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말, 이탈리아의 사제 조르다노 브루노는 “지구는 태양의 주위를 도는 행성이며, 태양이 아닌 다른 별도 태양처럼 행성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시는 종교에서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주장하던 시기였다. 브루노는 종교재판에 회부돼 7년간 옥살이를 한 뒤, 1600년 화형을 당했다. 하지만 불과 10년 뒤, 이탈리아의 천문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손수 만든 망원경으로 목성 주위를 돌고 있는 4개의 위성을 발견했다. 지구가 모든 천체의 중심이 아니라는 브루노의 생각을 증명한 것이다.
40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태양조차도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사실을 안다. 천문학자들은 다른 태양계, 즉 다른 별의 주위를 도는 외계행성을 약 1700개 발견했으며, 지금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그렇다면 다른 의문이 생긴다. 지구처럼 생명체가 존재하는 외계행성은 없을까.
물론 가능성이 있다. 지구와 환경이 비슷한 행성이라면 가능성은 더 높아진다. 하지만 현재까지 발견된 외계행성은 대부분 지구보다 훨씬 크며, 대부분 목성처럼 기체로 이뤄져 있다. 생명체가 살기에 맞지 않는 조건이다. 애써 1000개가 넘는 외계행성을 찾았는데, 지구 밖 생명체를 찾는 일은 포기해야 하는 걸까.
이강환
서울대 천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천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영국 켄트대 로열소사이어티 펠로우를 거쳐 현재 국립과천과학관에서 연구사로 활동하고 있다. 우주생물학 도서 ‘우리는 모두 외계인이다’ 등을 번역했고, 최근에는 우주 가속팽창을 다룬 책 ‘우주의 끝을 찾아서’를 펴냈다. kanghwan@msip.go.kr
달에 진짜 옥토끼가 살고 있을지 모른다
실망하기에는 이르다. 이런 행성계가 지구와 같은 ‘암석 천체’를 갖고 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위성이다. 태양계만 봐도 거대한 가스 행성인 목성이나 토성, 해왕성, 천왕성이 지구처럼 단단한 암석질로 된 위성을 갖고 있다. 그 중에는 각종 유기물이나 물을 지닌 것도 있다. 실제로 과학자들이 태양계에서 지구 이외에 생명체가 살 가능성이 있는 곳으로 꼽는 천체는 행성보다 위성이 더 많다. 목성의 유로파, 토성의 엔셀라두스가 대표적이다.
이 위성들은 액체 상태의 물이 풍부하다. 1995년부터 2003년까지 목성을 선회한 갈릴레오 탐사선이 수집한 자료를 분석하면, 유로파는 대부분이 암석 물질로 만들어져 있지만, 겉에는 물로 이루어진 두꺼운 껍질을 두르고 있다. 껍질의 가장 외곽 부분은 단단하게 언 상 태(얼음)이며, 15~30km 정도의 두께일 것으로 예측되 고 있다. 이 밑에는 깊이가 80km나 되는 물의 바다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계산을 바탕으로 과학자 들은 유로파에 지구보다 2~3배나 많은 물이 있다고 추 정하고 있다. 흔히 지구를 생명을 품은 물의 행성이라 고 하지만, 그보다 몇 배 더 풍성한 물의 왕국이 지구보 다 훨씬 작은 위성에 있는 것이다.
2005년 토성 탐사선 카시니호는 토성의 위성 엔셀라 두스에서 이상한 현상을 발견했다. 표면에서 우주로 뻗 어 나오는 얼음과 수증기의 기둥을 발견한 것이다. 이 관측 결과를 본 과학자들은 큰 충격에 빠졌는데, 최근 카시니 호의 관측 자료를 분석한 결과 엔셀라두스에도 상당히 많은 양의 물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특히 남한 면적의 80%에 달하는 넓은 바다가 있으며, 여기 에 인, 황, 칼륨 같은 물질까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모두 생명체를 구성하는 중요한 원소들이 다. 과학자들은 이런 환경이라면 미생물과 같은 생명체 가 살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110쪽 INSIDE 참조).
유로파나 엔셀라두스에 우리가 지구에서 보는 동물 이나 식물과 같은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은 거의 없 다. 존재한다면 미생물일 가능성이 높다. 미국 항공우 주국(NASA)은 아직 시기가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유로 파에 착륙선을 보내 구성 성분과 생명체의 존재여부를 조사할 계획이다.
엔셀라두스 역시 2005년 얼음과 수증기 기둥이 발견 된 이후 가장 중요한 탐사 대상으로 꼽히고 있다. 2008년 에 주요 탐사 임무를 완료한 카시니 호는 2010년까지 첫 번째 추가 임무를 완료했고 두 번째 추가 임무를 계획하 고 있다. 엔셀라두스의 비밀이 더 밝혀지길 기대한다.
‘메탄 생명체’가 살 수 있는 타이탄
천문학자들이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 고 있는 또 하나의 태양계 가족은 토성의 위성 타이탄이다. 타이탄은 목성의 위성 가니메데에 이어 태양계에 서 두 번째로 큰 위성인데, 가장 큰 특징은 짙은 대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타이탄의 대기는 대부분 질소로 이뤄져 있으며, 메탄과 아르곤, 그리고 미량의 수소분 자, 일산화탄소 등이 존재한다. 타이탄은 생명체가 존 재할 가능성이 큰 위성 중에서도 탐사가 가장 많이 이 뤄져 있다. 2004년 크리스마스날, 토성 궤도를 돌며 관 측을 하던 카시니 호는 오랜 시간 비행을 함께 해 온 하 위헌스 호를 떼어냈고, 하위헌스 호는 21일 동안의 탄성 비행을 마치고 무사히 타이탄에 착륙했다.
하위헌스 호는 타이탄에 착륙하면서, 발 밑에 보이는 풍경을 수백 장 촬영했다. 동시에 타이탄의 대기를 분석 했다. 이때 찍힌 사진들은 멋진 광경을 보여줬다. 마치 호수로 보이는 곳으로 흘러가는 강의 흔적 같았다. 이 강과 호수는 지금은 말라 있지만, 타이탄에 종종 차가 운 비가 내렸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때로 내린 비는 강 과 호수를 액체 메탄으로 채웠을 것이다.
타이탄의 표면은 너무 추워서 액체 상태의 물이 존재 할 수 없다. 하지만 물 대신 액체 메탄을 사용하는 생명 체가 존재할 가능성은 있다. 생명 분자들이 생명체 안 에서(세포 안이나 세포 사이를) 이동하기 위해서는 반드 시 액체 상태의 매개체가 있어야 한다.
액체 상태의 매개체로는 지구처럼 물이 가장 좋다. 물 은 넓은 온도 범위에서 액체 상태를 유지할 수 있고 우주에 흔하게 존재하며, 극성을 가 지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형태의 화학 결합을 할 수 있다. 하지만 타이탄처럼 액체 상태의 물이 존재하기 어려운 곳 에서는 액체 메탄이 대신할 수 있다. 온도가 낮아 화학 반응의 진행 속도가 너무 느리기 때문에 좋은 조건은 아 니지만 앞서 이야기했듯 우주의 생명은 얼마든지 다양 한 형태를 가질 수 있다. 액체 메탄을 사용하는 생명체 의 존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이유다.
INSIDE | 목성과 토성 위성이 ‘물 저장소’인 이유
공전궤도가 타원형이 되면 위성들이 공전할 때 목성과의 거리가 수시로 크게 달라진다. 목성으로부터 받는 중력도 달라진다. 마치 풍선 양끝을 손으로 잡고 줄였다 늘렸다를 반복하는 것처럼 위성은 미세하게 형태가 변하는데, 이 과정에서 내부에 마찰열이 발생한다. 이게 조석가열이다. 목성에 가장 가까이 있는 이오는 조석가열도 가장 크게 일어난다. 이에 따라 내부에 지나치게 많은 열이 발생하고 결국 화산활동이 일어난다. 원래 이런 환경은 너무 뜨거워서 물이 존재하기 어려운데, 유로파는 목성으로부터 받는 조석가열이 절묘하게 물이 존재하기에 적당한 수준으로만 유지되고 있다.
엔셀라두스는 더욱 특이하다. 이 위성은 지름이 겨우 500km로, 달의 약 7분의 1밖에 되지 않는 작은 위성이다. 이 때문에 천문학자들은 조석가열이 크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전체가 꽁꽁 언 얼음 위성이며, 생명이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을 거라고 확신했다. 이 때문에 카시니 호가 얼음기둥을 발견했을 때 충격이 컸다.
엔셀라두스의 사례를 통해, 과학자들은 한 가지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는 환경에는 제약이 적다는 사실이다. 생명은 우주 곳곳, 우리의 상상보다 훨씬 다양한 곳에 살 가능성이 있다.
‘외계 위성’에 주목한다
태양계의 행성이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는 위성을 가 지고 있다면, 다른 별의 주위를 도는 외계행성도 가능 하지 않을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아직은 발견된 적이 없다. 위성은 행성보다도 작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의 관측 자료로 외계 위성을 발견하는 것이 아주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2009년에 발사돼 작년 5월까지 활동한 케플러우주망원경은 약 1000개의 외계행성과 4000여 개의 외계행성 후보를 발견했다. 그 중 가장 크기가 작은 케플러-37b는 달보다 약간 큰 정도다. 거의 위성 크 기의 행성을 발견했다면, 비슷한 크기의 위성을 발견하 는 것도 가능하다.
미국 하버드-스미스소니언 천체물리센터의 데이비드 키핑 박사는 케플러우주망원경의 관측 자료를 이용해 외계 위성을 찾고 있다. 케플러우주망원경은 외계행성 이 자신이 묶여 있는 별의 주위를 돌면서 별빛을 가리는 현상을 관측해 외계행성을 찾아낸다. 그런데 이 외계행 성의 주위를 위성이 돌고 있다면 행성이 별빛을 가리는 주기가 조금씩 차이가 나게 된다. 이러한 주기 차이를 측정하고 분석해 외계 위성의 존재를 알아낼 수 있다.
만약 위성이 꽤 크다면 다른 방법도 가능하다. 위성 과 행성이 우리가 보기에 옆으로 나란히 있다고 해보자. 행성 하나가 별빛을 가릴 때에 비해 별이 어둡게 측정 될 것이다. 이 역시 측정하기 쉽지 않겠지만, 위성을 찾 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과학자들은 두 가지 방법을 함께 사용할 수 있다면 위성의 크기와 함께 질량도 구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키핑 박사가 현재 가장 열심히 분석하고 있는 자료는 케플러-22b의 관측 자료다. 케플러-22b는 태양과 유 사한 별 주변의 골디락스 영역(별과 행성 사이의 거리 영 역으로, 생명체가 탄생하기 좋은 조건을 지니고 있는 영 역)에 있는 행성으로,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 다만 행성이 지구의 약 2.5배로 다소 크기 때문에 암석 이 아니라 기체로 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만일 케플러-22b가 위성을 가지고 있다면? 골디락스 영역에 존재하는 암석 위성이라는 최적의 조건이 완성된다. 외 계 행성보다 먼저, 외계 위성에서 생명을 찾게 될 날이 올까.
쌍둥이 지구에도 달은 뜨는가
먼 미래 어느 날, 우리가 그토록 고대하던 ‘쌍둥이 지구(지구와 크기와 구성성분이 매우 닮아 생명이 살 수 있는 행성)’를 찾았다고 해보자. 이제 가장 중요한 질문 이 하나 남아 있다. 바로 그 행성에 위성이 있느냐다. 이 것은 그 행성이 ‘정말로’ 쌍둥이 지구인지 아니면 그냥 지구와 유사한 환경을 가졌지만 별로 관계는 없는 행성인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조건이다. 만일 지구에 달이 없 었다면 지구의 기후와 계절 변화는 지금과 크게 달랐 을 것이다. 달은 지구의 지축을 일정한 각도로 안정시키 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과거에는 달이 지구에 훨씬 더 가까이 있었는데(조금씩 멀어져 지금에 이르렀다), 이 때에는 달의 조석력이 지구에 생명체가 탄생하고 진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생명의 탄 생 과정에서 물속이 아닌 곳에서 배열된 분자들이 물 에 반복해서 녹는 과정이 필요한데, 큰 조석력이 그 역 할을 도와준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발견한 쌍둥이 지구가 달과 비슷한 위성을 가지고 있는지 여부는, 그 행성에서 생명체가 탄생하고 진화했을지 연구할 때 결 정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현재의 관측 기술로 외계 위성을 발견하는 일은 쉽지 않다. 하지만 더 좋은 망원경은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멀지 않은 미래에 외계행성이나 위성의 대기 성분은 물 론, 위성이 행성을 가리는 모습까지 정밀하게 관측할 날 이 올 것이다. 밝기 변화를 통해 표면 구조도 알아낼 것 이다. 외계 위성은 태양계 밖 생명체 탐색에 점점 더 중 요해질 것이다.
▼관련기사를 계속 보시려면?
INTRO 위성 요리사를 위한 7가지 레시피
Part 1 - 난 오늘밤도 삐딱하게 뜬다
Part 2 - Moon Story
Part 3 - '달 토끼' 사는 외계 위성 존재할까
'모른다는 것'이 천문학 연구의 매력 (타이탄 연구자 심채경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