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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5월1일의 일기

가상시나리오

우리의 후손이 마실 물은 '이상 무'(異常無)인가? 상상으로 그려본 2000년대의 환경문제는 지금 우리가 무언가를 하지 않는다면 파국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시킨다.

"물이 왔나 나가봐." 남편은 아침부터 부은 목소리로 소리쳤다. "오늘도 물이 안왔어요. 수돗물이라도 그냥 먹어야겠어요." "수돗물을 어떻게 먹어. 다른 집에서는 주부가 미리미리 알아서 쌓아 놨다던데 당신은 집에서 뭘했어."

연주는 한마디 하려다가 아침이니 참자고 했다. 참을성 없는 남편은 옆집에 가서라도 얻어 오라고 난리를 쳤지만 연주는 못 들은 체하고 주스를 한 잔 따라줬다. "그나저나 생수인상가격이 빨리 결정되야 할텐데…."

남편은 머쓱한지 주스를 마시면서 신문을 집어 들었다. 신문에는 연일 생수가격인상에 대한 기사가 머리를 장식하고 있었다. 이래저래 그 틈바구니에서 죽어나는 건 소비자 밖에 없었다.

봄마다 고개드는 '생수가 인상'

2년 전 '수돗물을 식수로 사용하는 데 상당한 주의를 기울여 달라'는 보사부의 완곡한 지침이 내려지기 전에도 이미 수돗물을 식수로 사용하는 사람은 없었다. 10여년 전인 1989년부터 가시화되기 시작한 수돗물파동은 90년, 91년에 이어 해마다 연례행사처럼 계속됐다. 수돗물 파동이 일어날 때마다 신이 나는 건 생수업체와 정수기업체 뿐이었다. 처음 미군들과 외국인만을 상대로 시작된 생수판매가 수돗물파동이 계속될 때마다 부유층, 중산층으로 퍼져나갔다. 게다가 수입개방화 시대를 맞아 대기업에서 생수수입에 손을 대기 시작하자 생활용수는 수돗물로, 식수는 생수로 사용하는 국민이 점차 늘어 이젠 수돗물을 식수로 사용하는 사람은 거의 찾아 볼 수 없게 됐다. 아주 돈없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생수업체에서는 봄만되면 이 핑계 저 핑계를 들어 슬그머니 값을 올리려고 했다. 그러나 생수가격이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대단히 컸으므로 관계당국과 생수업체의 줄다리기가 연례행사처럼 벌어졌다. 올해도 15% 인상을 요구하는 생수업체와 한자리 물가를 지키겠다는 행정당국의 싸움으로 생수업체의 배달거부 소동이 일어났다. 처음엔 시민들도 분노했지만 이젠 그저 어서 싸움이 끝나 물을 제대로 먹고 싶은 마음밖에 없었다.

남편은 계속 목이 칼칼한지 큼큼거리더니 와이셔츠를 찾았다. 연주가 어제입던 와이셔츠를 슬그머니 밀어내놓자 남편은 눈부터 부라렸다. "어제가 5로 끝나는 날이잖아요. 수돗물을 제한급수하니 원 불편해서."

연주의 변명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남편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수돗물 10부제 급수를 시작한지가 언젠데 미리미리 물 받아 놓을 생각은 않고 도대체 뭘 하는 거야." "이 동넨 수압이 낮아서 물 받으려면 하루종일 지키고 앉았어야 되는데 당신이 밤에 좀 받구려." 연주도 남편의 계속되는 짜증에 화가 났다.

나날이 물이 오염되자 상수원으로 사용할 수 있는 물은 점차 줄어들었다. 작년부터는 지역에 관계없이 제한급수를 시작했는데 그나마 급수되는 날도 물은 나오다 안 나오다 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물을 덜 쓰는 밤에 지키고 앉아 물을 받아야했는데 그것도 보통 고역이 아니였다. 물을 많이 쓰는 여름이면 물때문에 한바탕씩 난리를 쳐야했지만, 유난히 가물었던 작년의 난리는 정말 잊을 수가 없었다.

서울에 상수원수를 공급하는 경기도 지방자치 단체에서 상수원수의 공급을 제한하겠다고 통보해왔다. 경기도에서 쓸 물도 모자란다는 것이었다. 서울시는 발칵 뒤집혔고 신문에서는 지방자치가 낳은 지역이기주의의 표본이라며 흥분을 해댔다. 그러나 상수원을 보존해야한다고 각종 개발산업을 제한해온 중앙정부에게 경기도도 할 말은 많았다. 경기도는 상수원수의 가격에 지역개발이 제한된 것에 대한 보상이 감안되지 않으면 앞으론 한 방울의 물도 서울에 공급할 수가 없다고 맞섰다. 결국 중앙정부의 협박과 비등한 여론에 떠밀려서 경기도가 급수를 시작했지만 이후 경기도와 서울시의 지역 감정은 매우 심각해졌다.중앙정부의 조처가 있고난 후, 팔당에 독약을 풀어버리겠다는 협박장이 '경기도를 사랑하는 도민'의 이름으로 신문에 공개적으로 실렸으나 경기도 지사의 눈물어린 호소로 겨우 위기를 넘긴 사건까지 발생했다.

연주는 빨래를 하기 위해 수도꼭지를 틀었다. 물보다 먼저 소독약 냄새가 역하게 풍겼다. 그러나 정작 나오는 물은 실오라기 같이 가늘게 떨어질 뿐이었다. 연주는 커다란 물통에 고무호스를 연결해 놓고 청소를 하려고 방으로 들어갔다. 딸아이의 방을 주섬주섬 치우는데 방바닥에는 학교에서 보낸 가정통신문이 떨어져 있었다.

'우리의 강을 살리기 위해서 합성세제와 물을 적게 쓰도록 합시다.' 연주는 왈칵 성이 나서 종이를 구겨버렸다.

십몇년전 부터 늘상 들어오던 말이었다. 수돗물에 대해 국민의 여론이 높아지면 정부에서는 하수의 양을 들어 가정하수가 주범이고 모든 국민은 죄인이라는 식으로 국민의 항의를 묵살했다. 정부가 수돗물 파동이 일어날 때마다 가장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수단은 국민 윽박지르기였다. 국민들은 그때 마다 합성세제 덜 쓰기 운동을 벌였지만 애당초 실효를 기대하기란 어려운 노릇이었다. 집에서 버려지는 오염물질을 줄이는 것도 한계가 있는 데다가 무공해 대체세제를 개발하는 등 근본적인 해결노력없이 국민의 도덕심에만 호소하는 건 너무 안이하고 피상적인 대책이었다.

연주는 갑자기 물줄기 소리가 힘차지는 것 같자 얼른 수돗가로 뛰어갔다. 오랫만에 시원스럽게 나오는 물이었다. 집에 준비해둔 물통이란 물통을 죄다 꺼내 물을 받기 시작했다. 오늘 물이 나오는 날이라지만 어떻게 될지 모르니 일단 받아두는게 수였다. 밀린 빨래와 청소를 하는 틈틈이 물을 받느라고 이리저리 뛰어다녔더니 기운이 쭉 빠지는 것 같았다. 다른 때 같으면 집안일을 끝내놓고 음악을 들으며 차를 한 잔 마실 법도 하지만 생수가 떨어졌으니 그도 틀린 일이었다. 연주는 백화점에나 나가보자고 생각했다. 비싸기는 하지만 생수업자들이 백화점에는 조금씩 물을 대어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수입개방화 시대를 맞아 대기업에서 생수수입에 손대기 시작하자 생활용수는 수돗물로 식수는 생수로 이용하는 국민이 점차 늘고 있다.


거품이 피어오르는 강

집에서 조금만 걸으면 백화점이 있었다. 백화점에 가기 위해 강변을 걷다보니 강에서는 작은 기포가 계속 올라오고 있었다. 강바닥이 썩었기 때문이다. 십여년전부터 봄만 되면 썩은 물에서는 기포가 피어 올랐다. 그때도 한강변에 살고 있던 연주네는 저녁마다 강변을 산책하곤 했다. 강가에 앉아서 강을 들여다 보다가 남편은 기포가 오르는 걸 보면 붕어가 입질한다고 좋아서 소리치곤 했다. 그러면 어린 딸 순이는 붕어를 들여다보겠다고 물위로 목을 쭉 늘이곤 했다. 그러나 그 때 강은 이미 썩고 있었다.

연주는 역한 냄새를 풍기고 있는 간장빛 강을 들여다보았다. 한강의 오염이 문제가 된건 이미 오래전부터의 일이었지만 그래도 딸아이가 어렸던 10년 전에는 낚시를 드리운 사람의 모습을 간간이 찾아 볼 수 있었다. 물론 기형어가 잡혔단 얘기도 심심치 않게 들렸지만 어쨌든 고기가 살고 있는 강이었다. 그때의 한강은.

3년 전 쯤이었던 것같다. '수중생물구출위원회'란 우스꽝스러운 이름의 동물보호단체가 한강변에서 시위를 했었다. 죽어가는 한강, 아니 이미 죽어버린 한강에서 그나마 살아남은 물고기를 대형수족관으로 옮겨야 된다는게 그들의 주장이었다. 어류학자들까지 덩달아 어족보호차원에서 남아있는 종을 보호하기 위해선 그들의 주장을 받아들여야 된다고 했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엔 처한 상황이 너무 절박했다. 전국 각지의 하천 호숫물은 공업용수로 쓰기에도 부적당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 와중에도 산업체에선 공업용수가 무엇보다 먼저 확보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이 수출을 해야 외화를 벌어들이고 그래야 외국의 생수도 사먹을 수 있다는게 기업들의 강변이었다. 개발우선 논리를 내세워 깨끗한 물을 더럽힌 그들이 이젠 그나마 남은 물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고 나선 셈이었다.

백화점에 도착하니 이미 물을 사러온 사람들로 백화점 밖에까지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연주도 얼른 줄을 섰다. 걸어올 때는 딴 생각을 하느라고 몰랐었는데 꽤 더운 날씨였다. 연주는 수건을 꺼내 땀을 닦았다.

"글쎄, 그동안의 가격보다 무려 두 배나 비싸다는군요. 그나마도 없어서 못 산대요. 이래저래 물장사만 떼돈을 번다니까." "외국에서 들여오는 수입원가가 올랐다는군요." "우리가 아쉬우니 그거라도 사먹어야지요."

연주는 앞에 선 아주머니들의 말을 들으니 힘이 더 빠지는 것 같았다. 얼른 지갑을 뒤져보니 겨우 두 통을 살 수 있는 돈이 만져졌다. 연초부터 물값이 들먹거리니까 다른 물가도 덩달아 뛰기 시작했고 한달 월급 받아서 열흘을 살기가 어려웠다. 연주는 다시 생수가격이 결정될 때까지 자신만이라도 수돗물을 먹어 볼 생각을 했다.

'까짓 하루이틀 먹는다고 죽기야 하겠어. 없는 사람만 죽어나는군.'

두 시간을 기다려서야 겨우 물을 파는 매장이 보였다. 연주는 다리가 아프기도 해서 쪼그리고 앉았다. 앉고 나니 다리도 다리지만 허리가 끊어질 듯이 아파왔다.

"아줌만 아까 두통 사셨잖아요?" 갑자기 앞쪽에서 남자의 악 쓰는 소리가 났다. "왜그래. 내 돈 갖고 내가 산다는데. 언제 돈 안준댔어." 민망했던지 여자는 더 큰 소리로 악을 썼다. "다른 사람들도 사야지요. 얌체같이….""흥, 그렇게 남 생각하는 사람들이 물값을 그따위로 올려."여자는 직원처럼 보이는 사람들에게 떠밀리면서 계속 악을 써댔다.

물이 꽤 무거웠던지 연주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쓰러지듯 누웠다. 그래도 들고 올 때는 흐뭇한 마음에 힘든 줄 몰랐는데 집에 들어서자 갑자기 맥이 빠졌다. 연주는 허리가 아파서 엉거주춤 일어나 물을 마시려고 부엌으로 나왔다. 들고 올 때는 흐뭇했는데 눈 앞에 놓고보니 저걸로 며칠을 버틸 수 있으려나 싶었다. 연주는 수돗물을 틀어 컵에 받았다. 역한 냄새가 나 숨도 안쉬고 한 번에 들이켰다. 냄새로 봐선 역할 것 같았는데 소독약 냄새가 남은 것을 빼곤 그래도 꽤 시원했다.

'그럼 그렇지. 내가 학교 다닐 땐 체육시간이 끝나면 수도꼭지에 입을 대고 배가 터지도록 마셔도 아무 일 없었는데…' 한컵을 더 마시고 나니 속이 다 시원해지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힘이 들어 한숨 쉬고 밥을 해야지 하곤 누웠는데 깜빡 잠이 들었나보다.

딸 아이가 신이 나서 밥을 하는 소리에 연주는 눈을 떴다. 연주가 힘겹게 부엌으로 나가다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너 미쳤니." 순이는 생수로 쌀을 씻고 설거지까지 하는 중이었다. 연주는 설거지그릇을 빼앗듯이 잡아채고는 딸애의 등을 힘껏 때렸다. 순이는 놀랐는지 멍하니 연주를 쳐다 보더니 갑자기 눈물이 그렁해져서 자기방으로 뛰어 갔다. 딸 아이의 방문이 쾅 하고 닫히는 소리에 연주는 정신이 났다. 생수통의 병 마개를 닫으면서 자기가 왜 그랬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딸애한테 미안했다. 며칠 물에 신경을 곤두세웠던 탓이었을까. 연주는 수도꼭지를 틀어 딸아이가 하던 설거지를 마저 하고 생수를 부어 그릇들을 한 번 헹구었다.

쌀을 안쳐놓고 순이 방을 쳐다보았다. 순이는 무얼하는지 방은 조용하다. 아까 심하게 군 것이 가슴을 아프게 했다. 몇번 망설이다가 사과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딸애의 방으로 발을 돌리려는데 아까 부터 살살 아파오던 배가 더욱 심하게 쑤셔왔다. 방향을 돌려 황급히 화장실로 뛰어가는 연주의 눈에선 까닭 모를 눈물이 흘렀다.
 

식수 생수 또는 수돗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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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이수경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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