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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롭고 놀라운 프랑스의 곤충을 뛰어난 관찰력으로 오랫동안 지켜 본 장 앙리 파브르는 곤충학자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파브르 곤충기는 생동감 있는 곤충의 다채로운 삶을 사실적으로 전달해주는 최고의 곤충서다. 곤충의 생태를 꼼꼼하게 관찰해 정확하게 묘사했을 뿐 아니라 시적인 문장 표현까지 더해 자연 속의 곤충을 한 폭의 그림처럼 표현했다. 파브르 곤충기를 읽고 있으면 파브르와 함께 신기한 곤
충을 바라보며 미소 짓고 있는 것만 같다.
그러나 파브르가 바라본 곤충세상과 우리나라의 곤충세상은 서로 다르다. 파브르 곤충기에 매료된 독자들은 파브르가 관찰한 곤충이 우리나라에도 살고 있을 거라고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파브르가 흥미롭게 관찰한 곤충 중에는 우리나라에 살지 않는 곤충들이 매우 많다. 파브르가 주목한 곤충과 현재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곤충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파브르는 똥을 굴리는 신비로운 곤충에 푹 빠져 세밀하게 관찰했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 때쯤 둥글게 잘 빚어낸 똥을 굴리는 소똥구리의 모습은 언제 봐도 특별하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해가 저물 때쯤 서쪽으로 부지런히 똥을 굴리는 모습을 보고, 소똥구리가 서쪽으로 똥을 잘 굴려야만 해가 저물게 된다는 믿음을 갖게 됐다. 심지어 소똥구리를 신성시해 신으로 숭배하기에 이르렀다. 소똥구리의 똥 굴리기 재주는 고대 이
집트인들에게 최고로 흥미로운 자연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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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브르가 관심 있게 지켜본 똥을 굴리는 소똥구리는 우리나라에도 살고 있을까? 안타깝게도 거의 없다. 과거에는 소똥구리, 왕소똥구리, 긴다리소똥구리처럼 똥으로 둥근 경단을 만들어 굴리는 소똥구리과의 곤충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허나 이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가장 큰 원인은 소똥구리에게 신선한 배설물을 공급해주던 우마차가 도시화와 산업화로 사라진 것이다. 소똥구리는 다음 세대를 이어가지 못하고 사라져갔다.
소를 키우므로 소똥은 여전히 있다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소를 방목하지 않고 집단사육하면서 사료를 먹이기 때문에 배설물에 수분이 많아 질퍽해졌고, 소똥구리의 재주도 무색해졌다.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소똥구리 중에는 똥을 굴리는 재주가 없는 애기뿔소똥구리도 있다. 소똥구리가 똥을 굴리지 못한다니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원래 소똥구리는 똥을 굴려서 소똥구리가 아니라, 소똥에 모여서 소똥구리다. 똥을 굴리는 신비로운 생태적 특징이 강조되다보니, 직접 똥을 굴리지 못하는 소똥구리는 관심을 받지 못했다. 사람들은 소똥구리라고 하면 똥을 굴리는 재주를 갖고 있는 곤충이라고 착각하게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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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설물에는 다양한 풍뎅이류의 곤충들이 모여든다. 똥 굴리기 실력이 좋은 왕소똥구리, 똥 굴리기 실력이 없는 애기뿔소똥구리, 배설물에 모여 사는 소똥풍뎅이, 금풍뎅이, 똥풍뎅이 등이다. 모두 배설물에 모여 알을 낳아 자연적으로 배설물을 처리해주는 고마운 청소부들이다. 다행히 최근 우리나라에서 똥을 굴리는 실력자 긴다리소똥구리가 20여 년 만에 발견됐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신비로운 소똥구리가 우리와 함께 숨 쉬며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두근두근 설렌다. 개체수가 점점 늘어나 신비로운 모습을 계속 볼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다.
거위처럼 목이 길쭉해 거위벌레라는 이름이 붙은 곤충이 있다. 파브르는 그 중에서도 요람을 만드는 특별한 기술을 갖고 있는 재단사 버들복숭아거위벌레에 관심을 가졌다. 잎사귀를 둘둘 말아 올려 요람(아기를 넣어놓는 작은 침대)을 만들어내는 모습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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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도 파브르가 관찰한 잎사귀 재단사가 살고 있을까. 물론이다. 프랑스 재단사 못지않은 놀라운 실력의 재단사 거위벌레가 살고 있다. 왕거위벌레, 북방거위벌레, 거위벌레, 노랑배거위벌레 등은 모두 요람을 만드는 특기를 갖고 있다. 다음세대를 위해 정성껏 잎사귀를 오려 둘둘 말아 알을 낳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면 작은 거위벌레의 헌신적인 사랑에 마음이 뭉클하다. 하지만 모든 거위벌레가 요람을 만드는 건 아니다.
요람 만들기 실력이 없는 거위벌레도 살고 있다. 거위벌레과의 곤충 중에 잎사귀 재단 기술자는 절반에 불과하고, 나머지 절반은 요람 만들기 기술이 없다. 자식을 돌보는 모성애가 부족한 걸까. 그렇지 않다. 요람을 만들지 못하는 도토리거위벌레에게는 다른 재주가 있다. 단단한 도토리에 구멍을 뚫어 알을 낳는 실력이다. 드릴로 구멍을 뚫듯이 도토리에 정교하게 구멍을 뚫는 모습은 누가 봐도 경이롭다. 우리나라에서도 도
토리거위벌레가 잘라 떨어뜨린 참나무가지를 쉽게 관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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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브르곤충기에서 요람 만드는 재단사 거위벌레 이야기를 읽은 사람들은 요람을 만들지 못하는 거위벌레를 눈여겨보지 않는다. 어린이들이 즐겨 읽는 파브르 곤충기에 ‘요람을 만드는 거위벌레’라는 제목까지 등장하다보니 거위벌레는 모두 요람 만들기 기술자라고만 생각하게 된다.
파브르가 주목했던 곤충 세상은 전체가 아니라 특별한 재능을 갖고 있는 일부 곤충들의 세상이다. 파브르가 주목한 곤충은 끝이 아니라 곤충세계로 들어가는 시작이다. 파브르가 관찰한 곤충을 시작으로 보다 더 넓은 곤충 세상을 바라봐야 곤충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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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를 땅속에 파묻는 놀라운 실력자 곤봉송장벌레도 파브르의 레이더에 걸려들었다. 곤봉송장벌레는 새끼들의 보금자리를 만들기 위해 시체 아래쪽에 들어가 흙을 퍼 올린다. 시체를 아래위나 좌우로 흔들며 땅속에 묻은 뒤에는 흙이나 낙엽을 덮어 그럴듯하게 매장을 한다. 그 뒤 시체 표면에 알을 낳는다. 파브르 곤충기에서 시체를 파묻는 생태이야기가 인기를 끌면서 송장벌레가 시체를 파묻는다고 알려졌지만, 사실 송장벌레과의 모든 곤충이 시체를 매장하는 건 아니다. 곤봉송장벌레류에 속하는 일부 송장벌레만 직접 시체를 파묻는 특기를 가졌다. 대부분의 다른 송장벌레들은 시체나 배설물에 모여들 뿐 시체를 파묻는 특기는 없다.
송장벌레는 시체를 파묻는 실력이 뛰어나서 송장벌레가 아니라 시체에 잘 모여들어서 송장벌레다. 우리나라에도 넉점박이송장벌레, 꼬마검정송장벌레 등의 매장충송장벌레가 살고 있다. 하지만 시체를 파묻지 못하는 큰수중다리송장벌레, 넓적송장벌레, 네눈박이송장벌레 등의 다양한 송장벌레도 함께 살고 있다.
배설물에 모이는 구더기를 잡아먹는 큰수중다리송장벌레, 나비류 애벌레를 사냥하는 네눈박이송장벌레의 신비로운 생태이야기는 잘 알려지지 못했다. 파브르가 알려준 매장충송장벌레를 시작으로 다양한 송장벌레의 신비로운 삶을 관찰하고 바라볼 때 송장벌레의 삶을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하늘소는 소가 풀을 뜯어먹는 것처럼 채식을 한다. 식물의 셀룰로오스가 주식이다. 편평한 삼각형 이마와 큰 턱, 입이 달린 얼굴도 소를 닮았다. 심지어 ‘끽끽~’ 하는 울음소리를 들어도 소와 비슷하다. 차이점은 소에는 없는 날개가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름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소(하늘소)’다.
파브르는 나무에 사는 하늘소에 관심을 가졌다. 대부분의 사람들도 하늘소 하면 나무에 사는 덩치 큰 곤충을 먼저 떠올린다. 눈에 잘 띄지 않는 작은 하늘소보다 대형 하늘소에 더 관심을 갖다보니 하늘소는 우람한 곤충이라는 고정관념이 생기고 말았다. 우리나라에는 약 300여 종의 하늘소과 곤충이 살고 있다. 종에 따라 몸집이 크고 작은 게 제각각이다. 우리나라에는 털두꺼비하늘소, 알락하늘소, 버들하늘소 등의 나무에 사는 덩치 큰 하늘소가 살고 있다. 하지만 아름다운 꽃에 모여드는 꽃하늘소, 잎에 서식하는 남색초원하늘소 등의 작은 하늘소도 살고 있다. 나무에 사는 덩치 큰 하늘소에 대한 관심을 시작으로 다양한 모습과 생활을 하는 하늘소를 바라본다면 신기한 하늘소의 다채로운 삶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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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과 기후변화 등으로 지구생태계의 곤충상은 상당히 변했다. 멸종된 곤충도 많고 분포도도 달라졌다. 파브르 곤충기는 지난 100여 년 동안 수많은 곤충학자에 의해 새롭게 밝혀진 곤충이야기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나온 몇몇 책은 일부 내용을 수정보완해서 기록했지만 현재의 곤충상을 모두 담아내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파브르 곤충기를 기본으로 최근에 발표된 많은 곤충서를 함께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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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와 우리나라는 생물의 지리학적 분포에 따라 나눈 지역 구분인 생물지리구(生物地理區)에서 모두 구북구(舊北區, Palearctic)에 포함돼 있다. 그러나 프랑스와 우리나라는 생태환경이 달라서 곤충상이 다르다. 파브르가 관심을 가졌던 신비로운 곤충 중에는 우리나라에 서식하지 않는 것도 매우 많다. 파브르 곤충기에 등장하는 곤충이 우리나라에도 살고 있는 지 꼭 확인할 필요가 있다.
파브르 곤충기는 곤충탐구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파브르 곤충기를 시작으로 우리나라의 다양한 곤충 책을 함께 읽는다면 전반적인 곤충을 폭넓게 이해하는 넓은 시야를 갖게 된다. 파브르 곤충기는 발발 대며 부지런히 움직이는 곤충을 관찰하는 즐거운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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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땅에서도 파브르 곤충기 나와야
수백 년 동안 곤충연구가 진행된 프랑스와 달리 우리의 곤충연구 역사는 60여 년에 불과하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곤충은 약 1만4000여 종이 밝혀졌지만 아직도 발견하지 못해 이름을 붙이지 못한 곤충들이 무수히 많다.
앞으로 파브르처럼 신비로운 곤충에 흠뻑 빠진 미래 세대의 주인공들이 대한민국의 특별한 곤충에 관심을 갖고 관찰하여 기록한다면 한국의 파브르도 분명히 등장하지 않을까. 파브르가 신비로운 프랑스 곤충을 알렸던 것처럼 우리나라의 신기한 곤충을 널리 알리는 최고의 대한민국 곤충학자들이 많이 등장하길 기대해본다.
▼관련기사를 계속 보시려면?
INTRO. 21세기 파브르 곤충기
PART1. 나는 살아있는 것을 연구한다
PART2. 파브르가 사랑한 곤충, 그리고 우리 곤충
PART3. 나는 한국의 파브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