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 영화의 단골메뉴다. 주인공들은 꼭 가지 말라고 하는 곳에 간다. 그리고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한 곳을 뚫어지게 쳐다본다. 관객 입장에서는 안 그랬으면 좋겠지만, 공포영화 주인공들이 저러는 데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친절하게 ‘다음 장면에서는 귀신이 나올 거야’라고 알려주는 것이다. 공포영화의 흥을 떨어뜨릴 것 같지만, 의외로 이런 장면은 관객들의 공포심을 급증시킨다. 그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우리 뇌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 뇌에서 두려움과 관련된 대표적인 부위는 ‘편도체’다. (이 말이 편도체가 공포의 담당 부위라는 뜻은 아니다. 148쪽 참조)영국 런던대의 크리스 프리드 교수팀은 1996년, 피실험자에게 행복한 표정과 겁에 질린 표정의 사람을 각각 보여줬다. 그 결과 후자에서만 편도체가 활성됨을 알 수 있었다. 편도체는 공포의 정서적 반응을 신체에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우리 몸이 공포상황에 대비할 수 있도록 신경신호를 중계하는 것이다.
편도체의 이런 작용은 태어날 때부터 바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자라면서 경험을 통해 특정 물체 및 상황에 대한 두려움을 학습하게 된다. 이를 ‘공포 조건화’라 한다. 공포 조건화는 오래 전부터 연구돼 왔다. 1920년 미국의 심리학자 존 왓슨은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실험을 진행했다. 11개월 된 아이를 대상으로 공포를 학습시키는 실험을 한 것이다. 왓슨은 아이에게 흰쥐를 보여주고, 아이가 흰쥐에 다가가려고 할 때마다 등 뒤에서 ‘쾅!’하고 큰 소리를 냈다. 아이는 처음엔 흰쥐를 무서워하지 않았지만 실험이 여러 번 반복되자 큰 소리를 내지 않아도 흰쥐만 보면 울음을 터뜨렸다. 파블로프의 개 실험과 유사한 결과다. 그렇다면 공포영화에서 귀신이 나오기 전에 나오는 장면들(주인공이 한 곳을 뚫어지게 본다든가, 화면의 불빛이나 초점이 한 곳에 집중되는 장면들)이 공포 조건화를 만들고 있지는 않을까. 왓슨의 실험에 비유하면 귀신의 전조가 되는 장면이 실험 속 ‘흰쥐’고, 귀신의 등장이 왓슨이 냈던 ‘쾅!’ 소리인셈이다.
실제로 그런지 확인해 보고자 지난 7월 7일 김성필 UNIST디자인 및 인간공학부 교수의 연구실에서 직접 뇌파 실험을 해봤다. 피실험자에게 공포영화 속에서 실제로 귀신이 등장하는 장면과 전조가 되는 장면(주인공이 한 곳을 응시)을 번갈아 보여주며 뇌파를 측정했다. 실험은 100초의 영상(전조 영상 30초와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 영상 20초, 귀신이 등장하는 30초,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 영상 20초)을 6번 반복해서 보여주는 식으로 진행됐다. 전조 장면을 중성 자극(삽입된 전조 장면은 주인공이 한 곳을 응시하는 장면이었다)으로, 귀신 장면은 공포를 자극하는 장면으로 본 것이다. 측정 결과, 뇌파의 활성도는 두 장면에서 모두 치솟았다. 특이한 점은 강도였는데, 귀신이 등장하는 장면에서 평균적으로 1.09배 높았다. 전조 장면을 볼 때와 큰 차이가 없었다. 뇌파의 변화 양상도 유사했다. 즉, 귀신이 직접적으로 등장하는 장면이나 전조 장면이나 우리의 뇌는 별반 다르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미국 뉴욕주립대 ‘감정 연구 센터(CSEA)’의 피터 랭 교수는 2009년 논문에서 실제로 불쾌한 감정(여기엔 공포의 감정이 포함된다)일 때와 그 상황을 상상할 때 각각 편도체의 활성화 여부를 측정해 비교했다. 그 결과 불쾌한 감정을 상상했을 때에도 편도체는 실제 경험과 유사한 활성을 보였다. 전조 장면만으로도 관객에게 충분히 공포의 감정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는 뜻이다.
공포의 목소리, 비결은 음색
무서운 장면을 살리는 또 하나의 요소는 ‘소리’다. 공포영화에 있어 소리는, 특히 주인공의 목소리는 흥행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다. 아닌 게 아니라 공포영화가 대중적인 영화로 사랑 받는 데엔 ‘호러퀸’들의 역할이 컸다. 공포에 질린 그들의 큰 눈망울과 귀가 아플 정도의 비명소리는 우리를 소름 끼치게 하기 충분했다. 공포영화에 나오는 여배우의 목소리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귀신을 봤을 때 내지르는 높은 음역대(300Hz 이상)의 목소리와 중요한 대사(‘이 동영상을 보면 죽어…’와 같은)를 하는 통상의 음역대 소리다. 공포감을 조성하려면 두 음역마다 각기 다른 조건이 필요하다. 특히 중요한 건 음색인데, 높은 음역대의 소리는 거친 음색, 낮은 음역대의 소리는 풍부한 음색일 때 공포감이 극대화 된다.
음색은 세 가지 조건에 따라 풍성한지, 거친지가 결정된다. 성대 떨림의 변화가 얼마나 규칙적인지(지터), 음성에 힘이 얼마나 고르게 들어갔는지(짐머), 청자에게 얼마나 조화롭게 들리는지(NHR)다. 이들을 나타내는 수치가 작을수록 잡음이 덜 들어간 소리이며 이 세 가지 수치가 전부 작으면 풍부한 음색이라고 평가한다. 이시훈 계명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는 논문 ‘목소리 구성 요소의 커뮤니케이션 효과에 대한 연구’에서 ‘음색이 빈약한 목소리에 비해 음색이 풍부한 목소리인 경우 화자에 대한 공신력 평가가 더 높다’고 밝혔다. 즉, ‘이 동영상을 보면 죽어…’와 같은 허무맹랑한 이야기도 음색이 풍부한 사람이 이야기하면 상대적으로 신뢰가 갈 수 있다는 의미다. 종합해보면 풍부한 음색을 가지고 있으며, 소리를 내지를 때는 높고 거칠게 소리를 낼 수 있는 여배우가 공포영화의 히로인이 될 확률이 높다(다음 장에서 실험으로 확인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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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이야기를 들려주마
PART1. 공포의 대상을 찾아라
PART2. 무서운 공포영화엔 이런 장면 꼭 있다!
PART3. 어떤 관객을 공략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