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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0년 전 현미경을 발명한 네덜란드의 과학자 겸 상인 안토니 반 레벤후크는 깨알만 한 공간에서 활발하게 움직이는 미생물을 처음 보고 ‘아주 작은 동물(animalcules)’이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하지만 미생물 입장에서는 ‘가소롭게’ 들렸을 것이다. 미생물은 지난 35억 년 동안 지구의 주인이었으니 말이다. 동물과 식물이 원시적인 형태로 지구에 나타난 약 4억 년전부터 미생물은 쭉 우리의 모든 역사를 지켜봐왔다.



미생물과 숙주의 끈끈한 우정

미생물은 동식물의 등장을 단순히 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어떤 미생물은 덩치 큰 다른 생물체를 먹이 삼아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한센병을 일으키는 ‘마이코박테리아 레프레(Mycobacteriumleprae )’의 조상은 자연계에서 독립적으로 살 수 있는 자유를 포기하고 인간과 운명을 같이 하기로 결정했다. 인간의 몸 밖에서 살기 위해 필요한 유전자를 포기하고, ‘한센병’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개발한 것이다. 또 다른 부류의 미생물들은 식물이나 동물의 고단한 삶에 도움을 주고자 했다. 물론 자신도 서식처와 영양분을 제공받는 대가이긴 하지만. 이런 형태로 나타난 것이 바로 공생이었다.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책 ‘총, 균, 쇠’에서 말했듯이, 항생제가 개발되기 전까지 세균(미생물의 대부분이 세균이다)은 공생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흑사병을 일으키는 ‘에르시니아 페스티스(Yersinia pestis )’처럼 우리를 죽음으로 내모는 악독한 생명체라는 인식이 팽배했다. 그러나 수십 년 전부터 인간의 피부, 구강, 소화기, 대장 등에 병을 일으키지 않는 미생물의 존재가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들이 ‘세렝게티 국립공원’처럼 나름의 생태계를 구성하고 있을 것이란 추측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런 사실은 2007년 DNA 해독 기술이 등장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밝혀졌다. 미생물도 인간처럼 DNA 안에 거의 모든 비밀이 숨겨져 있기 때문에, 미생물 생태계 즉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 연구가 활발히 이뤄졌다.

그동안 발표된 수천 편의 연구결과를 종합하면 인간의 장 속에는 수만 종의 미생물이 산다. 각각의 개인은 이중 수백 종 정도의 미생물을 가지고 살아간다. 이것들은 면역 및 신경계 발달에 큰 영향을 준다. 특히 태어난 뒤 2~3년 동안 면역과 신경계를 발달시키는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장내미생물이 아토피나 천식과 같은 자가 면역 질환, 자폐나 우울증 같은 정신적인 질환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이 생리학, 면역학, 역학 등 다양한 각도에서 증명되고 있다. 미생물이 단순히 입으로 들어와 대변으로 나가는 ‘뜨내기 손님’이 아니라 오랜 기간 서로 의지해 살아온 ‘의형제’임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공생, 언제부터였을까

그렇다면 장내미생물과 우리는 언제부터 공생 관계를 유지해왔을까. 인간의 미생물이 인간을 배신하고 친척뻘인 침팬지나 주변의 다른 포유동물에게 옮겨가는 일은 없었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미국 텍사스대 연구팀이 사람과 진화적으로 가까운 침팬지47마리, 보노보 24마리, 고릴라 24마리로부터 똥 시료를 얻어 장내미생물 유전자를 비교 분석했다(‘사이언스’ 7월 22일자).
 


미생물의 유전자를 분석하는 이유는 유전자가 진화의 역사를 담고 있는 ‘시계’이기 때문이다. 모든 유전자는 시간이 지나면서 돌연변이가 생기고, 그 DNA에 진화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는다. 일반적으로는 리보솜RNA 유전자를 이용해 계통발생 연구를 한다. 그런데 이번 연구에는 ‘자이레이즈(gyrase)’라는 유전자가 선택됐다. 자이레이즈는 DNA의 꼬인 정도를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무엇보다 사람과에 속하는 인간과 다른 유인원의 진화를 보기에 변이 속도가 적당하다(리보솜RNA 유전자는 변이 속도가 너무 느리다!).

장내미생물이 물리적으로는 부모나 주변의 환경으로 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분변 시료는 자연 상태, 즉 동물원이 아닌 아프리카의 서식지에서 확보했다.

연구팀은 이를 통해 유인원과 장속 미생물이 함께 진화했다는 새로운 사실을 밝혔다. 분석 결과, 사람이 가진 장내미생물 중 일부는 침팬지, 보노보, 고릴라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었다. 특히 박테로이데스(Bacteroidaceae )와 비피도박테리아(Bifidobacteriaceae ) 계통군에 속하는 미생물은 최소 1500만 년 전에 살았던 공통조상 때부터 장속에 있었다. 이 공통조상이 훗날 여러 개의 종으로 차례차례 분화될 때, 미생물 종도 함께 분화되면서 각자장 속에서 진화해왔다는 뜻이다.
 

 
대부분의 장내미생물들은 숙주 종이 수만 세대를 거치는 동안 다른 종으로 옮겨가지 않고 ‘의리’를 지켰다. 그 결과 실제로 유인원이 분화하는 시기(유전자와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를 통해서 예측된 것)와 이번 연구에서 밝힌 각각의 장내미생물들이 분화해온 시기가 맞아떨어졌다. ‘침팬지에게 고릴라보다는 인간이 더 가까운 친척’이라는 가설을 미생물 유전자 간의 유사성을 봐도 확인할 수 있는 셈이다(‘You are not alone’이라는 마이클 잭슨의 노래가 장속 깊숙한 곳으로부터 들려오는 듯하다!).

장내미생물이 최소 1500만 년 전부터 쭉 인간과 동거해왔다는 사실을 밝힌 것도 이번 연구의 큰 소득이다. 불필요한 장내미생물이 이토록 오랜, 배타적인 공생관계를 유지할 필요는 없었을 터다. 아직 다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장내미생물이 유아의 발달 과정과 성인의 여러 가지 면역 및 신경계 질환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추측에 힘이 실린다. 인간이 가진 수만 종의 미생물 가운데 오랜 시간 공진화해온 미생물에 연구자들이 더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2016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천종식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주)천랩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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