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신은 유럽에서 전체 영·유아의 7명 중 한 명을 사망에 이르게 한 천연두를 박멸하는 데에 직접적으로 기여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1977년 소말리아의 마지막 환자를 끝으로 천연두가 지구상에서 공식적으로 박멸됐다고 선언했고, 이는 인류가 감염병으로부터 완벽하게 승리한 최초의 사례다.

백신, 질병 예방에 효과 없다?
4월 28일자 ‘사이언스’에는 미국에서 백신 개발로 주요 전염병이 얼마나 줄어들었는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그래픽이 실렸다(아래 그래프).
백신 프로그램이 시행되기 전 미국에서만 매년 약 1만6000명의 환자를 발생시켰던 폴리오 바이러스(소아마비)는 영·유아 백신 프로그램 덕분에 현재는 거의 100% 예방된다. 디프테리아, 백일해, 홍역, 유행성이하선염(볼거리), 풍진 등 영·유아에게 발생할 수 있는 치명적인 질병들도 백신 접종에 의해 거의 완벽하게(98~100%)예방되고 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백신 접종 프로그램으로 약 80% 이상의 영·유아가 백신을 접종받고 있으며, 그 결과 매년 약 300만 명의 사망을 막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국의 B형간염 바이러스 감염률은 B형간염 백신이 상용화되기 이전인 1980년대 초에 남자 8~9%, 여자 5~6%로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하지만 1990년 이후 신생아 예방접종, 국가 예방접종 사업이 시작되면서 감염률이 감소해 최근 4~6세 아동에서는 바이러스 보균율이 0.2%로 크게 낮아졌다. 특히 B형간염 산모로부터 출생한 신생아에 대한 B형간염 백신 접종을 통해 수직감염의 빈도를 97% 이상 줄일 수 있었다.
몇몇 국가에서 일어났던 백신 거부 운동에 따른 감염병 증가와의 상관관계를 살펴봐도 백신의 효과는 과학적으로 증명된다. 미국은 2000년에 이미 종말을 선언한 홍역의 집단 감염과 대규모 확산이 발생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2014년 667건, 2015년 118건의 홍역 감염 사례가 보고됐으며, 홍역에 걸린 대다수의 사람이 백신을 접종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 사태의 직접적인 원인은 부모들의 백신 접종을 거부했기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대해 WHO는 성명을 통해 “지난 20년간 홍역이 96%나 감소했고 이 질병을 박멸할 수 있는 단계에서 갑자기 발병이 많아졌다”며 “지난 50년 동안의 노력으로 안전하고 효과적인 백신을 만들었는데 여전히 홍역이 우리의 생명과 재산,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라고 발표했다.


백신 안전성, 철저하게 검증되지 않았다?
백신에 대한 우려는 이미 첫 천연두 백신 접종이 시작된 18세기부터 존재해왔을 정도로 오래된 이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대중들의 관심은 백신의 안전성에 대한 검증으로 점차 바뀌었다. 백신 안전성에 대한 이슈는 공공 보건에 매우 중요하다. 백신에 대한 우려가 아이들의 백신 접종률을 낮출 가능성이 있고, 개개인의 질병에 대한 방어를 약화시키며, 질병의 대발생(outbreak) 확률을 높이기 때문이다.
백신은 질병의 발생을 미리 차단하고자 건강한 영·유아, 소아, 성인에게 투여된다. 안전성에 대한 철저한 검증 없이는 접종이 이뤄지지 않는다. WHO에서는 수십 년 동안 백신의 품질, 임상시험 등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제공하고 있다. 백신 개발은 이에 따른 철저한 관리 감독 하에 이뤄진다. 국내에서도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제공하는 표준 지침에 따라 철저한 검증을 통해 백신 접종을 시행한다.
백신의 개발 과정은 다음과 같다. 먼저 개발 초기 동물 실험에서 안전성을 확보한 다음, 인체를 대상으로 하는 임상시험을 한다. 임상시험은 다시 여러 단계로 나뉘어 이뤄진다. 건강한 성인을 대상으로 백신 투여량에 따른 안전성 및 면역 반응을 시험하는 1상 시험, 이를 바탕으로 추가 안전성 및 면역원성(백신의 효과)을 백신 사용 집단을 대상으로 확인하는 2상 시험, 최종적으로 확실한 효과 및 안전성을 동일한 임상 상황에서 검증하는 핵심 시험인 3상 시험으로 구분된다. 바이러스 대유행으로 백신 개발이 급하게 필요한 경우와 같이 특별한 사례를 제외하면, 백신은 위와 같은 단계를 모두 거쳐야 실제 접종에 사용할 수 있다. 모든 단계를 거친 뒤에도 백신의 부작용을 항상 모니터링하며, 실제 접종 뒤 대규모 집단으로부터 수집한 데이터로 효과 및 안전성을 다시 한 번 검증한다. 이를 4상 시험이라고 부른다.
까다로운 과정을 거침에도 불구하고, 대규모의 백신 접종 뒤에는 때때로 예기치 못한 이상반응이 보고된다. 매우 드물긴 하지만 과민반응, 쇼크, 마비 등의 증상으로 입원하거나, 심하면 사망에까지 이르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오른쪽 표). 이는 백신 투여에 따른 인체의 면역반응 중 하나 때문일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하지만 시간적인 관련성만으로 이런 중증 이상반응의 원인이 백신인지를 밝혀내기는 의학적으로 어려워 논란이 일 수 있다.
백신 접종 뒤 발생하는 이상반응에 신속하고 엄격하게 대응하기 위해 WHO는 ‘백신 안전에 대한 글로벌 자문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백신 이상반응 감시, 신속대응 및 역학조사, 예방접종피해 국가보상제도가 구축돼 있다. 예방접종 뒤 이상반응이 있는 경우 질병관리본부 홈페이지나 각 지역 보건소에 전화로 신고할 수 있다. 예방접종으로 피해가 의심되는 경우 각 지방자치단체에 신고하면 보건복지부는 예방접종피해보상 전문위원회를 통해 120일 이내에 보상심의를 완료하도록 돼 있다. 이런 제도들을 통해 백신 접종 뒤 생기는 이상반응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며, 국가가 안전을 보장한다.
다른 의약품과 마찬가지로 백신도 부작용이 있다. 하지만 백신 접종에 의한 질병의 예방 효과가 주는 이득은 백신 접종 뒤에 드물게 발생되는 부작용(게다가 대부분이 백신과의 상관관계가 증명되지 않은)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


백신이 자폐증과 알레르기를 유발한다?
백신 접종과 자폐증 사이의 연관성이 제기된 것은 1998년 영국의 소화기학자 앤드루 웨이크필드 박사가 ‘랜싯’에 게재한 논문 때문이다(1파트 참조). 하지만 부정확한 데이터와 윤리적인 문제로 해당 논문은 영구 철회됐다. 백신 반대론자들은 백신의 사용과 자폐증에 걸린 어린이의 수 증가가 비례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자폐증이 증가한 것은 과거에는 가벼운 증상으로 자폐증으로 진단하지 않던 아이들이 자폐증으로 진단받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여러 대규모 역학 연구에서도 MMR 백신과 자폐증은 아무런 연관성이 없음을 반복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2014년 8월에는 미국 랜드연구소와 미국 보스턴아동병원 등 공동연구팀의 메타 연구(여러 연구의 데이터를 다시 연구해 종합적으로 결론을 내린 것)가 ‘소아과학’에 발표됐다. 연구 결과 MMR 백신이 어린이의 자폐증 발병과 관련이 없음이 밝혀졌다. 이 연구에서는 MMR, DTaP, Td, Hib 및 B형간염 백신이 소아 백혈병과 관련이 없다는 사실도 밝혀냈다(doi:10.1542/peds.2014-1079).
2015년 2월에는 미국 카이저퍼머넌트백신연구센터와 미국 CDC 등 공동연구팀이 아동 70만 명 이상을 12년간 추적해 MMR 백신 접종이 안전성 측면에서 문제가 없다는 연구 결과를 ‘소아과학’에 발표하기도 했다(doi:10.1542/peds.2014-1822). 이외에도 많은 연구들이 백신 접종이 자폐증을 유발할 수 있다는 주장을 과학적으로 명백하게 반박하고 있다.

MMR 백신 성분 중에서 자폐증을 유발할 것으로 의심됐던 성분은 보존제 ‘티메로살’이다. 하지만 티메로살은 체외로 쉽게 배출되는 형태의 화합물이다. 티메로살이 신경독성을 일으킨다는 과학적 근거는 전무하다. 게다가 최근에는 백신의 보존제로 티메로살을 사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티메로살을 사용할 때와 사용하지 않을 때 자폐증을 진단 받은 아동의 수는 크게 변화가 없었다.
백신 반대론자들은 백신의 효과를 증가시키는 목적으로 첨가하는 알루미늄 화합물이 체내에서 독성을 일으킨다고도 주장한다. 백신 속 알루미늄 화합물은 미세한 조직손상을 일으켜 면역 반응의 강도를 증가시키는 역할을 한다. 극히 일부의 경우 이러한 미세한 조직 손상이 홍반, 가려움증 및 미열과 같은 경미한 부작용을 발생시킨다. 하지만 장기간의 모니터링 결과 심각한 부작용과는 관련이 없는 것으로 증명됐다. 또 생후 6개월 된 아이가 권장 접종을 모두 완료했다고 가정했을 때, 백신에 의해 체내에 주입되는 알루미늄 화합물의 양은 총 4.4mg으로 같은 기간 동안 모유(7mg)나 분유(38mg)에 의해 섭취하는 알루미늄의 양보다 훨씬 적다.

‘자연 감염’이 백신보다 낫다?
백신을 거부하는 일부 사람들은 홍역, 수두, 디프테리아, 백일해, 유행성이하선염(볼거리), 독감 등이 치명적이지 않으며, 자연 감염으로 면역을 획득하는 것이 더 좋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백신 프로그램이 도입되기 전 매년 수십만 명의 영·유아가 이런 감염병으로 사망했으며, 백신 접종에 의해 사망률이 99~100% 감소했다는 점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2015년 5월 8일에는 위생가설의 허위성을 과학적으로 반박한 또 하나의 논문이 ‘사이언스’에 실렸다. 홍역에 걸리면 회복되더라도 면역계가 수 년 동안 손상돼 다른 전염성 질병에 걸려 사망할 확률이 오히려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다(오른쪽 그림). 미국 프린스턴대와 네덜란드 에라스무스대 의대 공동연구팀이 영국과 미국, 덴마크의 보건자료를 입수해 분석했다. 그 결과 홍역 백신 접종률이 높아지면서 홍역 발생(검정 그래프)이 줄어들자, 홍역이 아닌 다른 전염병에 걸려 사망한 소아의 숫자(빨간 그래프)도 줄어들었다. 반대로 홍역의 발생이 증가하면 홍역이 아닌 다른 전염병에 걸려 사망한 소아의 수도 증가했다(doi:10.1126/science.aaa3662).
결론적으로 백신 무용론을 주장하는 논리로 사용된 위생가설은 과학적인 근거가 전혀 없다. 오히려 무수히 많은 연구가 백신의 효과를 실증적으로 증명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백신 부작용 신고 제도가 유해성을 입증한다?
우리나라는 질병관리본부를 통해 백신 이상반응을 신고할 수 있다. 미국의 경우 미국 CDC와 미국식품의약국(FDA)이 지원하는 백신 안전성 감시프로그램 ‘VAERS’를 운영 중이다. 1990년 이후 20만 건이 넘는 백신의 부작용이 보고됐다. 백신 반대론자들은 이런 부작용 신고 사례가 백신의 유해성을 입증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백신 부작용으로 신고된 사례의 대부분은 미열이나 홍반과 같은 단순 반응이다. 매우 드물게 심각한 부작용이 보고되기도 한다. 하지만 보고된 부작용들이 반드시 백신에 의해서 초래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백신 접종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증상이 우연히 겹쳤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환자의 병력, 다른 약물 복용력 등의 여러 가지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
실제로 VAERS에 보고된 부작용 중 대부분이 백신 접종이 직접적인 원인이 아닌 것으로 증명됐다(PMID:12825543, doi:10.1016/j.vaccine.2005.07.069). 결국 이런 프로그램은 백신의 유해성을 입증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백신에 안전상의 문제가 있을 경우 이를 빠르게 발견하고 대처하기 위한 것으로, 오히려 백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으로 봐야 한다.

백신은 거대 제약회사의 이익을 위해서다?
백신 개발의 가장 큰 장애물 중 하나는 경제성이다. 결핵, 말라리아, 에볼라 같은 백신이 절실히 요구되는 전염병 대부분은 주로 빈곤한 국가에서 문제가 된다. 선진국에 기반을 가진 거대 제약회사들이 회사의 이익만을 고려하면 이러한 질병들에 대한 백신 개발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한다. 예를 들어, 최근 에볼라가 전 세계적으로 큰 위협이 됐을 때 경제성 문제로 백신 개발 연구가 이뤄지지 않은 사실이 문제가 됐다.
백신의 개발과 생산이 제약회사에 크게 이익이 되지 않으며, 현재까지 백신 개발은 정부, 대학 및 비영리 단체의 연구 기금에 의존해 왔던 게 사실이다. 또한 지금까지 과학적으로 증명된 백신의 강력한 효과를 고려하면 백신 접종으로 천연두처럼 질병 자체가 사라지면 제약회사들은 백신으로 더 이상 이익을 추구할 수 없게 된다. 정말 이익만을 추구하는 제약회사라면 백신을 만들지 않고 더 많은 사람들이 병에 걸려 치료제를 구입하기를 원할 것이다. 한마디로 대규모 백신 접종 프로그램이 거대 제약회사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는 주장은 비현실적이다.
모든 사람에게 100% 안전한 백신은 없다. 하지만 백신의 안전성과 효과는 과학적으로 증명됐다. 단지 백신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백신을 거부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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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백신은 옳다!
Part 1. 백신을 못 믿는 사람들
Part 2. 백신은 정말 옳다
Part 3. 인체, 백신을 기억하다
Part 4. “나 하나쯤이야” 무너지는 집단면역 생태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