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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 태초의 음악은 어떤 꼴이었을까

내 귀에 치즈케이크, 음악


음악은 인간만이 가진 고유한 특성이다. 우리가 흔히 ‘노래’라고 표현하는 새 소리도, 사실은 언어에 더 가깝다. 원숭이 등 상대적으로 인류와 유전적으로 가까운 동물들도 노래를 만들거나 부를 줄은 모른다.

도대체 음악은 어떻게 처음 생겨났을까. 학자에 따라, 그리고 관점에 따라 시나리오는 조금씩 다르다. 크게 표현의 측면, 의사소통의 측면, 사회적 측면에서 본 가설들이 있다. 음악의 치료적인 측면을 연구하는 필자는, 어떤 과정을 거쳤든 음악은 분명 인간의 생존에 필수였을 거라고 생각한다.

일부 언어학자는 언어에서 음악이 파생했다는 의사소통 가설을 내놨다. 채집수렵 시대, 사냥을 나간 사람들은 서로 안위를 확인하고 협동하기 위해 각자의 상황을 시시각각 전달해야 했다. 예컨대, 자신이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지, 사냥감을 찾고 있는지, 아니면 사냥감을 잡았는지를 알리는 것이다.


구애의 표현에서 음악이 기원했다?
그런데 울창한 숲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상대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려면 보통의 언어로는 부족했다. 소리는 밀림의 수많은 나무들과 폭신한 흙에 쉽게 흡수되고 반사됐다. 의사소통 가설은 이런 환경에서 음악이 탄생했다고 본다. 즉, 효율적인 의사소통을 위해 보통의 언어와는 차별화된 전략으로 특정한 음높이(음정), 특정 음의 강조나 강세, 장단의 완급을 포함한 음악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실제로 현대의 오지 부족들의 언어를 분석해 보면, 음악적 요소가 두드러진다. 언어가 발달하면서 모음과 자음이 체계화됐을 때 비로소 음악과 언어가 분리돼 각자 고유한 영역으로 발전했다는 것도 의사소통 이론에서 말하는 음악의 기원이다.

울창한 숲에서 사냥을 할 때 서로 원활히 의사소통하기 위한, 보통의 언어와는
차별화된 도구로써 음악이 기원했다는 가설이 있다.

 
또 다른 가설을 보자. 표현 이론은 짝을 찾기 위해 새 소리를 모방한 행동이 음악이 됐다고 설명한다. 초기 인류가 짝짓고 싶은 상대에게 더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해 새 소리를 모방했을 거라는 얘기인데, 왜 하필 새 소리인지는 명확한 설명이 부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의 집 창문 아래에서 세레나데를 부르는 전통적인 서사나, 현대에도 프러포즈를 할 때 노래를 불러준다는 점을 떠올리면, 구애 과정에서 음악이 탄생했다는 설명은 꽤 그럴듯하게 들린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에게서 노래가 기원했다는 가설도 있다. 미국 하버드대 진화심리학자 맥스 크래스노 교수팀은 부모가 자녀에게 그들의 필요가 충족되고 있음을 알려주는 신호에서 음악이 기원했다는 연구 결과를 ‘진화와 인간행동’ 1월 3일자에 발표했다(doi:10.1016/j.evolhumbehav.2016.12.005). 아기에게 노래를 불러주는 동안, 즉 “너 지금 괜찮아”라고 신호를 보내면서 부모가 밥을 먹거나 다른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등 다른 일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필 그 신호가 노래의 형태를 취하는 이유에 대해서 연구팀은 “노래의 멜로디와 리듬, 음색을 바꾸거나 손동작을 추가해서 유아의 주의를 더 잘 환기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아쉽게도, 음악의 기원 이론을 뒷받침하는 역사적 증거들은 하나로 뚜렷이 수렴하지는 않는다. 아직 어느 가설도 완벽히 성공적이지 않다는 뜻이다.


뱃노래의 선율은 노 젓기를 닮았다
기원은 확실치 않지만, 음악이 인간과 주고받은 영향은 광범위하다. 음악 사회학자들은 인류가 수렵채집 생활을 끝내고 정착한 이후 시기에 관심을 갖는다. 초기 인류가 농사를 짓기 시작했을 때, 인류는 함께 노동을 하면 작업 효율이 올라가고 높은 생산성이 보장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연에서 채취하는 우연적인 1차 생산은 점점 하지 않게 됐고, 보다 적극적인 노동집약적 방법을 고안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인류는 공동노동의 거의 모든 주요 동작들을 노래로 구성했다. 이를 특별히 ‘노동요’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보자. 경기민요의 하나인 ‘뱃노래’에서 “어기야, 디어차”의 선율 구조는 노를 젓는, 즉 팔을 앞으로 밀었다가 안으로 잡아당기는 동작과 어울린다. 노동요는 이름에 걸맞게, 높은 강도의 힘이 필요할 때 음정이 높아지고 장단은 길어지며 크기가 커지는 특징이 있다. 또 다른 경기민요인 ‘자진방아타령’의 리듬 강세는 방아를 올렸다가 내리는 힘의 강세에 딱 맞아 떨어진다.

노동뿐만 아니라 인간이 행하는 여러 의식은 모두 음악을 포함하고 있다. 이를 음악의 ‘집단성’이라고 한다. 자기 부족이나 민족의 정체성을 만드는 데에도 인류는 음악을 사용했다. 현대의 모든 나라에는 그 나라를 상징하는 노래(국가)가 있다. 결혼식이나 장례식 등 모든 의식에는 그 의식을 대표하는 음악이 흐른다.

음악은 집단 내부를 통합하는 기능뿐만 아니라 집단과 집단 간의 통합도 가져다 준다. 컨트리, 블루스, 랩 음악은 인종과 계층을 통합했다. 19세기 중반, 미국 노예 해방 선언 이후 미국 남부로 건너 온 아프리카인들은 블루스를 창시했다. 블루스는 12마디 3절로 구성돼 있는데, 2절은 1절의 반복, 3절은 2절에 대한 즉흥적 응답형식으로 이뤄져 있다. 이런 형식이 백인 중산층 사이에서 인기를 끌기 시작했고, 2차 세계대전 이후 전 세계로 확산됐다. 음악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이들은 음악을 통해 피부색이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음악은 젊은 세대와 나이든 세대의 연결고리가 되기도 한다. 이는 음악치료사인 필자의 경험으로도 쉽게 알 수 있다. 가끔 음악치료에 오는, 질풍노도의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 필자는 “아이들을 이해하는 것이 당장 어렵다면 먼저 아이들이 듣는 음악을 함께 듣고 즐겨보라”고 권한다. 필자의 경험상, 함께 음악을 듣는 것은 자녀와의 관계를 회복하는 데 매우 성공적이다. 음악과 개인의 발달 연구에 따르면, 사춘기 아이들은 음악을 새롭게 형성되는 자신들의 정체성 그 자체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이를 반대로 얘기하면, 음악을 받아들이는 것이 곧 그 사람 자체를 수용하는 경험이 된다.


‘리듬동조화’ 현상 이용해 환자 재활한다
음악과 인간은 오랜 시간 동안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공진화 해온 셈이다. 이 관계로부터 혜택을 얻으려는 시도가 있다. 바로 음악치료다. 음악치료는 자장가에 기원을 두고 있다. 미국의 음악치료학자 타이어 개스톤(1901~1970년)은 인류가 수렵생활을 하던 시절 엄마가 아이에게 애정을 표현하는 형태로 자장가가 발달 했다고 주장했다.

현대에 와서 음악의 기능을 극대화하는 시도로 음악치료가 생겼다.
사진은 미국 상이군인들의 음악치료 장면.

 
자장가는 다양한 문화에서 나타나는 보편적인 현상인데, 대개 리듬이 아이가 잠을 자는 요람의 흔들림을 닮았다. 그리고 아기 요람의 흔들림과 비슷한 특징, 즉 단조롭고 일정하게 지속되는 리듬, 반복되는 선율, 비(非)예측적 변화가 없는 음악은 인간에게 안정적인 정서반응을 유도한다. 실제로 신생아 행동 실험에서 아기는 엄마의 노래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양수 환경에서 익숙하게 들었던 자장가 소리에 울음을 멈췄다. 인공 젖꼭지를 더 세게 빠는 행동을 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신경음악치료’라는 새로운 음악치료법도 개발됐다. 음악을 듣는 사람은 몸이 갖고 있는 리듬이 일시적으로 변한다. 음악을 들으면서 손가락을 까딱거리고 발로 박자를 맞추는 행위도 일어난다. 이를 ‘리듬동조화’ 현상이라고 한다. 이를 바탕으로 음악치료학자들은 음악을 특별히 조직해 뇌 손상 환자들의 운동신경회로를 재활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더 읽을거리
정현주, ‘인간행동과 음악’
올리버 색스 ‘뮤지코필리아’
in 과학동아 31년 기사 디라이브러리(정기독자 무료)
‘정서 보듬는 음악의 세계’(2008.9)

dl.dongascience.com/magazine/view/S200809N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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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김경숙 음악치료교육전공 초빙교수
  • 에디터

    우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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