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합성생물학이
주목 받는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가 원하는 그 어떤 생명체도 창조할 수 있는 시대를 열어줄 열쇠기 때문이다. 합성생물학은 이론적으로 인간이 필요로 하는 모든 분야에서 막대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식량부족, 의약품 부족, 환경오염, 에너지 고갈 등 인류가 직면한 대부분의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다. 그러나 그 무궁무진한 응용의 가능성은, 인류가 마주할 막대한 위협의 다른 면이기도 하다.


새로운 생명,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2010년 크레이그 벤터 연구진의 논문이 발표됐을 때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곧바로 생명윤리위원회에 합성생물학의 이익과 위험에 대한 종합적 보고서를 제출하라고 지시했다. 그 결과물이 같은 해 12월 발간된 ‘새로운 방향: 합성생물학과 신생 기술의 윤리’라는 제목의 보고서다.1) 이 보고서에서 언급된 현실적 위험은 크게 생물안전성과 생물안보 두 가지로 나뉜다. 생물안전성은 위험물질이 비의도적으로 혹은 환경방출용으로 외부에 노출됐을 때 인간과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문제다. 생물안보는 바이오테러에 대한 문제, 즉 의도적으로 병균이나 독성물질을 훔치거나 생태계에 방출하는 경우다.

생물안전성 문제는 사실 합성생물학이 등장하기 전부터 활발히 논의돼 왔다. 1990년대 중반 외래 유전자를 삽입해 만든 유전자변형생물체(GMO)의 등장이 논의가 시작된 주요 계기였다. 하지만 합성생물학이 등장한 이후 생물안전성 문제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합성생물학으로 만들어지는 생명체가 기존의 GMO와는 질적으로 다른 환경위해성을 야기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예를들어 미생물의 특정 유전자가 삽입된 콩은 GMO의 일종이지만 생물학적으로 여전히 콩이다. 그런데 합성생물학으로 콩의 최소유전체에 다양한 유전자를 대거 삽입한다면, 이 콩을 생물학적으로 콩이라 부를 수 있을까.

자연산 콩과 합성 콩의 생물학적 차이를 설명하기도 어려울 뿐더러 합성 콩이 기존 생태계에 노출됐을 때 합성 콩에 삽입된 다양한 유전자가 주변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상할 수 없다. 이런 문제점 때문에 한편에서는 GMO의 안전성을 통제하는 현재의 제도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규제정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다만 현실적인 대안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묘책이 없다.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바이러스 합성할 수 있어

생물안보 문제는 우리에게 좀더 실감나게 다가온다. 최근 인류를 괴롭힌 바이러스가 대표 사례다.

1918~1919년 전세계 2000만~5000만 명을 죽음으로 몰아간 스페인독감 바이러스(H1N1)가 실험실에서 합성된 적이 있다. 1997년 미국 워싱턴DC의 연구진이 1918년 사망자의 조직에서 바이러스 유전체의 염기서열을 알아냈고, 2005년 H1N1을 부활시키는 데 성공했다.2) 상세한 염기서열은 ‘네이처’에, 바이러스를 다시 살려내는 과정은 ‘사이언스’에 각각 발표됐다. 문제는 연구진이 실험과정에서 합성용 유전자를 우편으로 간단히 주문했다는 사실이었다. 당시 학계는 ‘테러리스트에게 어떻게 하면 생물무기를 만들 수 있는지를 보여준 셈’이라며 연구진을 비판했다.

이들이 보여준 사례처럼, 바이러스는 생각보다 쉽게 합성할 수 있다. 이 사실을 증명한 것도 합성생물학자들이었다. 유럽분자생물학기구(EMBO)의 과학정책분야 책임자인 미쉘 가핑클 연구원과 미국 스탠퍼드대 드류 앤디 교수 등 쟁쟁한 합성생물학자들이 쓴 보고서에는 소아마비 바이러스, 수족구병 바이러스, 사스 등의 바이러스가 얼마나 쉽게 합성될 수 있는지 나와 있다(위의 표 참조). 바이러스를 만드는 게 이렇게 쉽다면 에이즈 바이러스와 에볼라 바이러스를 합성해 어느 것보다 강력한 바이러스를 만드는 일도 가능하지 않을까.3)

실제로 이 같은 우려를 현실화한 사례도 있다. 2011년 네덜란드 에라스무스 의료센터4)와 미국 메디슨 위스콘신대 연구팀5)이 각각 독립적으로, 사람에게 감염될 수 있는 변종 H5N1 바이러스를 실험실에서 만드는 데 성공했다. H5N1 바이러스는 고병원성으로 가금류의 치사율이 100%에 가깝고 사람도 감염시킨다. 하지만, 사람의 경우 호흡을 통해 전염되지 않아 가금류나 야생 조류와 직접 접촉하거나 생고기를 만지는 사람들만 감염돼 환자 수는 수백 명에 머물렀다. 그런데 연구진이 공기를 통해 사람도 쉽게 감염될 수 있는 변종 바이러스를 만든 것이다.

연구진은 바이러스 분야에서 사용되고 있는 유전자변형 방법 중 하나를 이용해 변종 바이러스를 만들었지만, 어떤 이들은 합성생물학의 기법을 이용하면 좀더 쉽게 변종 바이러스를 제작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제작 과정은 이렇다. 먼저 H5N1 유전체의 염기서열을 얻은 뒤, 일부 돌연변이를 일으킨 염기서열을 유전자 합성회사에 의뢰한다. 회사는 이 염기서열로 만든 바이러스 유전자 조각들을 박테리아 유전자에 삽입해 연구자에게 전달한다. 연구자는 이 조각을 박테리아에서 분리한 뒤 조각들을 연결해 새로운 바이러스 유전체를 만들어 세포에 삽입한다. 실험이 문제 없이 잘 진행된다면 세포는 새로운 바이러스 유전자, 즉 변종 H5N1을 만들기 시작할 것이다.
 

블랙 바이오해커 손에 변종 바이러스가 들어가면?

물론 연구자들이 바이러스를 합성하는 이유는 바이러스의 발병 메커니즘을 밝히고 효과적인 치료책을 찾기 위해서다. 하지만 고위험성 생명체를 합성하는 연구를 전문가 집단의 판단에 전적으로 맡기는 일이 과연 바람직한지는 고민스러운 대목이다. 합성생물학 연구자들도 이런 위험에 대해 인식하고 있지만, 현재의 제도로 위험이 충분히 통제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예를 들어 생물안보의 위험성에 대한 대비책으로 가장 낮은 위험등급(Biosafety level 1)의 유기체를 사용하고, 책임감을 갖도록 전문가를 교육하고 훈련하는 일 등을 대책으로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합성생물학을 이용한 과학 실험을 하는 아마추어 과학자들이 늘어나면서 다시금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생명의 유전정보를 해킹하고 활용한다는 의미에서 스스로를 ‘바이오해커’라 부르는 사람들이다. 2000년대 중반부터 서구 사회에서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이들은 자신의 부엌이나 거실에 실험실을 차려놓고 박테리아의 유전자를 변형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아예 마을이나 학교에 실험공간을 만들어 주민들을 교육하며 새로운 생명체 제작을 독려하는 사례도 많다.

대다수 바이오해커의 목표는 생명에 대한 지적 호기심의 충족이다. 또한 이들의 창의성과 교육 활동이 합성생물학의 발전을 도모하는 영양분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인체에 치명적인 병원체를 합성하는 기술이 언젠가는 바이오해커에게도 전달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만일 합성생물학자들이 변종 돌연변이를 만들고 그 연구결과를 논문으로 발표한다면 합성생물학의 지식과 기법을 눈여겨보고 있는 바이오해커 집단에게 변종 바이러스 제작 매뉴얼이 노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까지 바이오해커 집단 어디서도 바이러스를 제작하는 프로젝트가 진행됐다는 보고는 없다. 바이러스는 변종이든 아니든 그 자체가 위험한 존재기 때문에 섣불리 연구를 수행할 만한 대상이 아니다. 다만 테러를 목적으로 은밀하게 활동하는 소수의 범죄자, ‘블랙 바이오해커’가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이들은 1급 보안을 요하는 위험 생명체에 대한 정보를 노릴 가능성이 크다. 이 정보를 활용해 마치 컴퓨터 바이러스를 제작해 배포하는 것처럼 위험한 생명체의 제작 매뉴얼을 배포하거나 직접 테러를 감행하는 사례가 등장할 가능성도 있다.

개인맞춤형 생물무기가 발생할 가능성도 제시됐다. 몇 년 전 미국 정부가 세계 대통령들의 유전정보를 은밀히 수집하고 있다는 소식이 미국의 일부 언론매체에 소개된 일이 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대통령의 유전정보를 알아낸 어떤 바이오해커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해가 되지 않고 대통령의 유전자만을 표적으로 삼는 치명적 바이러스를 공기 중에 뿌림으로써 완전범죄를 도모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수도 있다.
 

괴생명체 만들어질 가능성 낮지만, 성찰이 필요할 때


벤터 연구진이 ‘사이언스’에 논문을 발표한 2010년, 공교롭게도 국내에서는 ‘스플라이스’라는 영화가 개봉했다. 인간 사회에서 금기시되는 모든 행위가 망라됐다는 평을 받았던 이 영화는 국내에서 크게 흥행하진 못했지만, 합성생물학의 연구내용을 어느 정도 실감나게 표현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했다. 영화에는 ‘괴생명체’가 등장한다. 조류, 어류, 파충류, 갑각류 등 여러 종의 DNA와 인간 여성의 DNA를 결합한 생명체다.

현실의 합성생물학자의 목표가 이런 괴생명체를 만드는 데 있지는 않다. 다만 유전자 전체를 새롭게 설계하고 직접 제조함으로써 자연계에서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는 합성생물학과 맥이 닿는다. 영화 제목인 스플라이스(splice)는 유전공학에서 ‘서로 다른 유전자를 이어 붙인다’는 뜻으로 쓰이는 용어다.

합성생물학 연구자들은 영화와 달리 박테리아나 바이러스 같은 미생물 수준을 연구 대상으로 삼는다(아직 이 정도밖에 다루지 못한다). 그러나 미생물이든 고등 생명체든 합성생물학이 인류에게 위협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생명공학의 놀라운 발전을 찬양하기에 앞서 첨단의 과학기술 문명이 과연 인류에게 얼마나 필요하며 허용돼야 할 것인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2016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김훈기 홍익대 교양과 교수

🎓️ 진로 추천

  • 생명과학·생명공학
  • 환경학·환경공학
  • 철학·윤리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