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 있는 북한 대사관에 여러 번 비자신청을 했습니다. 번번이 거절하더군요. 안되겠다 싶어 중국 베이징에 있는 북한 대사관으로 직접 갔죠. 10분 만에 비자를 얻어 곧바로 평양으로 날아갈 수 있었습니다. 1993년의 일입니다.”
독일의 대표 화산학자인 한스 울리히 슈밍케 독일 킬대 화산학과 교수는 백두산 연구를 처음 시작한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세계 최초로 북한 당국의 허가를 받고 백두산을 연구한 과학자다. 사람들이 백두산에 관심을 두지 않을 때 백두산의 위험성에 주목한 이유를 물었다.
“백두산은 젊고 폭발력이 큰 화산입니다. 백두산 폭발이 주변에 미쳤을 영향력이 궁금했습니다. 단기간의 분출이지만 기상기후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생각했죠.” 슈밍케 교수는 1815년 폭발한 인도네시아의 탐보라 화산을 예로 들었다. 탐보라 화산은 반경 1000km에 화산재를 퍼뜨리고 세계 평균 기온을 1.1℃나 떨어뜨렸다. 이는 유럽과 북아메리카에 거대한 기근을 불러왔다.
슈밍케 교수는 박사과정 학생 한 명을 데리고 운전기사, 통역사 두 명과 팀을 꾸려 2주 동안 백두산을 샅샅이 뒤졌다. 백두산 정상에서 부석을 채취하고 연대 측정이 가능한 탄화목을 수집했다. 지하 마그마의 규모를 추정하는 연구도 했다. 그 결과물로 백두산이 서기 960년대 대규모 폭발을 일으켜 분출물을 성층권인 25km 상공까지 뿜어 올렸다는 논문을 2000년에 발표했다. 이 논문은 백두산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고 수많은 후속 연구를 낳았다. 하지만 그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그는 연구가 가장 시급한 분야를 묻는 기자에게 “지구물리학, 지구화학, 화산학 분야의 연구가 모두 좀 더 쌓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두산은 중국과 북한에 걸쳐 있어 국내 연구자들이 공식적으로 접근하기 힘들다. 자국의 지질정보를 공개하길 꺼리는 중국 대신, 북한과 백두산을 연구해야 한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 전에 해결해야할 큰 산이 있다. 정치적 이슈다. 사실 이윤수 한국지질자원연구원 국토지질연구본부 책임연구원을 비롯한 국내 연구진은 2007년과 2011년 두 번에 걸쳐 북한측의 요청으로 백두산 공동연구를 추진해왔다. 그러나 첫 시도는 이듬해 들어선 신정부가 남북경색 조치를 취하며 결렬됐다. 두 번째는 우리가 제안한 백두산 과학시추를 북한이 거절하면서 좌절됐다(시추에 쓰이는 측정 장비에 핵실험이나 군사 활동 등이 탐지될까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2015년 11월에는 통일부의 사전 허가를 얻어 남북 화산학자들이 중국 베이징에서 만났다. “지구촌에 자유무역지대도 있는데, 백두산에 자유로운 국제공동연구 지대 하나 만들어도 좋지 않겠냐고 북한측을 설득했죠.” 당시 남한측 이춘근 단장(과학기술정책연구원)과 북측 단장이 백두산 남북공동연구를 추진하자는 데 정식으로 합의를 했다. 하지만 이 역시 이듬해 1월 북한이 핵실험을 하면서 무산됐다.
“북한과의 협력이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이 책임연구원은 백두산 분화 연구가 북한에게도 굉장히 중요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화산 폭발 시 화산재로 직접적인 피해를 입는 곳이 바로 북한이기 때문이다. 비록 전통적인 방법이지만 북한도 오랜기간 백두산을 조사하며 데이터를 축적해왔다.
마지막으로 백두산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물었다. “종종 외국의 석학들로부터 백두산 연구에 동참하고 싶다는 제의를 받습니다. 그들은 연구비를 준다고 오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런 학자들이 많이 모일수록 연구 성과도 커지고, 백두산 화산 분화를 예측할 수 있는 가능성도 높아질 겁니다. 하지만 갑자기 백두산 연구가 중단된다면요? 자신의 연구생명을 걸고 뛰어든 학자에게는 그보다 더한 악몽이 없습니다. 백두산 연구자들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건 다름 아닌 연구의 지속성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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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이 언제쯤 분화할 것인가를 알려면 백두산에 여러 개의 장비를 설치해놓고 오랫동안 관찰해야 합니다.”
윤성효 부산대 지구과학과 교수는 인터뷰 내내 모니터링 시스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1991년 중국이 본격적으로 백두산 연구를 시작하기 전부터 중국 측에 백두산 조사를 제안해왔다. 젊은 백두산이 앞으로도 분화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한 명의 외국인 과학자가 낸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996년에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세계지질과학총회(IGC)에서 백두산의 분화 가능성을 두고 또 한 번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결국 회의에 참석한 세계 화산학자들이 직접 가서 보고 판단하기로 하고 야외답사를 나섰죠. 백두산을 본 사람들이 전부 다 묻더군요. 백두산이 이렇게나 젊은데, 중국은 화산관측소가 있나요? 하고요.”
중국 정부는 즉시 긴급 자금으로 천지에 화산관측소를 세우고 1999년부터 본격적인 관측에 돌입했다. 그로부터 3년 뒤인 2002년 6월 말 백두산에서 심각한 신호가 나오기 시작했다. 천지 일대의 지표가 부풀어오르고 한 달에 수십~ 수백 번씩 화산성 지진이 발생했던 것이다. 지진은 2005년 말까지 계속됐다. 다행히 화산이 폭발하지는 않았지만 지속적인 관측이 분화 시점을 예측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였다. 중국은 ‘화산조기경보시스템’과 같은 화산 감시 시스템을 2020년까지 구축할 것을 목표로 지금도 백두산에서 일어나는 각종 현상을 꾸준히 관찰하고 있다.
윤 교수는 우리나라도 국가 차원의 화산 분화 예측 및 재해 대응 시스템을 구축해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30~40년 동안 휴면상태였던 화산이 활동을 재개할 땐 24~72시간 전에는 전조현상이 나타난다”며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화산 재해 예측도를 작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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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경주에 지진이 났을 때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에 유일하게 활성단층지도가 없다는 사실이 화제가 됐습니다. 하지만 없는 것이 활성단층 지도만은 아닙니다. 전문적인 화산 연구기관이 없는 나라도 OECD 국가 중에서 우리뿐일 겁니다.” 손영관 경상대 지질학과 교수는 기관과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현실을 강하게 비판했다.
실제로 국내 지질학자 중에서 정확히 ‘화산학(Volcanism)’을 전공한 학자는 거의 없다. 화산학으로 학위를 해도 취직할 데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뉴스에서 화산 관련 기사가 심심찮게 나오는데 비해 백두산 연구는 매우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며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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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한 가지 희망은 화산 연구가 중요하다는 인식이 점점 확산된다는 점이다. 시작은 2010년 봄 아이슬란드의 에이야퍄들라 이외퀴들 화산 폭발이었다. 당시 마그마가 빙하와 만나 폭발하면서 화산재가 대기 중에 다량 방출됐다. 이로 인해 일주일이 넘게 유럽의 하늘길이 막혔다. 사람들이 지구 반대편에서 터진 화산 때문에도 막대한 경제적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닫게 된 사건이었다. 손 교수는 바뀐 분위기를 반기면서도 ‘반짝 관심’에 그칠 것을 경계했다. 그는 “지질학 특성상 하나의 주제를 연구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며 “화산을 장기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이 제공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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