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역사상 최초로 인류는 종말을 막을 기술을 갖게 됐습니다.” 1998년 개봉한 마이클 베이 감독의 영화 ‘아마겟돈’에 서 소행성을 파괴하러 떠나는 석유시추공들을 앞에 두고 미국 대통령이 하는 말이다. 석유시추공들은 속성(?)으로 비행기술을 배워서 우주로 날아간 다음 소행성에 구멍을 뚫고 핵폭탄을 터뜨려 지구를 구한다. 하지만 핵폭탄은 그리 좋은 대안이 아니다. 소행성에 핵폭탄을 심는 것도 어렵지만, 터뜨리는 데 성공해도 잔해가 어디로 튈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잘못하면 괜히 방사능 물질만 잔뜩 묻은 잔해가 지구 전역으로 떨어질 수 있다.
마이클 베이 감독이 요즘 영화를 만들었다면 좀 더 세련된 방법을 골랐을 것이다. 우주에서 작은 소행성을 포획해 큰 소행성 에 충돌시켜 방향을 바꾸는 방법 말이다. 마치 당구공 치듯이, NASA는 영화 같은 이런 계획을 실제로 추진하고 있다. 바로 소행성궤도변경 임무(Asteroid Redirect Mission)다. 잘하면 2020년경엔 인류 역사상 최초로 ‘소행성에 의한 종말’을 막을 기술을 갖게 될 수도 있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계획
‘혹시 뻥 아니야?’ 날아가는 소행성을 붙잡는다는 허무맹랑한 아이디어를 처음 접하고 눈을 의심한 건 기자만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인지 NASA에서도 영화 예고편 못지않은 화려한 영상을 만들어 최근 유튜브에 공개했다. QR코드를 스캔해 한번 감상해보자.
◀ 지구위협소행성은 지름 140m 이상, 지구 근지점 760만km 이하인 소행성을 말한다(그림에서 붉은 점/선). 약 4700개가 있다. 그림에서 보듯이 일반적인 근지구소행성(푸른 점/선)보다 지구 궤도에 훨씬 가깝다.
소행성이 지구에 부딪칠 위험은 얼마나 될까. 태양과 가장 가까운 거리(근일점)가 2억km(1.3AU, 1AU는 약 1억5000만km, 지구와 태양과의 거리) 이내인 소행성을 ‘근지구소행성’이라고 부른다. 11월 4일까지 발견된 근지구소행성은 모두 1만1610개. 이 중 지구에 심각한 위협을 끼칠 수 있는 지름 100m급 이상은 7000여 개다. 다행히 100년 안에 지구에 충돌할 것으로 예상되는 대형 소행성은 없다.
아직 안심하긴 이르다. ‘현재까지 발견된’ 소행성 중에 그렇다는 이야기니까. 밤에 검은 옷을 입고 다니면 눈에 잘 띄지 않듯이, 소행성 중에도 표면물질이 햇빛을 잘 반사하지 않아 망원경에도 보이지 않는 것들이 많다. 이런 미확인 소행성은 지름 100~300m급만 약 1만3700여 개로 추정된다. 도시 하나를 초토화시킬 수 있는 지름 30m급은 발견된 게 1%에 불과하다.
성을 추적해 본 결과, 기존 예측치가 과대평가됐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 1000m 이상 980개
- 500~1000m 1500개
- 300~500m 2400개
- 100~300m 1만5700개
- 100m 이하
NASA가 소행성궤도변경 임무를 추진하는 것도 이런 미확인 소행성의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임무에는 여러 가지 세부계획이 포함돼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소행성 포획이다. 지구와 달 사이를 지나는 지름 10m 이하 작은 소행성을 우주선으로 붙잡아 대형 소행성을 막는 데 쓴다는 계획이다. 포획할 후보로는 2009 BD, 2011 MD, 2013 EC20 세 개가 유력하다. 작기도 하거니와 탄소로 이뤄져 있어 혹시라도 지구에 추락하면 대기권에서 타 없어진다.
우주선이 박살나진 않을까?
작은 소행성이라지만 무게가 수십~수백t에 이르는, 총알보다 빠른 돌덩어리인데 괜히 가까이 다가갔다가 우주선만 박살나는 건 아닐까. 답부터 말하자면, 안심해도 될 것 같다. 먼저 속도는 달의 중력도움을 받아서 해결하면 된다. 우주선을 소행성과 똑같은 속도로 맞추면 우주 공간에 함께 정지해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필래 착륙(1파트 참조) 때보다 오히려 쉬운 점도 있다. 소행성의 자전속도를 고려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빠르게 회전하고 있는 소행성을 어떤 마술을 부려 붙잡는 걸까. NASA는 소행성을 담을 가로 15m, 세로 10m짜리 대형 비닐봉지를 준비했다. 이걸 마트에서 파는 쓰레기봉투처럼 차곡차곡 접어서 우주선에 실어간다. 소행성을 만나면 비닐봉지 안에 들어있던 외골격이 펴지면서 거대한 위용이 드러난다. 두께가 20cm니까 플라스틱 가방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다. 여기엔 최첨단 소재기술이 집약돼 있다. 캡톤이나 마일러, 우레탄과 같은 소재에 케블라, 벡트란, 다이니마 같은 섬유강화제도 섞는다. 소행성을 감싸도 찢어지지 않을 만큼 꽤 질기다.
가방 안쪽에는 털도 100여 개 달려있다. 길이 7m, 두께 7mm인 얇고 긴 털은 소행성에 부딪쳐 마찰력으로 회전을 서서히 멈추게 한다. 소행성이 완전히 정지하는 데까지 약 42분이 걸린다. 가만히 기다리기만 하면 소행성 포획 끝! 이제 붙잡은 소행성을 안전한 곳으로 옮겨 놓으면 된다. 지구와 달 사이에는 라그랑주점이라는 곳이 있다. 지구와 달의 중력이 평형을 이뤄 어느 쪽으로도 쏠리지 않는 안정된 곳이다. 창고처럼 소행성을 보관해 뒀다가 나중에 필요할 때 꺼내 쓰면 된다. 조금 있다 자세하게 말하자.
수백t에 이르는 소행성을 옮기기 위해서 NASA는 역대급 추진장치를 준비하고 있다. 소행성포획용 우주선에는 지름 10.7m의 고출력 대형 태양전지판 두 개를 달 계획이다. 이온 추진 로켓도 장착한다. 제논 가스에 전압이나 자기장을 걸어 전자와 양이온으로 분리한 뒤 무거운 양이온을 빠른 속도로 가속시켜 내뿜는 이온엔진은 연료효율이 좋다. 시속 1만5000km까지 우주선을 가속시키기 위해 기존 화학로켓은 연료를 3500kg이나 쓰는데, 이온로켓은 540kg만 있으면 된다.
소행성 주변을 뱅글뱅글 돌며 중력 견인
달 궤도 창고에 보관해뒀던 소행성을 드디어 꺼내 쓸 때가 왔다. 거대 소행성이 지구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한 것. 납치해 둔 소행성과 함께 우주선째 들이받아 궤도를 바꾸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비싼 우주선이 박살나는 게 아까우니 좀 더 신사적인 방법을 쓰자. 거대 소행성의 한쪽 귀퉁이에 다가가 빙글빙글 공전만 하면 된다.
진짜 그것만 해도 될까. 과학자들이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해봤다. 지름 540m인 이토가와 소행성 바로 옆에서 3m짜리 암석을 든 우주선을 공전시켰다. 60일이 지나자, 티끌 같은 중력이 모여 태산 같은 소행성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작은 암석만으로도 거대 소행성의 궤도를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이럴 거면 굳이 멀리 떨어진 곳에서 다른 소행성을 납치해 올 게 아니라, 위협이 되는 거대 소행성의 표면에서 암석만 하나 떼어내 공전시키면 안 될까. 이 아이디어가 ‘소행성궤도변경임무-옵션B’다(앞서 설명한 포획작전은 ‘소행성궤도변경임무-옵션A’). 문어처럼 로봇팔이 달린 우주선이 거대 소행성에 착륙해 3m 정도 크기의 암석을 하나 떼어내는 작전이다. NASA에서는 이토가와나 베누, 2008 EV5 같은 중대형 소행성을 대상으로 실험을 계획하고 있다.
PLUS 소행성 vs 혜성
소행성과 혜성은 비슷한 듯 다르다. 공통점은 태양계가 만들어질 때 태양과 행성이 생기고 남은 잔해라는 점, 지구에 부딪혀 물과 생명의 기원이 됐을 것이라는 점이다. 차이점은 아래와 같다.
혜성 | 소행성 | |
---|---|---|
성분 | 얼음과 드라이아이스, 먼지 | 암석 |
궤도 | 대부분 해왕성 너머의 ‘카이퍼 벨트’에 위치. 포물선 궤도 | 주로 화성과 목성 사이에 위치. 원형 궤도 |
특징 | 태양에 접근하면 핵에서 가스가 분출하며 최대 100만km에 이르는 긴 꼬리가 생김 | 단단한 고체 표면을 가졌고 대기가 없음 |
소행성 하나는 5000조 원
소행성궤도변경 임무는 사실 NASA의 다목적 포석이다. 가장 큰 목적이야 소행성의 궤도를 바꾸는 일이지만, 그것 말고도 화 성탐사의 디딤돌, 소행성 연구, 물 확보 등 여러 가지 목적이 섞여있다. 멀리 떨어진 곳으로 전투기를 보낼 때 항공모함을 이용하듯, 소행성을 붙잡아다가 지구와 화성의 길목에 세워두고 징검다리처럼 이용하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거나 별 효용가치가 없을 것”이란 지적도 있지만, 오바마 행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화성탐사 계획의 한 부분으로 추진되고 있다.
소행성 자체에 대해서도 연구할 수 있다. 내부는 어떤 성분으로 이뤄져 있는지, 생명의 기원이 될 유기물도 들어있는지, 지구 에 충돌한다면 어떤 피해를 입힐지 등 연구할 거리는 무궁무진하다. NASA의 차기 유인우주선 오리온 호가 소행성을 포획한 우주선과 만나 그곳에서 연구를 하거나, 샘플을 채취해 지구로 돌아올 계획이다.
달이나 화성 기지에서 사용할 물을 소행성에서 공급받으려는 계획도 있다. 드물지만 물이 풍부한 소행성도 있다. 우주에서 물 은 금보다 비싸다. 지구에서 우주정거장까지 물을 싣고 가는 데 1L에 2만 달러(약 2000만 원)가 든다. 이런 경제적 가치를 보고 민간 기업들도 소행성 납치 프로젝트에 뛰어들고 있다. 영화 ‘아바타’의 제임스 캐머런 감독과 래리 페이지 구글 최고경영자(CEO),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 등이 투자해 2012년 설립한 기업 ‘플래니터리 리소시스(Planetary Resources)’는 우주망원경을 쏘아 올려 수분과 광물이 풍부한 소행성을 찾을 계획이다. 우주에서 물이 풍부한 지름 500m급 소행성을 하나 잡았을 때 그 가치는 5조달러, 우리 돈으로 500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이 회사는 추정하고 있다.
희토류처럼 지구에서 귀한 금속도 소행성에서 구할 수 있다. 미국의 벤처기업 ‘DSI(Deep Space Industries)’는 지난해 1월 우주광산을 개발한다는 야심찬 계획을 발표했다. DSI는 지구에 인접한 소행성 9500여 개 가운데 18%인 1700여 개에서 희소 광물을 캐낼 수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구에서 1온스(약 30g) 당 1500달러인 백금으로 가득한 500m급 소행성이 있다면 그 가치는 2.9조 달러, 우리 돈으로 2900조 원에 이른다.
아예 소행성에 공장을 세울 수도 있다. 문홍규 한국천문연구원 우주위험감시센터 연구원은 “NASA는 소행성 현지에서 자원 을 캐낸 다음, 3D프린팅 기술을 이용해 즉석에서 기지를 만드는 연구도 계획 중”이라고 말했다. 미국 행성 과학자들이 미래에 가장 잘 나갈 만한 분야로 꼽는 게 바로 소행성 채굴이다. 2005년이토가와 소행성에서 세계 최초로 미립자를 반입하는 데 성공한 일본은 11월 30일 두 번째 소행성 탐사선 ‘하야부사2’를 발사할 계획이다. 하야부사2는 ‘1999JU3’ 소행성에서 시료를 채취해 2020년 귀환할 예정이다. 영화에서나 보던 우주 자원전쟁이 본격적으로 막이 올랐다는 걸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소행성궤도변경 임무는 그 서막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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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2. 소행성 ‘보쌈’해 지구 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