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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리어] 2화. 우리학교 과학시간엔요, 과학영재학교

 

6월 22일 오후 2시, 1학기 기말고사 중인 대구과학고 교정은 적막했다. ‘고등학생들이 이 시간까지 시험을 본다고?’ 의아했다. 

 

궁금증은 곧 풀렸다. 김재민 물리 교사는 “선택 과목이 매우 다양해 4교시까지만 치르면 시험 기간이 너무 길어진다”며 “물리 과목들은 보통 80~100분간 15문항 정도의 서술형 문제를 푼다”고 설명했다. 순간 고등학교가 아니라, 대학에 취재를 온 기분이었다. 김 교사에게 대구과학고의 수업시간에 대해 자세히 물었다.

 

 

01. ‘과학고’라는 이름을 그대로 쓰고 있지만 대구과학고는 2011년부터 과학영재학교로 전환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과학영재학교의 주요한 특징은 무엇인가요?

 

과학영재학교는 교육과정을 수학과 기초과학을 중심으로, 학생들의 수요를 반영해서 자체적으로 편성할 수 있습니다. 반면 일반 고등학교와 자율형 사립고등학교, 과학고등학교 등은 각각 정부가 제시하는 기준에 따라 교육과정을 편성해야합니다. 

 

제가 담당한 물리 과목의 경우, 1학년 때는 고등학교 물리학 1, 2를 듣고 2, 3학년 때는 각각 AP(대학 학점 선이수제) 과목에 해당하는 일반 물리학 실험 1, 2와 일반 물리학 1, 2, 그 밖의 다양한 심화 선택 과목을 듣습니다. 이와 같은 과학, 수학 심화과목 외에도 최근 추세에 맞게 프로그래밍 실습, 알고리즘 등의 과목도 가르치고 있습니다.

 

02. 과학영재학교의 수업 내용은 어떻게 다른가요?

 

수업에서 다루는 범위가 다른 학교들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선택 과목 중 하나인 현대 물리학 개론이라는 과목에선 수업을 할 때 그 내용을 하나하나 수학적으로 증명합니다. 학생들이 시험이나 수능에 나오지 않는 내용들도 수학적, 논리적으로 이해하길 원하니까요. 수업의 범위는 상대성 이론의 방정식들부터 양자역학, 반도체의 기초인 고체물리학의 슈뢰딩거 방정식까지 현대 물리학 전반입니다.

 

3학년들이 주로 듣는 물리학 세미나 수업은 대학 강의 수준의 물리학 문제들을 제공하고 학생들끼리 각자의 풀이를 토의하는 방식으로 진행합니다. 

 

일반 물리학 실험 수업에선 교재에 있는 실험들을 전부 다 진행합니다. 일반 물리학 실험 중에서 특히 강제감쇠조화진동 실험이나 관성모멘트 실험을 진행하고 나면 학생들은 어려워보이는 이론들이 실제로 어떻게 검증되는지 확인하면서 이론과 실험의 관계에 큰 관심을 보입니다. 그리고 마이켈슨 간섭계 실험이나 비전하 측정 실험 등도 매우 흥미로워하는 실험들입니다. 이 정도로 정교하게 진행되는 실험들은 그동안 경험한 적이 거의 없어서죠.

 

이를 위해 대학 수준의 실험 장비들도 보유하고 있습니다. 유체역학이나 항공공학 관련 실험에 필수적인 풍동 기기와 물질의 결정 구조를 조사하는 데 필수적인 X선 회절 분석기 등이 대표적입니다. 

 

학생들이 실제 대학 수업을 듣기도 합니다.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교수님들이 직접 진행하시는 로보프로젝트, 뇌과학 등의 수업들을 꾸준히 운영하고 있으며, POSTECH 교수님들이 진행하시는 수업도 온라인으로 듣고 있습니다. 변화하는 과학기술 트렌드에 맞게 학생들의 지적 욕구, 교육적 필요를 만족시키기 위해서입니다.

 

03. 과학영재학교 수업에 특별히 만족도가 높은 학생들은 어떤 학생들인가요?

 

수학과 과학 과목에서의 뚜렷한 재능을 보이고, 이런 과목들에서 스스로 재미를 느끼는 학생들이 과학영재학교에 잘 적응하는 사례를 많이 봤습니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에 호기심을 느끼고, 그 원인을 스스로 고민하고 궁리하는 과학적인 태도와 성향이 강한 학생이 만족도가 높습니다.

 

달리 말하면 단순히 중학교 수학, 과학 시험 점수는 과학영재학교 진학 여부를 판단하는 지표가 아닙니다. 중학교 시험은 학교 수업을 얼마나 잘 듣고 얼마나 열심히 공부했는지를 측정하는 것이 목적이니까요. 실제로 중학교에선 수학과 과학 점수가 좋던 학생들이 과학영재학교에 입학해서는 심화된 수준의 과목들에서 어려움을 겪거나 재미를 느끼지 못해 흔들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게다가 과학영재학교의 생활은 전체적으로 밀도가 높습니다. 3년 동안 전교생이 기숙사에 살며 매일 6시에 일어나 오후 11시에 전체 자습을 마치는 정해진 일과에 따라 생활합니다. 11시 이후에도 개인 공부를 하곤 하죠. 집에는 격주로 가고요. 

 

교과과정 외에도 각종 과학 대회에 참가하거나 봉사활동을 하는 등 프로그램이 많기 때문에 체력적,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재능과 자발성이 없으면 적응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04. 과학영재학교의 설립 목적은 기초과학 분야의 인재를 육성하고, 과학 영재들을 해당 학과로 진학시키는 것이라고 알고 있는데요. 졸업생 중 기억에 남는 학생이 있으신가요?

 

진학 과정이 특히 기억에 남는 학생은 2019년에 2학년이었던 한 학생인데요. 한화사이언스챌린지를 비롯해 물리와 실험을 주제로 한 다양한 교외 대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우수한 성적들을 거뒀고 저와도 긴 시간을 함께 보냈습니다. 너무 실험에 몰두한 탓에 어머니께서 실험을 좀 덜하게 해달라고 학교에 요청하실 정도였죠. 

 

그런데 사실 이 학생은 교과 성적도 우수했어요. 언젠가 다른 학생들보다 실험을 열심히 하면서도 성적도 잘 나오는 비결을 물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랬더니 1학기 말에 2학기 수강 과목을 선택하고 나면, 방학 동안엔 그 2학기 과목들을 선행 학습해서 학기 중의 실험 시간을 확보한다고 말하더군요. 학교에서 실험에 몰두하기 위해, 자신만의 학습 일정을 주체적으로 운영한 거죠. 이 학생은 지금 서울대 기계공학과에 재학 중입니다. 

 

한 학생만 말씀드렸지만 이렇게 우수한 학생들이 지속적으로 입학하고 또 이들의 대부분이 학교의 설립 취지에 맞게 이공계열로 진학하고 있다는 점이 과학영재학교의 특성 중 하나일 겁니다.

 

 

05. 대구과학고 학생들이 이것만큼은 꼭 배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는 점은 무엇일까요?

 

과학적 탐구란 외부 현상에 호기심을 갖고 문제를 인식해서 그 원인을 고민한 후에 가설 설정, 실험 시행, 결론 도출로 나아가는 과정을 뜻합니다. 말처럼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고민하며 긴 시간을 투자해야하죠.

 

과학적 탐구엔 꾸준함과 노력은 물론 인내의 과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포기하지 않고 인내하며 나아가는 태도는 과학에 대한 것인 동시에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자신에게 일어나는 문제점을 인식하고 그것을 고칠 방법을 고민할 때 필요한 자세죠. 그래서 이런 과학적 탐구 과정을를 학생들 각자가 스스로 체득하길 바랍니다.

 

06. 과학영재학교인 대구과학고는 교육과정을 자체적으로 기획, 운영한다고 말씀해주셨는데요. 어떤 기준이 있나요?

 

대구과학고는 과학영재학교로서 학생들의 지적 욕구, 교육적 필요를 만족시키는 동시에, 앞으로의 한국 사회에 도움이 되며 보다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수업을 계속해서 모색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과학영재학교의 교육과정은 계속해서 변화, 발전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를 위해 대구과학고에선 매년 학생들의 신청이 저조한 과목들은 폐강하고, 새로운 과목을 개설하는 식으로 유연하게 운영하고 있습니다.

 

07. 마지막으로 과학동아를 읽는 청소년 독자들에게 과학, 특히 물리 과목을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조언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깊이 있게 고민하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학생들은 정보 처리가 굉장히 빠릅니다. 그런데 과학은 깊이 공부할수록, 빠르게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많습니다. 특히 물리 과목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 문제가 많죠. 예를 들어 버스를 타고 이동할 때 몸이 휘청대는 이유를, 스스로 고민하고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습관이 자리잡으면 일상을 자신만의 문제로 바라보고 숙고하게 됩니다. 깊이 있게 고민하는 능력은 여기서 시작한다고 봅니다.

 

대구과학고는 미국에 자매학교가 있는데 지난 2019년에 학생 2명과 함께 탐구활동을 다녀왔습니다. 한국의 고등학교 2학년에 해당하는 학생들과 짝을 지어서 활동했는데, 글쎄 이 학생들이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재난용 로봇을 100대 구입해 재난 정보를 수집하는 연구를 제안하더군요. 어떻게 구입할 수 있냐고 물어보니 NASA에 직접 연락한다고 답했어요. 

 

한국이라면 비현실적이라고 바로 교사가 개입하겠지만 현장의 미국인 교사는 이 학생들의 의견을 경청할 뿐이었습니다. 이유를 물었더니 그는 “학생들은 실패에서 가장 잘 배운다. 자신들의 생각이 말이 안 된다는 사실도 스스로 배워야한다”고 답하더군요. 과학을 잘하려면 틀리지 않고 실패하지 않는 법이 아니라, 계속 실패해도 포기하지 않고 고민하는 법을 배워야한다고 생각합니다. 

 

※ 편집자 주 

‘과학고에 가면 뭐가 좋을까?’ ‘영재고 수업은 따라가기 어려울까?’ 진로 고민이 많은 독자들을 위해 다양한 학교, 다양한 과학수업을 엿볼 수 있는 연재 기사를 하반기 동안 진행합니다. 

 

2023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김재민 대구 과학고 교사, 라헌 에디터
  • 일러스트

    김남희
  • 디자인

    박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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