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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2. 광유전학, 마음을 치료할 수 있을까

광유전학은 최근 의학 분야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정신질환 치료법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20세기에 눈부신 발전을 이룩한 현대 의학은 그동안 난치병으로 여겨지던 수많은 질병을 극복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한때 ‘20세기 흑사병’으로 불리던 무시무시한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 또한 이제 다양한 치료제가 개발돼 고혈압이나 당뇨병처럼 관리가 가능한 질병의 영역에 들어섰다. 그 러나 치매, 강박증, 자폐증, 조현병과 같은 다양한 신경정신질환에 대한 치료법은 생명과학과 의학의 급격한 발전에도 상대적으로 큰 혜택을 받지 못했다.

오늘날 정신질환을 치료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약물치료를 꼽을 수 있다. 각종 진단법을 통해 환자의 질환을 특정한 후, 그 증상을 완화하거나 치료할 수 있는 약물을 처방하는 식이다. 예를 들어 우울증 증세가 심각한 사람에게는 항우울제를 처방하는데, 항우울제는 우리 뇌에서 작용하는 세로토닌이나 노르에피네프린과 같은 신경전달물질의 작용을 조절해 증세를 완화시킨다.

약물로 환자의 신경계를 조절하는 치료법은 여러 가지 한계와 문제를 지니고 있다. 정신질환은 그와 관련된 특수한 신경회로의 오작동으로 생겨날 때가 많은데, 약물치료는 뇌 전체에 작용하기 때문에 부작용이 잘 일어나고 효과를 거두기도 쉽지 않다. 비유하자면 약물치료는 화재가 난 집뿐만 아니라 온 동네에 물폭탄을 투하하는 꼴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우울증 증상을 완화하기 위해 복용한 항우울제가 뇌의 여러 부분에 영향을 미쳐 수면 장애, 두통, 성기능 장애 등을 일으키는 경우가 적지 않다.

우리 뇌는 1000억 개가 넘는 신경세포가 서로 100조 개가 넘는 신경접속을 이루고 있는 매우 복잡한 신경 네트워크다. 정신질환에 효과를 나타내는 다양한 약물들이 개발되고 있지만 치료법의 획기적인 진전이 없는 이유는, 매우 복잡하고 섬세한 우리 뇌에 비해 약물은 너무 투박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의학계가 광유전학에 희망을 거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광유전학을 이용하면 약물치료보다 훨씬 더 정교한 방법으로 우리 뇌를 치료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배달(delivery)

뇌 전체에 무차별적으로 작용하는 약물과 달리, 광유전학은 특정 신경회로를 선택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 채널로돕신이나 할로로돕신과 같은 빛감지채널을 특정 신경회로에 장착시켜서 치료하고자 하는 신경회로만을 빛으로 조작할 수 있다. 우리가 TV 리모컨을 누르면 다른 가전제품은 그대로 두고 TV만 조작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바로 이러한 특이성 때문에 광유전학은 약물치료의 한계를 극복할 새로운 치료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광유전학을 실제 치료에 이용하기엔 아직 넘어야 할 장벽이 많다. 우선 ‘배달(delivery)’이라는 기술적 장벽을 극복해야 한다. 사람의 신경계에 빛을 전달할 수 있어야 하고, 동시에 빛에 반응해 신경회로를 조절할 수 있는 유전자를 심어야한다. 피부와 두개골이 안전하게 감싸고 있는 우리 뇌를 광유전학을 이용해 치료하는 것은, 마치 딱딱한 상자 속에 들어 있는 TV에 리모컨 수신기를 심고 조작해야 하는 상황과 비슷하다.

광유전학을 이용한 신경조작이 가능해진 이후 많은 연구자들이 쥐 실험을 통해 다양한 정신질환의 치료 가능성을 탐색해왔다. 그 결과 지난 수 년간 주목할 만한 성과들이 발표됐다. 인간과 마찬가지로 포유류에 속하는 쥐에선 불안, 공포 반응, 중독, 우울증과 같은 여러 정신질환 모델이 이미 오래 전에 구축됐다. 특히 이러한 연구는 특정 정신질환과 연관된 신경회로를 규명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는데, 연구자들은 여기에 광유전학 기법을 적용해 증상을 완화시키거나 치료하는 데 성공을 거둔 것이다.

쥐의 두개골에 든 뇌를 어떻게 빛으로 조작할 수 있었을까. 연구자들은 뇌정위수술(stereotactic neurosurgery)이라 불리는 방법으로 뇌의 특정 위치에 광섬유를 심고, 여기에 빛을 공급하는 LED 시스템을 개발했다. 정교한 시술을 통해 쥐의 머릿속을 비추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런 시술을 인간에게도 적용할 수 있을까. 기술적으로는 문제가 없다. 이미 유사한 시술이 시행되고 있다. 뇌심부자극술(Deep Brain Stimulation, DBS)은 몸의 운동성이 떨어지는 파킨슨 병 환자들에게 효과적으로 쓰이고 있다. DBS 시술은 파킨슨 병 관련 뇌 부위에 광섬유보다 훨씬 굵은 전극을 삽입하고 필요한 때에 전류를 공급해준다. 바로 이 DBS 시술에서 전극 대신 광섬유를 삽입해 주면 인간의 뇌 속에도 얼마든지 빛을 비춰줄 수 있다.

다만 머리에 ‘칼’을 대야 한다는 점은 부담이다. 광유전학 기술이 매우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지만, 한편으로 음파유전학이나 자기유전학 등이 주목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음파나 자기장은 빛과 달리 피부와 두개골을 통과할 수 있어, 광섬유를 집어넣지 않아도 뇌 속으로 자극을 배달할 수 있다.
 




유전자 삽입이 더 큰 문제

사실 뇌 안에 빛에너지를 배달하는 것은 다른 문제에 비하면 작은 장벽이다. 더 큰 기술적 장벽은 빛을 감지해서 신경회로를 조절할 수 있는 빛감지유전자를 배달해 주는 것이다. 광유전학으로 정신질환을 치료하려면 신경회로의 특정 위치에 유전자를 정확히 심는 기술이 확보돼야 한다.

쥐 연구자들은 ‘바이러스’로 이런 기술 장벽을 넘었다. 일부 바이러스는 에볼라나 메르스처럼 무서운 질병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어떤 바이러스는 우리 몸에 침투해도 별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가만히 잠복한 채로 머문다. 연구자들은 상당히 안전한 것으로 알려진 아데노연관바이러스(AAV)에 빛감지채널 유전자를 넣은 후 이를 쥐의 뇌에 주사했다. 그 결과 바이러스가 신경세포에 감염되면서 빛감지채널을 신경세포 DNA에 삽입시켰고, 유전자가 발현되자 감염된 신경세포들이 빛에 반응할 수 있게 됐다.

마찬가지의 방법을 인간에게도 적용시킬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우선 뇌에 들어와도 전혀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바이러스를 찾고 안전성을 확보해야 한다. 설령 안전성이 확보된다 하더라도 자신의 뇌에 바이러스를 주사한다는 사실에 대한 심리적인 저항도 있을 것이다.
 

판도라의 상자, 광유전학

윤리적·사회적 문제도 있다. 광유전학을 이용해 정신질환을 치료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은 다른 말로 우리 뇌를 인위적으로 조작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린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영화 ‘매트릭스’는 그런 기술이 실현됐을 때 열릴 수 있는 디스토피아를 매우 섬뜩하게 그리고 있다. 인공지능을 갖춘 기계와의 전쟁에서 패한 인류는 기계의 노예(건전지)가 되는데, 기계는 인간이 그 사실을 눈치 채지 못하게 뇌에 전극을 꽂아 가상현실 속에서 살아가게 한다. 인간의 모든 인지작용은 뇌의 신경회로가 활동하며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에, 바로 그 신경회로를 조작할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의 정신을 통제할 수 있는 기술의 등장을 의미한다.

‘매트릭스’처럼 기계에 의한 인간 지배까지는 아니라도 실제 현실에서 어떤 악한 세력이 광유전학 기술을 악용할 가능성을 상상해볼 수 있다. 광유전학으로 뇌의 공포 중추를 자극해 고문하거나, 부유층 자제에게 돈을 받고 인지 능력을 상승시켜주는 등의 일이 가능하다. 유전자조작이 심각한 윤리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것처럼, 신경 조작 또한 첨예한 윤리적 논쟁을 일으킬 수 있다.

광유전학으로 우울증을 치료할 수 있게 되는 날을 상상해보자. 우리가 우울증에 빠지게 되는 환경의 문제는 그대로 둔 채 기분을 조절하는 신경회로만을 조작해 우울증을 치료할 수 있다면 그것은 바람직한 일일까? 마피아들이 비싸고 거래하기 복잡한 마약 대신 마약이 자극하는 뇌의 쾌락중추에 바이러스를 주사하고 광섬유를 심어주는 시장을 개척할지도 모른다. 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자면 독재자가 사람들을 극심한 고통 속에 살게 하면서도 쾌락 중추를 자극해 이를 감추려 할 수도 있다.

핵기술의 발전이 핵전쟁으로 인한 인류 멸망의 가능성을 열었듯이, 광유전학 기술 또한 끔찍한 디스토피아를 불러올 수 있다. 우려스러운 상황을 막고 광유전학이 인류의 미래에 긍정적으로 기여하기 위해선 기술적 발전뿐만 아니라 이 기술이 미칠 영향에 대한 윤리적·사회적 논의가 함께 진행돼야 한다. 자칫 광유전학이 판도라의 상자를 열 수도 있기에.
 

 
 

2016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이대한 서울대 연구원
  • 기타

    [일러스트] 더미
  • 에디터

    변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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