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혈병이 등장하는 드라마가 늘고 있다.단순히 시청률을 위한 것이라면 안타까운 일이다.이보다 앞서 난치병인 백혈병과 백혈병치료에 가장 좋은 방법인 '골수이식'에 대해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최근 난치병에 걸린 환자를 주인공으로 하는 드라마가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백혈병은 각방송사에 ‘유행병’처럼 퍼지고 있다. 이런 현상의 선두에는 얼마전 종영된 드라마 ‘가을동화’와 ‘비밀’이 자리잡고 있다.
KBS2 미니시리즈 ‘가을동화’에서 여주인공 은서가 수많은 시청자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백혈병에 걸려 숨졌다. MBC 미니시리즈 ‘비밀’에서도 여주인공의 엄마가 백혈병에 걸린 후 골수이식수술을 받고 숨지는 과정이 극의 클라이맥스를 이뤘다.
이들 드라마는 드라마틱한 설정을 위해 난치병을 등장시키고 다른 난치병에 비해 깨끗한 이미지 탓에 백혈병을 선택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백혈병에 걸린 극중인물이 골수이식수술을 받지 못하거나 받고도 숨지는 줄거리 설정은 아무리 슬픈 얘기가 시청률을 잡는데 좋다지만 실제 백혈병환자나 가족들의 원성을 살 만하다.
도대체 백혈병은 어떤 질병일까. 백혈병은 난치병인가. 그리고 골수이식수술로 백혈병을 완치하기 힘든가.
유전 힘든 악성혈액암
가을동화의 여주인공 은서의 친아버지는 백혈병으로 죽은 것으로 나온다. 극중의 의사는 은서가 백혈병에 걸린 사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유전이 될 확률이 높은 병’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백혈병이 유전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백혈병은 후천적인 원인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일종의 악성혈액암으로 비정상적인 미성숙세포, 즉 백혈병세포가 필요 이상으로 많아져 정상적인 혈액을 만들 수 없게 되는 난치병이다. 백혈병이라는 이름은 혈액검사시 비정상적인 백혈구의 수치가 높게 나타나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
정상인의 혈액에는 몸 속의 각 조직에 산소를 운반·공급하는 적혈구, 병균이 침입했을 때 맞서 싸우는 백혈구, 피가 났을 때 멈추게 하는 혈소판의 세가지 혈구세포가 존재한다. 이들 세포들은 골수에서 생성돼 말초혈액으로 이동한다. 골수 내에는 혈구세포의 모체가 되는 조혈모세포가 있는데, 조혈모세포가 말초혈액에서 필요로 하는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뿐만 아니라 자기와 동일한 조혈모세포도 지속적으로 만들어낸다. 따라서 이런 조혈모세포가 정상적인 혈구세포를 생성해내지 못하면 백혈병에 걸린다.
우리나라에서 백혈병은 대략 인구 10만명 당 10명 정도로 발병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연간 3천-4천명 정도가 백혈병 진단을 받는다.
가을동화의 은서가 처음 백혈병이라는 진단을 받게 된 과정을 보자. 그녀는 평소에도 코피를 자주 흘렸다. 어느날 갑자기 코피를 심하게 흘리며 쓰러지려고 하자 주위사람들이 그녀를 병원으로 데려갔다. 결국 은서는 혈액검사를 통해 백혈병 진단을 받는다. 진단 후 3개월 이내에 사망하는 급성백혈병에 걸리면 적혈구 감소로 인한 빈혈증상(어지러움, 호흡곤란, 두통, 피로감 등), 백혈구 감소로 인한 감염과 발열증상, 혈소판 감소로 인한 출혈증상 등이 나타난다. 반면 만성백혈병의 경우 증상이 경미해 빈혈증세 등이 나타나지만, 진단 후 3-4년이 지나면 대부분 급성백혈병으로 전환된다.
골수이식 아닌 조혈모세포이식
가을동화의 은서도 백혈병 치료를 위해 의사로부터 골수이식을 권유받는다. 그리고 ‘비밀’에서는 백혈병에 걸린 여주인공의 엄마가 여주인공으로부터 골수이식을 받는다. 난치병인 백혈병 치료에는 건강한 조혈모세포를 주입하는 골수이식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왜냐하면 다양한 항암제를 이용해 백혈병세포를 없앤다고 해도 체내에는 여전히 현미경으로 식별 불가능한 백혈병세포가 남아있어 전체 환자의 70-80%는 다시 재발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골수이식은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과거에는 정상적인 조혈모세포를 채취할 수 있는 공급원으로 골수만을 생각했기 때문에 골수이식이라는 용어가 사용됐으나, 최근 말초혈액, 제대혈(탯줄), 태아의 간 등에서도 일정한 수의 조혈모세포 채취가 가능해지면서 ‘조혈모세포이식’이라는 말이 정확한 표현이 됐다.
조혈모세포이식의 기본적인 치료전략은 통상적으로 투여되는 항암제의 강도에 비해 4-6배나 높은 항암제와 방사선치료를 이식 전에 시행함으로써 효과적으로 환자의 백혈병세포를 제거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것은 건강한 조혈모세포가 공급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치료법이다. 조혈모세포이식이 제대로 이뤄지면 2-3주 이내에 빠른 회복이 가능하다.
드라마 ‘비밀’ 설정 그야말로 드라마
성공적으로 조혈모세포를 이식하기 위해서는 건강한 조혈모세포를 구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환자의 조혈모세포와 유전자형이 일치하는 조혈모세포를 찾아야 한다. 왜냐하면 인체의 세포들은 세포 속에 들어있는 유전자들이 비슷할 경우 서로 조화를 이루지만 유전자가 다를수록 조직 거부반응이 심해지기 때문이다.
이론적으로는 형제 중에서 환자 본인과 조혈모세포의 유전자형이 일치하는 사람이 있을 확률은 20-25%에 불과하다. 더욱이 부모와 자식간에 유전자형이 일치할 확률은 매우 드물다. 이렇게 볼 때 드라마 비밀에서 여주인공이 백혈병에 걸린 자신의 엄마에게 골수를 이식할 수 있는 경우는 그야말로 드라마니까 가능한 설정이었다.
최근에는 형제들의 수가 줄어들었기 때문에 형제 중에서 유전자형이 일치하는 조혈모세포를 찾기가 더 힘들어졌다. 따라서 앞으로는 유전자형이 일치하는 비혈연간 타인이식이 증가할 것이다. 국내에서는 이를 위해 1994년 1월 카톨릭 조혈모세포 정보은행이 설립됐고 같은해 3월 한국골수은행협회가 설립됐다. 이후 현재까지 비혈연간 골수이식을 위한 기증자가 4만3천여명에 달하고 유전자형이 일치하는 기증자를 발견할 확률은 약 50-60% 정도이다.
혈연간 이식 60-80% 완치가능성
기증자로부터 조혈모세포를 얻기 위해 가장 많이 사용되는 방법이 골수채취다(그림). 골수이식이라 하면 뇌 또는 척추조직을 이식하는 것으로 잘못 인식하는 경우가 있는데, 인체에서 골수가 가장 많이 존재하는 곳은 엉덩이뼈다. 이 부위는 주변에 중요한 혈관과 신경이 없기 때문에 조혈모세포를 안전하게 채취할 수 있는 곳이다. 통상적으로 1시간 정도 전신 또는 척수마취를 한 후 주사바늘을 이용해 10-15mL/kg 용량을 채취하고 기증자는 1-2일 경과하면 퇴원해서 일상적인 업무가 가능하다. 조혈모세포는 헌혈의 경우와 비슷하게 수주 이내에 다시 재생된다.
백혈병환자가 조혈모세포이식을 받은 후 기대할 수 있는 완치율은 환자의 상태에 따라 다르다. 대개 혈연간에 조혈모세포이식이 시행된 경우에는 60-80%의 완치 가능성이 있으며, 이식과 관련된 합병증으로 사망할 가능성은 약 10% 정도다. 따라서 드라마 비밀에서 주인공으로부터 골수를 이식받은, 주인공의 엄마가 죽은 설정은 약간 무리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비혈연간 타인이식의 경우에는 혈연간 이식에 비해 치료와 관련된 합병증이 나타날 확률이 크기 때문에 궁극적인 완치 가능성은 40-60%로 다소 낮다.
최근 이런 조혈모세포이식에 합병증을 감소시키기 위한 보조요법,노령층을 위해 항암제와 방사선요법의 강도를 낮추면서 면역효과를 극대화시키는 방법,선택적인 세포치료법,분자생물학적 연구와 진단기법 등이 도입되고 있다.이와 더불어 백혈병으로 고통받는 환자의 적극적인 투병의지와 가족의 보살핌,그리고 담당의료팀의 헌신적인 노력이 요구된다.나아가 일반인들은 환자에게 새로운 생명을 제공하는 숭고한 행동인 조혈모세포 기증에 대해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동참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