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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뉴런 중 단 한 가지 종류의 뉴런을 비활성화(또는 활성화)하는
기술이 반드시 필요하다”  
_프랜시스 크릭, 1979년

 


DNA 이중나선을 발견한 프랜시스 크릭이 30여 년 전에 남긴 말은 ‘광유전학’을 정확히 예언했다. 광유전학은 빛을 이용해 뉴런의 활동을 자극 혹은 억제하는 기술로, 불과 10년 전만 해도 이런 방법이 전무했다. 미국 스탠퍼드대 칼 다이서로스 교수가 2005년 빛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뉴런을 개발하며 광유전학이라는 분야가 본격적으로 열리게 됐다.


광유전학의 탄생 : 빠르고, 간편하다
광유전학 이전에 뉴런에 자극을 가하는 데 가장 많이 쓰이던 도구는 단순한 전극이었다. 뉴런은 전기적인 활동으로 신호를 전달하기 때문에, 뇌의 특정 부위에 전극을 꽂아 전류를 흘려 뇌의 기능을 연구했다. 그러나 수천 수만 가지 종류의 뉴런이 뒤섞인 뇌에 무작정 전류를 흘리면, 주변이 무차별적으로 자극돼 도대체 어느 뉴런이 반응해 효과가 나오는지 알 수 없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개발된 초기 기술은 화학물질을 이용했다. 대표적인 예가 신경전달물질인 글루타메이트를 활용한 광 자극 기술이다. 과학자들은 먼저 빛에 민감한 물질로 ‘글루타메이트 감옥’이라는 구조를 만든 뒤 글루타메이트를 둘러싸 비활성화했다. 감옥에 갇힌 글루타메이트를 뉴런 주위에 뿌리면 아무 신호도 발생하지 않는데, 여기에 빛을 비추면 감옥이 무너져 글루타메이트가 방출되며 시냅스에서 신호를 만든다. 이 방식은 신호를 만드는 데는 효과적이었지만 그 적용 범위가 너무 넓었다. 단 하나의 뉴런을 자극하는 게 아니라 근처의 모든 뉴런을 자극했기 때문에 정확한 실험이 어렵다는 문제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또한 글루타메이트 감옥을 특정 부위에 전달하는 것도 어려웠다.

단 한 가지 종류의 뉴런을 자극할 수 있는 도구는 2003년에 처음 등장했다. 오늘의 주인공인 ‘광유전학’이다. 미국 슬로안-케터링 암센터 게로 미센보크 교수팀이 빛에 반응하는 이온채널의 유전자를 뉴런에 이식해 빛에 반응하는 뉴런을 만드는 데 성공한 것이다. 유전자조작기법을 썼기에 ‘광유전학’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하지만 초기 기술에는 몇 가지 큰 문제가 있었다. 여러 채널과 단백질을 동시에 삽입해야 해 유전자조작이 어려웠다. 반응 시간도 문제였다. 초기 광유전학 도구는 빛을 켠 시점과 유전자조작 뉴런이 반응해 신호를 만드는 시점이 수 초에서 1분 이상 차이가 났다. 실제 뉴런이 자극에 반응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수백 분의 1초라는 것을 감안하면 무척 느린 속도다.

실험에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한 사람은 앞서 말한 다이서로스 교수다. 다이서로스 교수는 2005년 에드워드 보이든, 펭 장 박사(현재 두 명 모두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와 함께 녹조류에서 빛에 반응하는 단백질인 채널로돕신을 떼어와 뉴런에 이식하는 데 성공했다. 채널로돕신을 이용한 빛 자극은 수 밀리초(ms) 안에 자극을 켰다 끌 수 있을 만큼 반응속도가 빨랐다. 유전자조작도 간편해 다른 실험실에서도 어렵지 않게 사용할 수 있었다.


허원도 기초과학연구원(IBS)인지 및 사회성연구단 그룹 리더의 연구실에서 촬영한 사진. 머리에 광케이블을 달고 있다.


빛으로 뇌의 구석구석까지
다이서로스 교수의 논문이 발표된 뒤 광유전학은 학자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졌다. 광유전학을 실제 생물에 적용하기 위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됐다. 실험용 쥐의 뇌에 바이러스를 이용해 광유전학 도구를 이식하는 방법이 2007년 완성돼 사용이 더 쉬워졌다. 채널로돕신의 효율도 높이고, 뇌에 광섬유를 이식하는 방법도 꾸준히 개선됐다. 뉴런에서 새로운 신호를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신호를 억제하는 기술도 개발됐다. 그 결과 2007년에는 처음으로 포유류의 기면증 연구에 광유전학을 적용한 연구가 발표됐다. 매일매일 새로운 연구결과가 발표됐고 과학자들도 들떠 있었다.

“광유전학을 연구하던 당시에 저희 실험실에서 연구원들이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 있어요. 우리는 최고의 장소에서 최고의 연구를 완벽한 시간(best place & best time at right time)에 하고 있다.”

김성연 서울대 유전공학연구소 교수는 광유전학 연구가 한창이던 다이서로스 교수 연구실의 분위기를 이렇게 표현했다. 그는 다이서로스 교수 실험실에서 2009년부터 2013년까지 연구에 참여하며 광유전학의 발전을 가까이서 지켜 본 산증인이다.

“연구실에 간 첫날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저의 멘토인 케이 타이 박사(현재 MIT 뇌인지과학과 교수)가 빛을 켜는 순간 미로를 헤매던 쥐가 갑자기 출구를 찾는 것을 봤습니다. 그 순간, 제 인생 최고의 기회 중 하나가 찾아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초창기 연구는 대개 기존에 어떤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진 뇌의 부위를 빛으로 자극해 쥐의 행동이 바뀌는 것을 확인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김 교수는 광유전학을 이용해 이전에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감정을 연구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가 선택한 것은 ‘불안’이었다.

“두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제가 불안에 약한 편이라 이것을 스스로 고쳐보고 싶었고요(웃음). 불안이 사랑, 기쁨 같은 감정보다 쥐에서 객관적으로 측정하기 좋다는 점도 있었습니다.”

김 교수는 2011년 타이 교수와 함께 ‘네이처’에 뇌의 편도체의 한 회로를 자극하면 불안이 감소된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2013년에는 분계선조침대핵(BNST)의 내부에 불안을 조절하는 여러 개의 회로들이 존재하고 이들이 서로 독립적으로 불안을 관리한다는 것도 알아냈다. 기존에도 BNST가 불안과 관련이 있다는 연구가 있었다. 예를 들어 2010년 다른 연구팀이 발표한 결과는 BNST가 정보를 받아 불안을 높인다는 연구였다. 김 교수는 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밝혀냈다. BNST의 앞등쪽 부분이 불안을 억제하고, 타원핵 부분이 불안을 증가시킨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광유전학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광유전학 이전 기술로는 이렇게까지 섬세하게 뇌를 조절할 수 없었다.

“뇌의 모든 뉴런을 하나하나 조작해 기능을 완벽하게 알아내는 게 신경과학자들의 꿈입니다. 광유전학으로 구석구석까지 살피다보면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올 겁니다.”


광유전학 2.0 : 단백질까지 조절한다
최근에는 광유전학이 다른 분야에서도 각광을 받고 있다. 뉴런과 채널에만 한정돼 있던 유전자조작이 일반 세포와 단백질까지 범위를 넓힌 것이다. 특히 허원도 기초과학연구원(IBS)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 그룹리더(KAIST 생명과학과 교수)가 이 분야의 최고 권위자다.

“2008년에 카이스트 교수가 됐는데 앞으로 어떤 걸 할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때 떠오른 것이 광유전학이었습니다.”

그는 원래는 신경과학이 아닌 바이오이미징과 신호전달을 연구하는 과학자였다. 세포 신호를 조절하기 위해서는 단백질에 자극을 줄 수 있는 약품이나 유전자 재조합 단백질을 사용했는데, 둘 다 일단 신호를 만들면 끄는 게 거의 불가능했다. 허 교수는 바이러스를 이용해 뉴런에 새로운 채널을 이식하듯, 보통 세포에 빛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단백질을 이식해 빛으로 신호를 켜고 끄는 기술을 개발하기로 마음먹었다.

새로운 연구를 하겠다고 결심은 했지만 힘든 일이 많았다. 처음이다 보니 기존에 발표된 연구를 다시 재현하기도 쉽지 않았다. 기초적인 연구에만 2년이 넘게 걸렸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 2014년에 첫 성과가 나왔다. 빛에 반응해 특정한 세포를 잡을 수 있는 올가미 단백질을 만들어 ‘네이처 메소드’에 발표한 것이다. 이 단백질은 특정한 파장의 빛을 비추면 형태를 바꿔 올가미처럼 주변의 단백질을 잡는다. 카우보이가 밧줄을 돌려 물건을 낚아채는 것을 상상하면 이해가 쉽다. 허 교수팀이 만든 올가미 단백질은 암세포에 서 세포 분열에 참여하는 단백질을 억제해 암세포의 증식을 막았다.

“우리가 처음 광유전학과 단백질을 결합한 뒤부터, 다른 경쟁 그룹들도 비슷한 기술들을 발표하고 있습니다. 기술개발경쟁이 심해지고 있다는 것이죠. 새로운 기술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어쩔 수 없는 숙명인데, 치열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남들보다 더 창의적이고 더 혁신적인 기술을 개발해야 합니다.”

그는 이제 광유전학 연구에 본업만큼 집중하고 있다. 지난 10월에는 ‘네이처 바이오테크놀로지’에 칼슘 채널을 빛으로 조절하는 새로운 기술을 발표했다. 이 기술로 채널을 활성화시키자 쥐의 기억력이 두 배 가량 향상됐다. 이 연구에서 주목할 점은 새로운 채널을 삽입한 것이 아니라, 기존 채널을 활성화시키는 단백질 중 하나를 조작해 빛으로 켜고 끌 수 있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기존 기술은 다른 종(species)의 채널을 도입하다보니 부작용이 많았다. 인터뷰 말미에 그는 “지금까지 한 일보다 앞으로 새롭게 할 일이 더 많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무선마우스의 출현, 그 다음은 사람…?

“그거 너무 징그럽지 않아요?”

이번에는 대학이나 실험실에서 오간 대화가 아니다. 과학동아 편집부 회의에서 광유전학 실험용 쥐에 대한 한 기자의 반응이었다. 실제로 기자가 취재 과정에서 직접 본 쥐들의 모습은 그리 유쾌한 모습은 아니었다. 원래라면 보송보송한 털이 나 있을 머리부위를 광섬유 케이블이 차지하고 있으니 영락없이 뿔 달린 쥐 모습이다.

보통 사람의 눈에는 광케이블을 꽂은 쥐의 모습이 불편하지만 실제 실험을 하는 과학자들 입장에서 불편한 것은 이것이 아니다. 문제는 이런 실험 장비가 쥐의 행동을 제약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TV에서 쳇바퀴를 열심히 돌며 실험에 참가하고 있는 쥐의 모습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높은 활동성을 요구하는 실험에 거추장스러운 광섬유 케이블이 당연히 방해가 된다. 이런 제약 때문에 쥐가 평소와는 다른 행동 패턴을 보일 우려도 있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때는 쥐를 위한 가상현실 기술을 도입하기도 했다. 우선 광케이블을 단 쥐를 조그만 공 위에 고정시키고, 움직이는 방향에 맞춰 눈앞의 화면이 바뀌는 방식이다. 쥐는 공 위에 선 채로 미로를 찾을 수 있지만 새로운 실험을 위해 매번 프로그램을 다시 짜야했다.

최근에는 아예 광케이블을 없앤 ‘무선마우스’가 등장했다. 정재웅 미국 콜로라도대 전기컴퓨터공학과 교수는 지난 7월15일 초소형 LED를 탑재한 새로운 광유전학 장비를 ‘셀’에 발표했다. 반도체 공정을 통해 개발한 이 장치는 외부에서 따로 전원이나 빛을 공급하지 않아도 자체적으로 빛을 쏴 뇌에 신호를 줄 수 있다. 크기는 현재 사용되는 광유전학 장비와 비슷하고, 무게는 1.8g 정도로 가볍다. 뿐만 아니라 미세관을 통해 서로 다른 네 가지 약물을 특정한 지점에 동시에 전달할 수도 있다. 연구팀은 이 장치를 활용해 실험용 쥐가 선호하는 장소를 기억하게 만드는 데도 성공했다. 정 교수는 e메일 인터뷰에서 “약물을 충전해 넣을 수 있도록 개량해 사용시간을 늘리고, 다양한 부위를 자극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아직은 선을 없앤 데 그쳤지만 추가적인 연구를 통해 뇌 속에 이 장치를 삽입하고 감쪽 같이 숨기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그렇게 된다면 사람의 뇌에 이런 장치를 심어 조절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정 교수는 “인간에게 광유전학 도구를 적용하는 것은 아직 조심스럽다”고 밝혔다. 인간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 다음 파트에서 확인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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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광유전학 빛으로 뇌를 조종하다
PART1. 뇌 조종의 신기원을 열다
PART2. 광유전학, 마음을 치료할 수 있을까

2016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송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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