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들어 과학소설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 그동안 서구와 일본 등 세계 각국에서 과학소설의 열풍이 불어와도 잠잠하기만 했던 우리나라 독서계에도 점차 과학소설 출판의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는 듯하다.
물론 지금 일고 있는 관심은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어떤 사람은 어린 시절 '타임 머신, 이나 '해저 2만리'를 읽고 느꼈던 감동을 잊지 못해서, 어떤 사람은 추리소설을 읽다 지쳐 과학적 요소가 첨가된 새로운 추리소설을 찾아서, 또 어떤 사람은 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줄 수 있는 돌파구로서 과학소설을 복원시키려 한다. 그런만큼 과학소설에 대한 명칭도 SF, 공상과학소설, SF문학, 과학소설 등등 가지각색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과학소설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왜 공상소설이나 공상과학소설이 아닌 과학소설이어야 하는가. 과학소설의 범주는 어디까지인가. 질문은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아서 클라크와 함께 정통 과학소설의 양대 산맥을 이룬다해도 과언이 아닐 아이작 아시모프는 "과학소설은 일반 과학이나 다른 종류의 문학에서 맛볼 수 없는 특유한 만족감을 준다. 여기에서는 미래의 기술 수준을 조망하면서 정확하게 그 핵심을 예언해내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것은 물론 주로 미래예측이라는 측면을 강조한 것이지만 과학소설이 다른 문학 장르에서는 느낄 수 없는 독특한 흥미를 주는 면, 그리고 과학과 문학 사이에 위치한 과학소설의 특징에 대해서 정확하게 지적한 말이라 할 수 있다. '과학소설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해답을 얻기 위한 가장 올바른 접근은 과학소설이 걸어왔던 발자취를 착실히 되짚어보는 방법일 것이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과학소설이 싸구려 공상소설이나 괴기소설 환상소설과 분명한 경계를 그으면서 정통 과학소설의 전통을 확립해온 과정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과학소설이 하나의 장르로서 토대를 형성하기 시작한 1900년 이후의 본격적인 역사를 이끌어온 핵심 인물들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1] SF의 창시자 휴고 건즈백과 캠벨
휴고 건즈백은 최초의 과학소설 전문잡지 '어메이징 스토리즈'를 창간했고 '랄프'라는 소설을 통해 현대 과학문명을 예고했다. 27세에 '어스타운딩'지 편집장이 된 캠벨은 여러 신인들이 쏟아놓은 아이디어들을 녹여 틀을 갖춘 소설을 양산해냈다.
오늘날 '과학소설'(SF, Science Fiction)로 잘 알려져 있는 문학상의 한 장르를 명확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창설하고 동시에 그것을 상업적으로도 성공시켰던 최초의 인물은 미국의 휴고 건즈백(Hugo Gernsback, 1884-1969)이었다.
그는 8세가 되던 해 여름 생일선물로 받은 전동식 초인종에 흥미를 갖게 된 이후 급속히 전기공학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후 줄 베르느와 H.G. 웰즈와 같은 과학소설 선구자들의 작품을 읽기 시작했다.
성인이 된 건즈백은 독일의 명문 빈겐 공과대학에서 전기공학과 전신기술을 배운다. 여기에서 새로운 적층 건전지의 아이디어를 얻은 그는 이 사업을 계속하기 위해 20세에 미국으로 건너간다. 그러나 여러차례의 실패를 맛본 후 그는 기술자로서의 꿈을 단념하고 1905년에 라디오 판매회사를 설립했다.
현대 과학문명 예고한 「랄프」
1908년 4월에 최초의 라디오 전문지 '모던 일렉트로닉스'(Modern Electronics)를 창간한 그는 어린 시절부터의 꿈을 이 잡지에서 실현시키기 시작했다. 그는 1911년 4월부터 자신의 잡지에 자작 장편 과학소설 '랄프 124C 41十'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후에 과학소설이란 문학장르를 탄생시키는 효시가 되었다.
이 소설은 서기 2660년의 세계를 무대로 천재과학자 랄프 124 C 41十와 그의 애인이 벌이는 러브 로맨스로 그 자체로는 훌륭한 소설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주목할 것은 이 작품에 묘사되어 있는 미래의 과학문명에 대한 탁월한 전망이다. 건즈백은 처음부터 이 소설의 목적을 '소설의 형태를 빌려 독자들에게 과학의 신비로움을 알려주는 것', 다시 말하자면 '과학적 예언에 철저한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작품 속에는 쌍방향TV 형광조명 광섬유 자기녹음기(0.25인치 테이프 레코더가 등장한다) 마이크로필름 스테인리스강 전자신문 태양전지 자동판매기와 야구의 야간조명장치에서 행성간 비행, 반중력, 사체의 냉동보존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사용하고 있거나 혹은 실현을 목표로 연구중인 무수한 기술들이 한꺼번에 묘사되고 있다. 특히 이 기술들이 오늘날의 그것과 거의 비슷할 정도로 정확한 원리도까지 첨부되어 묘사되고 있는 점은 감탄할만 하다. '랄프 124 C 41十'가 독자들에게 대단한 반향을 불러 일으키자 그는 점점 더 과학소설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그는 모던 일렉트로닉스지가 다른 회사에 매각된 이 후에도 '과학과 발명'(Science & Invention)이라는 잡지를 창간해 정기적으로 과학소설를 게재하고 신인 작가를 발굴했다. 건즈백은 당시까지 특정한 장르명을 갖지 못한 이러한 소설들에 최초로 '사이언티 픽션'(Scienti Fiction)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계속되는 독자들의 성원에 고무된 건즈백은 1924년에 과학소설 전문잡지를 창간하기로 결심했다.
과학소설의 역사를 결정지은 1926년 4월 드디어 건즈백이 편집한 세계 최초의 과학소설전문 상업지 '어메이징 스토리즈'(Amazing Stories)가 창간되었던 것이다.
미래 예측이 SF의 척도
그렇다면 당시 건즈백이 생각했던 사이언티 픽션이란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그는 어메이징 스토리즈 창간호의 권두언에서 "내가 말하는 사이언티 픽션은 줄베르느, 웰즈 그리고 에드거 앨런 포우 등이 저술했던 소설, 즉 매력적인 로맨스가 과학적 사실 및 예언적 비전과 혼연일체가 된 소설을 말한다"라고 밝혔다. 물론 '미래 예측'이 과학소설의 가치를 잴 수 있는 모든 척도는 아닐지라도 건즈백은 과학과 소설의 불가분성을 토대로 새로운 개념에 기초한 사이언티 픽션이라는 문학 장르를 생각했던 것이다.
작품의 플롯이 엄밀한 과학적 사상과 과학적 절차를 밟은 논리에 의해 구성될 때 그 세계는 단순한 공상이나 환상과는 명확한 차이를 지니고, 과학소설은 독자에게 세계 인식의 새로운 관점을 확립해 준다는 것이다. 그가 당시 누구보다도 과학이 문명에 미치는 크기를 중요하게 인식했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어메이징지는 순조롭게 호를 거듭했다. 제1권 3호에서는 '사이언티 픽션의 법칙'이라는 제목으로 '사이언티 픽션은 놀랄만한 과학교육의 효과를 가져다 주며 그 어떤 수단보다도 강렬하게 우리들의 상상력을 불태우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4호에서는 '픽션 대 현실'이라는 제목으로'사이언티 픽션의 사명은 오늘날의 공상을 내일의 현실로 연결하는 다리'라고 설명했다. 5호에서는 사이언티 픽션 중 일견 불가능해 보이는 가정과 플롯이 실제로 어떻게 과학적으로 사고될 수 있는지를 역설했다. 과학소설 역사상 이만큼 과학소설의 이상향을 명쾌하게 내걸고 그것을 실천하려 한 사람은 전무후무 하다고 할 수 있다.
이후 여러가지 사정으로 어메이징지가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간 후 다시 창간한 '사이언스 원더 스토리스'(Science Wonder Stories)의 1929년 6월호에서 건즈백은 사이언티 픽션이라는 말 대신에 '사이언스 픽션'이라는 장르명을 최초로 사용했다.
건즈백을 통해 정착하게 된 과학소설의 장르는 과학 또는 과학의 발전과 어떤 관계를 갖고 있는가.
흔히 과학소설을 과대 평가해서 본질적으로 허구인 사이언스 픽션이 과학 발전을 선도한다는 지나친 도식을 제기하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과학 자체도 딱딱한 이론 만이 아니라 상상력과 창조성의 산물이기도 하다는 점에 일면 타당성을 지니지만 과대 해석의 위험이 있다.
반면 과학소설이 과학에서 파생된 2차적인 결과이며 과학을 추종한 결과 거기에서 상상력의 근원을 뽑아내는 것일 뿐이라는 사고방식도 또한 지나치게 일면적이라 할 수 있다.
과학소설 장르가 확립된 이래 과학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면 첨단과학의 영역과 정통 과학소설의 상상력의 영역은 때로는 양자 중 어느 것이 선도하는가를 가름할 수 없을 정도로 밀접히 상호작용하며 또한 저변을 공유하면서 발전해 나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과학소설 그 자체가 픽션임은 의심할 바 없는 사실이지만, 그것이 다른 문학과는 달리 과학소설인 이상,전제로 도입된 현실의 과학이론과 구체적인 수치에서 오류가 있어서는 안되며 또한 그것을 토대로 전개되는 가공의 이론체계도 과학적 상상력의 토대가 되기 위해서는 역시 정통 과학적 방식을 거쳐서 연역되어야만 한다. 이 작업은 결국 현실 과학의 축적물에서 추출한 가설적 원리를 토대로 전개되는 것이다.
「어스타운딩」지와 캠벨
건즈백 일색의 과학소설계에 오락을 중심으로한 새로운 과학소설 잡지 '어스타운딩 스토리즈'(Astounding Stories)가 창간되었다. 1930년 1월 캠벨(J.W. Campbell, 1910-1971)이 어스타운딩지 편집장이 되었을때 약관 27세의 나이였다. 그러나 이미 그는 당시 최대의 인기작가 대열에 올라 있었다.
캠벨이 독자들 사이에 부동의 인기를 확보한 것은 같은해 6월호에 실린 시리즈 제1작 '공중 해적 주식회사'였다. 이 작품에서 놀라운 것은 생생한 이미지로 가득 차있는 미래 사회에 대한 정경이다. 작품 속에는 성층권 상층을 시속 5백50 마일로 순항하는 비행기에서 보는 하늘의 광대함, 눈아래 저멀리 펼쳐진 뉴욕의 모습 그리고 지역 사회를 잇는 항공 시스템에 대한 치밀한 묘사 등 캠벨의 예리한 감각이 돋보였다.
캠벨의 상상력 기반은 하나의 요소를 미래 사회 속에 투입시켜 그것이 초래하는 모든 파급효과를 세밀히 상정하면서 상상속의 미래 사회 구조를 짜맞추는 기법에 있다. 따라서 건즈백에게는 과학기술을 정확하게 그리는 것이 제일의 목적이었지만, 캠벨은 이러한 요소를 기반으로 자기 나름대로 가상의 세계를 구성하고 때로는 그 부정적 결과까지도 작품에 그대로 반영시킴으로써 과학소설을 한단계 질적으로 발전시켰던 것이다.
이처럼 캠벨은 과학의 양면성을 동시에 묘사하는 근대 과학소설의 기본 조건을 확립하였고 이후 인류와 기술문명이 추구한 결과를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거시적 테마의 작품을 전개시킬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최초의 작가다. 예컨대 1932년 '최종 진화', 1934년 '어스름한 저녁', 1935년 '밤' 등 일련의 단편에서 캠벨은 장미빛이 되지 못한 미래 문명의 종말을 묘사하고 있다.
우주활극류의 공상소설
건즈백이 과학소설 잡지의 편집에서 손을 뗀 후 스페이스 오페라(space opera, 우주활극)지가 범람하기 시작했다. 즉 1938~39년에 걸쳐 새롭게 스페이스 오페라와 환상류의 싸구려 잡지들이 우후죽순처럼 10여 종류나 미국 출판계에 등장했다.
이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미국 독자들의 마을을 사로 잡은 것은 '렌즈맨'(Lensman)시리즈의 개막편 '은하 순찰대'(1950년, Galactic Patrol)였다. 이 작품에는 지금까지 독자들을 사로잡았던 모든 종류의 호기심과 흥미거리류의 요소들이 한꺼번에 집약되어 있다. 당시 미국 과학소설계를 범람했던 이러한 우주 모험활극소설들은 '호스 오페라'(horse opera, 서부극)라 불렸다. 이것은 단지 서부극의 무대를 우주로 바꾼 것이라는 다분히 경멸적인 호칭이다.
1980년대 초기 때아닌 붐을 일으켰던 영화 '스타워즈'(Star Wars)도 본래 이 렌즈맨 시리즈를 영화로 기획한 데서 시작된 것이라고 한다.
이처럼 우주활극들이 난무하고 있던 때에 진정한 정통 과학소설의 맥을 유지시켰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차원으로 비약시킨 캠벨의 업적은 매우 찬란한 것이었다. 캠벨이 과학소설계에 끼친 공적은 한마디로 말해 '과학과 문학을 얼마나 이상적인 상태로 결합하는가'라는 과학소설의 고유하고도 가장 본질적인 과제에 대한 정통적인 방식을 확립하고 정착시켰다는 데 있다.
캠벨은 자연과학과 공학적 관점을 투철하게 견지해서 과학이라는 요소를 과학소설의 피와 살이 될 정도로 작품의 논리기반에 융합시킴으로써 과학소설에서 리얼리즘의 의미를 근본적으로 변혁하였다. 캠벨의 방법론은 과학을 과학소설의 목적에서 과학소설 세계의 율법으로 승격시켰다.
이후 어스타운딩지에서는 그후 과학소설계에서 누가 뭐라해도 하나의 기준점이 될 과학소설의 거장들이 속속 배출되었다.
SF작가 양성소「캠벨학교」
캠벨의 지도하에 발간된 어스타운딩지의 기적같은 활약으로 50년대에는 과학소설사상 초유의 전성시대를 구가했다. 이때 그의 휘하에 모여 그와 함께 황금시대를 구축한 작가들의 모임을 '캠벨 학교'라고 불렀다. 원래부터 그들은 캠벨의 편집 방향에 공감했고, 20개가 넘을 정도로 스페이스 오페라잡지가 범람하는 가운데서도 스스로 자청해서 캠벨의 잡지에 원고를 가져왔던 신인들이었다. 따라서 그들의 과학적 토대는 당시 수준을 뛰어넘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캠벨은 그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이 신인들에게 더욱 철저한 단련을 요구하였다. 그들이 쏟아놓은 아이디어는 캠벨에 의해 분석, 검토되고 그 가능성과 결함에서부터 소설로 꾸밀 경우 문체나 테크닉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검토된 후 겨우 소설화되어 게재되었다. 이같이 작가와 편집자의 가장 바람직한 상호작용에 힘입어 캠벨 문하의 작가중에서도 그 정신을 가장 잘 발전시켰다고 지목되는 작가가 바로 아이작 아시모프였다.
[2] 황금기의 두거장 아시모프와 아서 클라크
50년대에는 SF사상 초유의 전성시대를 구가했다. 40여년에 걸쳐 대작 「파운데이션」을 완성한 아이작 아시모프와 40년대에 이미 아폴로계획을 예언했던 아서 클라크는 SF계의 양대 산맥이다.
아이작 아시모프는 1920년 1월 현재 소련연방 백러시아 공화국의 작은 마을인 페트로비치에서 유대인 곡물상인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922년말 아시모프 일가는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1923년 2월 뉴욕에 정착하였다.
1929년 어느 봄날 당시 국민학생이었던 아시모프는 부친이 경영하던 사탕가게를 보며 옆가게의 뉴스진열대를 살펴보다가 어메이징지와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다. 신동으로 이름을 날렸던 아시모프는 중학교와 고등학교 과정을 월반을 거듭하며 1935년에 의사가 되려고 컬럼비아대학에 입학했다. 이때부터 그의 과학소설에 대한 정열은 점점 본격화되기 시작하여 1935년 여름에는 처음으로 어스타운딩지에 투고하기에 이른다.
17세의 아시모프는 '우주비밀의 문을 열다'란 작품을 가지고 캠벨에게 찾아갔다. 소설은 채택되지 않았지만 이 만남은 아시모프에게는 비할 바 없는 자극이 되었다. 캠벨은 이 소설의 결점을 하나 하나 지적하고 상업지에 소설을 쓸 때의 요령을 가르쳐 주었다. 최초의 6편은 하나도 채택되지 않았지만 이것들과 함께 집필하여 어메이징지에 투고한 단편 '베스타에서의 표류'(1939년, Marooned of Vesta)가 1938년 10월에 채택되어 아시모프는 겨우 프로 작가의 세계로 한 발을 내딛게 되었다.
로봇공학의 3원칙
1939년 5월 드디어 그의 이름이 과학소설사에서 영원히 남을 작품이 집필된다. '로비'라는 이름의 이 작품은 어린이 보호용 로봇 로비와 그 주인인 소녀 사이에 싹트는 심적 교류를 묘사한 아주 짧은 작품이었다. 이 원고를 접수한 캠벨은 그것을 휴지통에 처박아 버렸다. 그 이유는 이 작품이 당시 비슷한 주제를 가진 다른 작품과 비슷해 독창성이 결여됐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작품에는 후에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게되는 아이디어의 씨앗이 담겨 있었다. 작품속에서 등장인물의 한 사람이 "로봇 법칙 제1조에 따르면 로봇은 인간을 다치게할 수 없다"는 발언을 한 점이다. 이때부터 로봇은 아시모프에게 있어서 뗄레야 뗄 수 없는 모티브(작품의 중심사상)가 되었다. 이를 발전시켜 아시모프는 '로봇은 인간을 다치게하는 명령을 제외하고는 인간의 명령에 반드시 복종해야 한다(제2조). 로봇은 1, 2조에 반하지 않는한 스스로를 지킬 수 있어야 한다(제3조)'라는 로봇공학의 3원칙을 만들어 낸다.
이는 오늘날 과학소설의 장르를 넘어 로봇공학 개론서에 반드시 등장한다. 이후 아시모프는 '강철도시'(1954년, The caves of steel), '로봇 시티'(Robot city), '나는 로봇'(1950년, I Robot), '완전한 로봇'(1982년, The complete Robot) 등 로봇이 등장하는 수많은 작품을 쓰게 되었다. 이러한 로봇 시리즈는. 후에 '파운데이션'(Foundation) 시리즈와 함께 아시모프 과학소설의 양대 산맥을 이룬다.
40여년간 쓰여진 대작 「파운데이션」
그러나 무엇보다 과학소설의 황금기를 연출하는데 중심적인 역할을 했던 작품은 그 방대한 스케일과 놀라운 구성력으로 독자들을 거대한 은하 제국의 세계로 이끌어 들였던 파운데이션 시리즈(은하제국의 흥망)라 할 수 있다. 1941년 8월 아시모프는 '로마제국 흥망사'에 자극받아 은하계의 규모로 확장된 인류제국의 붕괴와 부활의 역사를 그린 새로운 작품을 구상하여 캠벨에게 검토소재로 제출했다. 이 작품은 캠벨의 지시에 의해서 하나의 미래사를 구성하는 연작 대하소설로 발전한다. 이것이 바로 아시모프 최대의 작품으로서 80년대 까지 40여년 간 줄기차게 쓰여진 파운데이션 시리즈인 것이다.
아득한 미래, 문명발상의 땅 지구의 존재는 먼 과거로 잊혀져 버리고 인류는 은하계 전역으로 뿔뿔이 흩어져 있다. 2천5백만개의 행성에 ${10}^{18}$명 인구가 광대한 우주에 살고 있다. 게다가 인류세계는 하나의 제국으로 통합되어 고도문명에 의한 번영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1만2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은하제국에는 수세기에 걸친 붕괴의 조짐이 점차 표면화되기 시작한다.
이 엄청난 파국을 감지한 유일한 사람은 해리 셀던이라는 심리역사학계의 최고 권위자였다. 심리역사학이란 통계수학과 집단 심리학을 응용한 학문으로 개인의 행동예측은 불가능하지만 대집단의 추세는 예측가능한 커다란 위력을 발휘하는 학문이었다. 셀던은 5백년 후에 제국이 붕괴하고 3만년에 걸친 문명의 암흑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예언한다. 제국의 소멸을 멈추게 하기는 이미 불가능한 일이었다. 유일한 방책은 암흑시대를 1천년으로 단축시키는 것 뿐이었다. 그것이 바로 '파운데이션' 즉 새로운 문명의 근원을 설치하게 된 과정이었다.
이러한 아이디어에 기초해서 아시모프는 제국붕괴후 1천년에 걸친 암흑시대를 묘사하고 심리역사학의 방법으로는 예측할 수 없는 개체 수준의 초인이 출현함으로써 파운데이션 계획이 위기에 봉착한다는 등의 방대하고 매력적인 구성을 펼쳐나간다.
1977년부터 그는 자신의 이름을 담은 과학소설잡지 '아이작 아시모프의 과학소설매거진'을 창간하고 직접 편집책임을 맡아 이 잡지를 새로운 정통 과학소설의 아성으로 육성하는 등 과학소설활동을 본격적으로 벌인다. 아시모프는 이러한 과학소설 이외에도 숫자를 헤아릴 수 없는 논픽션 과학교양서 등의 저자로 이름을 떨쳤다. 70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가 보여주는 왕성한 집필력과 정열에는 그저 놀라울 뿐이다.
소설이라기 보다 과학교과서
아서 찰스 클라크는 1919년 영국 서머세트주 해변가 전원도시인 메인헤드에서 영세한 농장주인의 4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소년시절 클라크는 전형적인 과학 소년으로 아버지로부터 받은 담배상자에 붙어있던 고생물카드에 매료되어 화석수집에 열중했고 다음에는 천문학에 매달려 자작 망원경으로 천체관측에 빠졌다. 클라크는 국민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지만 상급학교에는 진학하지 않고 공무원 시험에 수석으로 합격해 회계감사원이 되어 런던으로 이주한다. 이때부터 그의 집필활동은 점차 본격화되고 런던 과학소설팬들과의 친교를 깊게 나누며 과학소설동인지에 과학소설를 기고하게 된다.
클라크의 과학소설은 비교적 가까운 미래세계를 무대로 태양계 내의 행성이나 지구해양에 진출하는 인류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과 방대한 스케일의 시간과 공간을 배경으로 인류와 그 문명의 행로를 거시적으로 묘사한 것 등 두 종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클라크가 아시모프와 더불어 정통 과학소설의 거장으로 칭송받는 가장 특징적인 이유는 바로 확고한 과학적 사실에 기초한 과학적 상상력에 있다. 그의 소설은 '소설이라기 보다 과학 교과서'에 가깝다는 평을 받는다. 그가 발표한 대표적인 작품들은 거의 예외없이 정밀할 정도의 과학 이론과 과학적 성과를 토대로 이루어진 것들이다.
아폴로보다 앞섰던 「우주로의 서곡」
1947년에 발표되어 아폴로 계획의 선구자라는 평을 받았던 '우주로의 서곡'은 말하자면 클라크의 우주여행에 대한 연구 성과를 담은 작품으로 그 내용은 픽션이라기 보다 거의 순수한 예언에 가깝다.
이 작품은 달세계를 향한 세부적 계획을 아주 미세한 부분까지 구체적으로 묘사하면서 거기서 부딪치는 여러가지 인간상, 즉 파일럿(우주선 선장)으로 선택된 자와 보조자로 바뀐 자, 계획 입안자, 신문기자, 우주 진출 반대론자 등의 행동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줄거리를 소설화한 흥미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과학적 사실에 근거한 정교한 구성 때문에 무미건조하다는 비평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두말할 나위없이 이 작품은 그런 차원에서 감상될 것이 아니다. 여기서 묘사된 달여행 계획은 만일 역사가 조금만 진행된다면 그대로 우리 눈앞에 전개될 수도 있었을 또 하나의 아폴로계획 (소설의 경우가 실제 계획보다 원리적인 면에서는 훨씬 이상적이다)이며 거대한 기술체제의 창출을 목격해 온 클라크가 그 지식과 논리 그리고 이상 등 모든 것을 동원하여 동시대에 보내는 신념의 토로다.
두 흐름이 결합된 「2001년의 우주여행」
앞서 이야기한 클라크 작품의 두가지 흐름이 하나로 결합되어 나타난 것이 바로 '2001년의 우주여행'(1968년, 2001, A Space Odyssey)이었다. 이 작품은 달 표면에서 발견된 작은 피라미드가 아득한 과거에 지구를 방문했던 외계의 생물이 남긴 일종의 표지였고,지구의 생물이 우주여행을 할만큼 성장하여 이를 발견하면 신호가 발생하도록 되어 있었다는 아이디어에 기초하고 있다. 줄거리 자체는 단순하지만 그 배후에는 클라크류의 방대한 전망이 담긴 깊은 여운이 감도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특히 재미있는 것은 마지막 부분에서 나타나는 클라크 우주관의 한 단면인데, 지구에 존재하던 많은 생물들 중에서 인간을 진화의 표본으로 선택했던 외계의 지성(知性)생물이 무수한 진화의 과정을 거쳐 마침내 신의 경지에 까지 도달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구도는 필연적으로 진화의 최종 단계에 도달한 존재는 물질이라는 매체를 초월한 순수지성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그의 사상을 반영한다.
두 계열로 나눠져있던 클라크의 작품은 이 작품에 의해 하나의 접점을 찾게되고 첨단기술의 힘을 매개로 융합을 이루어 뚜렷한 완결을 맺는다.
클라크의 후기 작품들
클라크의 작품 중 외계와의 접촉이라는 특별한 주제를 다루면서 70년대 이후의 새로운 발전양상을 보여준 작품으로 주목할만한 것은 1973년에 발표한 '라마와의 랑데부'(Rendezvous with Rama)다.
서기 2130년 태양계를 돌고 있는 운석감시 시스템의 레이더가 태양계 밖에서 비행해 오는 기묘한 물체를 발견한다. 직경 20㎞, 길이 50㎞ 자연물이라기엔 너무나 정교한 원통형의 물체에 접근한 탐사체는 놀라운 영상을 보내왔다. 그것은 하나의 거대한 우주선이었다. 이 우주선에는 '라마'라는 이름이 붙여졌고 지구의 우주선 한 척이 탐사대의 임무를 띠고 조사작업에 들어간다. 라마의 안쪽에는 완전히 얼어붙은 원형의 바다나 시가지 같은 6개 구조물의 집합체가 있었고 라마가 태양 에너지권 내로 들어와 태양의 열에너지가 내부로 침투하자마자 놀라운 사태가 전개된다. 라마 내부의 바다 속에 유기질의 형태로 녹아 있던 소재로부터 다양한 형태의 생물 로봇들이 합성되고 이들은 우주선을 관리하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기 시작한다.
이러한 줄거리를 통해 클라크는 외계 접촉에 관한 테마의 과학소설에서 훌륭한 모범을 확립하고 있다. 이외에도 클라크는 1975년 장편 '지구제국'(Imperial Earth)을 발표하는 등 정력적인 집필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이 작품 역시 그의 초기작품의 변주곡, 즉 태양계에 진출하고 거기서 새로운 고향을 만들어나가는 인간들의 모습을 묘사한 작품 계열의 종착역이라 할 만하다. 또한 이것은 '접촉 이후' 즉 지구와 행성 탐사의 새로운 가능성을 대담하게 다룬 작품이다. 클라크는 그의 뛰어난 과학적 상상력과 그에 따른 치밀한 구성력으로 70년대 이후에도 정통 과학소설의 맥이 후배 과학소설가들에게 이어지게 만든 중심적인 인물이다.
[3] 현대 과학기술혁명과 SF의 운명
최근 눈부신 과학기술의 진보를 SF는 못따라가고 있다. 싸구려 우주활극류와 저속한 추리모험류가 판치는 지금 전통 SF의 새로운 돌파구는 없는가?
70년대 이후 첨단 과학기술의 발전에 대해서는 새삼스럽게 이야기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그 범위는 컴퓨터에서부터 호킹의 우주론에 이르기까지 인류 생활의 거의 모든 부문에 파급되는 것이었다.
이러한 영향으로 1970년대 부터 미국 과학소설계에는 새로운 흐름의 작가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어릴 때부터 과학소설을 애독하면서 성장해 과학소설에 직접 간접의 영향을 받아 자연과학 방면의 대학으로 진학하고 전공분야의 학위를 취득하면서 과학소설의 집필을 시작하게 된 이른바 '과학자 작가의 제2세대'들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이들은 새로운 흐름이라기 보다는 건즈백-캠벨-아시모프-클라크로 이어지는 정통 과학소설의 맥을 계승했다고 볼 수 있다.
과학소설이 자신의 생활에 녹아들고 특히 자신의 전공분야 연구가 곧장 자기의 과학소설로 연결되어 가는 현상이 그들의 공통분모였다. 그레고리 벤포드(Gregory Benford, 1941-)는 이런 타입의 작가들 중 선두주자이며, 또한 상당히 고집스럽게 과학 소설의 창작에 도전하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캘리포니아대학 이론물리학부에서 박사학위를 획득하고 연구생활에 돌입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과학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1980년에 발표된 대작 '타임 스케이프'(Time Scape)는 그의 최고 걸작이라 할 수 있다.
과학자 작가들의 등장
영국인 찰스 셰필드(Charles Sheffield) 역시 새로운 세대의 전형적 인물 중 한사람인데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하고 일반상대론과 중력장을 연구주제로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미국으로 이주한 후 NASA(미 항공우주국)의 연구원으로 재직했으며 60년대 무인 달탐사계획에서 활약하기도 한다. 이러한 경력을 보면 그가 어떤 작풍을 가진 작가인지 대강 알 수 있을 것이다.
1970년대 이후의 과학소설은 캠벨이래 대선배들의 지칠줄 모르는 활약에서부터 60년대에 활동을 시작한 중견급, 박사 학위를 획득한 신세대, 또는 새로운 물결 중에서 대두한 영국의 신인들에 이르기까지 여러가지 과학소설관, 여러가지 학관이 혼재된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80년대 이후 데뷔한 새로운 타입의 미국 과학소설 작가 브루스 스털링(Bruce Sterling) 루디 러커(Rudy Rucker) 등의 흐름은 80년대의 새로운 기술동향에 깊숙이 결합해나가는 경향을 띤다. 그들은 인간과 기계를 융합한 문명, 생체공학이 극한으로까지 발달함에 따라 변화되는 인간의 의미 등을 끈질기게 추적하고 있다.
또한 데이비드 브린(David Brin) 스탠리 로빈슨(Stanley Robinson) 등 최근들어 알려지기 시작한 과학소설계의 스타들도 스페이스 오페라가 난무하고 있는 과학소설계에서 과학소설이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를 분명히 인식한 토대위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있다.
호킹이론도 SF의 소재
그렇다면 이후 과학소설은 어느 정도 까지 그 영역을 확장해 나갈 수 있을 것인가. 우선 현재 진행되고 있는 과학기술의 발전에서 그 방향을 예측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현재 과학기술의 혁명적 전개는 초소형 초고속화되고 있는 컴퓨터, 날로 발전하고 있는 생명공학기술, 물리화학의 새로운 이론에 뒷받침된 신소재와 그 가공기술의 놀랄 만한 진보 등으로 집약되고 있다.
그러나 90년대와 그 이후에 어떤 고도기술이 준비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고작 그 연구항목을 나열하는 정도에 불과하다. 이 점은 순수과학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10차원 시공에서 초끈(superstring)이 다음 반세기를 지배할 것이라는 점, 휠체어의 천재 호킹이 역설하는 우주의 거대한 시공(時空)구조에 관한 이론도 모두 과학소설의 자료가 될 것임이 분명하다.
다만 우리가 확실히 인식할 수 있는 것은 과학의 진보와 기술로의 응용이 일찍이 인류가 경험하지 못한 속도로 맹렬히 진전되고 있으며 이는 어떤 무엇으로도 저지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그 진보와 응용의 경이적이고 가속적인 속도가 과학소설에서도 과학적 방법의 계승에 의해 이루어질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정통 SF흐름부터 파악해야
지금까지 우리는 유럽과 미국을 무대로 발전해온 과학소설의 역사를 주요한 몇몇 인물을 통해 살펴 보았다. 이제 자연스럽게 '90년대에 들어선 우리는 언제까지 남의 이야기를 듣는 수준에서 머무를 것인가'라는 질문이 나올 차례일 것이다.
아직 본격적인 과학소설의 소개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세계적인 과학소설 작가가 우리나라에서 나와야 한다는 바램을 이야기한다면 그것은 지극히 황당무계한 비과학적인 이야기가 될 것이다. 몇년전부터 우리나라에서도 '브이(V) 시리즈'를 필두로 '스타 트랙'(Star Track) 등의 과학물들이 안방 TV에서 상당한 인기를 누리기 시작하고 있다. 하지만 엄밀히 이야기하자면 무대만 우주공간으로 바뀐 채 온갖 통속적인 구성들이 한데 뒤얽혀있고 애정 행각까지 가미된 이런 유의 우주 활극들은 아직 과학소설의 진수에 제대로 접해보지 못한 독자들에게 도움을 주기 보다는 악영향을 끼친다고 할 수 있다. 과학적 상상력과는 전혀 거리가 먼 이들 우주 서부극은 과학소설하면 으레 "아! 브이(V)같은 것"하는 잘못된 고정 관념을 심어주고 있다.
90년대에 들어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건즈백에서 시작되어 지금까지도 면면히 맥을 유지하고 있는 정통 과학소설의 흐름을 올바르게 파악하는 것이다. 아직 과학문화의 토대 자체가 취약한 형편에서는 우선적으로 앞선 과학문화의 정수를 올바로 들여와야 할 것이다(값싼 우주 활극부터 들여와서 독자들을 혼란시킬 것이 아니라).
물론 이와 함께 현재 서구의 정통 과학소설이 미래사에 대한 철학적 관점을 결여하고 있는 문제점 또한 정확하게 짚어져야 할 것이다. 이러한 토대 위에서만 우리의 과학소설이 설 수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