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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 제2의 게놈 효과 과연 어디까지일까

장내미생물 최신 쟁점 4

장내미생물의 기원이 이제야 서서히 윤곽을 보이는 것과 달리, 장내미생물의 역할에 대한 관심은 전부터 뜨거웠다. 불을 당긴 건 미국 워싱턴대 제프리고든 교수팀이었다. 2006년 ‘네이처’에 장에 사는 세균에 따라 날씬해지거나 살이 찔 수 있다는 쥐실험결과를 공개한 이후, 장내미생물은 한 순간에 ‘제2의 게놈’, ‘차기 노벨상 후보’로 떠올랐다. 하지만 과유불급이라 했다. 장내미생물에 대한 열광 중 과장은 없는지, 최신 연구 현황을 차분하게 되돌아봤다.

 


2년 전 기자는 직접 6주 동안 육류섭취를 중단하면서 장내미생물과 신체 변화를 측정하는 실험에 참가한 적이 있었다. 당시 비만의 원인균이라고 불리는 피르미쿠테스(Firmicutes ) 미생물 군집의 비중이 금식 전 75.7%에서 금식 후 47.3%로 확연히 줄면서 체중도 3kg 줄어드는 쾌거를 거뒀다. 그런데 최근, 당시 도움을 받았던 의사에게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2년 전 기자와 함께 대변을 실험했던 18명의 실험자들 중에 어느 누구도, 기자와 같은 드라마틱한 변화를 겪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장내미생물의 효과에 대한 믿음에 금이 쫙 가는 순간이었다.



장내미생물 연구를 비판할 때 가장 많이 나오는 것이 바로 인과관계에 대한 의문이다. 기자의 경우에도 체중 감소와 미생물 변화가 상관관계를 보이긴 했지만, 미생물이 변해서 체중이 감소한 것인지, 체중이 감소해 미생물이 변한 것인지 따지기가 애매하다. 오범조 서울 보라매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역시 “장내미생물이 체중 감소의 부산물인지, 중간 중간 상호영향을 미치는 존재인지 분변 시료 하나만 가지고는 알아내기 어렵다”고 말했다.

실제로 장내미생물 연구에 쓰이는 분변시료는 혈액시료와 다르다. 혈액은 (혈당을 제외하고는) 항상 일정하기 때문에 한 번 채취하는 것만으로도 빈혈이나 혈소판 감소, 고지혈증 같은 질환 여부를 알아낼 수 있다. 그러나 분변시료는 식이 섭취나 약물 복용에 따라 변동이 크다. 오 교수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 사람의 분변시료를 연속적으로 채취해서 장내미생물 변화와 증상을 비교하는 방식을 쓴다”고 했다.
 

 

인과관계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은 연구의 의미를 부여하기에 앞서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 역학 전문가인 미국 하버드대 윌리엄 헤네지 교수는 2014년 8월 20일 ‘네이처’ 뉴스와 코멘트 코너에 기고한 칼럼에서 “특정 질병과 관련이 있다고 잘 알려진 장내미생물 중에 실제로는 질병에 아무 영향을 주지 않는 방관자들도 있다”며 “원인 작용과 상관 관계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엄밀한 실험을 설계해야한다”고 말했다.


장내미생물 연구는 인간 게놈 연구처럼 DNA 분석에 의존한다. 분석 기술은 최근 몇 년 사이 급속히 발전했다. 과거에는 장내미생물의 유전자를 분석하려면 대변으로부터 일일이 미생물을 배양해내야 했는데, 오늘날에는 미생물의 총체적인 게놈(메타게놈)이나 대변에서 원하는 염기서열 정보만 추출할 수 있다. 장내미생물 연구에 주로 많이 쓰이는 염기서열은 16S리보솜RNA다. 이것은 단백질을 만드는 리보솜의 구성성분으로, 모든 종마다 가지고 있고 염기서열이 각기 다르다. 학문적으로 엄밀한 기준은 아니지만 편의상 16S리보솜RNA의 97% 이상이 일치하면 같은 종, 94% 이상 일치하면 같은 속, 90% 이상 일치하면 같은 과, 85% 이상 일치하면 같은 목 등으로 분류한다.
 
헤네지 교수는 이런 분류 기준이 ‘충분히 세밀하지않다(coarse)’고 비판했다. 예를 들어 비만과 관련된 많은 연구들이 장내미생물을 문(phylum) 단위로 분류하는데, 같은 문이라고 해도 그 아래에 과, 속, 종 등 분류가 다른 미생물들이 무수히 존재할 수 있다. 헤네지 교수는 이를 ‘새장에 새 100마리와 달팽이 25마리가 있는 상황’과, ‘수족관에 물고기 8마리와 오징어 2마리가 있는 상황’을 동일하게 보는 것에 비유했다. 두 경우 모두 척추동물이 연체동물보다 4배 많다. 하지만 새장과 수족관의 상황이 같다고는 볼 수 없다.

메타게놈 방식은 장내미생물끼리의 상관관계를 연구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어떤 미생물이 늘면서 다른 미생물이 감소했을 때 이유를 밝히기 어렵다는 뜻이다. DNA 각각이 어떤 기능을 하고 이것들이 어떻게 연관돼 있는지 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DNA를 추출하는 방식에 따라 DNA의 양이 달라진다거나(J Diabetes Metab 2014, 6:1), DNA 분석 방식에 따라 결과가 부정확하게 나올 수 있다는 기술적인 비판(Annals of Epidemiology 26 (2016) 322e329)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최근 기술의 진보도 눈부시다. 마이크로바이옴 분석 전문기업 ‘천랩’을 이끌고 있는 천종식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현재의 기술적인 한계가 결론을 뒤집을 정도의 수준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분석 비용이 점점 내려가면서 분석할 수 있는 미생물 수가 충분히 늘었기 때문이다. 천 교수는 오히려 “장내미생물의 메타게놈을 빅데이터처럼 분석해 개인마다 다른 장내미생물 패턴을 도출하는 등 정확도를 높여 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장내미생물이 면역과 같은 우리 몸은 물론, 기분이나 행동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은 상식이 됐다. 하지만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 분자 수준의 정확한 기작이 밝혀지기 시작한 건 불과 2~3년 전부터다. 대표적인 것이 이탈리아 로마 라 사피엔차대 연구팀이 인간의 소화기관과 중추신경계가 복잡한 양방향 연결 회로를 구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힌 연구다(Ann Gastroenterol. 2015 Apr-Jun; 28(2): 203-209 등).

연구팀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근거를 댔다. 먼저 장내미생물이 아세틸콜린이나 감마아미노낙산(GABA), 트립토판 같은 호르몬을 직접 생성하고, 이것이 뇌에 전달되는 신호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프로바이오틱스가 항우울제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추측하는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유익한 장내미생물이 세로토닌과 같은 행복 호르몬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장내미생물이 장 속 면역세포를 자극해 신경생리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실제로 장 속에는 신경전달물질에 반응해 뇌에 신호를 보낼 수 있는 신경세포가 수백만 개 존재한다.

장내미생물이 사람의 면역계에 영향을 주는 과정도 최근에 비교적 구체적으로 밝혀졌다. 알레르기나 자가면역질환은 면역세포의 일종인 조절T세포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해 발생하는데, 면역계가 조절T세포를 제대로 만들게 하는 데 장내미생물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면역’ 2015년 6월 16일자). 천 교수는 “장내미생물이 약물처럼 신속하게 병을 치료한다는 것은 과장이지만, 장기적으로 증상을 완화시키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은 분명하다는 것이 생물학적으로 증명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모든 실험이 현실에서 반드시 재현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장내미생물은 특히 더 가변성이 크다. 실험 결과에 영향을 주는 변수가 너무도 많아서다. 단적인 예로 제왕절개로 태어난 아기는 어린 시절 장내미생물 환경이 좋지 않아, 어린이로 자랐을 때 아토피나 천식 등에 더 취약하다는 통계 기반 연구들이 많다.

그런데 이것을 실험을 통해 증명한다고 해보자. 수 년 동안의 항생제 섭취, 식이뿐만 아니라 생활환경, 유전등의 요소까지 모두 고려해야 한다. 천 교수는 “실제로 아토피나 당뇨 같은 질병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장내미생물은 여러 가지 요인 중 하나일 뿐, 유일한 원인이 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장내미생물 자체가 개인차가 크다는 점도 분석을 어렵게 만드는 걸림돌이다. 한 예로 최근 덴마크 코펜하겐대 연구팀은 건강기능식품으로 각광받는 프로바이오틱스가 건강한 성인에겐 아무 효과가 없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게놈 메디슨’ 2016년 5월 10일자). 프로바이오틱스의 효능을 입증한 논문 7편 가운데 1편만이 유의미한 결과를 보였다는 게 이유였다. 연구팀은 논문을 통해 “프로바이오틱스 제품이 건강한 성인의 대변 미생물에 일관된 영향을 준다는 확실한 증거를 발견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천 교수는 충분히 가능성 있는 결과라고 말했다. 사람마다 장내미생물 환경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몸에 좋은 장내미생물을 넣었을 때 몸 안에서 긍정적이고 중요한 역할을 할 수도 있는 반면, 아무 효과를 내지 못할 수도 있다. 천 교수는 “특정 장내미생물이 있는지 없는지보다는 다양한 장내미생물이 균형을 이루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많은 장내미생물 연구가 쥐를 대상으로 한 결과라는 점도 한계다. 쥐 실험은 식이 등을 엄격하게 통제한 상황에서 진행하는데 사람은 그렇게 못 하기때문이다. 실제 환자들을 대상으로 장내미생물 연구를 하고 있는 오범조 교수도 공감했다. 그는 연구 과정에서 가장 힘든 점을 꼽으라는 질문에 “실험 기간 동안 환자들의 식이를 통제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뿐만 아니라 장내미생물 변화를 더 잘 보기 위해 무균 쥐를 많이 사용하는데, 이런 쥐는 일반 쥐와 다른 생리활동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



장내미생물 연구의 ‘끝판왕’은 장내미생물을 질병 치료에 이용하는 것이 아닐까. 특히 최근에는 건강한 사람의 장내미생물을 환자의 장 속에 이식하는 ‘대변 미생물 이식술(FMT, fecal microbiota transplants)’까지 나왔다. 국내에서 직접 FMT 치료를 하는 이동호 분당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에게 자세한 방법과 효과를 알아봤다.


Q. 어떤 환자들에게 적용하는가

항생제로는 더 이상 치료가 안 되는 환자들에게 적용한다. 클로스트리듐 디피실레(C. difficile )는 경증 설사에서 중증 장염, 심한 경우 사망까지 유발할 수 있는 치명적인 장내미생물인데 항생제를 써도 죽지 않는다. 이런 균에 감염된 환자의 장 속에 유익한 장내미생물을 넣어 건강한 장내미생물 환경을 만들면 유해균을 억제할 수 있다. 소화기내과 교수에게 자세한 방법과 효과를 알아봤다.

Q. 무엇을, 얼마나 넣는가

항생제를 복용하지 않고 알레르기와 같은 질환이 없는 건강한 성인의 대변에서 장내미생물을 추출해 넣는다. 제공자가 대변을 통해서 전염될 수 있는 질환(간염, 매독 등)이 없는지도 철저하게 검사한다. 검증이 완료된 제공자의 대변(1회)을 믹서로 분쇄한 뒤 가라앉혀 위에 뜨는 맑은 용액 300mL 정도를 관장 등의 방법으로 환자의 몸속에 넣는다. 국내에서는 주로 가족의 대변을 이용하지만, 해외에는 효과적이고 안전한 대변을 공수해 위급 시에 제공하는 벤처 회사도 있다.

Q. 치료 효과는 어떤가

투입한 장내미생물이 얼마나 건강한가에 따라 이식의 성공률이 다르다. 하지만 워낙 증상이 심각한 환자를 대상으로 적용하기 때문에 대체로 효과가 있다.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그러나…

“장내미생물이 마치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과대광고 하는 것은 경계해야 합니다. 하지만 장내미생물을 ‘제2의 게놈’이라고 부르는 데는 큰 무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유전자와 장내미생물을 종합하면 우리 몸의 생명활동에 대한 이해가 어마어마하게 높아질 것만은 사실이니까요.” 천 교수는 미생물의 특성을 잘 모르는 일반인들에게 특히 장내미생물의 효과와 한계를 정확하게 전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장내미생물을 운동에 비유했다. 혈압을 낮추고 당뇨를 개선하기 위해 꾸준히 운동해야하는 것처럼, 장내미생물도 꾸준히 관리해야만 효과를 볼 수 있다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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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장내미생물이 제2의 게놈?
PART 1. 장내미생물은 어디서 왔을까?
PART 2. 제2의 게놈 효과 과연 어디까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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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이영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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