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이익’ 컨테이너 철문을 열자 돌이 무더기로 쌓인 선반이 눈에 들어왔다. 뽀얀 돌먼지를 뒤집어쓴 컨테이너 내부는작업 중인 채석장을 연상시켰다. 11월 2일 오후 1시, 기자는 대전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이하 지질연)에서 열린 ‘백두산 샘플파티’에 참석했다. 국내 연구진 14명이 7월 30일부터 8월 12일까지 세 번에 걸쳐 백두산에서 채취한 암석 샘플 약 300kg을 한 곳에서 볼 수 있는 자리였다. 화려한 조명과 음식이 준비된 ‘파티’는 아니었지만, 흥분된 분위기만큼은 여느 파티 못지않게 후끈했다. 그 현장을 과학동아가 단독으로 취재했다.
화산 폭발 비밀 담은 ‘블랙박스’
“자, 박스에 쓰인 이름이랑 채취한 암석을 잘 확인하고 필요한 분량을 말씀해 주세요!” 백두산 탐사를 총괄했던 이윤수 지질연 국토지질연구본부 책임연구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연구자들이 암석 주변에 모여들었다. 한여름 땀 흘려 채집한 암석을 손에 얻기까지 자그마치 세 달이 걸렸다(중국과학원과 중국의 세관을 거쳐오느라 긴 시간이 걸렸다). 백두산 샘플은 색깔이 흰 것과 검은 것, 크기가 주먹만 한 것부터 큰 것까지 다양했다. 하지만 문외한인 기자의 눈에는 그냥 돌일 뿐. 별 생각 없이 암석 하나를 주워들었다. 그런데….
너무 가벼웠다! 사람 머리만 한 돌을 한 손으로 거뜬히 들었다. 이 책임연구원은 기자에게 돌덩어리를 수조 속에 넣어보라고 했다. 설마 했지만 속는 셈치고 그의 말에 따랐다. 잠시 뒤 기적이 일어났다. 돌이 물 위에 떴다(아래 사진). “서기 939년이나 946년 천지 아래에 있던 마그마가 폭발하는 순간에 만들어진 부석입니다. 기공 함량이 60~70%나 되죠.” 옆에 서있던 김기범 경상대 기초과학연구원 학술연구교수는 이런 부석이 폭발 당시 마그마가 어떤 성질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가장 잘 기록하고 있는 암석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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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지하 수십 km 지점에 있는 현무암질 마그마는 상승하면서 서서히 유문암질 마그마로 변한다. 이 과정에서 철과 마그네슘 성분은 사라지고 마그마 내부에 수증기, 이산화탄소와 같은 휘발성 가스들이 점점 축적된다. 하지만 유문암질 마그마는 점성이 현무암질 마그마보다 100만 배나 크기 때문에 가스가 잘 빠져나오지 못한다. 그 상태로 버티고 버티다 ‘펑’ 터진 팝콘 같은 암석이 바로 부석이다. 자세히 보니 부석 표면에 끈적끈적한 솜사탕처럼 얇고 길게 늘어진 조직이 보였다. 높은 가스압에 견디는 동안 만들어진 흔적이었다. 약 1000년 전 백두산이 화산폭발지수 7의 대폭발을 했을 땐 이런 부석이 천지에서 수백 km 떨어진 지점까지 날아갔다. 부석이 떨어진 범위를 보면 과거 화산의 분출 이력을 알 수 있다.
3년째 백두산을 탐사하고 있는 손영관 경상대 지구환경과학과 교수팀은 이런 부석의 기공 조직을 분석했다. 연구팀은 병원에서 사용하는 것보다 에너지가 수천 배 강한 공업용 컴퓨터단층촬영장비(CT)로 부석의 단면 구조를 들여다봤다. 그 결과, 부석에 난 기공에 두 가지 종류가 있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아냈다. 처음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동그란 기공과, 추후에 분화 단계에서 변형된 것으로 추정되는 타원형이나 튜브 모양의 기공이 동시에 발견된 것이다. 손 교수는 “화산 심부에서 마그마가 올라오며 기공이 형성될 때 적어도 두 단계에 걸쳐 기공이 만들어졌다는 뜻”이라며 “이런 작용이 백두산의 폭발력을 키웠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기공이 백두산의 강한 폭발력을 근본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더 궁금한 것이 많았지만 손 교수는 곧 논문으로 발표하겠다며 말을 아꼈다.
기자는 이날 운이 좋게도 백두산 아래 지각을 30km 이상 시추해야 만날 수 있는 맨틀도 눈으로 직접 봤다. 마그마가 지하 깊은 곳 맨틀에서 터지면서 주변의 암석들을 덩어리째 끌고 올라온 ‘포획암’ 덕분이었다. 보통 고온의 마그마는 주변 맨틀과 만나면 서로 섞여 새로운 암석을 만든다. 그러나 백두산에서 발견된 포획암은 달랐다. 검은색 현무암질 암석 속에 옥색의 감람암을 온전히 간직하고 있었다. 감람암은 맨틀의 주된 구성 물질이다. 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하며 기초과학을 배웠지만 맨틀이 옅은 초록색을 띤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백두산의 심부를 날것으로 보여주는 이런 암석들은 백두산의 마그마가 어떤 성분으로 구성돼 어떻게 진화했는지, 심부 맨틀이 주변 암석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면서 지표까지 올라오는지를 알려준다. 실제로 샘플 파티장 한켠에는 백두산의 이웃 화산인 중국 헤이룽장성의 우다롄츠 화산에서 채취한 현무암들이 쌓여 있었다. 우다롄츠 화산은 200년 전에 분화한, 백두산보다 더 젊은 화산이다. 샘플 파티에 참석한 최성희 충남대 지질환경과학과 교수는 “동중국에서 가장 독특한 성질을 가진 맨틀이 녹아 분출된 화산암이다. 백두산 마그마를 생성한 맨틀과도 유사성이 있을 것”이라며 암석이 든 상자를 귀한 자식처럼 품에 안았다.
한편 이날 샘플 파티에선 실리카라고도 불리는 이산화규소(SiO2)의 산화물도 주목을 받았다. 실리카는 마그마 주변에서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초임계유체가 암석 틈새를 뚫고 올라온 흔적이다. 초임계유체는 백두산 화산활동을 설명하는 열쇠다. 초임계유체가 암반을 뚫고 길을 내면 그 길을 따라 마그마가 올라온다.
연구팀은 수십 곳의 노두에서 채취한 43암석 시료를 이용해 백두산 화산 분화의 비밀을 풀기 위한 다양한 연구를 계획했다. 채취한 암석시료 중 3분의 2는 연구용으로 쓰고, 나머지 3분의 1은 향후 정밀 연구를 위해 보관한다. 연구용 시료들은 채취한 노두마다 박편을 만들기로 의견이 모아졌다. 박편은 암석을 두께 30μm(100만 분의 1m) 정도로 얇게 포 뜨는 작업으로, 얇은 암석을 기포 없이 유리에 붙이기 위해서는 노하우가 필요하다고 했다(문득 스마트폰에 액정보호 필름을 붙일 때의 노력이 떠올랐다!).
이윤수 책임연구원은 “백두산 암석 샘플은 백두산의 과거 화산활동 기록이 담긴 블랙박스와도 같다”며 “다른 연구자들도 나중에 백두산을 연구할 수 있도록 샘플을 공유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샘플 파티에 모인 연구자들은 구글 지도에 암석을 채집한 위치와 분석한 암석 정보를 등록하는 등 구체적인 방법을 논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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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질탐사는 종종 막노동에 비유된다. 현장에 직접 가야만 하고, 온몸으로 힘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백두산을 중심으로 하는 동북아시아 땅 속의 거대한 마그마 형성과정과 진화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백두산 천지 주변은 물론, 중국 북동단에 있는 헤이룽장성 우다롄츠시까지 샅샅이 뒤졌다. 이 지역은 탄루 단층이라는 큰 단층이 지나는 거대한 용암분지다. 단열대가 많이 발달해 있고 100개가 넘는 분화구가 있다. 하지만 일대가 워낙 넓고 용암으로 뒤덮여 있어 암석에 눈이 밝은 지질학자들도 탐사하기가 쉽지 않았다. “가다가 재밌는 게 보이면 무조건 차를 세웠습니다. 논문을 통해 이미 알고 있었던 곳도 실제로 가서 지질구조를 살펴보고 암석 노두도 만져봐야 창의적인 연구가 나올 수 있거든요.” 이 책임연구원은 백두산과 인접한 화산들이 백두산의 형제·자매와도 같다고 말했다. 화산진화가 진행된 수준이 제각각 달라 이것을 통해 백두산이 과거에 어떤 모습이었는지, 앞으로 어떻게 진화할 것인지를 추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탐사 장소가 정해진 뒤 암석을 채취하는 일도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다. 때론 절벽에 매달려 암석을 채취해야 할 때도 있었다. 그래도 경험과 지식이 풍부한, 숙련된 연구자에겐 비교적 수월하지 않을까. 수십 년 경력의 이 책임연구원은 고개를 저었다. “발 딛기도 어려운 경사면에서 암석과 장비를 전부 들고 내려오는 게 쉽지가 않거든요. 보통은 샘플이랑 장비랑 묶어서 아래로 던져놓고 내려오는데 위에서 굴린 망치가 잘못 튀어 제 무릎에….” 그는 아파도 절대 잊지 말아야할 것은 절벽에서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상에 그냥 얻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다음 목표는 마그마 시추
백두산 탐사의 목표는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과거에 백두산이 어떤 분출을 일으켰는지 분출 이력을 알아내는 것. 이를 통해 장기적으로 미래의 화산 분화를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10년 뒤 한반도의 기상을 예측하기 위해 100~200년 동안의 기상자료가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다.
두 번째는 백두산 지하의 마그마까지 직접 뚫고 들어가서 심부 지질구조를 정교하게 파악하는 것이다. 마그마의 거동, 마그마의 에너지, 마그마가 흐르는 지각구조를 제대로 이해해야 화산 분화도 근본적으로 예측할 수 있다. 실제로 연구진은 지하 7km 지점의 마그마를 직접 시추할 수 있도록 안전한 시추 지점을 파악하는 기초탐사를 내년까지 계획했다.
그러나 난관이 많다. 시추 지점을 찾기 위해서는 탄성파 탐사(지표 부근에 지진파를 발생시켜 굴절 또는 반사된 신호로 지질구조를 알아내는 방법)나 전기비저항 탐사(땅에 전류를 흘려 발생하는 전위차를 측정, 특이한 전기적 물성을 보이는 지질구조를 알아내는 방법) 등을 통해 땅속 마그마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하는데 중국 당국의 거부로 올해도 조사를 하지 못했다. 설상가상 지질연의 백두산 연구 예산 지원도 내년부터 중단된다.
손영관 교수는 “지질조사는 자국 영토에 대한 주권을 행사한다는 측면이 강하기 때문에, 중국은 남한이 백두산을 연구하는 데에 거부감이 크다”며 “백두산 연구를 제대로 하려면 중국이 아니라 북한과 공동연구를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백두산의 화산 분출물은 대부분 동쪽, 즉 북한 쪽에 운반돼 쌓여있다. 지질학적으로 연구할 가치가 높은 암석은 중국보다 북한 쪽에 더 많은 셈이다(Part 4. 인터뷰 참조).
이와 같은 여러 가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백두산 시추 계획은 현재 진행형이다. 이윤수 책임연구원은 중국, 영국, 일본, 미국의 대표 화산학자들과 공동으로 국제대륙과학시추프로그램(ICDP)에 올해 백두산 시추 제안서를 냈다. 프로젝트 이름은 ‘엄마(Ultra Deep Monitoring for Magma Activity, UMMA)’다. 만약 성공하면 분화할 가능성이 높은 대형 화산의 땅 속 마그마가 있는 깊이까지 구멍을 뚫은 최초의 사례가 된다.
다행히 외국의 저명한 화산학자들도 백두산 연구에 관심이 많다. 백두산의 학술적 특수성 때문이다. 화산은 세 가지 종류가 있는데 일본이나 인도네시아, 칠레처럼 판의 경계 수렴대(모이는 곳)에서 생기는 화산이 있고, 아이슬란드, 동아프리카 열곡대처럼 판의 발산경계(벌어지는 곳)에서 생기는 화산이 있다. 또 하와이나 옐로스톤과 같이 열점에서 생기는 화산이 있다. 백두산은 이 세 가지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이 책임연구원은 “전세계 좋은 연구자들과 함께 모여 백두산의 마그마 움직임을 실시간 탐지하고 연구하는 과정을 통해 국내에도 세계적인 화산 전문가가 양성될 것”이라며 “남북이 협력해서 국제백두산과학기지를 세우면 중국의 장백산이 아닌 한국의 백두산이라는 이름을 널리 알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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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화산이 언제, 어떤 규모로 폭발할지 알기 위해서는 마그마 가까이 직접 뚫고 들어가 거동 변화를 알아내야 한다. 본격적인 탐사에 앞서 필요한 장비를 살펴봤다.
백두산 시추 탐사의 첫 단계는 백두산 지하 마그마 방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지하 10~40km 구간에 걸쳐 마그마 방이 여러 개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었지만 크기나 치우친 방향이 정확하지 않았다. 땅속은 인체나 사물처럼 360° 각도에서 관측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보완하기 위해 탄성파 탐사, 자기지전류(MT) 탐사, 전기비저항 탐사(위 사진), 중자력탐사 등 다양한 비파괴 탐사 장비가 적용된다.
그 중에서도 전기비저항 탐사는 현무암질 마그마를 포착하는 데 효과적이다. 땅에 전기를 흘려 전기가 특히 잘 흐르는 부분을 찾아내는데, 마그마 방이 존재하거나 지진이 많은 파쇄대 단층에서 보통 전기전도도가 높게 나타난다. 이것을 여러 번 반복 계측·영상화하면 백두산 하부 수십 km에 걸쳐 마그마가 개미굴처럼 퍼져 있는 모습을 지도로 제작할 수 있다(Part 2. 참조).
국내에서는 정현기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자원탐사개발연구센터 책임연구원팀이 지하 16km까지 볼 수 있는 전기비저항 측정 장비를 개발해 탐사 준비에 앞장서고 있다. 정 책임연구원은 “한국과 북한, 중국의 공동연구가 가능해지면 북한에서 중국까지 긴 측선을 이어서 그 하부를 동서방향으로 측정할 수 있다”며 “지금까지 얻지 못한 정밀한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한편 백두산 하부구조가 파악되면 그 다음 순서는 마그마 가까이까지 시추공을 내리는 것이다. 여기에는 ‘디렉셔널 드릴링(Directional drilling)’ 장비가 사용된다. 디렉셔널 드릴링은 시추 중에 시추공의 방향을 자유롭게 바꿀 수 있는 기술이다. 과거에는 시추공이 닿지 못했던 복잡한 마그마 방 사이를 찾아들어갈 수 있는 셈이다. 그밖에 마그마가 발산하는 열에 견딜 수 있는 센서도 개발해야 한다. 특수 제작한 전자소자도 온도가 125℃가 넘는 환경에서는 정상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국내 연구진은 1000℃가 넘는 화염불길을 견디는 에어로젤을 단열재로 써서 센서 주변을 감싸는 방법도 고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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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백두산 폭발 대해부
Part 1. 백두산 암석 ‘샘플파티’에 가다
Part 2. 백두산 최신 연구 업데이트
Part 3. 20억t 천지 물이 마그마와 만나면?
Part 4. “나는 백두산 화산학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