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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세포가 그리는 초상화

전기신호 포착해 로봇 팔에 전달

“이걸 정말 네가 만들었니?” “네, 주인님” “이 무늬를 어디서 따온 거지?” “나뭇결의 모양을 기하학적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주인님.” 다음 날, 주인은 좀더 큰 나뭇조각을 가져와서 전기식 진동칼과 함께 앤드류의 손에 건네줬다. “이걸로 뭐든지 만들어봐라, 앤드류. 뭐든지 네가 원하는 대로.”

아이작 아시모프의 SF소설 ‘바이센테니얼 맨’에서 로봇 앤드류는 이때부터 명령받은 일만 하는 기계에서 창조성을 발휘해 목공예품을 만드는 ‘예술가’로 거듭나게 됩니다. 같은 이름의 영화에서 앤드류는 2005년 주인집에 배달된 최신형 가정부 로봇으로 등장합니다. 그렇다면 2년 뒤인데 과연 그런 일이 가능할까요.

그 단서를 엿볼 수 있는 행사가 최근 미국에서 열렸습니다. 지난 7월 12-13일 뉴욕에서는 ‘아트보트’(Artbots) 전시회가 열렸습니다. 한마디로 미래의 앤드류가 될 예술가 로봇, 또는 예술작품으로서의 로봇을 한데 모은 행사였습니다.

이번 전시회엔 모두 22개 작품이 출품됐는데, 이 가운데 호주의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대학의 예술-과학 그룹 가이 벤-에어리와 미국 조지아 공대 신경생리학연구실의 스티븐 포터가 만든 ‘MEART’가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MEART는 그림 그리는 로봇입니다. 거미다리처럼 생긴 로봇 팔이 영감을 받은 듯 쉴 새 없이 연필을 움직여 그림을 그려내는 모습은 마냥 신기할 따름이었죠.

그런데 진짜 화가는 딴 곳에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로봇 팔이 받은 전기신호는 뉴욕에서 1천3백km 떨어진 애틀랜타의 조지아 공대 실험실에서 보낸 것입니다. 이곳에서는 쥐의 뇌신경세포를 배양접시에서 키우고 있는데 바로 이 세포들이 전기신호를 보낸 당사자입니다. 배양접시에는 60개의 전극(MEA, Multi-Electrode Array)이 꽂혀있습니다. 이 전극이 신경세포들의 전기신호를 포착한 다음 인터넷을 통해 로봇 팔에 전달한 것입니다.

신경세포 화가의 주 종목은 일종의 초상화입니다. 관람객이 로봇 팔 앞에 오면 디지털 카메라가 그 모습을 촬영합니다. 이 사진은 명암에 따라 60개의 픽셀로 분할된 다음 다시 인터넷으로 신경세포에 꽂혀있는 60개 전극으로 전달됩니다. 그리고 전극은 픽셀의 명암에 따라 전류의 세기를 달리해 신경세포를 자극합니다. 검은색이 가장 강하고 흰색은 아무런 자극을 주지 않는 식이죠.

전기 자극을 받은 신경세포는 그 전과 다른 전기신호를 발생합니다. 이 신호를 로봇 팔에 전달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 배양접시의 특정지역에 있는 세포들에서 강한 전기신호가 포착되면 로봇 팔이 캔버스에서 같은 지역에 해당하는 곳에 연필로 선을 긋게 됩니다. 실제 로봇 팔이 그린 한 그림을 보면 신경세포에 전기자극을 주지 않았을 때는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전기신호가 다이아몬드 형태로 표현됐습니다. 그러나 30분 뒤 관람객의 사진에 대한 전기자극을 받은 다음에는 캔버스 아래쪽에 붓글씨 모양의 굵은 선이 나타났음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관람객의 사진에 대해 세포가 반응한 것이므로 일종의 추상적 초상화라고 할 수 있겠죠.

과학을 활용한 예술행위는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비디오아트나 홀로그램, 애너글리프 입체영상 등이 그 예들입니다. 그러나 MEART의 작품은 그 자체가 과학연구의 연장선에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신경세포들이 어떻게 서로 전기신호를 주고받는지, 어떤 지역에서 더 강한 신호가 발생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그림을 그리는 로봇 팔을 세포들과 연결한 것입니다.

이번 아트보트 전시회에서 로봇 출품자들의 자체 투표로 뽑힌 최고의 로봇인 ‘마이크로 아담과 이브’ 역시 같은 맥락에 있습니다. 독일 프라운호퍼 자동지능시스템연구소가 출품한 이 둥근 로봇은 단순한 알고리즘으로 자신의 구조나 형태를 인식하는 시뮬레이션 로봇입니다. 그래서 금단의 사과를 먹고 난 뒤 벌거벗은 자신들의 몸에 대해 알게 된 아담과 이브의 이름이 붙은 것입니다. 개발자들은 이 로봇들을 통해 새로운 환경과 알고리즘, 신체형태를 로봇에 적용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미리 알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아담과 이브에게서 모든 인류가 유래했듯 마이크로 아담과 이브도 모든 로봇의 조상이나 모델이 될 수 있다는 것이죠.

아트보트 전시회는 지난해에 이어 두번째인데, 첫해에 10개의 작품을 6백여명이 관람한 것이 올해는 22개의 작품에 관람객이 2천명을 넘을 정도로 발전했습니다. 특히 MEART가 그린 초상화들은 아트보트 전시회를 마치고나서 7월 17일 뉴욕의 또다른 갤러리에서 다시 전시됐을 정도였습니다.

예전 우리 사회에서는 과학기술자나 예술가 모두 천대받는 직업이었습니다. 그러나 과학과 예술만큼인간의 창조성이 극한적으로 발휘되는 분야가 또 있을까요. 과부 사정은 홀아비가 안다고 같은 설움을 겪은 과학자들과 예술가들이 서로에게 힘이 됐으면 합니다. 과학과 예술, 함께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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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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