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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얼마나 강력한 도구인지는 우리 모두 경험해봤다. 해수욕장에서 파도를 타고 놀다가 물을 먹거나 정신을 차리니 해변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던 것은 약과다. ‘집채만한 파도’는 정말 만들어질 수 있다. 이처럼 위험한 파도는 대체, 왜, 언제 생기는 것일까.


이제는 ‘쓰나미’라는 말이 낯설지 않다. 3년 전, 일본에서 있었던 ‘일본 대지진’ 사건 때문이다. 후쿠시마 앞바다에서 일어난 규모 9.0의 강진 탓에 파고가 10m에 달하는 쓰나미가 일본 동쪽을 덮쳤다. 바닷가에 있던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마저 무너졌다. 스마트폰 덕분에 사고 당시 쓰나미가 몰려오던 모습은 여러 각도에서 찍혔다. 1t이 넘는 자동차들이 종이배 흐르듯 물살에 휘말리고, 집이 힘없이 무너지는 광경은 이미 지나간 동영상임에도 몸을 떨리게 만든다. 당시 최대 파고는 40.5m에 달했으며 해안에서 10km 안쪽까지 바닷물이 밀려왔다.

안타깝게도 쓰나미는 예보하기도, 피하기도 어렵다. PART2에서 말했던 대로 수심과의 관계 때문이다. 쓰나미는 파도의 분류에서 천해파에 해당한다. 파장이 100~500km로 긴 이 파도의 속도는 무려 시속 760km나 된다. 제트여객기와 맞먹는다. 센다이 동쪽 179km지점에서 연안까지 도달하는 데 15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지진이 발생한 즉시 피한다고 하더라도 몸을 피할 시간이 겨우 15분이란 의미다. 쓰나미 자체를 예보할순 없냐고? 먼저 지진을 예측할 수 있어야 하는데, 썩 긍정적인 답변을 하기
가 어렵다(자세한 내용은 과학동아 2013년 5월호를 확인해보자).

쓰나미 주의보는 지진이 발생했을 때, 그 에너지가 해일을 일으킬 정도로 큰 경우 발령한다. 이 때 만약 바다에 나가 있었다면 먼 바다로 나가는 것이 차라리 안전하다. 동일본 대지진에서 발생한 파도의 높이는 지진 발생 지점에서 70cm에 불과했다. 지진해일의 초기 파고가 30~60cm인 것을 생각하면 매우 큰 편이지만 먼 바다에서 파도가 70cm 출렁이는 것은 일반적인 일이다. 지진 발생 지점에서 배를 타고 있었다면 주변의 다른 파도와 섞이면서 파도가 생겼는지, 지진이 발생했는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파고 70cm, 파장 200km에 달하는 파도가 중간에 에너지를 소진하지 못하고 육지로 도달하게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수심이 얕아지면서 파도의 윗부분, 마루가 뾰족해지고 해저면쪽 속도가 느려진다. 결국 뾰족해진 마루가 무너지며 해안가를 덮친다. 초기속도 보다야 느려지지만 시속 700km가 넘는 물이 밀려들기 시작한다. 이 때문에 쓰나미 주의보는 근처에서 지진이 발생하면 일단 발령한다. 쓰나미가 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기 때문이다.
 

『지진이 발생하면 규모에 따라 일단 쓰나미 주의보를
발령한다. 육안으로 쓰나미가 목격됐을 때는
피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쓰나미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한 가지 더. 쓰나미 재난 영화로 인기를 끌었던 해운대처럼 거대한 파도가 선 채로 몰려오는 일은 없다. 일본 쓰나미 영상에서 봤던 것처럼 어마어마한 물이 밀려들어올 뿐이다. 파도가 벽처럼 섰다가 무너지는 것은 파고와 수심의 비가 4:3일 때인데, 애초에 워낙 파고가 높은 쓰나미는 우리 눈에 보이기 전에 이미 무너진 채로 밀려들어온다.



일본과 같은 대형 쓰나미가 우리나라에 일어날 일은 없지만 때때로 인명피해가 발생하는 해일이 일어난다. 주로 4~5월에 서해에서 발생하는 ‘기상 쓰나미’다. 2008년 5월 4일, 충남 보령시 죽도 해안가에서는 정말 ‘난데없는’ 해일이 닥쳤다. 이 사고로 선착장에 있던 관광객과 인근 갯바위에서 낚시하던 낚시꾼 9명이 사망했다. 사고 당시에는 바람도 1~2m로 약했고, 파도의 높이도 0.5m 정도로 잔잔해 해일이 일어날 것이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인명피해가 없었을 뿐, 서해와 남해에서 기상 쓰나미가 발생한 것은 최근 10년간 벌써 6차례다. 기상청은 올해부터 서해와 남해안 24곳에 감시용 CCTV와 파도 관측기를 설치하고 기상 쓰나미 감시에 들어갔다.

당시 미스테리로 남았던 기상 쓰나미는 이제 어느 정도 비밀이 풀렸다.  바다를 잘 아는 사람들은 흔히 바다 날씨는 알 수 없다고 말한다. 눈앞에선 바람이 잔잔하고 햇볕이 내려쫴도 배를 타고 조금만 나가면 파도가 거셀 수 있다. 기상 쓰나미 역시 이럴 때 발생한다. 먼 바다에서 저기압이 생기면 상승기류가 생긴다. 기압이 낮은 만큼 해수면 역시 높아지면서 파도가 생긴다. 이 파도는 저기압과 함께 육지로 이동하면서 큰 해일로 변한다. 서쪽에서 불어오는 편서풍에 의해 저기압과 해일이 서해 동쪽에 있는 해안가로 밀려오는 것이다.

 
단순히 저기압에 의한 파도라면 크게 위험하지 않다. 태풍은 강한 저기압이지만 해일 만큼 거대한 파도를 만들지는 않는다. 기상 쓰나미는 저기압에 밀물이 더해질 때 생겨난다. 우리나라 서해는 밀물과 썰물 사이에 해수면 높이 차가 크다. 수m에 달하는 해수면 변화는 기상 쓰나미에도 영향을 미친다. 사실 저기압에 의해 파고가 2m에 달하는 강력한 파도가 만들어져도, 썰물 때와 겹쳐 물이 빠지는 시간이라면 큰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육지로 밀려오는 파도 에너지와 바다로 빠지는 썰물의 에너지가 상쇄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밀물 때는 두 에너지가 겹쳐지면서 파도가 더 강해진다. 충남 보령의 기상 쓰나미는 두 가지 기상 현상이 겹쳐서 만들어진 불행한 사건인 셈이다.
 
기상 쓰나미 역시 예측은 불가능하다. 기상 쓰나미를 만드는 국지성 저기압은 그날 날씨에 따라 갑자기 생겨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기상청의 감시체계도 예측이 아니라 먼 바다에서 저기압이 나타나면 진행 방향에 있는 해안에 경고를 하는 체계로 만들어졌다.


여름을 맞이해 6월 1일, 해수욕장의 상징인 부산 해운대 해수욕장이 개장했다. 도시의 편의시설을 즐기면서 해수욕도 즐길 수 있는 해운대 해수욕장의 개장은 본격적인 여름이 왔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매년 사고가 있었다는 사실. 사람을 순식간에 먼 바다로 휩쓸고 가는 ‘이안류’ 때문이다. 사실 시시때때로 발생하지만 여름에만 사람이 바다에 들어가니 여름마다 부각된다. 파도가 바다에서 육지쪽으로 움직이는 것과 달리 이안류는 육지에서 먼 바다로 흘러간다. 해운대의 경우 무려 500m나 흘러간다. 초속 2~3m로 빠르기 때문에 한번 휩쓸리면 속수무책이다. 바람이 초속 2~3m라면 별 것 아니지만 물은 바람보다 밀도가 무려 1000배나 크다. 물이 초속 2m로 흐를 때는 우리나라에 큰 피해를 입혔던 매미나 볼라벤 같은 초대형 태풍과 비슷한 힘을 가진다. 당시 항구에 있던 대형 크레인이 넘어진 것만 봐도 물이 초속 2m로 흐르는 것이 얼마나 강력한 흐름인지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이안류에 휩쓸렸을 때는 당황하며 역으로 거슬러 올라오지 말고 옆으로 빠져야 한다. 박태환이라도 초속 2m로 흐르는 이안류에서는 거슬러 헤엄칠 수 없다.


이안류는 파도와 지형이 결합해 만들어지는 현상이다. 먼 바다에서 온 파도는 육지에 도달하면서 에너지를 잃는다. 이 때 육지에 수직인 운동성분은 소멸하지만 육지와 평행인 운동성분은 남아서 해안선을 따라 흘러간다. 일반적으로는 얼마 못가 사라진다. 그러나 해운대에서는 특별한 지형이 이 흐름을 새롭게 만든다. 가운데가 움푹 팬 골짜기 지형이다. 해안선을 따라 흐르던 물은 바다 쪽으로 뻗은 골짜기를 따라 흘러간다. 강하게 치던 파도의 힘이 고스란히 거꾸로 흐르는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 매년 움푹 팬 골짜기를 모래로 메우지만 여전히 속수무책이다. 지금은 수시로 파도를 감시하면서 경고하는 방법뿐이다. 국립해양조사원은 해수욕장 앞바다에 설치한 파고계를 이용해 해수욕장 이용객에게 위험상황을 전달하는 ‘이안류 감시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다행히 피해자가 한 명도 없었다. 올해는 대천해수욕장까지 이안류 감시시스템을 운영한다. 높이 2m짜리 파도 하나가 이동할 때 100W 전구 250개를 밝힐 수 있는 에너지가 이동한다. 낭만적이고 시원한 바다를 만드는 데 기여하는 파도지만 마냥 물로만 봐서는 안 되는 파도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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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오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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