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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3월, 미술사를 전공한 미국의 평론가 제시카 도슨 박사는 예술영화를 유통하는 업체 ‘크라이테리언 컬렉션’ 웹사이트에 기고한 ‘개의 예술(Art of a Dog)’이라는 칼럼에서 이와 같이 밝혔다. 그는 “록키와 더 많은 시간을 갤러리에서 함께 보내자, 록키가 나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오늘날의 예술
세계에서 기쁨을 느끼는 법을 가르쳐줄 수 있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고 밝혔다.
록키 왈, “호기심 유지하고, 직관 따르라”
도슨 박사가 록키에게 배운 것들은 다음과 같다. ‘호기심을 유지한다’, ‘두려움을 없앤다’, ‘(3색을 보지 못하는 등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예술을 사랑한다’, ‘트렌드를 따르려 애쓰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직감을 따른다’. 그는 이 같은 내용을 2월 미국 브루클린의 한 갤러리에서 미술계 인사들을 대상으로 ‘나의 개가 예술에 대해 알려준 다섯가지’라는 제목으로 강연했다. 이 날 강연은 개를 위한 예술 전시 프로젝트 ‘도규멘타(dOGUMENTA)’의 론칭 행사이기도 했다.
도규멘타 프로젝트는 8월 11일 뉴욕 브룩필드 플레이스(세계금융센터)에서 공개된다. 과연 어떤 작품들이 전시될까. 도슨 박사와 이번 프로젝트의 공동 큐레이터인 미카 스칼린은 이번 전시에 참여할 예술가를 선발하려고 관심사와 능력을 심사한 뒤, 또 다른 공동 큐레이터인 록키(도슨 박사의 반려견 록키가 맞다)를 데리고 작가들의 스튜디오에 방문했다. 록키가 직접 냄새를 맡아보게 하기 위해서였다.
도슨 박사는 e메일 인터뷰에서 “이번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들은 각각 색과 형태, 사회적 이슈, 건축과 공간, 그리고 개가 직면하는 정서적 문제에 관해 작업하고 있다”며 “주제는 다르지만 우리의 새로운 관객인 개의 관점과 인지 특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개과 동물은 인간과는 다른 독특한 방식으로 세계를 인식한다. 무엇보다 냄새가 필수다. 볼 수 있는 색 스펙트럼이 좁다(빨간색에 해당하는, 긴 파장의 빛을 감지하는 수용체가 없다). 또, 인간보다 땅에 더 가까이 살고 있다.
“아마 개들은 독특한 방식으로 작품과 관계를 맺을 겁니다. 냄새 맡고 오줌을 누거나 핥으면서요. 이번 전시에서 개들이 다양한 반응을 보여주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영국의 디자이너 도미닉 윌콕스가 지난해 8월 개를 위한 전시회에 설치한 대형 개 밥그릇. 안에는 사료를 닮은 갈색 공 2000개를 담았다.](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article/Contents/201707/S201708N035_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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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인이 예술을 즐기는 그 시간을 좋아할 겁니다”
흥미로운 시도지만, 과연 개가 정말로 예술을 즐길 수 있을까. 이 같은 질문에 도슨 박사는 “물론!”이라고 강조했다. “록키는 작품을 즐길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인간과 달리 뉴욕타임스의 리뷰나 갤러리의 보도자료를 읽지 않고 직감을 따라 가죠. 인간이 배워야 할 점입니다.”
도슨 박사는 개의 행동과 인지에 대한 전문가인 미국 바너드대 심리학과 알렉산드라 호로비츠 교수의 연구를 포함해 다양한 과학적 연구결과를 읽었다고 덧붙였다. 그래서 호로비츠 교수에게도 e메일로 물었다. 개가 정말로 행복을 느끼고, 예술을 감상할 수 있느냐고.
그는 “개를 키우는 사람들과 개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개가 행복을 경험한다는 걸 당연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개의 행동에서 이런 확신을 갖게 됩니다. 부정적인 감정과 대조되는 행복의 신호가 분명히 있죠. 신경학적 증거도 있어요. 개의 두뇌에는 행복, 슬픔, 분노와 같은 감정과 관련한 영역이 있습니다.” 하지만 호로비츠 교수도 “개가 인간의 예술에 관심을 가진다는 행동학적 증거나 연구는 없다”고 말했다.
![개는 인간과 달리 색 수용체가 두 종류뿐이라 빨간색을 보지 못한다. 그 특성을 고려해 그린 그림.](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article/Contents/201707/S201708N035_4.jpg)
그렇다면 개에게 예술을 즐기게 하려는 시도는 헛수고란 말일까. 실망은 이르다. 호로비츠 교수는 “개들이 특정 사물에 더 호기심을 보이거나 가치를 두고 즐길 줄 모른다는 말은 아니다”고 말했다. “개가 예술을 감상할 수 있는지 여부에 관계 없이, 개들은 단순히 반려인이 예술을 감상하면서 방 안을 거니는 시간을 좋아할 수 있습니다. 냄새를 맡으며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여유로운 시간이 허용되기 때문이죠.”
호로비츠 교수에게 “만약 당신이 반려견을 위해 예술 작품을 만든다면, 어떤 점에 초점을 맞추겠냐”고 물었다. “저라면 그들이 볼 수 없는 스펙트럼의 색상을 추가하는 대신 냄새가 나는 풍경을 만드는 데 집중하겠습니다. 또, 사람과 상호작용할 때 개의 관점을 고려할 거예요.”
호로비츠 교수에게 “만약 당신이 반려견을 위해 예술 작품을 만든다면, 어떤 점에 초점을 맞추겠냐”고 물었다. “저라면 그들이 볼 수 없는 스펙트럼의 색상을 추가하는 대신 냄새가 나는 풍경을 만드는 데 집중하겠습니다. 또, 사람과 상호작용할 때 개의 관점을 고려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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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에 다르게 접근하고, 나의 반려견의 개성을 이해할 기회
지난해 영국에서도 비슷한 콘셉트의 전시회가 열렸다. 영국의 발명가이자 디자이너인 도미닉 윌콕스는 지난해 8월 19~20일 영국 런던 어글리 덕 갤러리에 사료와 비슷하게 생긴 갈색 공 2000개를 채운 거대한 사료 그릇과, 개가 볼 수 있는 노란색과 파란색 계열로 그려진 그림을 개의 눈 높이에 전시했다. 물줄기를 뿜는 그릇도 설치했다.
발명가답게, 전시의 압권은 거대한 선풍기 전시물이었다. 노란 선풍기 뒤로 숲 그림이 흐르게 장치를 만들고, 선풍기 앞에는 창문 부분이 뚫린 자동차 모양의 판을 세웠다. 개가 창문으로 머리를 내밀면 마치 달리는 차에 올라탄 듯 휙휙 바뀌는 풍경을 보면서 선풍기 바람을 정통으로 맞을 수 있게 한 것이다. 선풍기 안에는 고기와 생선, 낡은 신발 등을 넣어 개가 바람을 타고 날리는 다채로운 냄새를 맡을 수 있게 했다.
이 전시회에서 개들은 바닥에 놓인 그림 앞에 우두커니 앉아 그림을 바라보거나, 공이 담긴 그릇 안으로 뛰어 들었다. 물줄기에 흥분해 날뛰기도 했고, 화면 속 튀어 오르는 플라스틱 원반을 찾아 내려고 디스플레이 밑으로 코를 넣어 킁킁대기도 했다.
![물을 뿜는 전시물. 인간이 예술로 간주한 것을 개들이 즐길 수 있는지 여부와 관계 없이, ‘개를 위한 전시회’에서 개들은 충분히 행복한 모습을 보였다.](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article/Contents/201707/S201708N035_6.jpg)
이런 행동에서 과연 개가 예술을 감상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글쎄,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에 답을 하기 전까지는 이에 답할 수 없을 것이다. 분명한 건, 호로비츠 교수가 말한 것처럼 사진 속 개들이 의심의 여지 없이 즐거워 보인다는 점이다. 이 전시를 통해 수많은 반려인들이 자신의 반려견과 함께 색다른 경험을 했다.
개를 위한 예술이라고 했지만, 결국 이런 시도는 개를 이해하고자 하는 인간을 위한 것일 테다. 도슨 박사는 “이번 전시는 인간에게 예술에 다르게 접근할 수 있는 기회뿐만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반려견의 개성과 성격에 대해 새로운 통찰력을 얻게 하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미국 내 다른 지역 뿐만 아니라 전세계 곳곳에서도 향후 전시를 하려고 한다”며 “곧 한국에서 만나요!”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 더 읽을거리
‘개의 사생활’ 알렉산드라 호로비츠, 21세기북스
in 과학동아 31년 기사 디라이브러리(정기독자 무료)
‘동물이 보는 세상, 들쥐 소변이 형광색으로 빛나네?’(2013.8)
dl.dongascience.com/magazine/view/S201309N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