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2일 오전 9시, 부산에 위치한 해군 작전사령부. 세종대왕함에서 500m 떨어진 부둣가에 노란 출입통제선이 쳐졌다. 선 너머로 다이버 네 명이 잠수를 준비하고 있었다. 해군 헌병단 수중과학수사대의 훈련현장이다. 고무보트 한 정이 부두 주변을 바쁘게 움직이며 안전을 점검했다. 영하 1℃의 날씨에 바닷바람이 찬 기운을 더했다.
“공기체크!” 감독관을 맡은 김근원 상사가 외쳤다. 텐더(다이버 보조요원)가 말을 받았다. “1번 다이버 180바(Bar, 압력 단위), 2번 다이버 188바!” 공기통에 든 공기가 충분하다는 의미였다. 다이버들의 풀페이스 마스크(얼굴을 완전히 가리는 잠수장비) 너머로 “스-하, 스-하”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입수!” 부두 끝에 서있던 다이버 두 명이 오리발을 앞으로 내밀며 물로 뛰어들었다. 물속에서 한 차례 빙그르 돌더니 고개를 내밀었다. 무사히 들어왔다는 신호로 손가락을 동그랗게 말아 보이곤 이내 물고기처럼 사라졌다.
수심 15m, 수온 11℃. 수중과학수사대원들은 근처 바닥에 가라앉은 시체(마네킹)를 찾기 위해 바삐 움직여야했다. 물속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은 고작 30분. 공기압이 50바 밑으로 내려가면 황급히 올라와야 한다. 20분 뒤, 부두에서 20m 떨어진 곳에서 빨간색 부표가 떠올랐다. 시체와 증거물을 찾았다는 신호다. 대기하고 있던 예비 다이버 두 명이 감식장비를 챙겨 추가로 물에 뛰어들었다. 다이버들이 쉬는 숨이 사이다 기포처럼 물 위로 부글부글 올라왔다.
한 명이 먼저 물 밖으로 나왔다. “얼음을 얼굴에 대고있는 것처럼 차갑다”고 했다. 그 속에서 누군가는 분주히 영상을 찍고 누군가는 시체와 증거물을 포장하고 있을 터였다. 다이버와 연결된 선을 잡고 있던 텐더가 외쳤다. “올라온다!” 리프트백(공기주머니)이 먼저 수면 아래에서 솟구쳤다. 곧이어 시체를 넣은 주머니(시체낭)가 들것에 받쳐진 채 딸려 올라왔다. 잠수사는 맨뒤였다.
흰 가운을 걸치고 라텍스 장갑을 낀 감식반 요원들이 고무보트 위로 시체낭을 끌어올리느라 “하나 둘, 하나 둘” 박자를 맞췄다. 시체낭의 젖은 천이 마네킹의 팔다리에 밀착되면서 곡선이 선명히 드러나 마치 진짜 사람이 들어있는 것 같았다. 마네킹의 배를 찌른 칼은 밀폐용기에 담긴 채 수중과학수사대원들의 손에 들려 올라왔다.
물속으로 들어간 과학수사
국민안전처 해양경비안전본부(아래 해경)는 2015년 6월, 20명 규모의 수중과학수사대 발대식을 가졌다. 비상설로, 사건이 생기면 전국 각지에서 대원들을 소집하는 형태이다. 해군과 경찰청도 수중과학수사대 대원을 각각 19명, 63명 양성했다. 일부는 벌써 사건현장에 투입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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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중과학수사대는 물에 직접 들어가 과학적인 기법으로 수중사건을 해결하는 수사대다. 바다와 강, 저수지에서 시체와 증거물을 찾아 감식하고 인양한다. 선박 충돌·전복·화재 사고를 조사하고, 수중부실공사를 밝혀내는 일을 맡는다. 물이라는 환경만 다를 뿐, 역할은 우리가 아는 과학수사대와 비슷하다.
그동안 물속은 과학수사의 상식이 통하지 않는 곳이었다. 다이버가 변사체를 두 팔로 안아 들어 올리고 증거물을 맨 손으로 집어오는 경우가 많았다. 시체가 훼손돼 검시관이 사인을 밝히는 데 장애가 되고, 증거물에 남아있던 지문이 긁혀 사라지는 일이 벌어졌다. 기껏 인양해 왔는데 법정에서 증거로 인정받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다이빙 능력을 우선하다보니 수사를 전혀 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현장에 투입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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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수사와 다이빙 능력을 동시에 갖춘 수사관을 양성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미국에선 공공안전다이버(PSD)라는 이름으로 사설기관에서 수중과학수사 교육을 하고 자격증을 주고 있다. 군이나 경찰, 소방에 필요한대원들을 양성하는 제도로, 수중사건을 처리하는 법을 배운다. 먼저 원형탐색·격자탐색 등 9가지 수색기법을 익혀 바닥에 떨어진 미세한 증거물을 찾는 법부터 배운다. 증거물은 핀셋으로 잡아 밀폐용기에 넣는데, 이때 주변의 물 시료와 바닥물질을 함께 수집한다.
수중촬영기술도 배운다. 사건현장에서 다이버 한 명은 계속 촬영만 한다. 감식과정 전체를 기록해야 법정에서 증거 능력을 인정받기 때문이다. 변사체를 발견하면 손을 대지 않고 시체낭에 담아 공기주머니로 들어올린다. 물에서 나오자마자 시체를 검시하고, 증거물에서 지문과 유전자를 채취한다. 이런 일련의 PSD 교육과정을 들여와 우리 현실에 맞게 바꾼 게 현재 수중과학수사다.
경찰청 수중과학수사대는 최근 성과를 거뒀다. 작년 2월 경남 남해에서 발생한 살인미수 사건의 주요 증거인 칼을 바다에서 찾은 것이다. 경찰조사에서 피의자는 살해의도 없이 우발적으로 주변에 있던 부엌칼을 사용했다고 주장한 반면, 피해자는 무기가 일본도였으며 피의자가 살인을 미리 준비했다고 주장했다. 수중과학수사대는 피의자가 방파제 옆에 버린 증거물을 수색했는데, 찾고 보니 일본도였다. 피해자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결정적 단서였다. 정해진 절차에 따라 인양한 덕분에 법정에서 증거로도 인정받았다. 경찰청 수중과학수사대의 유제근 경위는 “수중사건도 절차가 중요해진 시대”라고 말했다.어둠 속 수사…“동료 믿고 간다”
수중과학수사는 말처럼 쉽지 않다. “물에 들어가면 아무것도 안 보여요.” 민간 다이빙교육기관인 PSAI 코리아의 성낙훈 본부장은 수중과학수사의 어려움을 한 마디로 표현했다. 그는 2013년 미국에서 PSD 기술을 배워와 해군 등 각 기관에 전수한 교관이다.
물속에선 시야를 확보하기 어렵다. 해저 지면이 온통 갯벌로 이뤄진 서해는 바닥에 발을 디디는 순간 자욱한 먼지구름이 일어난다. 물 흐름이 없는 강이나 저수지는 한번 뜬 부유물이 쉽사리 가라앉지 않아 더욱 열악하다. 해군 헌병단의 훈련장면을 수중카메라로 촬영한 영상을 보니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였다. 대낮인데도 인공조명을 비춰야 했다. 이 때문에 대원들은 바닥에 발을 디디지 않고 상체만 숙여 작업하도록 훈련받는다. 말하자면 물속의 일정한 깊이에 정지한 상태로 작업하는 것이다. 고난이도의 ‘중성부력’ 훈련이다.
앞이 안 보일 땐 손으로 더듬어 수색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갑자기 눈앞에 수중시체가 나타나기라도 하면 공황상태에 빠질 수 있어요.” 수중시체는 부패가 심해 외관이 끔찍한 경우가 많다. 성 본부장은 “초보 대원의 경우 위험에 빠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기포가 혈관을 막는 공기색전증 같은 잠수병도 상시적인 위협이다. 그물에 걸리거나, 선박 안에 들어갔다가 갇힐 수도 있다.
해경 수중과학수사대의 신승용 경위는 “대원들의 안전이 최우선”이라고 강조했다. 바다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는 규모가 남다르다. 신 경위가 이끄는 수중과학수사팀은, 작년 9월 제주 추자도 인근 해상에서 전복돼 18명이 사망·실종된 돌고래호(9.77t) 사고 조사에 투입됐다. 사고 원인을 밝히기 위해 수중감식이 진행됐다. 돌고래호 자체가 거대한 증거물이었다.
“배가 뒤집힌 채 떠 있는 상태였는데, 언제 가라앉을지 모르니 위험할 수밖에요.” 그의 팀은 돌고래호 안에서 위치발신장치인 브이패스(V-PASS)를 수거해 사고원인을 밝히는 데 기여했다. 해경 수중과학수사대는 특수부대와 구조대에서 뼈가 굵은 잠수 베테랑들로 이뤄져있다. 이들은 최대 5노트(초속 2.6m)에 이르는 강한 조류를 만들 수 있는 해양경비안전교육원 잠수훈련장에서 훈련을 한다. 신 경위는 “똑같은 바다는 없다”며 “최악의 조건에서도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수중과학수사대는 아예 눈을 가리고 수색하는 훈련도 받는다. 성 본부장은 작년 12월 벌어진 시화호 토막살인 사건을 예로 들며 특수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시화호 같은 곳은 시야가 30cm도 안 나와요. 시체 유기할 때 누가 바닥 보이는 깨끗한 물에 버립니까.” 이밖에도 얼음이 두껍게 덮인 호수 안으로 들어가는 혹한기 훈련, 오염된 물에 들어가거나 야간에 선박내부를 들어가는 훈련, 바위나 콘크리트를 매달아 놓은 시체를 수습하는 훈련 등 고난이도 훈련을 반복한다.
대원들은 서로에게 목숨을 의지할 수밖에 없다. 해군 수중과학수사대의 이호성 대위는 “이기적인 사람은 못한다”고 말했다. 다이버는 물에서 늘 두 명씩 짝을 지어 다닌다. 한 명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다른 한 명이 해결해주기 위해서다. 김근원 상사는 “수중과학수사가 위험하긴 하지만 아직 미개척 분야인 만큼 나만의 전문성을 키울 수 있다”면서 “대원들이 가지는 자부심이 남다르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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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수중사건에 과학수사 적용되길”
전 세계적으로 수중과학수사가 발달한 나라는 많지 않다. 미국과 캐나다, 유럽 일부 국가 정도다. 성 본부장은 “아직은 초창기지만, 우리도 실전 경험을 쌓으면 다른 나라에 수중과학수사 기법과 장비를 수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일반 과학수사는 이미 세계적인 역량을 인정받아 말레이시아, 사우디아라비아 등에 수출한 상태다. 수중과학수사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게 성 본부장의 설명이다.
해군 수중과학수사대에선 수중시체 인양에 최적화된 특수장비를 개발하고 있다. 강화아크릴로 된 관 모양의 장비로, 시체를 바닥부터 감싸 뚜껑만 닫으면 바로 들어 올릴 수 있다. 시야가 나쁠 때 시체낭을 뒤집어씌우는 과정에서 상처가 생기는 일을 막을 수 있다. 해경의 신승용 경위는 “수중고고학에서 사용하는 사이드스캔소나와 무인잠수정을 과학수사에도 사용하면 수색효율을 훨씬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기적으로는 모든 수중사건·사고에 과학수사기법이 적용돼 억울한 사람이 생기지 않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세월호 사고 때처럼 우왕좌왕하지 않고, 체계적으로 수중과학수사를 적용할 수 있는 날이 오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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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바다의 셜록에 도전하다 수중과학수사
PART 1. 수중과학수사대 훈련현장에 가다
PART 2. 물 밖으로 나온 수중과학수사
Interview_“수중시체 검시, 특별한 애정 필요해”
PART 3. 수중시체를 찾아온 살아있는 단서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