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용후핵연료가 독성을 잃고 안전하게 되기까지는 매우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일부 핵폐기물은 10만 년 뒤에도 남아있다. 인류가 이렇게 오랜 시간을 관리할 수 있을까. 그래서 나온 것이 ‘수동적 관리’다. 사용후핵연료를 100~200년 동안 능동적으로 관리해 비교적 안전한 수준으로 독성을 떨어뜨린 뒤 안전한 장소에 장기 처분하는 것이다. 현재는 지하 약 500m 이하 암반층에 장기 저장하는 ‘심지층처분’이 가장 유력하다. 최근 이보다 더 깊은 3~5km에 묻는 ‘심층시추공처분’ 방법도 유력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하 500m 암반층에 보관
심지층처분이란 말 그대로 사용후핵연료를 지층 깊은 곳에 묻어두는 것이다. 먼저 30~50년 이상 습식 및 건식 방식으로 중간 저장을 한 사용후핵연료를 부식이 잘 되지 않는 금속 용기에 넣는다. 이후 지하 깊숙이 만든 처분장 내 공간에 넣고, 완충재를 채운 뒤 밀봉한다. 용기 사이에는 두꺼운 방벽이 있어 서로 열 등이 전달되지 않도록 만든다. 지하는 산소가 적어 용기가 부식될 가능성도 적다. 단단한 암반층에 있기 때문에 지하수가 침투할 가능성도 적다.
이 방법이 처음 제시된 것은 1977년 스웨덴에서다. 당시 스웨덴은 원전 승인 조건으로 핵폐기물의 최종 처분 개념을 개발하도록 요구했다. 원전 회사들은 약 9개월간 450명의 과학자를 동원해 안전한 핵폐기물 처분시스템을 개발했다. 이 방안이 정부의 승인을 받았고, 나중에는 세계적으로 가장 안전한 방법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최근 매립 처분 기술이 발달하면서 반론이 나오기 시작했다. 스웨덴 환경단체인 MKG는 홈페이지에서 “심지층처분 방식이 원래 계획만큼 안전한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스웨덴은 구리용기에 사용후핵연료를 담아 500m 암반층에 처분하는 방식을 채택했는데, 당시 가정과는 달리 구리 용기가 부식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온 것이다.
MKG는 “사용후핵연료에서 나오는 열이 산소가 없는 상태에서도 구리통을 부식시킬 수 있다”며 “단지 몇 백 년 만에도 방사성 물질이 누출될 수 있다”고 밝혔다. 만일 지하수가 근처로 흐른다면 방사성 물질이 표층으로 올라와 생태계를 해칠 수도 있다. 이 단체는 심지층처분법 말고도 새로운 대안이 나오면서 원점에서 새로 검토해야한다는 의견을 제기했고, 스웨덴 환경법원 등이 이 문제를 놓고 고심 중이다.

지하 3~5km 암반층에 보관
심지층처분법의 대안으로는 심층시추공처분이 꼽힌다. 미국, 스웨덴 중심으로 논의가 시작된 이 개념은 지하 3~5km 구간에 사용후핵연료 등 고준위폐기물을 처분하는 것이다. 이 방식도 개념은 비슷하다. 다만 묻는 깊이가 다르고 세부적인 사항에 조금 차이가 있다. 먼저 30~50년 이상 보관돼 비교적 안정적인 사용후핵연료 다발을 부식이 잘 되지 않는 용기에 넣어 지하 3~5km 구간에 차곡차곡 매립하고, 벤토나이트와 같은 점토 물질로 채운다. 처분구간이 다 채워지면 그 구간을 방벽으로 막고, 그 위부터 지표면까지 콘크리트로 막는다.
심층시추공처분은 심지층처분보다 훨씬 깊은 곳에 매립한다. 이 정도 길이의 지하 암반에는 지하수층이 별로 없고 산소도 적어 저장용기의 부식 가능성을 더 줄일 수 있다. 지성훈 한국원자력연구원 연구원 등이 2012년 3월 ‘방사성폐기물학회지’에 실은 ‘고준위방사성폐기물의 시추공 처분 개념 연구 현황’에 따르면, 스웨덴은 3개 부지에 시추공을 설치해 연구하고 있는데, 지하 1.5km를 경계로 지압, 단열 시스템, 지하수의 화학성분이 크게 변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기술을 사용하면 고준위 방사성폐기물과 생태계의 물리적인 거리가 훨씬 멀어진다는 것이 장점이다. 저장용기에서 방사성물질이 흘러나와도 지상까지 영향을 미치기 어렵다. 또 지층 아래 암반은 물이 잘 빠지지 않아 누출된 방사성물질이 멀리 퍼지지 않으며, 이곳에 있는 밀도 높은 지하수는 무거워서 지상까지 올라오기 힘들다. 테러집단 등 인간의 침입도 막기 쉽다. 지진의 영향도 적게 받는다. 강정민 교수는 “지하 몇 km로 내려가면 지진으로 흔들리는 정도가 지층에 비해 적어 처리장에 물리적 손상이 적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방식 역시 1970년대에도 있었지만, 기술과 비용 등의 문제로 대안으로 꼽히지 못했다. 그러나 시추 기술이 석유 개발과 함께 발전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독일은 이 방식을 연구하기 위해 9km 깊이의 시추공을 설치했으며, 석유 시추공은 지하 10km 이하로 내려가기도 한다. 비용 역시 앞으로는 심지층처분 등과 크게 차이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심층시추공처분방식은 심지층처분보다 아직 체계적인 연구가 부족하다. 강정민 교수는 “이 방식은 1990년대 초 구소련이 핵무기 해체 후 남는 플루토늄을 처분하는 방식으로 검토하면서 연구가 재개됐기 때문에 아직 실증 자료가 많지 않다”고 말했다. 심층시추공처분을 우리나라 환경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근거와 자료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100년은 더 기다렸다가 최종 폐기물 처리 방식을 결정해야 합니다. 그때쯤이면 기술이 문제를 해결해줄 수도 있겠지요. 당분간 지상에서 핵폐기물을 보관하면서 안전한 폐기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하데니우스 편집장은 10만 년 이상 관리해야하는 사용후핵연료 처분과 관련해 지금 성급하게 최종 처분 방식을 결정하기보다, 더욱 안전한 방법을 연구해야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현재 스웨덴에서는 오래된 원전 대신에 새로운 원자력발전소를 세워야하는지에 대해서 논의가 진행 중이지만 2~3년 전에는 사용후핵연료 처분과 관련해 논란이 뜨거웠다”고 말했다. 당시 스웨덴은 사용후핵연료 폐기장 부지를 선정했고, 심지층처분법이 유력한 상황이다.
“스웨덴이 핀란드처럼 심지층처분 방식을 채택할 가능성이 큽니다. 아직 심지층처분법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지지를 받고 있고 심층시추공처분법은 원자력 산업계나 연구계의 연구가 활발하지 못한 상황입니다.”
심시추공처분법이 대안 기술로 제시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데다, 이 방법의 장단점에 대한 연구가 아직 부족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그는 한발 더 나아가 “(심지층처분법처럼) 심층시추공처분도 아직 확실하지 않아, 더욱 안전한 폐기 방법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부지 선정시 사회적 갈등이 없었냐는 질문에 대해 하데니우스 편집장은 “현재도 선정된 사용후핵연료 폐기장 부지에서는 시위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폐기장 부지가 원전 근처로 이 지역에는 원자력에 우호적인 여론이 강했기 때문에 큰 문제없이 결정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하데니우스 편집장은 또 사용후핵연료를 재활용하는 파이로프로세싱이 큰 호응을 얻고 있지 못하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 원전을 옹호하는 입장이 근소하게 여론의 우위를 차지 하고 있기는 하지만 압도적이지 않다”면서 “재활용의 문제도 정부 입장에서는 최소한으로만 생각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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