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벨상을 받은 연구 업적을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은 많아도, 쓸모없다고 ‘감히’ 말하는 사람은 없다. 물론 노벨상 연구 중 시간이 흐른 뒤에 오류로 판명된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당대엔 그 연구의 가치를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 대중이 이해하기 어렵다는 사실 자체가 오히려 그 연구의 전문성, 탁월성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어려운 수식들이 시간이 지나 스마트폰, MRI(자기공명영상), mRNA 백신이 됐듯, 어려운 연구들은 일단 대단하다는 경험이 축적됐다.
이런 면에서 이그노벨상은 노벨상의 거울상이다. 이 상을 받은 연구들이야말로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은 적고, 쓸모없다고 서슴없이 말하는 사람이 많다. 누구나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재밌다는 사실은 이그노벨상 연구를 흥밋거리로 보이게 할 뿐이다. 이창욱 과학동아 기자가 ‘과학동아’에 인기리에 연재한 원고를 바탕으로 낸 신간 ‘웃기려고 한 과학 아닙니다’는 이그노벨상 수상 연구에 대한 이런 선입견을 산뜻하게 넘어선다. 이 책은 이그노벨상을 받은 연구 결과의 경쾌함과 그에 이르는 과정의 진지함이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보여준다.
‘웃기려고 한 과학 아닙니다’는 일부러 온갖 벌의 독침을 자신의 신체 곳곳에 찌르며 고통의 정도를 측정하고, 왜 그리고 어떻게 고양이는 유체처럼 유연한지 탐구하며,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욕설을 내뱉는 생리학적·인류학적 이유를 고찰한 연구가 얼마나 흥미진진한지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한다. 이 책은 누구나 웃을 수 있는 이 연구들의 재미를 전하는 데 우선 집중한다. 물론 이 연구들의 보다 깊은 과학적 의의도 사려 깊게 살피지만, 연구의 재미를 이런 의의에 종속시키지 않는다. 과학이 웃기는 건 잘못이 아니어서다. 웃기려고 한 과학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게다가 이 연구들은 지극히 진지하며 과학적인 과정을 거쳤다. 단지 결과가 누가 봐도 쉽고 재밌을 뿐이다.
이그노벨상을 받은 연구들의 흥미롭고 대중적인 지점에 주목한 덕분에, ‘웃기려고 한 과학 아닙니다’는 가벼워 ‘보이는’ 과학의 의의를 자연스레 아우른다. 웜뱃의 똥이 주사위 모양인 이유를 밝히며 생체유체역학의 가능성을 입증한 퍼트리샤 양 대만 국립 칭화대 교수의 사례처럼, 과학은 얼마든지 웃기면서 가치 있을 수 있다. 이 책은 연구가 웃기다는 사실이, 이 연구가 사사롭거나 하찮다고 무시당할 이유는 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연구자들의 호기심이야말로 이그노벨상을 받은 연구의 가장 큰 동력이었기에, 그 호기심이 진지한 과정 끝에 입증된 이 연구들도 다른 과학처럼 존중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과학적 사실성이 SF로서의 매력을 보장하진 않는다. 하지만 과학적 사실성과 무관한 소설을 SF라고 부르기도 곤란하다. 그렇다면 일단 과학 지식을 많이 배워서, 그걸 어떻게든 매력적인 이야기로 창작해야 할까? 천문학 박사 학위를 받은 현직 연구원이자 SF 소설가인 해도연 작가는 초심자를 위한 SF 작법서인 신간 ‘SF 쓰는 법’에서, SF 창작은 과학적 사실을 바탕으로 나만의 세계를 꾸리는 것이라고 답한다. 이 책은 우리가 이미 아는 과학으로 일단 SF를 써보자고 권한다.
해도연 작가는 정교하면서도 개성 있는 세계를 구축한 SF를 꾸준히 발표하며 주목받아왔다. 그의 SF는 독자가 작품 속 세계에 쉽게 몰입할 수 있는 설득력이 특징이다. 하지만 이런 서사의 매력이 그가 물리학과 천문학을 전공한 ‘과학자’라는 점에 크게 기대지 않는다는 사실을 ‘SF 쓰는 법’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저자는 흘러가듯 본 기사, 평소 재미있게 본 영화의 어떤 장면, 평소 호기심이 동하던 사실 하나가 있으면 SF를 쓰기에 충분하다고 이 책에서 말한다. SF의 바탕은 언제나 과학적 사실이지만, 이 과학적 사실엔 특별한 제약이 없으며 그것을 활용하는 상상력과 써보고 싶은 마음이 중요하단 점을 이 책은 차근히 보여준다.
‘SF 쓰는 법’은 소재와 주제를 정하고, 아이디어를 찾고 세계의 규칙을 정립하는 등 SF 창작에 첫발을 내딛는 법을 꼼꼼히 정리한 가이드다. SF 창작에 뜻을 둔 이들과 수업을 진행하며, 초심자들이 자주 품는 의문과 겪는 어려움을 가까이에서 도와온 저자의 경험이 빛나는 지점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그의 집필 경험과 조언 역시 이 SF 창작 수업의 결과물인 덕분에, 다른 작가의 경험보다 더 구체적, 실용적이다.
저자는 여기서 좀 더 나아가 과학적 사실에서 떠올린 상상이 어떻게 설득력을 가질 수 있는지, 어떻게 이 상상을 구체적인 세계로 꾸릴 수 있는지, 직접 규칙을 만드는 것과 이야기를 창작하는 것이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까지 ‘SF 쓰는 법’에서 짚어준다. SF를 쓰고 싶다는 독자의 의지에 주목하며, 이 의지를 계속 창작이라는 결과까지 지속시키도록 돕는 저자의 세심한 시선이 인상적이다.

앞으로의 20년을 향한 통찰
저자인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은 특이점을 ‘인공지능이 우리의 뇌와 긴밀하게 통합돼서, 생물학이 인간에게 준 지능과 의식이 수백만 배 확대되는 사건’으로 정의한다. 이 책은 지난 20년 동안의 변화는 인간과 소프트웨어의 융합을 얼마나 심화시켰고, 새로운 문명의 경계에 선 우리는 향후 20년의 미래를 어떻게 이해할지에 대한 통찰을 제공한다.
마침내 특이점이 시작된다 레이 커즈와일 지음 〡 이충호 옮김 〡 장대익 감수
비즈니스북스 〡 552쪽 〡 3만 원

진화라는 한 권의 책
‘이기적 유전자’의 리처드 도킨스는 이 책에서 유전자 중심의 관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이 책은 진화는 과거의 연대기이자 다윈의 자연선택으로 집필, 편집되는 한 권의 책이며, 각 개체는 일종의 미완성 문학 작품이자 역사의 보관소라고 주장한다. 각종 동물, 식물, 균류, 고세균을 망라한 사례들, 도킨스 특유의 냉철한 논리와 위트 넘치는 문체가 읽는 재미를 더한다.
불멸의 유전자 리처드 도킨스 지음 〡 야나 렌조바 그림 〡 이한음 옮김
을유문화사 〡 496쪽 〡 2만 5000원

미워하기 어려운 대가의 연대기
탁월한 작가로서 악명이 높은, SF의 거장 할란 엘리슨의 작품 중 각종 단편상을 수상한 단편 21편을 모았다. SF라는 장르로 정의하기가 망설여질 정도로, 인간의 증오와 사랑을 복합적, 다면적인 서사로 창작한 엘리슨의 작품 세계를 한 권으로 온전히 살펴볼 수 있다는 점이 이 책의 매력이다. 2017년에 세 권으로 출간됐던 ‘할란 엘리슨 걸작선’의 개정 합본판이다.
베스트 오브 할란 엘리슨 할란 엘리슨 지음 〡 신해경, 이수현 옮김
아작 〡 624쪽 〡 2만 4800원

새로운 자연 서사의 가능성
자연 서사 작가 아이작 유엔이 들려주는 과학과 문학, 공감과 유머가 교차하는 비인간 생명 세계의 이야기다. 전통적인 자연 에세이의 형식을 벗어나, 저자는 곤충, 포유류, 양서류, 고대 생물과 화석 등 생물학적·지질학적 주제를 문학적으로 풀어내며, 각종 생명체들의 독특한 생존 전략과 감각을 인류의 감정, 행동, 사회 구조와 절묘하게 교차시켰다. ‘자연을 읽는 새로운 감각’을 제안하는 책이다.
지구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아이작 유엔 지음 〡 성소희 옮김
알레 〡 336쪽 〡 2만 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