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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ch & Fun] 이색 악기 패밀리

현 없는 하프, 귀신 소리 내는 허공…


어디선가 도란도란 이야기가 들리는 것 같더니, 온몸이 오싹해질 만큼 괴상한 고음이 들린다. 영화 속 로봇이 말하는 듯한 말소리가 들리더니, 요정이 사뿐히 내려앉는 듯 맑고 고운 소리가 들린다.

드라마나 영화, 현대음악에서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했던 특이한 소리가 나면 신디사이저로 연주한 거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 중 상당수는 특별한 악기가 연주하는 음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악기들에 건반이나 현이 없다는 점이다. 공중에서 손짓을 하거나, 톱질을 하거나 온몸을 움직여 춤을 추면서 연주한다.



1 현 없이 연주하는 레이저하프

실제 하프처럼 47개의 줄을 뜯는 대신 기계에서 쏜 레이저를 이용한다. 레이저를 쏘면 그대로 직진해 천장에 있는 센서에 닿는다. 이때 손으로 가리면 빛이 센서에 닿지 않아 미디 콘트롤러가 소리를 낸다. 전자기기가 만든 음이기 때문에 실제 하프처럼 아름답고 우아한 소리 대신 신디사이저 같은 소리가 난다. 어떤 분위기의 음악을 연주하느냐에 따라 레이저의 색깔과 개수를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

2 사탕요정이 춤추는 듯한 글래스하모니카

똑같은 유리잔을 일렬로 나열하고 순서대로 물의 양을 늘려가며 채운 뒤 스틱으로 치면서 연주하는 것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유리잔을 손으로 비벼서 연주하는 악기를 상상해본 적이 있을까. 글래스하모니카는 유리잔을 큰 것부터 작은 것까지 막대에 꿴 다음, 페달을 밟아 물레로 빙글빙글 돌리면서 연주한다. 손을 물에 적신 다음, 손가락으로 유리잔의 표면을 만지면 소리가 난다. 유리잔이 클수록 낮은음, 작을수록 높은음이 난다. 이 악기는 미국의 발명가이자 정치인이었던 벤자민 프랭클린이 발명했다. 18세기 당시 사람들은 은쟁반에 옥구슬이 굴러가는 듯한 이 소리에 매료됐다. 모차르트와 베토벤도 글래스하모니카를 위한 곡을 썼다.
 


3 황금 연잎이 펼쳐진 유리 오르간 크리스털바셰트

투명한 유리막대들이 오르간 건반처럼 줄지어 있고 앞에는 커다란 연잎이 달려 있다! 이 악기는 글래스하모니카처럼 물에 젖은 손가락으로 유리를 문질러 연주한다. 유리건반이 진동을 내면 거기에 연결된 파이프 안의 공기가 떨어 소리를 낸다. 커다란 연잎처럼 생긴 나팔이 소리를 크게 증폭시킨다. 건반악기라 글래스하모니카보다 음계가 명확하고 연주하기 편하다.
 


4 레이저로 ‘보이지 않는 소리’ 연주하는 나노기타

미국 코넬대 나노전자기계시스템연구실의 더스틴 카연구원이 만든 나노기타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기타다. 결정질 실리콘으로 만들었는데 전체 길이는 10μm(마이크로미터, 1μm=1000분의 1mm)이며 현의 길이는 약 6~12μm, 두께는 0.2μm밖에 되지 않아 현미경으로만 볼 수 있다. 사람 머리카락 두께(약 200μm)보다도 훨씬 작고, 적혈구와 비슷한 크기다(옆의 사진은 크게 확대한 것).

이 악기는 전기회로를 어느 수준까지 작게 만들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만들었다. 현에 레이저빔을 쏘면 떨리면서 소리를 낸다. 이 소리는 주파수가 약 40MHz로 실제 기타의 13만 배, 즉 17옥타브나 높다. 안타깝게도 약 20~2만Hz내의 소리만 들을 수 있는 우리 귀는 나노기타의 연주를 들을 수 없다!
 



5 지휘만으로 연주하는 테레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연구소의 음향물리공학자인 레온 테레민이 ‘라디오에서 들리는 잡음을 통제하면 음악을 연주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 악기를 발명했다. 테레민은 썰렁하면서 오싹하고, 때로는 공포를 느끼게 하는 소리를 낸다. 수직으로 펼쳐진 두 안테나 사이 허공에서 지휘하듯이 손짓하면서 연주한다.

비밀은 라디오 주파수. 한쪽 안테나의 주파수를 일정하게 유지할 때 다른 쪽의 주파수가 달라지면 소리가 나는 원리다. 두 안테나 사이에 손을 넣어 움직이면 손과 안테나의 거리가 달라질 때마다 주파수가 달라진다. 서 있는 안테나에 가까워질수록 높은음을, 누워 있는 안테나에 가까워질수록 낮은 소리를 낸다.



6 꺅! 공포영화 단골손님 워터폰

마치 천이 다 떨어져 나간 우산살처럼 생긴 이 악기는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소리를 낸다. 공포영화에서 주인공이 위험한 장소에 들어갔을 때, 또는 귀신이나 살인마가 등장하기 직전에 나올 듯한 음향효과를 낸다. 가느다란 쇠막대살에 송진을 발라 표면을 매끄럽게 한 다음, 바이올린처럼 활로 켜거나 두드리면 소리가 난다. 쇠막대살의 진동이 물이 가득 차 있는 기둥에 전해지면서 공명을 일으켜 크게 울린다. 쇠막대살을 활짝 펼치느냐, 안쪽으로 모으느냐에 따라 소리가 달라진다. 드라마 ‘엑스파일’에서 음향효과를 낼 때 사용된 악기로 유명하다.
 

7 무시무시한 모습으로 아름답게 노래하는

이번에도 공포영화에 등장하는 악기일까. 무시무시한 톱으로 연주하는 음악이야말로 최고의 반전이다! 톱의 손잡이 부분을 두 무릎으로 고정하고 한손으로 휜 다음, 다른 손에 쥔 첼로용 활로 켜면 바이올린보다도 훨씬 청아하고 고운 소리가 난다. 톱을 안으로 당길수록 낮은음, 바깥으로 밀수록 높은음이 난다. 낮은음을 연주할 때는 소프라노가 허밍하는 듯이 조금 으스스한 분위기도 난다. 이 톱으로 실제 톱처럼 혹시 나무를 벨 수 있을까. 다행히 연주용으로 만들어진 악기이므로 날카로운 톱날은 모두 제거했다.
 

 

8 음악을 연주하려면 춤춰라! 스파인

캐나다 맥길대에서 전자기기와 음악 간의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과학자이자 음악가인 조셉 말로슈가 고안해 3D프린터로 인쇄해 만든 악기다. 이름대로 척추처럼 생겼다. 스파인은 무척 예민해서 조금만 구부리거나 비틀어도 센서가 이를 감지하고 미디 콘트롤러가 다른 음을 낸다. 이 악기를 등에 업거나 팔다리에 끼거나, 또는 손에 들고 모양을 바꾸면서 연주한다. 그래서 이 악기를 연주하려면 악보가 아니라, 안무가 필요하다. 말로슈는 사람의 행위가 음악과 상호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이 악기를 만들었다고 2014년에 열린 NIME(음악적 표현 인터페이스) 국제학회에서 밝혔다. 그래서일까. 스파인으로 연주하는 음악은 사람이 아주 빠르게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댄서들이 춤추면서 스파인을 연주하는 모습을 보면 마치 지구에 갓 도착한 외계인들이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보인다.
 

9 음악을 맛있게 요리하는 노래하는 냄비 스틸팬

뜨겁게 달군 뒤 고추기름을 붓고 청경채와 숙주나물, 쇠고기를 쓱쓱 볶아내기 위해 준비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커다란 철냄비의 정체는 악기다. 그렇다면 드럼처럼 둥둥 소리를 내는 악기일까.

아마 지금까지 소개한 것들 가운데 가장 신기하고 놀라운 악기일 것이다. 요리재료도, 건반도, 현도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은 철냄비를 두드리는 것만으로도 음계가 들리기 때문이다!

비밀은 냄비가 찌그러진 정도. 두드리는 부분이 얼마만큼 찌그러졌느냐에 따라 음의 높이가 다르다. 투박한 생김새와 달리 스틸팬이 내는 음색은 실로폰처럼 가볍고 상쾌하다.
 

2016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이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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