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2. 위기를 도약의 기회로 삼은 선진국

국가가 나서 과학교육 변혁

이공계 기피 현상이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지만, 생활 소득이 향상되고 있는 국가에서는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지적도 있다. 여러 선진국에서는 이공계를 비롯한 과학교육 문제가 어떻게 발생했으며, 어떻게 대처하고 해결해 왔을까.


핀란드-국민 모두가 엔지이너 마인드 갖춰

핀란드는 유럽의 북쪽에 있는 인구 5백만명을 약간 넘는 조그마한 나라다. 최근 국제경영개발원(IMD)은 핀란드의 산학 협동을 세계 1위로 평가했으며, 경쟁력 강화를 위한 학교시스템의 경제계 요구 수용에 있어서도 세계 1위, 국가 경쟁력은 미국과 싱가포르에 이어 세계 3위라고 평가하고 있다.

사실 핀란드는 우리가 IMF때 그러했듯이 1980년대 후반 거품 경제가 무너지면서 부동산 가격이 폭락했고, 은행 부실화가 확산돼 1993년의 경제성장률은 -6.2%, 실업률은 17.9%에 달했다. 이후 핀란드는 10년도 채 안되는 시간 내에 어떻게 현재의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는 국가로 발전했을까.

이에 대해 헬싱키 공대 교수는 “학교 수업과 연구가 산업 안에서 이뤄진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헬싱키 공대는 5년 과정으로 대개 3학년이 되면 학생들은 거의 산업체에 취직을 해 회사와 학교를 병행하고 있다. 또한 핀란드의 경쟁력의 비결은 “엔지니어의 인구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고, 실용적인 문화적 특성이 주요 원동력”이라고 설명한다. 핀란드 국민은 대졸 이상자가 70%이며, 대학에서 공대생 비율이 23% 정도나 된다. 엔지니어를 존경하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돼 있으며, 국민 모두가 엔지니어 마인드를 가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핀란드 정부는 정보통신기술을 핵심 국가전략으로 삼고, ‘핀란드: 지식기반사회’라는 국가발전전략을 수립했다. 핀란드에는 ‘클러스터’라는 특유의 산업조직 형태가 있는데, 지역마다 공대를 중심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 연구소가 서로 협력하는 종합단지인 8개의 산업 클러스터를 조성했다.

핀란드 정부가 잘한 일 중 또 하나는 연구개발(R&D) 투자다. 핀란드 정부는 경제위기를 겪으면서도 오히려 연구개발 투자를 확대했고, 대학을 연구개발의 전략기지로 만들었다. R&D 투자가 GDP(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80년대만 해도 2%를 넘지 못했지만 2000년에는 3.1%로 껑충 뛰어 올랐다. 그 결과 핀란드는 IMD 평가에서 R&D 총투자의 GDP 비율에서 세계 3위국으로 부상했다. 국민 1천명당 연구개발인력 비율, 기술 개발과 응용 환경, 기술개발 펀딩 등에서는 세계 1위다. 작지만 강한 나라, 우리가 벤치마킹해야 하는 중요한 곳이 아닐 수 없다.


1985년 미국과학진흥협회는‘프로젝트2061’이라는 연구 프로젝트를 착수했다. 헬리혜성이 지구를 찾아온 1895년을 시작으로 다시 찾아오는 2061년까지 장기간 의 계획하에 미국 국민의 과학적 소양을 향상시키겠다 는 과학교육 개혁 계획이다.



미국-엄청난 규모의 과학교육 지원금

미국에서 이공계 인력 수급 문제가 최초로 제기된 것은 1950년대였다.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면서 미국은 당시 옛 소련과 세계의 패권을 두고 핵무기와 우주 개척 등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1950년대 들어서면서 미국은 옛 소련에 비해 과학기술의 경쟁에서 뒤쳐진다는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1957년 10월 4일 옛 소련은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호를 성공적으로 우주에 발사했다. 미국의 경각심은 극에 달했고, 정치인과 군사전문가들은 과학교육의 개혁이야말로 자존심을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깨닫게 됐다. 곧 엄청난 양의 자금이 투입돼 과학교육의 개혁이 시작됐다.

미국에서 과학교육의 개혁은 대학교의 과학자들로부터 시작됐다. 1956년 MIT대 물리학과 교수였던 자카리아스는 중등 학교에서 과학 교과가 제대로 가르쳐지지 않던 현실을 개탄하면서 물리과학연구회(PSSC)를 결성했다.

이 연구회를 중심으로 물리학자들은 물리학의 개념 구조에 충실한 새로운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이어 1957년 국가방위교육법의 통과로 미국과학재단(NSF)은 학교 과학교육 혁신에 엄청난 자금을 투자했다.

1958년부터 1961년까지 불과 3년 동안 9천4백만달러(약 1천2백억원)라는 천문학적인 돈이 과학교육 개혁을 위해 투입됐으며, 1961-1975년 사이에는 6백만달러(약 78억원)가 추가됐다. 이러한 과학교육 연구개발 투자로 ‘PSSC물리’를 비롯한 새로운 과학교육과정과 교재가 개발됐고, 1975년까지 총 28개의 과학교육과정 개혁 프로젝트가 수행됐으며, 1970년대 중반까지 과학교육 개혁에 투입된 NSF의 자금은 무려 15억달러(약 2조원)에 이르렀다.

그러나 막대한 투자에도 불구하고 NSF의 지원 하에 개발됐던 프로그램들이 학교 과학교육의 개선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1976년 미국 전역의 교육구 중 약 50%만이 NSF의 중등과학 프로그램을, 그리고 약 30%만이 초등과학 프로그램을 채택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당시 NSF 프로그램 중 가장 널리 사용됐던 IPS 프로그램만 약 25% 사용되었을 뿐 나머지 프로그램들은 10%도 채 사용되지 못했다.

이처럼 1960-70년대 NSF 중심의 엄청난 투자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과학교육이 학교와 학생들로부터 외면당하자, 미국은 이를 다시 국가적 위기로 파악하고 그 극복을 위한 대대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이때를 과학교육자들은 흔히 ‘과학소양의 위기’라 부른다. 1983년 미국의 국가교육우월성위원회는 ‘위기에 처한 국가’라는 중요한 정책보고서를 발표하였다. 이 보고서가 발표된 이후 5년 간 3백편 이상의 보고서들이 미국 과학교육의 위기를 지적했고, 1983년에는 20건의 관련 법안이 의회에 제출됐다.

실제로 미국 과학교육이 위기에 봉착했다는 증거는 곳곳에서 발견됐다. 국가과학학력평가는 1990년대 미국 17세 아동의 과학 실력이 1970년대보다 오히려 떨어진다는 점을 보고했으며, 1990년대 시행됐던 국제수학과학 학력비교연구에서 미국은 항상 꼴찌군을 형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성인들이 과학에 ‘무식’한 것을 개탄해 1985년 미국과학진흥협회는 ‘프로젝트2061’이라는 야심찬 연구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헬리 혜성이 지구를 찾아온 1985년을 시작으로 다시 혜성이 지구를 찾는 2061년까지 미국 시민의 과학적 소양을 대대적으로 향상시키겠다는 내용의 프로젝트2061은 장기적인 과학교육 개혁 계획이다.

무슨 일이 발생하면 단기적인 깜짝쇼로 대처안을 마련해왔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입만 열면 ‘교육백년지대계’(敎育百年之大計)를 습관적으로 말하는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영국은 과학대중화와 과학교육을 활성화하기 위해 청 소년 과학 활동과 과학관, 박물관, 식물원 등의 활동을 적극 지원한다.
 


영국-과학 문화를 생활 속에 정착

영국의 경우 과학기술의 역사가 오랜 만큼 그 위기를 극복했던 역사 역시 상당히 깊다. 산업혁명을 주도한 영국의 과학기술에 대한 선두적 자부심은 1851년 런던 대박람회에서 절정에 달했지만, 1860년대 이후 심각한 위기에 빠져들었다. 국가 주도적 과학기술 연구 체제를 갖췄던 프랑스와, 훌륭한 대학 과학기술 교육과 실험을 통한 연구 체제를 갖췄던 독일이 과학기술 분야에서 영국을 훨씬 능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영국의 많은 과학자들은 과학의 쇠퇴가 곧 국가의 위기임을 강조하는 과학운동을 전개하면서 과학기술 분야의 교육과 연구, 그리고 전시 공간을 한 곳에 모은 일종의 ‘과학 특구’를 만들 것을 계획했다. 효율적인 과학기술의 진흥을 꾀했던 이곳이 바로 오늘날에도 영국의 과학기술 교육과 연구와 문화를 대변하는 런던의 사우스켄싱턴 지역이다. 이곳에는 빅토리아 여왕의 부군이던 앨버트 공의 정신적인 후원의 흔적으로 세워진 임페리얼 칼리지가 있고, 대중적 과학문화의 장인 과학 박물관과 자연사 박물관이 들어서 있다.

영국은 미국과 다르게 전통적으로 조기 전문화 교육과 엘리트 교육을 지향했으며, 핵심적인 과학기술 인력의 공급보다는 과학기술의 저변 확대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우리나라의 고등학교에 해당하는 연령층이 되면 학생들은 상당한 정도로 자신의 미래 직업에 따라 전공 관련 교과목을 집중적으로 공부한다. 이후 대학에 진학한 후에는 곧바로 전공 학습으로 이어지는 것이 일반적 경향이다.

인문사회계열과 이공계열 간의 의사소통 부재에 따른 불균형과 경직성을 극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경주했는데, 1920-40년대에는 과학에 대한 포괄적인 학습을 강조했던 일반과학교육 운동이, 1970-80년대에는 과학기술과 사회의 연관성을 강조하는 교육 운동이 크게 일어났다. 1990년대 이후에는 ‘과학대중이해’가 과학기술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한 국가 사회의 중요한 조건이라는 인식 아래 시민의 과학소양과 과학기술적인 생활태도 등의 강조에 무게를 두고 있다. 또한 과학을 대중화하고 과학기술을 보편적인 문화의 한 형태로 뿌리내리게 하기 위해 영국과학진흥협회 등이 중심이 돼 다양한 학교 밖 과학활동과 행사를 확산시키고 있다.

과학대중화 및 과학문화 운동에는 영국의 대표적인 과학단체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데, 왕립학회, 과학진흥협회, 과학교육협회, 왕립연구소, 왕립공학아카데미, 물리학회, 왕립화학회 등이 그 대표적인 예에 해당한다.

영국은 특히 다양한 청소년 과학활동과 이를 적극 지원하는 과학관, 박물관, 식물원 등의 활동이 두드러진다. 또한 TV 등 방송이나 신문들에 과학면이 풍부해 학생들을 자연스럽게 과학기술 분야로 유도한다. 어찌 보면 영국은 과학문화의 정착을 통해 학생들의 이공계로의 기피현상을 미리 방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002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조숙경 박사후 연구원
  • 송진웅 교수

🎓️ 진로 추천

  • 화학·화학공학
  • 전자공학
  • 컴퓨터공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