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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류인플루엔자 10문10답

H5N1 의미에서 치료제 원리까지

“전 국민이 정신적 ‘독감’에 걸릴 지경이다!?”


지난 5월 13일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조류인플루엔자(AI) 재조명 세미나’에서 서울대 의대 박승철 교수는 “AI에 대한 막연한 공포감과 국민의 근심이 닭고기나 오리고기를 무조건 피하는 수준까지 악화됐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실제로 닭고기 매출은 전년대비 약 60%, 달걀 매출은 전년대비 약 40%나 줄었다. 특히 올해 발생한 AI바이러스는 사람도 감염시킬 수 있는 고병원성으로 온국민의 관심이 집중됐다.


지난 4월 1일 전북 김제에서 발생한 고병원성 AI바이러스는 경기도 안성을 거쳐 서울 광진구로 진입했고 이는 송파구, 서초구 같은 인구밀집지역으로까지 퍼졌다. 그러나 무조건적인 걱정은 금물! 조류인플루엔자에 대한 10문 10답을 통해 AI에 대한 막연한 공포를 떨쳐 버리자.

 



1 조류독감이라는 말은 틀리다고 하던데 왜 그런가?

▶AI와 유행성 독감은 원인 바이러스가 달라


AI바이러스에 감염된 닭은 ‘독감’ 증상이 없다. 그리고 독감이라는 단어는 부정적인 느낌을 주기 때문에 바이러스 학회와 전염병 학회에서는 더 이상 ‘조류인플루엔자’를 ‘조류독감’이라고 부르지 말 것을 결의했다.

감기와 독감, AI 모두 호흡기를 통해 감염된다. 그러나 감기의 원인은 아데노바이러스, 유행성 독감의 원인은 인플루엔자, AI의 원인은 조류인플루엔자바이러스로 원인 바이러스가 각각 다르다.

아데노바이러스는 DNA바이러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와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RNA바이러스다. DNA바이러스는 변이가 적어 치료하기 쉽지만, RNA바이러스는 변이가 잦아 치료약을 만들기가 어렵다.



조류인플루엔자 구조와 조합
 

80~120nm(나노미터, 1nm=${10}^{-9}$m) 크기 공에 500여 개 단백질 못을 박아 놓은 형태다. 
바이러스는 H를 이용해 숙주에 침투하고 N을 이용해 다른 숙주로 전파한다. M1단백질에 둘러싸인 핵에는 RNA, 핵단백질, 폴리머라제가 복합체를 형성하며 유전자 복제와 변형을 통해 변종을 만들어 낸다.



2 H5N1의 의미는?

▶AI바이러스 표면의 단백질 조합 표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종류는 바이러스 표면에 있는 헤미글루티닌(H)과 뉴라미다제(N)라는 두가지 단백질의 조합에 따라 결정된다. H는 16종, N은 9종인데, 조합되면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종류는 총 144종(16X9)이 된다. 이중 사람의 몸에서 번식할 수 있는 바이러스 유형은 H 3종류(H1, H2, H3)와 N 2종류(N1, N2)다. 즉 인체를 공격할 수 있는 AI바이러스는 H1N1, H1N2, H2N1, H2N2, H3N1, H3N2 6가지뿐. 그런데 최근 인체 감염이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H5N1, H7N7, H9N2가 종을 뛰어넘어 사람을 공격한다고 밝혀졌다.
 

구덩이에 비닐을 깐 뒤 살처분한 조류을 넣고 그 위를 생석회로 덮는다. 생석회가 물과 만나 열을 내면 AI바이러스가 사멸한다.


3 AI 감염 조류를 땅에 묻으면 AI바이러스가 더 이상 퍼지지 않나?

▶생석회가 물과 만나 일으킨 열반응이 바이러스 죽여


현재 국내에서는 AI 감염이 의심되는 조류를 죽인 뒤 땅에 묻는다. 조류를 땅에 묻으면 AI바이러스가 없어질까? 현재 매몰방식은 구덩이의 바닥과 벽면에 비닐을 깔고 그 위에 조류의 사체를 넣는다. 그리고 조류의 사체 위에 흙과 생석회를 번갈아 덮는다. 생석회(CaO)가 물과 만나면 소석회(Ca(OH)₂)가 되면서 열이 발생한다. 그 결과 내부 온도가 200℃ 이상으로 높아진다. 미국 농업연구팀 가금류연구실 데이비드 스웨인 박사가 2007년 ‘식량생산저널’에 발표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AI바이러스는 닭고기 100g을 기준으로 70℃에서 5.5초 안에 죽는다. 매립한 뒤 땅 속 온도는 AI바이러스가 죽기에 충분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매립한 뒤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정부가 지금까지 매립한 가금류는 700만 마리 이상이다. 전주환경운동연합은 전북지역의 감염조류 매립지에서 침출수가 유출됐다고 주장했다. 지난 4월 환경부가 해당 지역을 조사한 결과 질산농도가 음용기준치인 10mg/L보다 3배 많았다. 조류 사체가 분해되며 생기는 유기물과 각종 병균이 지하수를 오염시켰을 가능성이 있다.

구덩이에서 열이 발생할 때 내부의 압력이 높아지는데, 이때 침출수와 악취가 외부로 배출될 수 있다. 환경부는 5월 중 현재 사용하는 비닐을 고밀도 합성수지 시트로 바꾸고, 관을 묻어 침출수를 따로 처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4 길거리 비둘기도 조심해야 하나?

▶비둘기가 AI바이러스를 전파한 사례는 없지만 분변은 피해야


비둘기는 AI바이러스에 저항성이 강해 체내에서 AI바이러스를 증식시키지 않는다. 또한 비둘기가 사람에게 AI바이러스를 전파한 사례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질병관리본부는 비둘기의 분변은 피하라고 조언한다. 분변에 AI바이러스가 서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AI바이러스가 사람의 폐로 들어가려면 조류의 분변이 말라 가루의 크기가 100μm(마이크로미터, 1μm=${10}^{-6}$m) 이하로 작아져야 하고 동시에 다량의 바이러스가 수용체에 달라붙어야 한다. 충북대 수의대 모인필 교수는 “조류의 분변가루 크기가 100μm가 될 수준으로 마르면 바이러스는 이미 모두 죽어버릴 것”이며 “사람의 AI 수용체에 다량의 AI바이러스가 동시에 붙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5 닭고기와 달걀을 먹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AI바이러스는 열에 약하므로 익혀 먹으면 문제 없고 달걀에는 AI바이러스 존재할 수 없어


AI바이러스는 인간의 호흡기, 코의 점막, 눈의 점막을 통해 들어간다. 사람이 처음 고병원성 AI바이러스에 감염된 경우는 1997년이다. H5N1형인 고병원성 AI바이러스로 당시 총 18명이 감염됐고 이 중 1/3이 사망했다. 이를 포함해 세계보건기구(WHO)의 조사 자료에 따르면 2003년부터 2008년 4월까지 전 세계에서 382명의 H5N1 감염환자가 발생해 이 가운데 241명이 사망했는데 치사율이 63%에 이른다. 그러나 감염이나 사망자가 있던 국가는 대부분 보건위생이 열악한 곳이었고 방 안에서 조류을 키워 바이러스에 노출되는 빈도가 높은 곳이었다. 또한 베트남에서는 에크치엔보(Ech chien bo)란 샐러드 요리를 먹는데 이는 오리의 생피를 드레싱으로 쓴다. 조류는 일단 AI바이러스에 감염되면 하루에 1억 개의 바이러스를 내놓는데, 이를 조리하지 않고 날것으로 먹었다가 인간 기도에 있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수용체와 결합하면서 AI바이러스에 감염될 위험이 크다.

모 교수는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열에 약하므로 익힌 닭고기는 마음 놓고 먹어도 된다”고 강조했다. AI에 걸린 닭은 곧바로 죽기 때문에 시장에 나올 가능성이 희박하다. 또한 계란에는 AI바이러스가 침범하지 않는다. 조류는 소화기관에서 AI바이러스를 번식하기 때문에 생식기관으로 AI바이러스가 넘어갈 가능성은 거의 없다.
 

H5N1바이러스의 이동^2003년에 발생한 AI는 중국에서 유입됐고, 2006년에 발생한 AI는 시베리아에서 유입된 바이러스가 원인이었다. 2008년 전국을 휩쓸고 있는 AI는 베트남 인근지역에서 유입된 것으로 밝혀졌다.


6 AI가 올해 더욱 많이 일어난 이유는?

▶닭은 물론 오리까지 감염됐기 때문


충북대 수의학과 모인필 교수는 “작년까지는 닭만 AI바이러스에 감염됐지만 올해부터 오리가 AI바이러스에 감염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닭은 고병원성 AI바이러스에 걸리면 곧바로 죽는다. 반면 오리는 고병원성 AI바이러스에 감염돼도 절반 정도는 살아서 다른 조류에게 바이러스를 퍼뜨린다. AI바이러스는 고병원성과 저병원성으로 나뉘는데, 감염된 병아리 중 75%가 사망하면 고병원성으로 분류한다.

매년 국내로 유입되는 AI바이러스는 유형이 다르다. 우리나라에는 2003년과 2006년에 이어 올해로 3번째 AI가 발생했다. 2003년의 AI바이러스는 중국 쪽에서 유입됐으며 2006년은 북쪽지방인 러시아에서 유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는 어떨까. 국립수의과학검역원 역학조사위원회는 지난 5월 17일 베트남 인근에서 날아온 철새가 AI를 옮긴 것으로 보인다고 결론 내렸다. 전북 김제시, 정읍시, 전남 영암군과 충남 논산시, 경기 평택시에서 발견된 ‘H5N1’형 바이러스는 모두 같은 계통이었다. 역학조사위원장인 경북대 수의과 김기섭 교수는 “이번에 한국에서 발견된 AI바이러스는 닭과 오리에서는 AI를 일으켰지만 사람을 감염시킨 적은 없다”고 밝혔다.

 


7 조류만 만지지 않으면 AI를 피할 수 있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변종 만드는 돼지도 문제


그렇지 않다. 돼지, 말 등 조류가 아닌 동물도 AI에 걸릴 수 있다. 게다가 돼지는 조류가 옮긴 AI바이러스와 사람이 옮긴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한몸에 담을 수 있다.

바이러스는 RNA가 8조각나있어 두 종류의 인플루엔자가 만나면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낸다. 돼지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변종을 만드는 ‘공장’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조류와 사람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수용체가 다르기 때문에 조류에게 걸리는 AI바이러스가 무조건 사람에게 감염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 돼지가 관여하면 조류의 AI바이러스가 사람에게 감염될 위험이 커진다. 연세대 생명공학과 성백린 교수는 “돼지의 몸에서 AI바이러스와 인체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섞이면 인체에서 성장 가능한 AI바이러스 유형이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성 교수는 “현재 정부는 닭과 오리 같은 조류만 단속하는데, 사실 돼지도 단속해야 한다”며 “돼지가 만들어 낸 AI바이러스가 고병원성일 경우 파급효과가 상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AI바이러스와 폐포 괴사^사람은 기관지 상피세포와 폐포에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수용체가 있다. 수용체에 AI바이러스가 결합하면‘적’을 죽이는 사이토카인이 분비되거나(1) 바이러스를 잡아먹는 대식세포가 활성화된다. 대식세포는 T림프구를 활성화해 면역반응을 일으키고(2), 자기 스스로 사이토카인을 내놓는다(3). 사이토카인은 세포를 죽이는 기능을 하는 단백질인데, AI바이러스에 감염돼 사이토카인의 양이 늘어나면 폐포가 괴사한다. 심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8 사람이 AI에 감염되면 어떤 증상이 생기나?

▶고열이나 기침 동반한 감기증상과 비슷해


사람이 AI에 걸리면 38℃ 이상의 고열과 함께 기침, 인후통, 호흡곤란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심하면 목숨을 잃는데 이는 세포를 죽이는 사이토카인 단백질(TNF-α)이 과다 분비되기 때문이다. 사이토카인은 외부에서 침입한 바이러스나 병원균을 공격해 죽이는 ‘방위대’다. 그런데 사이토카인이 과다분비되면 외부 침입자는 물론 자신의 세포도 무차별적으로 공격한다. 결국 폐포와 호흡기 세포가 괴사하고 심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9 AI 치료제는 현재 어느 수준까지 발달했나?

▶치료제 타미플루, 예방백신 프리판드릭스


AI바이러스는 H와 N이라는 두 개의 항원을 갖는다. 두 항원이 모습을 수시로 바꾸기 때문에 AI바이러스의 변종형은 아주 많다. 예를들어 H5N1 유형도 돌연변이를 일으키면 다양한 변종이 존재할 수 있다. AI를 약으로 쉽게 다스릴 수 없는 이유도 H와 N이라는 항원이 수시로 몸을 바꿔 약의 그물에서 요리조리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현재 시판되는 AI 치료제는 스위스 제약회사인 로슈에서 만든 타미플루가 유일하다. 이 약은 체내에서 AI바이러스의 증식을 억제한다. H와 N 항원을 무력화시키는 분자를 함유해 바이러스가 숙주(사람의 세포)에서 증식하지 못하도록 막는다. 타미플루는 알약으로 먹은 뒤 2~3일이 지나야 효과를 볼 수 있어 AI가 발생한 당일에 타미플루를 복용하면 타미플루의 효과를 볼 수 없다.

최근 AI를 예방할 수 있는 백신이 등장해 주목받고 있다. 지난 5월 20일 유럽연합의 시판 허가를 받은 GSK의 프리판드릭스는 변종 AI바이러스도 예방할 수 있다. GSK에 따르면 이 백신은 베트남에서 발견된 H5N1형 바이러스와 인도네시아에서 발생한 H5N1에 모두 면역반응을 보였는데, 두 바이러스는 유형이 달랐다.
 

국내 AI 발생 현황^4월 1일 전북 김제를 시작으로 올해들어 전국의 31곳에서 H5N1형 고병원성 AI바이러스가 연속적으로 발생했다. 전문가들은 아직 AI가 한국인의 체내에 토착화될 가능성은 낮다고 설명한다.


10 AI바이러스가 국내에 토착화된다는 의미는?

▶지역 토착화는 가능하나 인체 토착화는 불가능


AI의 발생빈도가 높아지면서 AI가 한국에 토착화돼 풍토병이 되는 것은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이번에 발발한 AI바이러스가 인체에 토착화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인체토착화는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AI가 연중 발생해 인체 감염 위험이 높고, 생조류와 오리류에 AI바이러스 감염이 만연한 때를 말하기 때문이다.

인체토착화는 불가능하지만 저병원성 AI의 지역토착화는 가능하다. 연세대 생명공학과 성백린 교수에 따르면 고병원성 AI바이러스도 수십 년이 지나면 저병원성으로 바뀌어 한국에서 사람과 공존할 수 있다. 1918년 스페인독감 대참사의 원인인 H1N1 바이러스는 90년이 지난 현재 일개 독감바이러스로 힘이 약해졌다. 현재 H1N1에 감염돼 목숨을 잃는 사람은 찾기 힘들다. 2003년 5세의 어린이를 감염시켰던 H9N2 고병원성 AI바이러스도 현재는 저병원성으로 약해졌다. 보통 양계장 닭의 60% 정도가 H9N2에 감염되지만 이들은 산란율이 떨어지는 증상만 보일 뿐 목숨을 잃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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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목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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