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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 왜 '근친혼' 싫어하나

세계적 과학지 '네이처'특필 배현숙 박사 논문해설

한국인 여성과학자의 연구보고가 세계적 과학지 '네이처'의 표지기사로 실렸다. 펜실베이니아 주립대 배현숙 박사의 '식물에서 자가수정 거부현상에 대한 연구'가 그것. 그 내용과 분자생물학의 관련 연구내용을 검토해 본다.

우리나라에서는 동성동본 결혼이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그 이유의 하나는 윤리적인 측면에서 찾을 수 있으나, 생물학적 관점에서도 타당한 이유가 있다. 근친결혼의 경우 생명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 유전병이 자손에게 나타날 가능성이 보다 크기 때문이다. 그 한 예로 근친결혼이 성행한 빅토리아여왕 가계에서 혈우병이 많은 것을 들 수 있다.

동물에서도 근친간의 결혼은 순계를 유지할 수는 있으나 치명적인 유전병이 나타날 위험이 그만큼 크다. 따라서 서로 근원관계가 먼 개체 사이에 교배를 시켜 잡종을 형성함으로써 그 양친이 가지고 있던 우수한 형질을 자손이 모두 간직하도록 한다.

그러면 식물의 경우는 어떠할까? 식물의 생식기관은 꽃이다. 꽃은 수술 암술 꽃잎과 꽃받침으로 이루어져 있다 식물에서 꽃가루받이, 즉 수분은 수술의 꽃밥에서 형성된 꽃가루가 암술머리에 떨어지면 일어난다. 꽃가루의 근원은 같은 꽃의 수술 부분이 될 수도 있고, 같은 개체의 다른 꽃이나 다른 개체의 꽃이 될 수 있다.

식물에서도 동물에서와 같이 내교배는 위험성이 크다. 특히 같은 꽃 수술의 꽃밥에서 감수분열을 하여 형성된 반수체의 소포자와 암술의 씨방에서 형성된 반수체의 대포자가 결합함으로써 일어나는 자가수정은 가장 나쁜 경우다.
 

암·수 딴 그루에 꽃이 피는 은행. 원칙적으로 자가수정을 피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자가수정 피하는 여러 방법

어떤 식물은 자가수정을 하지만, 많은 식물은 자가수정을 피하기 위한 방법으로 꽃밥 위치의 차이나 소포자나 대포자의 생식시기 차이, 또는 유전적 불임성을 가지고 있다. 대개의 식물은 이중 하나를 택하여 근친교배를 피함으로써 잡종을 형성한다. 따라서 그 자손은 양친의 어느 쪽보다도 생활력이 강하고 뛰어난 형질을 얻는다. 이러한 현상을 잡종강세라고 한다.

자가수정을 피하기 위해 식물이 채택하는 방법 중 가장 확실한 것은 유전적 불임성을 갖는 경우다. 꽃가루는 암술머리에 떨어져 발아하면 화분관이 형성되어 곧 길이생장을 하면서 암술대를 통해 씨방에 도달하게 된다. 결국 화분관은 배낭으로 들어가며 화분관 내에 존재하고 있던 정세포는 난세포와 수정하여 접합자를 형성한다.

유전적 불임성을 갖는 경우, 서로 다른 유전적 특성을 갖는 개체에서 형성된 꽃가루는 화분관이 배낭에 도달할 수 있어서 수정이 일어나지만, 같은 꽃 안에서 만들어진 꽃가루의 경우는 발아하여 화분관이 형성되더라도 배낭까지 길이생장을 하지 못하고 중간에서 중지되기 때문에 수정이 일어나지 못한다. 이같이 자가수정을 방지하는 성질을 자가불화합성이라고 한다.
 

식물의 화분관.
 

식물에서 자가수분이 일어나는 경우는?

식물의 자가불화합성이 발견된 이래, 그 자세한 원리를 규명하고자 많은 연구가 진행되었다. 식물의 불화합성을 나타내는 유전자를 S라고 할 때, 그 대립형질은 ${S}_{1}$, ${S}_{2}$, ${S}_{3}$ 등으로 표시된다. 한 식물체에서 염색체는 항상 쌍으로 존재하며, 쌍을 이루는 염색체를 상동염색체라고 한다. 따라서 한 개체가 가질 수 있는 유전자형은 ${S}_{1}$${S}_{2}$, ${S}_{2}$${S}_{2}$, ${S}_{2}$${S}_{3}$ 등으로 나타낼 수 있다.

하나의 꽃가루는 반수체이므로 ${S}_{2}$${S}_{3}$의 유전자형을 가진 식물에서 만들어진 꽃가루는 ${S}_{2}$거나 ${S}_{3}$이다. 이들이 같은 식물의 암술머리에서 발아하여 화분관을 형성하면, 암술머리는 2배체인 ${S}_{2}$${S}_{3}$의 유전자형을 가진다. ${S}_{2}$나 ${S}_{3}$의 유전자형을 갖는 꽃가루는 암술머리가 갖는 유전자와 일치하므로 화분관은 발아하지만 더 이상 자라지 않아 궁극적으로는 수정이 일어나지 않는다.

만약 ${S}_{1}$${S}_{1}$의 유전자형을 갖는 꽃에서 형성된 ${S}_{1}$의 유전자를 갖는 꽃가루가 암술머리에 부착되어 발아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이 경우는 꽃가루가 갖는 유전자인 ${S}_{1}$ 이 암술에는 존재하지 않으므로 형성된 화분관은 계속 신장하여 궁극적으로 정세포는 배낭에 존재하는 난세포와 수정하며, 수정 결과 형성된 접합자는 발생과정을 거쳐 성숙한 종자가 된다.

그러면 이와 같이 꽃가루가 갖는 유전자가 암술머리가 갖는 유전자와 같은 경우에 왜 화분관이 더 이상 신장하지 않는가에 관하여 알아보자. 이를 유전공학적 기술을 이용하여 규명한 사람은 다름 아닌 재미 한국인 식물분자생물학자인 배현숙 박사이다.

배현숙 박사는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교의 카오 박사 연구실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면서 자가불화합성 원리 규명을 위해 유전공학적 연구를 수행하였다. 그 연구 결과는 최근에 세계적인 과학학술지인 '네이처(Nature)'에 주요 연구내용으로 보고되었다.

식물에서 S유전자를 클로닝하여 분석한 결과 이 유전자에 의하여 암호화된 단백질은 RNA(리보핵산) 분해효소로 작용하는 것이 이미 알려져 있었다. 배현숙 박사는 페튜니아에서 분리된 S유전자 중에서 ${S}_{3}$ 유전자를 ${S}_{2}$${S}_{3}$ 유전자형을 갖는 페튜니아에 도입해 발현시킴으로써 자가불화합성 원리를 규명하고자 하였다.

유전공학기술을 사용하여 ${S}_{2}$ ${S}_{3}$ 유전자를 갖는 페튜니아에서 ${S}_{3}$ 유전자의 발현을 억제시켰을 때 자가불화합성이 나타나지 않고 자가수정이 일어났다. ${S}_{3}$ 유전자의 발현이 억제된 페튜니아는 ${S}_{3}$ 유전자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것과 같으므로 ${S}_{3}$ 유전자를 갖는 꽃가루는 어떤 장애를 받지 않고 수정할 수 있는 것이다.

다른 한편 ${S}_{1}$${S}_{2}$ 유전자를 갖는 페튜니아에 ${S}_{3}$ 유전자를 도입시켜 발현시키고 ${S}_{3}$ 유전자를 갖는 꽃가루를 그 페튜니아의 암술머리에 묻혀 수분시켰을 때 수정이 일어나지 않았다. ${S}_{1}$${S}_{2}$유전자를 갖는 원래의 페튜니아는 ${S}_{3}$ 유전자를 갖는 꽃가루와 수정한다. 그러나 ${S}_{3}$ 유전자가 도입된 페튜니아는 ${S}_{1}$${S}_{2}$${S}_{3}$ 유전자형을 가지고 있어 꽃가루가 가지고 있는 ${S}_{3}$ 유전자가 포함되어 있으므로 ${S}_{3}$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꽃가루와는 수정이 일어날 수 없게 된다.

이러한 배현숙 박사의 연구결과는 S유전자가 자가불화합성에서 직접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세계 최초로 밝힌 것이다. 그러나 화분관과 배낭 사이에 S유전자형이 같은 것을 어떻게 인식하는가에 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S유전자의 산물인 RNA 분해효소는 암술대의 세포로부터 세포간극으로 분비된다. 유전자형이 같으면 화분관의 세포막에 존재하는 수용체가 인식하여 RNA 분해효소를 화분관 내로 받아들이게 되며, 화분관내로 들어온 RNA 분해효소가 화분관내의 RNA를 분해시킬 것으로 추측된다.
RNA가 분해되면 화분관의 생장에 필수적인 단백질이 합성되지 않으므로 화분관의 생장이 억제되어 궁극적으로 수정이 일어나지 않게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암술대 속에서 꽃가루RNA의 S대립형질 유전자가 전해지는 모습. 암술의 S유전자와 겹치지 않는 경우에만 교배가 이루어짐을 알 수 있다.
 

자가 불화합성의 유전공학적 응용

세계적으로 종자 생산업체에서 생산하는 대부분의 종자는 두 모종 사이의 교배를 통해 얻어진 잡종종자다. 가령 옥수수 잡종종자의 시장가격은 수천만불에 달하고 있다.

약 30여년 전에 꽃가루가 성숙하지 못하는 웅성불임인 옥수수 품종이 개발되었다. 웅성불임은 하나의 꽃에서 암술은 완전한 형태로 존재하나 수술에서는 성숙한 꽃가루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 식물에서 종자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다른 꽃에서 만들어진 꽃가루와 수분이 일어나야만 하고, 따라서 형성된 종자는 모두 잡종종자인 것이다.

옥수수에서 웅성불임은 미토콘드리아 DNA 재배열에 의해서 초래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웅성불임인 옥수수는 미토콘드리아 DNA의 재배열로 인하여 곰팡이병에 약한 것으로 판명되어, 현재는 다시 어린이들을 고용하여 수작업으로 옥수수의 수술을 제거시킴으로써 잡종종자를 생산할 수밖에 없게 됐다. 잡종종자 생산에 그만큼 막대한 비용이 들게 되는 것이다.

결국 식물이 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종자 생산업체에는 귀찮은 것이다. 종자 생산업체는 주요 작물이 성공적으로 수분이 일어나도록 하기 위하여 막대한 노력을 하고 있다. 해바라기와 같은 식물은 자가불화합성을 가지고 있어 잡종종자 생산이 용이하나, 토마토 배추 등은 사람이 수작업으로 일일이 수분시키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므로 웅성불임성을 갖는 식물을 만드는 것은 종자 생산업체의 지대한 관심사였고 그만큼 경비를 절감하는 효과를 주게 된다.

최근에 개발된 식물유전공학기술은 웅성불임 식물 개발을 가능하게 하였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화분관 생장억제에는 RNA 분해효소가 관여하고 있다는 점에 착안하여, 꽃밥에서 특이하게 RNA 분해효소를 합성하도록 함으로써 꽃가루의 생산을 억제하여 웅성불임을 유도한 실험결과가 발표되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소재 캘리포니아대 골드버그 교수 연구팀은 꽃가루가 생산되는 꽃밥의 한 조직에서 특이하게 발현되는 유전자의 프로모터에 세균의 RNA 분해효소 유전자를 부착시켜 키메라 유전자를 제조했다. 이를 담배세포에 도입시키자 형질전환 세포에서 유래된 담배가 꽃을 피웠다.

그 결과 꽃에서 암술은 정상적으로 존재하였으나 수술에는 꽃밥이 형성되지 않았다. 꽃밥에서만 특이하게 만들어진 RNA 분해효소가 작용하여 RNA를 분해시킴으로써 꽃밥이 성숙하지 못하여 결국 꽃가루가 만들어질 수 없게 된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웅성불임 식물체에서 종자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다른 개체의 꽃에서 꽃가루가 와서 수분이 일어나야 한다. 이 때 형성된 종자는 잡종 종자일 수밖에 없다. 이 키메라 유전자는 유채에서도 웅성불임을 나타내도록 한다는 것이 발견되었다.

배현숙 박사와 골드버그 박사의 연구결과는 앞으로 유용한 작물에 응용되면 수작업에 의하지 않고 자연적으로 잡종종자를 생산할 수 있는 길을 열게 될 것이다. 이와 함께 식물유전공학 기술은 새로운 특성을 갖는 작물의 생산을 통해 21세기 농업발전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배현숙 박사 약력

83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 생물공학과 졸업. 91년 미국 코넬대에서 초파리 연구로 박사학위. 펜실베니아 주립대 카오 박사 연구실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식물의 자가불화합성 연구.

이 연구성과는 지난 2월 10일자 '네이처'지에 다른 두명의 연구원과 공동으로 쓴 '식물에서 자가수정 거부현상에 대한 연구'라는 논문으로 소개됐다. '네이처'지는 1백25년 역사의 종합과학지로 노벨상 수상자의 산실이라 말해질 정도로 그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경제학을 하는 남편의 일자리 관계로 오는 12월 네덜란드로 옮기는데, 그는 네덜란드 바레닝농대에서 식물연구를 계속 할 예정이다. 가능한 빨리 고국에 돌아올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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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이종섭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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