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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3. 4D 프린팅의 마술

필자가 일하는 KISTI는 매년 10대 미래유망기술을 발표한다. 지난해 12월에 뽑은 기술 중에는 2년 전 급부상한 신기술인 ‘4D 프린팅’이 있다.
3D 프린팅도 이제야 혁명전야를 맞았는데, 미국은 여기서 한발 더 나간 기술을 연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4D 프린팅은 도대체 어떤 기술일까.


커다란 집을 3D 프린터로 출력한다고 생각해보자. 집 만한 프린터가 있다면 좋겠지만, 천문학적 비용이 필요하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는 얘기다. 방법은 뭘까. 작은 조각들을 인쇄해 조립하는 것이다. 최근 3D 프린터로 지은 집들은 대부분 이렇게 만들었다. DIY가구를 조립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이것도 결코 만만치 않다는 걸. 바로 이 점이 3D 프린팅의 한계다. 물체를 빠른 속도로 한 번에 찍어낸다는 본래 의미가 퇴색되는 셈이다. 어떻게 하면 프린터보다 더 큰 물체를 찍어낼 수 있을까.

 

로봇이 스스로 변신
 
이 문제를 해결할 것으로 주목받는 신기술이 ‘4D 프린팅’이다. 2013년 4월, 미국 MIT 자가조립연구소 스카일러 티비츠 교수가 ‘4D 프린팅의 출현(The emergence of 4D printing)’이라는 제목의 TED 강연을 하면서 세상에 처음 알려졌고, 누적 조회수 약 200만 회를 기록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이 기술의 핵심은 형상기억합금 같은 스마트재료를 3D 프린터로 출력하는 것이다. 출력된 물체는 시간 또는 주변 환경이 변하면 다른 모양으로 변신한다. 이 기술에 4D란 이름이 붙은 것도 기존의 3차원 입체(3D)에 시간이라는 1차원(1D)이 추가됐기 때문이다. 어떤 조건에서 어떤 모양으로 바꾸게 할지는 엔지니어가 미리 프로그래밍 한다(스마트재료에 내장한다).
 
‘4D 프린터’로 찍어낸 물체는 인간의 개입 없이 열이나 진동, 중력, 공기 등 다양한 환경이나 에너지원에 자극 받아 변한다. 마치 전선이나 모터 없이 로봇을 움직이겠다는 말이다. 놀랍게도, 나노공학에서는 가능하다. 바로 자가변형(selftransformation)또는 자가조립(self-assembly)이라는 기술(박스 기사 참조)이다. 단백질 같은 생체분자들이 스스로 결합해 특정 모양을 갖추는 원리를 공학적으로 응용한 건데, 몸 속에서 특정 환경에 노출됐을 때 뚜껑을 열어 약물을 전달하는 나노로봇이 대표적이다. 다시 말해 자가변형 또는 자가조립 기능이 가능한 물체를 3D 프린터로 출력하는 게 4D 프린팅이다. 문제는 나노기술을 사람 눈에 보이는 크기로 구현한다는 게 여간 어렵지 않다는 점이다.

실제로 미국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은 2007년부터 작은 분자를 결합해 눈에 보이는 3차원 물체를 만드는 기술을 모색했지만 실패했다. 미시와 거시 세계에서 물체가 일관되게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체는 나노미터(nm) 스케일로 작아지면 구조와 성질이 완전히 달라진다. 예컨대, 금 덩어리는 노란빛을 띠지만 나노미터 크기의 금가루는 빨간색이나 보라색을 띤다.
 
3D 프린터로 제작한 형상기억합금과 전기회로를 내장한 종이접기 로봇
다행히 3년 뒤, 미국 MIT 컴퓨터과학인공지능연구소(CSAIL) 다니엘라 루스 교수와 에릭 드메인 교수, 그리고 하버드대 공학및응용과학대 로버트 우드 교수가 모인 연구팀이 종이접기 형태의 로봇을 제안하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연구팀은 가로 세로 길이 약 5cm 가량의 종이접기 로봇을 종이비행기와 종이배로 스스로 변신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 때는 3D 프린터를 이용하지 않았지만 3년 뒤에는 몸체에 형상기억합금과 전기회로를 내장한 종이접기 로봇을 3D 프린터로 제작했다. 전기를 흘려 열을 내면 형상기억합금이 움직이면서 개구리 모양으로 스스로 변신한다(사진).
 
차 디자인, 내 기분 맞춰 달라진다
 
이들에 질세라 스카일러 티비츠 MIT 교수도 독자적으로 연구를 계속해왔다. 2011년 2월 ‘우리는 스스로 조립하는 물건을 만들 수 있는가(Can we make things that make themselves)’라는 제목으로 6분짜리 TED 강연을 했는데, 이때 스스로 조립하는 막대인 ‘편향 체인’을 소개했다. 일직선으로 늘어져 있던 길다란 체인은 손으로 흔들자 3차원 구조체로 변신했다. 원리는 이렇다. 체인의 각 요소에는 두 가지 값이 있는 스위치가 내장돼 있다. 손으로 흔들면 스위치 값이 변하면서 각 관절이 정해진 방향으로 뒤틀린다. 마치 DNA를 구성하는 4개의 염기(A, C, T, G)가 일정한 규칙에 따라 조합되는 것과 같다.
 
4D 프린팅은 머지않은 미래에 다양한 분야에서 폭넓게 활용될 전망이다. 자동차 분야에서는 모든 플라스틱과 금속 부품이 대상이 될 수 있다. 예컨대, 날씨(비 오는 날)나 주변 환경(소금기 많은 도로 등)에 따라 변할 수 있는 코팅기술이 개발되면 자동차 부품의 수명이 늘어날 수 있다. 자동차 차체를 프로그래밍 가능 재료로 제작하면 운전자의 취향과 기분에 따라 외관을 자유롭게 바꿀 날이 올 것이다. 교량이나 도로가 파손됐을 때 스스로 복구되는 재료로 만들 수도 있다. 국방 분야에서는 위장막이나 위장복에 활용될 자가변형 천이 가장 각광받고 있다. 가령, 물만 뿌리면 스스로 우뚝 서서 펼쳐지는 천막 막사가 가능하다. 보건의료 분야에서는 자가변형이 가능한 생체조직부터 인체에 삽입하는 바이오 장기까지 다양하다. 또 몸 안에 들어가 암세포를 잘라내고 끊어진 혈관을 잇는 나노로봇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4D프린팅 연구는 한동안 지금처럼 소재 개발에 초점이 맞춰질 것이다. 현재는 플라스틱 합성수지가 많지만, 앞으로는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금속이나 유리, 목재 등 다양한 형태로 발전할 전망이다. 미국 육군 연구국은 신소재를 개발하기 위해 피츠 버그대, 하버드대, 일리노이대 공동 연구팀에 미화 85만5000달러(우리 돈 약 9억 원)를 지원했다. 4D 프린팅 기술로 만든 완구 같은 단순한 물체는 5년, 보다 복잡한 형태는 20년 안에 상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자가조립이란?

[티비츠 교수가 2011년 공개한 편향 체인. 일직선으로 늘어져 있던 체인을 손으로 흔들자 단백질 구조로 변신했다(위). 왼쪽 아래 사진은
티비츠 교수가 개발 중인 신개념 파이프. 막혀서 유속이 변하면 모양을 바꿔 문제를 해결한다. 물론 4D 프린팅 기술을 이용해 스스로 하게 만든다. ]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경계가 사라진다
 
4D 프린팅 기술은 지금은 미국이 이끌고 있지만 2~3년 내에 유럽과 아시아 국가들도 본격적으로 나설 것이다. 4D프린팅을 개발하고 있는 미국 연구기관에 중국인과 한국인, 일본인을 포함해 아시아계 연구자들이 상당히 많다. 기술본토에서 역량을 쌓고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 정부와 연구자, 기업은 새로운 기회로 보고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필자도 꾸준히 관련 기술을 모니터링 할 계획이다.
 
4D 프린팅은 분명 2015년을 기점으로 3D 프린터의 잠재력이 폭발하는 데 큰 에너지를 보탤 것이다. 영화에서만 봐왔던, 물체를 순간이동 시키는 미래가 우리 눈앞에 와 있다. 티비츠 교수는 ‘와이어드’와의 인터뷰에서 “프로그래밍 코드를 이용해 현실세계의 물질을 제어하는 환경이 만들어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사물인터넷(IoT)이 현실세계와 디지털 가상세계를 하나로 연결하듯 4D 프린팅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경계를 허물 것이다. 눈을 크게 뜨고 지켜보자. 지금이 바로 혁명전야(革命全夜)다.


▼관련기사를 계속 보시려면?

INTRO. 3D 프린터, 혁명을 출력하다
PART1. 3D 프린터, 날개를 달다
PART2. 생명을 살리는 바이오 프린터
PART3. 4D 프린팅의 마술

2015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강종석 KISTI 책임연구원 KISTI 책임연구원
  • 일러스트

    박장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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