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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물리교사 도다 이치로

자연방사선 눈으로 확인하는 안개상자

지난 12월 28일 한성과학고 물리실험실에는 10여명의 교사가 둥그렇게 모여 있었다. 뭔가 재미난 실험이 한창인 것 같았다. 학생이 된 듯 열심히 관찰하는 교사의 시선을 쫓아가자 네모난 유리상자와 지긋한 일본인 교사가 눈에 띄었다.

 

자신이 만든 안개상자에서 구름처럼 피어나는 방사선을 손 가락으로 가리키며 열심히 설명중인 도다 이치로.
 


“와-아 저 비행기 구름 같은 궤적 좀 봐요.”
“저게 방사선의 흔적이라는데 너무 신기하죠.”

얼핏 들려온 방사선이라는 말에 기자는 움찔하며 제자리에 멈춰 섰다. 가까이 가면 위험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탓이다. 기자를 안내하던 교사가 이 방사선은 자연방사선이라 별 문제 없다는 설명에 그제야 안심이 됐다.

네모난 유리상자 안을 자세히 보니 자연방사선이 지나간 궤적이 구름처럼 여기저기 피어나고 있었다. 놀랍게도 이들은 공기 속에 존재하는 방사성원소 라돈(Rn)이나 토론(Tn)에서 나오는 α선 궤적이라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됐다. 또 유리상자 앞에서는 나이 들어보이는 사람이 열심히 실험을 지도하며 설명하는 중이었다. 이 지도교사가 바로 일본인 도다 이치로(60)였다. 1911년 영국의 물리학자 윌슨이 선보였던 안개상자와 비슷한 유리상자도 그가 직접 만든 것이었다. 교사가 직접 실험장치를 만들었다는 점도 특이했지만, 하필 왜 자연방사선을 검출하는 장치였을까 하는 의문이 절로 들었다.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도다 선생은 학생들에게 “우리가 우주로부터 쏟아지는 방사선 속에서 생활하고, 방사성 원소를 포함하는 공기를 흡입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라고 실험장치를 만든 이유를 설명한다. “사람들이 방사선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며 자신의 경험담을 털어놓는다.

약 20년 전 그는 학교가 있는 토야마에서 규슈의 나가사키까지 편도 약 8백km 거리의 수학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여행 내내 휴대용 방사선량 측정기인 서베이메타로 자연방사선을 측정했다. 학교에 돌아와 학생들에게 자연방사선에 대해 설문조사를 했다. 그 결과 학생들은 환경이 깨끗한 전원지대에 자연방사선이 적고, 공기가 오염된 대도시나 원자폭탄이 떨어진 나가사키, 히로시마에는 자연방사선이 많다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이는 실제 측정 결과와 달랐다. 도다 선생은 “이런 오해를 풀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안개상자를 연구하는 계기가 됐다”고 설명한다.

처음엔 학교에 있던 단열팽창형 안개상자를 이용해 실험했지만, 방사선원을 넣어야 하고 제한된 시간 동안 지름 12cm 정도의 작은 창을 통해서만 관찰할 수 있었다. 그 후 영국 런던의 ‘사이언스 뮤지엄’을 방문해 사방 1m 정도의 큰 확산형 안개상자를 봤는데, 이 속에서 자연방사선이 날아다니는 궤적을 보고 매우 감동했다. 또 “이 안개상자를 보면 누구라도 자연방사선의 존재를 의심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런 안개상자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게 됐다”고 당시를 회상한다. 그래서 이 안개상자를 만들던 독일 뮌헨의 피베사에 견학가기도 했다.

도다 선생은 20여년 동안 안개상자를 연구하고 여러 방법을 시도해서 자신만의 실험장치를 만들었다. 2001년 8월에는 청주에서 개최된 국제물리학회 산하 물리교육분과위원회(ICPEC)에서 자연방사선을 보여주는 안개상자 데모를 발표해 여러 나라의 대학교수와 교사로부터 주목받기도 했다. 또 이번에는 서울중등물리교육연구회가 주최한 교사연수모임에서 자신의 업그레이드 버전을 소개했다.

최근에 만들어진 업그레이드 버전은 ‘도다의 안개상자’라 할 만큼 뭔가 특별한 점이 있다. 속시원하게 들여다보이는 자신의 실험장치에 대해 “조작이 간단하고 안정적으로 관찰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자랑한다. 드라이아이스 위에 투명한 안개상자 용기를 놓고, 알코올을 넣고, 유리 뚜껑을 덮고 전원을 넣으면 된다.

특히 용기 바닥인 알루미늄판에 4백41개의 나사를 붙인 후 이 알루미늄판을 두께 40mm인 드라이아이스에 박아 용기 바닥이 항상 -60℃로 유지될 수 있다. 반면 이중 유리판인 용기 뚜껑에는 2장의 유리판 사이에 투명 전도성필름이 들어있는데, 이 필름을 가열해 유리판이 20℃ 정도로 유지될 수 있다. “이렇게 80℃의 온도차를 유지하는 것이 수시간 이상 안정적으로 방사선을 관찰할 수 있는 비결”이라고 귀띔해준다.


기계공학자의 늦깎이 변신

도다 선생이 안개상자를 직접 제작할 수 있었던 데는 그의 특이한 이력이 한몫했다. 대학 때 그의 전공은 기계공학이었다. 졸업 후 알루미늄 회사, 자동차부품 회사, 조립식 간이주택 건축회사를 거쳤고 30세 때 진로를 바꿔 고등학교 물리교사가 됐다. 그래서 “새로운 물리실험장치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 기계가공법과 같은 과거의 경험을 살려 자신의 생각대로 만들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교사에 대한 그의 생각은 그리 갑작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그의 아버지가 과학교사였다. 당시 제2차세계 대전으로 파괴됐던 일본을 재건하기 위해 과학교육이 중요하다며 열심히 가르쳤던 아버지의 모습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고 말한다. 특히 5-6세부터 아버지가 실험하는 수업광경을 많이 봤다.

표면적인 지식만을 주입한 수재보다 실험을 통해 기초를 확실히 익힌 학생을 기르는 일이 중요하다고 확신하는 도다 선생은“교사 스스로 창조해야 학생들에게 창조에 대한 영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강조한다. 또“학생들이 컴퓨터 게임에 빠지기보다 자연과 친숙하며 자연 속에서 많은 경험을 하는 일이 새로운 것을 만드는 원동력”이라며 3월로 정년을 맞는 그는 평소 지론을 담담히 피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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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사진

    이창호
  • 이충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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