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 사진에서 바위의 해수면 가까이에 시멘트처럼 흰 갯녹음이 생겼다. 기후변화를 비롯해 다양한 이유가 지목된다. 4월 6일 동해 어달해수욕장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말도 마, 내가 여기에서 평생을 살았어. 동해 토박이거든 내가. 언젠가 그거 때문에 시끌시끌했어. 어민들 못 살겠다고 말이야.”
4월 6일 낮, 강원 동해시에 있는 묵호항 수산시장의 한 식당을 찾았다. 식사를 마친 후 ‘갯녹음’에 대해 식당 주인 정영자 씨에게 물었다. 갯녹음이 뭔지 되묻던 그에게 몇 차례 설명을 더하니 오래전 기억을 꺼내듯 답변을 내놓았다. 갯녹음은 연안 암반에 붙어살던 해조류가 죽고 그 자리에 석회조류가 붙으며 희게 변해가는 현상이다. 흔히 ‘바다 사막화’라 불린다.
실제 갯녹음 현상을 보기 위해 인근의 어달해수욕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모래사장에 널브러진 바위에는 이미 흰 석회질이 군데군데 끼어있었다. 물 위로 솟은 바위에는 해수면 가까운 부위가 유난히 하얬다. 조간대(밀물에는 잠기고 썰물에는 드러나는 지역)로 보였다. 물에 잠겼을 때 발생한 갯녹음이 수면이 낮아지며 드러난 것이다.
갯녹음은 원래 바닷속에서 주로 나타난다.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이미 남해와 동해는 물론 전 세계의 바다에서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유는 다양하다. 기후변화로 인한 수온 상승과 이산화탄소 농도의 증가에 따른 해양 산성화, 생태계의 교란 등이 꼽힌다.
기후변화는 해조류를 사라지게 하고, 산성화된 바다는 석회조류의 번식을 돕는다. 그 결과는 고스란히 어민들의 피해로 이어진다. 연안에서 해조류를 먹고 사는 조개류나 갑각류가 더 이상 살 수 없고, 이들을 먹이로 삼는 어류 또한 먹이 부족에 시달린다.
수중에서 주로 발견되던 갯녹음이 뭍 위에서도 보이기 시작한 건 비교적 최근 일이다. 2021년 환경운동 시민단체인 ‘녹색연합’이 제주 조간대에서 갯녹음 실태를 조사한 결과 200개 지점 중 198곳에서 갯녹음 현상이 발견됐다. 조간대의 갯녹음을 조사한 첫 번째 사례다. 신수연 녹색연합 해양생태팀장은 “한동안 갯녹음 현상은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지 못했고, 실태조사도 부족했다”며 “이번 조사를 계기로 한국해양과학기술원과 협력해 시민 과학의 형태로 한반도 연안의 갯녹음 실태를 조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인근 지역민들에게도 갯녹음은 잊혀지고 있다. 다시 묵호항 수산시장으로 자리를 옮겨 수산물 상점에서 갯녹음으로 인한 피해를 묻고 다녔지만, 대부분 ‘조황 악화는 오래전부터 시작된 일’이라는 답변을 내놓았다. 한 수산물 상인만이 “지금이라도 생태계를 회복할 수 있는 지원이 이뤄지면 다시 옛날로 돌아갈 수 있을까”라고 되물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