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도 하루하루 일상속에서 스트레스로 인한 피로가 누적되면 저항력이 약해져 병에 걸리듯이 재료도 장기간 피로가 누적되면 강도가 떨어지고 적은 힘에도 쉽게 파손된다.
모든 기계장치와 구조물을 이루고 있는 재료(금속 세라믹 플라스틱 포함)는 사용 중에 주기적이고(cyclic) 반복적인(repetitive) 하중, 또는 진동과 같이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동적(dynamic) 하중을 받게 된다. 동적 하중(반복 하중도 동적하중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이 몇달, 몇년 정도의 오랜 시간 동안 계속될 경우, 재료의 표면과 내부에는 미세한 균열이 발생할 수 있고 이것이 더욱 발전하게 되면 결국에는 재료의 파손(failure)에까지 이르게 된다.
파손이라 함은 파괴 변형 등 여러 현상에 의해 재료의 기능에 손상이 가해지는 것을 총칭하는 용어이다. 일반적인 경우 이와 같은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오랫동안 동적 하중에 의해 미세한 균열이 축적된 후이므로 이 현상을 우리는 '피로'(fatigue)라고 부른다.
재료가 하중을 받으면 재료의 내부에서는 그 하중에 대항하는 응력(stress)이 발생한다. 우리가 흔히 재료의 강도(強度)라고 하는 것은 재료가 파손되지 않고 견딜 수 있는 최대 응력이라 보면 된다. 가령 사람의 경우 별다른 건강상의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감내할 수 있는 육체적 정신적 스트레스의 한도라고 보면 된다.
그런데 사람도 하루하루 일상속에서 다양한 스트레스로 인한 피로가 누적되면 저항력이 약해져 각종 질병에 쉽게 감염되듯이, 재료의 경우에도 장기간 피로가 누적되면 재료의 강도는 떨어지고 적은 힘에도 쉽게 파손되게 된다. 한번에 큰 힘을 가해도 잘 끊어지지 않는 철사줄이 작은 힘을 서로 반대 방향으로 여러번 반복해서 구부렸다 폈다 하면 끊어지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와같이 단 한번 가하여 파손되는 하중보다 훨씬 작은 동적 하중 하에서 일어나는 파손을 '피로 파손'(fatigue failure)이라고 하는데, 이중 재료의 피로파괴는 특히 큰 문제를 야기시킬 수 있다.
최근 발생한 성수 대교 붕괴 사건이 좋은 예인데, 교량 위를 움직이는 수많은 차량들은 각각이 하나의 동적 하중으로 작용하고 차량으로부터 전해지는 진동이나 바람 등도 교량의 각 부위에 동적 하중을 가한다. 이는 시간이 흐름에 띠라 필연적으로 각 부위를 구성하는 재료의 피로 현상을 유발하므로 설계와 시공 당시 이에 대한 충분한 고려가 있어야 함은 물론이고, 평상시에도 피로에 의한 재료의 강도 저하 현상을 감시하고 보수하여야한다(사진 1). 또 얼마 전에는 장항선을 운행하던 객차의 차축이 부러지는 바람에 탈선하는 사고가 있었다. 이것 역시 진동하는 동적 하중을 받는 차축이 내구 연한(20년 정도) 이 지난 상태에서 누적된 피로에 의하여 파괴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성수대교 피로 파괴의 전형
외국의 예로는 1988년에 일어난 미국 하와이언 항공사 소속 보잉 737 제트여객기의 동체 윗부분 파손 사고를 들 수 있다(사진 2). 하와이 섬들간을 운항하던 이 비행기는 운행중 객실 앞부분 천장이 완전히 파손되어 떨어져 나간 상태로 20여분 동안 비행한 후 가까스로 비상착륙에 성공하였다. 인명 피해는 크지 않았으나 피로에 의한 파괴의 전형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주로 고온 다습한 섬 지방을 운항하던 이 비행기는 부식에 의한 재료의 피로 현상이 두드러져 내구연한(민간항공기의 경우 약 20년 정도)에 다다르기도 전에 일부가 파손되어 버린 것이다. 원인은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진 동체의 리벳용 구멍에 균열이 발생하고 이것이 점점 커져 파손에까지 이르게 된 것으로 규명됐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재료의 파손은 부분적이라 할지라도 경우에 따라서는 엄청난 인명과 재산상의 피해를 가져올 수 있다. 미국의 1982년 통계에 따르면, 재료의 파손에 따른 비용은 GNP의 약 4%에 해당되는 1천1백90억달러였다. 이 비용 중에는 파손을 방지하기 위하여 재료를 더 많이 사용하거나, 고품질 재료의 사용 또는 고가의 처리과정을 통한 재료의 고강도화에 소요되는 비용뿐만 아니라 파손 방지를 위한 제품 설계 단계에서의 실험 및 분석, 파손 가능한 재료의 검사 정비 교환, 그리고 파손이 발생했을 때 회수 소송 보험 등에 소요되는 모든 비용이 포함돼 있다.
총비용 중 차량 및 건설(주거 및 비주거용)과 관련된 분야에서의 비용이 각각 10% 정도 차지하며 5% 정도는 항공기와 관련된 비용이다. 기계장치의 파괴는 대부분이 (약 80-90%) 피로에 의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위에서 언급한 총 비용 중 약 80%정도가 피로에 의해 영향을 받은 경우라고 추정하면 미국의 경우 1982년에만 총 1천억달러 (총 GNP의 3% 이상) 정도가 재료의 피로 현상 때문에 지출되었다고 할 수 있다.
19C 초, 독일에서 시작
피로 현상에 대한 연구는 이미 1800년대 초 독일에서부터 시작되었고 '피로'라는 단어를 공학적 용어로 처음 사용한 것은 1839년경 프랑스에서였다. 이후 1800년대 중엽에 기차의 차축 샤프트 기어 교량 등에 사용되는 부품의 피로를 연구하게 되면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 피로 현상을 방지하기 위한 노력은 이미 1850년 경부터 독일에서 시작되었는데 철도 차량의 차축파손이 동기가 되었다. 1백 5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요즘, 피로 현상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있음에도 유사한 사고가 발생하고 있는 것은 다시 생각해 볼 문제이다.
피로에 의한 균열 발생 메커니즘은 (그림 1)에서 잘 설명된다. 재료의 윗부분과 아랫부분이 동적 하중에 의하여 서로 상반된 반복 운동을 하게 되면 그 사이 부분은 굴곡을 형성하게 되고 이것이 균열로 발전하게 된다. 피로 파괴는 작은 하나 또는 몇개의 균열이 먼저 기계 표면에 발생한 다음 이것이 몇 단계를 거치면서 발전하여 파손에까지 이르게 된다.
이 때 균열이 성장하여 크기가 뚜렷해지고 숫자가 늘어난다는 것은 재료에 피로가 누적된다는 의미이다. 이와 같은 현상을 '기계 피로에 의한 균열의 성장'(fatigue crack growth)이라 한다. 현재 이를 분석하는 방법이 잘 발달되어 있어 주기적으로 표면을 검사하고 보수하는데 사용되고 있다. 이후 균열이 충분히 커져 재료내의 온전한 부분만으로는 더이상 하중을 견디기 어려워지면 재료는 파괴된다.
차량 속도를 제한하는 이유
피로 파괴는 장기간에 걸쳐 이루어지기 때문에 통계적 분석이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피로 한도(fatigue limit)라고 하는 통계적 수치를 피로 파괴의 기준으로 사용한다. 재료 내부에 이 값 이하의 응력이 발생하면 아무리 오랜 기간 동안 동적 하중이 작용하여도 파괴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보면 된다. 그러나 재료에 너무 큰 하중이 가해져 큰 응력이 발생할 때, 또는 동적 하중에 의한 응력의 변화하는 폭이 크거나 변화(반복) 횟수가 많을 때에는 피로 파괴의 위험성이 높아진다. 교량 위를 통과하는 차량의 무게를 제한하는 것은 전자 때문이고, 속도를 제한하는 것은 후자의 예로 안전 사고 예방의 목적도 있지만 교량의 보호 차원에서도 필요하다.
이외에도 이제까지의 많은 피로 파괴 시험 결과를 종합해 볼 때 피로 현상은 시험편의 형상, 표면 상태 및 금속구조, 사용온도, 잔류응력 등 여러 인자에 의해 영향받는다. 시험편에 결손 부위나 구멍, 불순물 등이 있으면 그 주변의 응력이 다른 부위보다 상대적으로 증가하는 '응력 집중'이 일어나기 때문에 피로 한도는 대단히 낮아진다. 볼트를 조이기 위한 구멍, 용접 부위 등 접합부가 특히 취약하다.
표면이 거칠어도 피로에 취약하다. 세라믹 재료의 경우, 부스러지기 쉬운 재질인데다 표면에 미세한 균열도 많다. 이러한 균열은 대단히 날카롭기 때문에 응력집중이 발생하기 쉬워서 피로 파괴가 일어나기 쉽다. 발전소의 터빈이나 비행기의 제트엔진과 같이 고온에서 사용하거나 기계 표면에 산화나 부식이 있을 경우도 동적 하중이 결합되어 피로가 급속히 진행된다. 이 때문에 바다와 같이 습하고 소금기 많은 환경하에서 작동하는 기계장치는 특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또는 여러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시너지 효과(synergic effects)를 발생시킬 수도 있다.
기계 피로에 의한 재료의 파괴는 공학 설계에서 대단히 중요한 관심사항 중의 하나이다. 예를 들면, 흔히 제품을 설계할 때 고려하는 내구성이란 장시간 동안 그 기능을 잃지 않고 사용할 수 있는 정도를 의미한다. 자동차의 경우 내구성이 좋은 자동차는 피로 등 점진적으로 발생하는 현상 때문에 수명이 단축되거나 수리 비용이 많이 들지 않아야 한다. 또 피로로 인하여 구조상의 결함이나 오동작에 의한 사고 위험을 유발해서는 안되므로 기계 피로를 고려한 설계는 대단히 중요하다.
재료의 피로 현상을 염두에 두고 설계할 때 종래에는 재료에 발생하는 응력을 피로 한도보다 훨씬 낮도록 설계하였다. 그러나 이는 그렇게 효율적인 방법이 못된다. 최근의 설계 개념은 재료 내부에 피로에 의한 균열이 파괴로 이르기 전에 주기적인 검사에서 발견될 수 있는가를 고려하여 설계한다. 따라서 이 개념의 성패 여부는 비파괴 검사기술로 문제 부위를 확실히 진단할 수 있는가의 여부에 달려 있다 하겠다.
담금질도 피로회복의 방법
피로 파괴의 특징은 파괴될 때까지 모르는 사이에 진행되고 특별히 눈에 뜨이는 징후도 없이 갑자기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는 데 있다. 금속 재료의 안전도는 피로 시험을 통해서 사전에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장시간에 걸친 많은 샘플 데이터를 필요로 하는 통계적 기법이므로 모든 경우에 대하여 시행할 수는 없다. 일반적으로 보면, 기계의 표면 또는 내부 균열은 재료를 만드는 과정에서 생길 수 있고 앞에서 설명한대로 사용 중에 생길 수도 있다.
따라서 사용중 발생하는 피로를 억제하기 위해서는 재료의 제조과정에서 표면상의 균열을 최대한 제거할 필요가 있다. 대체로 균열은 잡아당기는 힘(인장력)에 약하므로 재료의 표면에 압축 잔류응력이 생기게 하면 피로 한도를 어느 정도 높일 수 있다. 이 원리를 이용하여 재료의 표면을 후가공하는 기술이 상업적으로 많이 쓰이고 있다. 이중에는 롤러를 사용하여 표면을 동정하거나 재료를 담금질하는 방법이 대표적이다. 또 강철이나 주철로 된 총알(shot)을 고속으로 표면에 쏘아 다듬질 효과를 내는 방법도 있다. 이 방법은 용접 부위에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다.
기계 사용중 발생하는 피로 파괴는 전적으로 균열이 기계 피로에 의해 얼마나 빨리 성장하느냐에 달려 있다. 재료의 표면에 발생하는 균열은 보통 육안으로 식별이 가능하므로 재료의 표면을 정기적으로 검사하는 것이 필요하다. 일단 이상이 발견되면 비파괴 검사장비를 동원하여 재료의 내부까지 검사하게 된다.
비파괴검사 방법은 여러가지가 다양하게 개발되어 사용중인데 초음파(ultrasonic wave)를 이용하여 재료의 내부에서 반사되어 나오는 반사파를 분석하는 방법, 음향파(acoustic emission)를 이용하여 재료의 각종 내부 변형을 감지해내는 방법, 그리고 재료 내부의 상태나 거동을 감시하는 방법 외에 와류(eddy current)나 전자기, 염료를 이용하여 표면상의 결함을 검출하는 기법도 있다.
한 조사에 따르면 기계 파손과 관련된 총 비용 중 약 3분의 1 가량이 현재 사용 가능한 기술만 잘 활용하여도 절약될 수 있다고 하며, 3분의 1 정도는 향후 개발될 신기술에 의해 절약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나머지 3분의 1 정도는 특별히 기술의 급격한 변화가 없는 한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대략 총비용의 3분의 2 정도가 현재 또는 향후 사용가능한 기술에 의해 절약될 수 있다고 판단된다. 특히 기계장치 차량 선박 항공기 교량과 같은 구조물 등을 설계하는 사람은 기능과 경제성 못지않게 내구성과 안전성도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
기계 피로에 의한 재료의 파손과 같은 극단적인 현상은 단순한 재료의 손실 이상으로 인명과 재산의 손실을 가져올 수 있으므로 이에 대한 좀 더 많은 관심과 연구, 그리고 작업 현장에서 보다 철저한 관리 유지 보수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