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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21세기 파브르 곤충기

파브르 100주년 기념 특집



위인전과 동화책을 통해 한번쯤 만나봤을 곤충학자 장 앙리 파브르. 그의 실제 삶은 우리가 익히 알던 것보다 훨씬 비참했으며, 독선적이었고, 또한 위대했다(1파트). 불후의 명작 ‘파브르 곤충기’ 역시 마찬가지다. 현대적 입장에서 재해석해 다시 곱씹어봐야 할 부분이 가득하다(2파트). 파브르가 떠난 지 올해로 100년. 그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파브르를 우리 곁으로 다시 불러내보자(3파트).





출생과 함께 찾아온 가난

파브르는 1823년 프랑스 남부의 산악 지대에 있는 작은 마을 ‘생 레옹 뒤 레브주’에서 태어났다. 농부의 맏아들로 태어난 파브르는 어린 시절부터 한평생 가난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자연과 곤충에 호기심이 많았는데, 부모는 그 점을 못마땅해 했다.

아마추어 곤충학자

파브르는 대학이나 연구소에 소속된 정식 학자가 아니었다. 19살 때부터 중·고등학교 선생님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며 생계를 유지했고, 수업이 없는 날에 곤충을 연구했다. 지금으로 치면 아마추어 곤충학자인 셈이다. 종종 가르치는 학생들을 데리고 함께 곤충을 관찰하기도 했다.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다

파브르는 1868년, 그의 나이 마흔 다섯에 인생 최대 위기를 맞는다. 여학생들에게 ‘꽃의 수정’을 가르쳤다는 이유로 성직자들의 공격을 받아 학교에서 쫓겨났다. 설상가상으로 집주인마저 파브르의 가족을 집에서 쫓아냈다. 당시 매우 가난해 생활고에 시달리던 상태였고, 아이는 다섯이었다. 친구인 존 스튜어트 밀이 도와준 덕에 간신히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노장투혼, 파브르 곤충기

쉰여섯이 되던 해인 1879년, 그동안 모은 자료를 토대로 ‘파브르 곤충기’ 1권을 발표한다. 파브르는 곤충기 이전에도 교과서 등 책을 여러 권 썼는데, 여기서 들어오는 인세로 먹고 살 수 있게 됐다. 이때부터 전업연구자·작가가 됐다. 파브르는 당시 분류학자들이 주로 사용하던 해부용 메스나 현미경보다는 돋보기를 들고 살아있는 곤충을 관찰하길 좋아했다.

에덴동산에서 남은 여생을

파브르는 죽을 때까지 프랑스 남부 알마스 지역에 머물며 곤충기를 썼다. 그는 마음껏 곤충을 관찰할 수 있는 이 지역을 ‘에덴동산’이라고 불렀다. 말년에는 가브리엘라 미스트랄을 비롯해 이름 있는 문인들이 파브르를 노벨문학상 후보로 추천하기도 했다. 그는 열한번째 곤충기를 준비하던 1915년 10월, 92살의 나이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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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21세기 파브르 곤충기
PART1. 나는 살아있는 것을 연구한다
PART2. 파브르가 사랑한 곤충, 그리고 우리 곤충
PART3. 나는 한국의 파브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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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변지민 기자
  • 참고자료

    황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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