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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3. 인체, 백신을 기억하다

VACCINE

우리는 어떤 백신을 맞고 있을까. 백신이 어떻게 병을 예방하는 걸까. 백신의 제조부터 우리 몸속에서 일어나는 작용까지, 백신을 들여다보자. 제대로 알아야 제대로 믿을 수 있다. 백신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우리 몸의 면역반응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면역은 자기 자신의 물질과 외부물질을 구별해, 외부물질을 제거하는 인체의 능력을 말한다.


병을 이기는 면역기억
면역을 이해하기 위해 먼저 알아야 할 것은 항원과 항체다. 쉽게 말하면 세균이나 바이러스 같은 물질이 항원, 우리 몸을 방어하는 물질이 항체다. A 항원이 몸에 들어와 감염되면 면역반응이 일어나 A 항체가 만들어진다. 우리 몸은 A 항체를 만드는 방법을 기억하고 있다가 다시 A 항원이 들어왔을 경우 재빠르게 A 항체를 만들어 제거한다.

면역은 크게 수동면역과 능동면역으로 나뉜다. 수동면역은 외부에서 만든 면역물질(항체)을 통해 생기며 보통 수개월 이내에 사라진다. 대표적인 수동면역은 태아가 엄마로부터 받는 ‘경태반 수동항체’다. 임신 후반에 태반을 통해 엄마의 항체가 태아에게 전해진다. 이를 통해 신생아는 길게는 생후 1년까지 감염병을 예방할 수 있다. 감염병에 걸린 환자에게 사람이나 동물의 항체를 주입해 수동면역으로 병을 치료하기도 한다.

능동면역은 자기 자신의 면역체계에 의해 만들어지며 대부분 평생 지속된다. 능동면역은 병원체에 감염되거나 백신 접종으로 획득할 수 있다(위 그림). 병원체와 백신이 항원으로 인식돼 면역이 생기는 기전은 서로 매우 비슷하다.


백신, 몇 번까지 맞아도 될까?
100년 전 아이들은 천연두 백신 하나만 맞았다. 하지만 현재의 아이들은 생후 한 달도 되지 않았을 때부터 백신 접종을 시작해 생후 2년 이내에 11종의 백신을 25회 이상 맞는다.

너무 많이 맞는 것은 아닐까. 이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해 주는 연구가 있다. 미국 필라델피아아동병원
과 미국 국립보건연구원(NIH) 등 공동연구팀의 연구로 2002년 1월 1일자 ‘소아과학’에 실렸다.

우리 몸은 10억에서 1000억 개의 항원 각각에 맞는 항체를 만들고 이를 기억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
져 있다. 연구팀은 신생아가 한 번에 반응할 수 있는 실제 백신의 수를 추정해 봤다. 현재 대부분의 백신 하나에는 100개 미만의 항원이 포함돼 있다. 100개의 항원에는 각각 약 10개씩의 항원결정부위가 있다. 항원결정부위는 항원에서 항체의 생성을 자극하거나 항체와 결합하는 부분으로, 결국 하나의 백신에는 1000개 미만의 항원결정부위가 있다. 각 항원 결정부위를 인식하려면 약 10ng/mL 농도의 항체가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항체를 만들어내는 B세포가 약 1000개 필요하다. 신생아의 혈액 1mL에는 약 1000만 개의 B세포가 존재한다. 결론적으로 신생아는 한 번에 1만 개의 백신을 수용할 수 있다.

연구팀은 논문을 통해 “최근 아이들에게 권장되는 11종의 백신에는 130개 미만의 항원이 들어 있다”며 “결국 백신은 아이 면역체계의 약 0.1%를 사용한다. 심지어 B 세포는 지속적으로 새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이를 소모하는 것이라고 볼 수 없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우리의 몸은 백신과 자연에 존재하는 아주 많은 항원을 수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왜 백신을 한 번에 접종하지는 않을까. 이는 백신을 안정화시키는 데 사용되는 약제가 서로 섞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doi:10.1542/peds.109.1.124).
 

현재 백신으로 예방 가능한 질병 26가지
콜레라, 뎅기열, 디프테리아, A형간염, B형간염, E형간염, B형헤모필루스인플루엔자, 자궁경부암, 인플루엔자,
일본뇌염, 말라리아, 홍역, 수막구균성수막염, 유행성이하선염, 백일해, 폐렴구균성질환, 소아마비, 광견병,
로타바이러스, 풍진, 파상풍, 진드기에 의한 뇌염, 결핵, 장티푸스, 수두, 황열병

 

살아 있는 백신, 죽어 있는 백신?
백신을 만들 때는 우리 몸이 병원체의 항원은 기억하지만 실제로 질병은 일으키지 않게 해야 한다. 이를 위해 다양한 형태의 백신이 만들어지고 있다.

가장 많이 사용되는 백신은 불활성화 백신과 약독화 생백신이다. 사백신이라고도 불리는 불활성화 백신은 바이러스를 배양한 뒤 열이나 화학약품으로 죽여 질병을 일으키지 못하게 만든 백신이다. A형간염이나 독감 예방주사에 사용한다. 약독화 생백신은 바이러스가 살아 있지만 독성이 제거된 백신이다. 바이러스를 숙주(인체나 동물)의 몸에 감염시키지 않고 오랫동안 세포에서만 배양시키거나, 25℃ 정도의 낮은 온도에서만 배양시키면 바이러스가 숙주의 몸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능을 잃게 되면서 약독화된다. 홍역과 유행성이하선염, 풍진, 수두 등에 약독화 생백신을 쓴다.

두 백신 형태는 질병을 일으키는 병원체를 그대로 사용한다. 하지만 우리 몸이 항체를 만들고 항원을 기억하게 하기 위해 꼭 병원체 전부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병원체의 일부를 통해서도 항체가 만들어지고, 이를 기억할 수 있다.

병원체의 일부만 이용하는 백신에는 박테리아의 몸체에 있는 다당 만을 이용하는 다당 백신과 독소를 이용하는 변성독소 백신이 있다. 다당 백신은 폐렴구균이나 수막염, 변성독소 백신은 파상풍과 디프테리아 예방에 사용된다. 바이러스의 유전자를 이용하기도 하는데, 병원체로부터 항원 유전자를 분리한 뒤 병원성이 없는 미생물에 넣어 유전자 재조합 백신을 만든다. 유전자 재조합 백신은 B형간염이나 자궁경부암 예방에 이용한다. 바이러스의 표면에 있는 단백질만 이용하거나 바이러스 유전자를 삽입한 DNA, 실험실에서 합성한 펩타이드를 백신에 이용하기도 한다. 유전 물질이 없어 증식할 수 없는 바이러스를 이용하는 바이러스 유사 입자 백신도 있다.

윤선우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감염병연구센터 선임 연구원은 “백신마다 장단점이 있다. 약독화 생백신의 경우 강한 면역 반응을 일으키지만 드물게 돌연변이가 발생해 질병을 유발할 수 있고, 불활성화 백신은 약독화 생백신에 비해 안전하지만 효과를 유지하기 위해 몇 년마다 한 번씩 백신을 다시 맞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 병원체의 일부를 사용하는 백신의 경우 안전성이 높지만 면역원성(면역이 생기는 효율)이 낮아서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들이 연구돼야 한다.

병원체에 변이가 잦아서 백신을 자주 맞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매년 독감 예방 주사를 맞아야 하는 이유는 독감을 일으키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쉽게 변이를 일으켜 기억해 둔 항체가 소용없기 때문이다. 윤 선임연구원은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은 다양한 변이를 일으킨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한 번에 예방할 수 있는 범용 백신과 메르스 코로나바이러스와 같은 신종 감염병 예방 백신을 개발하고 있다”며 “세계적으로는 암이나 당뇨병 치료 백신, 충치 백신, 피임 백신 등 새로운 백신을 꾸준히 개발 중”이라고 말했다.


백신을 생산하는 세 가지 방법

백신을 생산하는 방식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유정란을 이용하는 방식과 세포배양을 이용하는 방식, 그리고 유전자 재조합으로 항원을 만드는 방식이다. 유정란을 이용하는 방식은 비용이 적게 들지만 백신을 만드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조류 인플루엔자가 발생한 경우 백신을 공급할 수 없다. 또 계란의 성분이 백신에 남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계란에 알레르기가 있는 아이는 백신을 맞을 수 없다. 세포 배양 방식은 어떤 질병이 유행할 때 이에 대응하는 백신을 빨리 만들 수 있고, 계란에 알레르기가 있는 아이도 맞을 수 있다. 그러나 비용이 많이 든다는 단점이 있다. 유전자 재조합으로 항원을 만드는 방식의 경우 병원체 없이도 백신을 만들 수 있으며, 어떤 질병이 유행할 때 어떤 방식보다 가장 빠르게 백신을 생산할 수 있다. 현재 가장 많이 사용되는 방식은 유정란을 이용하는 방식이며, 세포배양이나 유전자 재조합으로 항원를 생산하는 방식으로 점차 대체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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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세상에서 가장 영악한 바이러스, 인플루엔자’(20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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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백신을 못 믿는 사람들​
Part 2. 백신은 정말 옳다​
Part 3. 인체, 백신을 기억하다​
Part 4. “나 하나쯤이야” 무너지는 집단면역 생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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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현수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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