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 물리학상은 새로운 레이저 기술을 개발한 제라르 무루 프랑스 에콜 폴리테크니크 명예교수, 도나 스트리클런드 캐나다 워털루대 교수와 레이저의 새로운 활용을 개척한 아서 애슈킨 전 미국 벨연구소 연구원 등 3명에게 돌아갔다. 일반적으로 노벨상이 한 가지 연구에 주어지던 것과 달리 올해는 레이저 분야의 2가지 연구에서 공동수상자가 나왔다. 무루 교수와 스트리클런드 교수는 극초단 고출력 레이저 개발 업적을, 애슈킨 박사는 초정밀 레이저 활용 기술 개발 공로를 인정받았다. 국내전문가에게 각 분야에 대한 해설을 들었다.
● 고출력 레이저 시대를 열다
1960년 미국 휴스연구소(HRL)의 시어도어 매이먼이 처음 개발한 ‘레이저(LASER·Light Amplifi cation by Stimulated Emission of Radiation)’는 말 그대로 세기를 증폭시킨 빛이다. 빛은 자연적으로 사방으로 퍼지는데, 레이저는 이를 한 방향으로 모아 세기를 극대화시킨 빛이라고 할 수 있다. 레이저는 빛을 연속적으로 내보내거나(연속파), 일정한 주기로 끊어서 내보내는 방식(펄스 레이저)이 있다.
그중에서도 펄스 레이저는 적은 에너지로 짧은 시간에 순간적으로 높은 에너지(첨두 출력·peak power)를 낼 수 있다. 수도꼭지를 틀어 물을 조금씩 연속적으로 흘려보내는 것보다 일정 시간 모았다가 내보낼 때 순간적으로 쏟아지는 물의 힘이 더 센 것과 같은 원리다. 이런 레이저의 특징은 여러 분야에 활용할 수 있다. 강판처럼 단단한 물체를 자를 수도 있고, 각막처럼 연한 조직을 섬세하게 절개할 수도 있다.
1985년 생애 첫 논문이 노벨상 토대
그간 과학자들은 펄스 레이저의 첨두 출력을 높이는 방법을 연구해왔다. 단순히 레이저의 에너지를 올리는 방법은 한계에 다다랐다. 레이저의 에너지를 높이면 첨두 출력은 높아지지만, 증폭 매질과 반사 거울, 렌즈 등 다른 광학 소자가 손상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레이저 개발 이후 꾸준히 증가하던 레이저 첨두 출력은 약 10여 년간 정체돼 있었다. 그러다가 1985년 획기적인 기술이 등장했다. 당시 미국 로체스터대 레이저에너지연구소에 있던 제라르 무루 교수와, 그의 제자였던 도나 스트리클런드 박사과정 연구원이 ‘처프 펄스 증폭(CPA·chirpe pulse amplification)’ 기술을 개발한 것이다.
그들은 레이저의 에너지를 높이기 전에 펄스 폭을 늘리는 방법을 고안했다. 일단 레이저 펄스를 바로 증폭하는 대신 펄스 폭을 늘려서 시간적으로 아주 긴 레이저 펄스를 만든 뒤, 증폭기를 이용해 레이저 에너지를 키웠다. 그리고 다시 펄스 폭을 짧게 압축시켰다. 그 결과 펄스 폭도 짧으면서 에너지는 훨씬 강한 레이저를 얻을 수 있었다.
무루 교수와 스트리클런드 연구원이 이 기술을 성공시키기까지는 몇 년이 걸렸다. 처음에는 펄스 폭을 늘리기 위해 길이 2.5km인 광섬유에 펄스 레이저를 통과시켰다. 하지만 광섬유에 들어간 레이저는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했다. 광섬유가 중간에 손상을 입어서 빠져나오지 못했던 것이다.
무루 교수팀은 이후 수차례 실험 끝에 광섬유 길이를 1.4km로 줄이는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 CPA를 실험적으로 구현하는 데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스트리클런드 연구원의 생애 첫 논문이 빛을 보게 됐다.
최근에는 페타와트급 초강력 레이저 개발
CPA는 레이저 물리 분야에 혁신을 일으켰다. 고출력 레이저를 개발하는 데 필요한 공간과 비용 문제를 동시에 해결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도 CPA는 극초단 고출력 레이저를 개발하는 기본 기술로 활용되고 있다.
현재 극초단 고출력 레이저는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된다. 특히 펄스 폭이 펨토초(10-15초)인 ‘고출력 펨토초 레이저’는 마이크로미터(μm·1μm는 100만 분의 1m) 수준으로 초정밀 미세 가공을 할 수 있어 산업 분야에서 널리 쓰인다. 혈관 확장에 사용하는 의료용 스텐트 가공이나 라식, 백내장 수술처럼 각막을 정밀하게 절개하는 시술 등 의료 분야에도 고출력 펨토초 레이저가 사용된다.
CPA 개발로 레이저의 첨두 출력이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최근에는 첨두 출력이 페타와트(PW·1PW는 1000조W)급인 초강력 레이저도 등장했다. 이는 펨토초 레이저 펄스의 에너지를 1000억 배 이상 늘렸을 때 얻을 수 있는 출력으로, 전 세계 에너지 발전량의 1000배가 넘는 수준이다.
국내에서는 기초과학연구원(IBS) 초강력레이저과학연구단이 2017년 세계 최고 4PW급 초강력 레이저를 개발해 극한 상황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물리 현상을 연구하는 데 쓰고 있다.
가령 초강력 레이저와 물질이 만나면 물질이 순식간에 이온화하면서 플라스마 상태가 된다. 이를 이용하면 우주에서 일어날 수 있는 물리 현상을 레이저로 연구할 수 있다. 대형 입자가속기처럼 초강력 레이저로 양성자를 빛의 속도 가까이 가속시켜 암 치료용 양성자를 생산하는 데 기여할 수도 있다.
무루 교수는 국내 과학자들과도 인연이 깊다. 미국 미시간대 초고속광학연구소장과 프랑스 응용광학연구소장으로 재직했던 당시 KAIST 출신 연구원들과 공동으로 연구를 수행했다. 최근에는 필자가 속한 IBS 초강력레이저과학연구단 자문위원으로 거의 매년 한국을 방문해 레이저 과학 분야의 비전을 제시해주고 있다.
스트리클런드 교수는 2011년 미국 광학회 부회장 자격으로 한국을 방문해 한국광학회 학술회의에서 강연을 한 바 있다. 당시 여성 과학도들을 격려하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남창희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프리스턴 플라스마 물리연구소 연구원을 거쳐 2012년까지 KAIST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현재 광주과학기술원(GIST) 물리광과학과 교수로 있으며, IBS 초강력레이저과학연구단 단장을 맡고 있다. chnam@gist.ac.kr
성재희
KAIST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2005년부터 GIST 고등광기술연구소 책임연구원으로 있다. IBS 초강력레이저과학연구단 학연연구위원으로 초강력 레이저 개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sungjh@g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