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 화산 대륙이동 등의 현상을 설명하는 가장 설득력있는 이론은 판구조론이었다. 그러나 최근 초정밀 관측망을 통해 지구 심부의 운동을 알아내려는 광역지진학에 대한 관심이 일고 있는데…
우주의 신비를 캐기 위해 인공위성이나 우주선을 발사하여 태양계를 탐사하고 있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러나 땅속의 신비를 알아내기 위해 지구 내부로 탐사선을 발사했다는 소식은 아직 듣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 인간이 땅속으로 도달한 최대 깊이는 12㎞로 이는 지구 반경의 5백30분의 1에 불과하다.
이렇게 베일속에 가려진 지구내부를 탐사하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지구 내부를 통과하여 지표에 도달하는 지진파를 이용하는 것이다. 지진은 때때로 인간에게 막대한 피해를 주지만 이를 통해 지구 내부구조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 주기도 한다.
지진연구는 자연지진이나 핵폭발 등의 인공지진에 의해 일어나는 지진동을 관측, 분석하여 지구 내부구조를 파악하고 지진의 발생원인을 조사하며, 이에 따라 지진예측과 피해의 최소화를 추구하며 지진으로부터의 안전정도를 평가하는 것이다.
지구 심부의 관측이 필요
지진을 관측하기 위해서는 지진관측망을 형성해야 한다. 우리가 몸으로 느끼지 못할 정도의 지진을 관측하는 미소지진관측망은 바로 발밑의 땅속에서 일어난 일만을 알 수 있는 현미경 타입과, 세계 표준지진관측망(WSSN)과 같이 지구내부 깊숙이 투과하여 볼 수 있는 망원경 타입으로 구분할 수 있다.
후자와 같은 접근 방법을 광역(global)지진학이라 부른다. 현재 이러한 광역 지진학의 학문적 추세는 커다란 변환기를 맞고 있어 지구의 대규모 내부구조는 물론 미세한 구조까지도 규명하는 시대에 진입하고 있다. 46억년간 끊임없이 지속되어온 지구내부의 살아 움직이는(dynamic) 활동의 증거로 지진 화산 대륙이동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판구조론(plate tectonics)도 지구전체의 활동에 견주어보면 지표 가까이에서 일어나는 하나의 작은 현상을 설명하는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지구과학의 많은 현상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지구 내부 깊숙한 곳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현상들을 알아내야만 한다.
90년대에 들어 전자기기의 발달에 힘입어 초정밀 지진관측이 가능해졌다. 따라서 양질의 지진자료를 이용하여 지구 심부, 특히 핵(액체상태의 외핵과 고체상태의 내핵으로 구성되어 있음)과 맨틀의 경계부(깊이 약3천㎞)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지구과학자들의 주된 관심사가 되고 있다. 종래의 지진 관측망으로부터 얻어진 자료로는 이와같이 지구 심부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규명하기에는 미흡하다. 이를 위해서는 새로운 고성능 지진계(광대역 주파수, 폭넓은 다이나믹 범위, 고도의 정밀도)를 사용하여 일정한 밀도를 갖는 범세계적 지진 관측망을 구성해야 한다.
국제 지진관측망에 참여
이러한 요구에 의해 일본학술회의 광역지진학 소위원회는 지난 86년 '포세이돈 계획'(Pacific Orient SEIsmic Digital Observation Network)을 수립하고 초정밀 지진관측망을 구축중에 있다. 즉 알류샨 열도로부터 필리핀 인도네시아 서태평양 해저에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에 약 1천5백㎞의 간격으로 50여군데의 초정밀 지진관측점을 설치한다는 방대한 계획이다.
이미 일본에 3개의 관측점이 설치되어 운영되고 있으며 금년 3월 포항에 또하나의 관측점이 설치됐다. 광범위한 지역에서 발생하는 지진을 기록, 분석하기 위해서는 전세계적인 관측망의 형성이 필수적이다.
프랑스는 최근 지오스코프(Geoscope)라 불리는 지진관측망을 완성했고, 유럽국가들은 이와 별도로 오르페우스(ORFEUS)관측망을 구성하고 있다. 중국도 최근 독자적으로 CDSN관측망을 구성했다. 미국은 지난 86년부터 1백여개의 관측점으로 구성된 범세계적 지진관측망인 아이리스(IRIS)를 구성 중에 있으며, 캐나다의 캔디스(CANDIS)관측망, 독일의 GRN관측망도 추진 중에 있다.
또한 이들 각 관측망에서 얻은 지진자료의 교환, 새로운 관측점의 위치 조정 등의 업무를 위해 전 세계적 지진관측망인 FDSN(Federation of Digital broadband Seismograph Networks)이 86년에 설립되어 운영되고 있다.
포세이돈계획도 FDSN관측망의 일환으로 서태평양에서 동아시아에 이르는 지역의 관측점을 운영, FDSN의 다른 관측망과 자료를 교환함으로써 지진발생 구조 및 지구내부에 대한 보다 정확한 정보를 얻어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번 3월 포항시 용흥동의 한국동력자원연구소 포항분소에 설치된 초정밀 장주기 지진계는 포세이돈 관측망의 하나로서 최초로 일본 이외의 국가에 설치된 관측점이다. 이 계획은 한국동력자원연구소, 전남대학교와 일본의 교토대학, 나고야 대학이 공동으로 추진하여 이루어졌다.
이번에 설치된 지진계는 스위스에서 개발된 STS(streckeisen)형 정밀지진계로 0.1초부터 1일까지의 주기를 측정할 수 있는데, 두개의 수평성분과 세개의 수직성분을 모두 측정한다. 지진계는 차량에 의한 인공잡음과 바람 등 자연잡음으로 자료의 질이 저하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지하 암반까지 굴착하여 설치했다.
여기에서 얻어진 디지털 지진자료는 해저케이블로 전화망을 통해 일본 포세이돈센터로 전송된다. 마찬가지로 포항에서 얻어진 지진자료는 물론 일본의 관측점에서 얻어진 지진자료도 대전의 한국동력자원연구소로 전송된다. 앞으로 포세이돈 관측망이 본격 가동하면 국내에서도 FDSN을 통해 세계 각지에서 얻어진 디지털 지진자료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제 한국도 국제적 지진관측망에 본격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들 자료를 처리하면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지각구조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지진발생의 원인을 규명하는데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우리 입장에서는 원자력 발전소 등 주요 산업 시설물이 집중되어 있는 동해안과 경남북 일대의 심부 지질구조 및 지진발생 가능성을 보다 정확하게 연구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한편 포세이돈센터는 지진 관측소 주변의 국지적 지진특성(seismicity)를 규명하기 위해 금년 7월경 약 10대 정도의 단주기형 미소지진계를 경상남북도 일원에서 약 2개월간 운영할 계획이다. 여기에서 얻어진 미소지진(microearthquake, 규모 3이하) 자료를 지난 3년간 한국동력자원연구소 탐사개발실에서 측정한 미소지진 자료와 함께 해석하게 되면 경상분지 일대 주요 시설물의 내진 안전도에 대한 기초자료를 얻을 수 있다.
판구조론으로 설명하기 곤란
현재 지진발생원인에 대한 지배적인 이론은 판구조론이다. 판구조론에 따르면 지구가 두께 1백㎞정도의 8~12개의 판으로 나누어져 있고, 각 판은 개별적으로 움직인다. 전체 지진의 90% 이상이 이러한 판들의 경계면에서 발생하며 나머지 10% 정도는 판 내부에서 발생한다. 따라서 이러한 각 판들의 경계면을 따라 지진대가 발달하게 되는데 태평양판(Pacific plate) 필리핀 판(Philippine plate) 유라시아 판(Eurasia plate)의 경계부에서 발생하는 지진이 이웃 일본에서 일어나는 지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한반도는 유라시아판의 동남부에 위치하며, 인접한 태평양판의 경계에서는 약 1천㎞, 동남쪽의 필리핀판으로부터는 5백㎞ 이상 떨어져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 부근에서 발생하는 지진들은 대개 판내부에서 발생하는 지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지진은 판구조론으로 설명하기 곤란하다.
지진은 진원의 깊이에 따라 지표 70㎞이내에서 발생하는 지진을 천발지진(shallow earthquake). 70~3백㎞를 중간심발지진(intermediate earthquake), 3백㎞이상을 심발지진(deep earthquake)으로 구분한다.
진원의 깊이에 대한 정보는 특정지역의 지진 위험도를 이해하는데 매우 유익한 자료다. 같은 규모의 지진도 진원의 깊이에 따라 지표에서의 진동은 매우 심한 차이를 보인다. 심발지진의 경우에는 지진파가 지표에 도달하는 거리가 멀어서 에너지의 감쇄가 심하므로 지표에서의 진동은 아주 작거나 없어진다. 천발지진의 경우에는 거리가 짧으므로 에너지의 감쇄가 거의 없고, 지표에서의 진동이 크므로 사람과 구조물에 큰 피해를 줄 수 있다. 천발지진에 의해 발생되는 에너지는 총 지진 에너지의 75% 이상을 차지한다. 인간에게 피해를 주는 지진은 대부분 이들 천발지진이다. 특히 육지에서 발생하는 천발지진은 숫자상으로는 전체의 15% 미만이지만 피해규모 면에서는 85%이상을 차지한다.
지진의 크기를 나타내는 척도로써 진도(intensity)와 규모(magnitude)가 사용된다. 진도는 어떤 한 지점에서의 체감(體感)이나 피해 상황에 의해 지진동의 세기를 표시하는 것으로 역사 문헌에 기록된 지진이나 기록이 없는 지진의 크기를 결정하는데 이용된다. 따라서 진도는 지진 발생위치, 즉 진앙으로부터의 거리에 따라 다르며 그 지역의 기반암이나 표토층의 성질에 커다란 영향을 받는다. 현재 세계적으로 수정 머컬리 진도계급(modified Mercalli intensity scale)이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는데 일반적으로 지진의 강도라는 말은 이 등급에 의한 분류다. 한편 규모는 지진발생시에 방출되는 에너지의 양을 나타내는 척도로 관측위치에 관계없이 일정하다.
지진 안전지대 아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다행스럽게도 주 지진대(main seismic belt)로부터 다소 벗어나 있고, 20세기 들어 지진으로 인한 심각한 피해는 없었다. 그러나 역사기록에는 상당한 지진 피해가 기록되어 있다. 예를 들어 삼국사기 백제본기 기루왕조에 실려있는 기사에는 '땅이 흔들려 갈라지고 가옥이 땅에 묻혀 죽은 사람이 많다'고 A.D. 79년경 현재 경기도 광주 부근에서 발생한 지진을 기술하고 있다.
근대에 와서도 1936년 7월 3일의 지리산 쌍계사 지진(규모 5), 1978년 9월 16일의 속리산 지진(규모 5)이 발생하였다. 같은 해 10월 7일에는 충남 홍성에 지진(규모 5)이 발생하여 금세기 들어 한반도에서 발생한 지진 가운데 가장 큰 피해를 주었으며, 당시 가옥 및 공공 건물의 피해는 4억여원에 이른 것으로 보고된 바 있다.
한국동력자원연구소는 지난 88년부터 매년 약 40일간 경상남북도 일원에 지진계를 설치, 이 지역에서 발생하는 미소지진을 관측 분석하고 있다. 이 관측자료에 따르면 경상도 일원에서만 1, 2일에 한번 정도의 미소지진이 기록되었으며, 휴전선 이남에서는 하루 한차례 이상 미소지진이 기록되고 있다.
또한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인명과 재산 피해를 낸 중국의 당산 대지진(1978)의 발생 위치도 우리나라 서해안으로 부터 겨우 수백㎞ 떨어진 위치임을 기억해야 한다. 최근 국제 학술지에 보고된 내용들을 종합해 보면 한반도 부근에서 발생하는 지진들의 발생구조와 지진을 야기시키는 응력분포가 당산지진이 일어난 중국 북동부와 동일함을 보여주는 바 앞으로 지속적인 지진 관측과 지진에 대한 연구를 통해 지진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