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장 무서운 공포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적절한 주인공, 즉 공포의 대상을 찾아야 한다. 공포의 대상은 당연히 한 맺힌 귀신 아니냐고? 한참 모르는 소리다. 귀신들도 다 각자의 사연이 있고, 원한은 그 시대의 고질적인 문제점과 큰 관련이 있다. 이 시대의 공포 대상을 찾기 위해 시대를 대표하는 귀신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1920~1930년대
가부장제의 억압
안녕하세요. 전 장화예요. 네, 맞아요. 그 유명한 장화홍련전의 장화요. 한국 공포영화의 역사는 저에서 시작됐다고 할 수 있어요. 1924년에 제작된 ‘장화홍련전’이 한국공포영화의 시작이거든요. 제 사연이야 뭐, 다들 아시잖아요? 가끔 이 시대 귀신들끼리 정모를 하곤 하는데, 사연이 다들 구구절절 해요. 워낙 가부장적인 시대였잖아요~. 여자들이 부당하게 차별 받는 일이 부지기수였죠. 저처럼 부정하게 아이를 가졌다는 의심만으로도 죽임을 당하던 시대였으니까요. 그래서 다 여자들밖에 없어요. 그것도 어린 여자. 그래서 여전히 귀신하면 까맣고 긴 머리에 흰 소복을 입은 처녀귀신을 떠올리는 것 같아요.

1960~1970년대
한국의 근대화, 지배질서에 대한 반란
지금 몇 시인데 이제 와요? 나 기다리는 건 딱 질색인데. 아, 내 소개가 늦었네요. 나는 1960년에 만들어진 김기영 감독의 작품 ‘하녀’의 주인공이에요. 이름도 딱히 없고 그냥 하녀라 소개랄 것도 없네요. 어쨌든 내 사연은 별 거 없어요. 어떤 사람은 돈 없는 내연녀의 치정극이라고 말하기도 하던데. 물론 내가 잘했다는 건 아니지만, 시대적인 문제도 분명히 있었어요.
내가 살던 60년대는 박정희 대통령이 집권하던 시기였어요. 새마을운동으로 한국사회에 조금씩 근대화가 일어나던 시기였죠. 모든 사람은 밝은 면과 그늘진 면을 동시에 갖고 있다고 하죠? 이 시대도 마찬가지였어요. 근대화로 우리나라 경제가 많이 성장하긴 했지만, 잘사는 사람과 그렇지않은 사람 간의 빈부격차가 아주 커졌거든요. 그러면서 돈이 계급이 되는 사회가 돼버렸죠. 나 같은 피지배층은 지배층에 대한 불만이 가득했어요. 불만엔 반란이 뒤따르죠. 나도 지배계층인 주인과 내연관계를 맺으며 반란을 일으켰으니까요. 괴기스러운 모습으로 변해가는 게 보는 사람으로서는 아주 공포스러웠을 거예요. 나를 통해 계급간의 갈등이나 중산층의 위기의식을 느낀 거죠.
(이효인 영화평론가의 저서 ‘하녀들 봉기하다’ 참고)
1990년대
개인의 욕망으로 공포의 대상 넓어져
아…. 안녕하세요. 저는 재이라고 해요. 윤재이. 고등학교 2학년이에요. 물론 5년째 2학년이긴 하지만.
아~, 아니에요. 공부를 못해서가 아니라…. 저는 평범한 학창생활을 경험해보지 못하고 죽었거든요. 친구도 있고 선생님이 내 이름도 불러주는 그런 평범한 생활. 제가 귀신치고 너무 수줍음을 많이 타죠? 그래서 친구가 없었나 봐요.
그래도 저, 나름 흥행한 공포영화의 주인공이에요. 여고괴담(1998)은 대중적으로 사랑 받은 첫 공포영화예요. 제 자랑은 아니지만 아직도 영화평론가들은 제 이야길 높게 평가해요. 공포의 대상을 확장시켰기 때문이래요. 다양한 사회의 억압과 개인의 욕망에서 생기는 갈등이 담겨있거든요.
저는 무당인 어머니 밑에서 자랐어요. 그래서 선생님으로부터 이유 없는 차별을 당했죠. 하지만 집안도
좋고 공부도 잘하는 소영이도 저 못지 않게 학교 생활을 힘들어 했어요. 소영이는 나이 차이가 얼마 안 나는 새엄마가 있거든요. (작은 목소리로) 그래서 그 문제에 아주 예민해요. 소영이 때문에 만년 2등인 정숙이가 그 문제로 소영이를 건드렸다가 대판 싸웠거든요. 그 둘이 참친했는데, 주변에서 자꾸 두 사람을 성적으로 비교하니까 어긋나 버린 거죠. 정숙인 결국 입시 스트레스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어요.
우리들의 이야기처럼 1990년에는 다양한 사회적 억압이 있었어요. 개인의 욕망은 점점 다양해지는데 사회가 그걸 받아들이지 못했던 거죠. 거기서 생기는 사회적인 불안감이 아주 컸던 때였어요. 그게 저나 소영이, 정숙이와 같은 아이들의 사연으로 표현된 거고요.
우리 영화는 열린 결말로 끝나요. 우리의 원한은 누구 한 사람의 잘못이 아니라, 사회구조적인 문제에서 생겨났기 때문이죠. 내 원한을 푼다고 해도 같은 문제가 계속 발생할 거라는 암시인 거죠.
(김훈순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2005년 논문 참고)
2000년대
분리된 자아, 죄의식이 만들어낸 환영
저는 수연이에요. 2003년에 개봉한 ‘장화,홍련’의 주인공이죠. 우리 영화는 장화홍련전에서 영감을 얻은
영화예요. 제가 ‘홍련’이고 수미 언니는 ‘장화’ 같은 존재죠. 하지만 여러분이 아는 홍련이하고 전 조금 달라요. 전 언니가 만들어낸 환영에 불과하니까요. 나와 엄마는 한 날에 죽었어요. 언니는 나를 살릴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혔죠. 언니의 죄의식이 나를 만든 거예요. 병명은 조현병이죠. 같은 해에 개봉한 ‘4인용 식탁’의 정원오빠도 우리 언니처럼 정신분열증을 앓았어요. 자꾸 환영을
보고 괴로워했죠.
2000년대엔 외부의 무언가가 아니라 죄의식 때문에 만들어진 환영이 공포의 대상인 영화가 많았어요. 요즘은 신체 질병보다 정신 질병이 더 흔하다는 말도 있잖아요. 그만큼 현대인들이 정신적으로 고통 받고 있다는 의미겠죠. 아마 앞으로의 공포영화도 현 시대의 문제점을 안고 가게 될 거예요. 2013년, 집 없는 서민들의 불안함이 그대로 드러난 영화 ‘숨바꼭질’처럼요. 사람들을 더 무섭게 할 공포영화를 만들고 싶다면 바로 지금 사람들이 불안해 하는 요소를 찾아야 해요. 시대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이 결국은 더 무서운
공포영화를 만들 게 될 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