구를 장려하는 분위기가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브리스톨 대변 척도’는 굳기와 형태에 따라 대변을 콩알처럼 작고 단단한 것(제1형, 심각한 변비)부터 완전한 액체(제7형, 심각한 설사)까지 일곱 단계로 분류한다. 생김새에서 알 수 있듯, 제3형과 제4형이 ‘이상적인 대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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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이창욱 기자
  • 사진

    남윤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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