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요청인 환경보호에 컴퓨터계도 예외는 아니다. 올 한해 하드웨어 분야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바로 '그린 PC'가 본격적으로 출하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올해 초 각 컴퓨터 전문잡지에는 개인용 컴퓨터 제품 사진과 함께 '우리회사는 그린 컴퓨터를 만듭니다'라는 문구의 광고가 게재돼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 했다. 어찌보면 단순하기 조차한 이 광고가 주목을 끈 것은 바로 '그린컴퓨터'라는 생소한 용어 때문. 일반인 대부분은 그때까지만해도 그린컴퓨터가 무엇인지 감을 잡지 못했고, 광고 내용에도 그린 컴퓨터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음으로써 궁금증은 한층 커질 수 밖에 없었다.
이 광고로 자극받은 다른 컴퓨터 제조업체들은 그때까지 검토만 해오던 그린 PC 개발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광고를 했던 이 회사는 지난 5월 마침내 그린컴퓨터를 발표, 시판에 나섰으며 나머지 컴퓨터 업체들도 최근 그린PC를 발표함으로써 국내 컴퓨터 시장에는 그린 PC에 대한 관심이 더욱 집중되고 있다.
국제 환경보호단체를 그린 피스(Green Peace)라 부르고 바람 태양 물 등 석유에 비해 공해가 없는 에너지원을 그린에너지라고 하듯, 녹색을 뜻하는 그린이라는 말이 붙으면 대부분 환경과 관련된 것을 의미한다. 그린이란 말을 컴퓨터 앞에 붙인 것은 이 컴퓨터가 종전의 컴퓨터보다 환경오염을 줄일 수 있는 기기라는 의미로 볼 수 있다.
미국 정부와 컴퓨터 업계의 합작품
기계로서의 컴퓨터가 가진 결정적 흠은 많은 전력을 소비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따지면 컴퓨터 1대는 1백50W가량의 전기를 먹어치운다.
단일국가로서 세계 최대의 컴퓨터 보유국인 미국은 현재 6천만대의 컴퓨터가 보급된 데 따른 전력소비량이 전체 상업용 전력의 5%에 달하며 오는 2000년대에는 10%까지 올라갈 것으로 보고 있다. 이처럼 많은 양의 전기를 발전(發電)하기 위해서는 석유를 이용하는데, 이때 발생되는 탄산가스량은 전체 탄산가스 발생량의 35%를 차지하고 있다. 발전소는 또 아황산가스와 질소를 전체 발생량의 75%, 38%를 각각 뿜어내고 있다. 아황산가스와 질소는 오늘날 토양을 황폐화시켜 동식물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 산성비의 주요 원인이다.
한편 PC를 사용하기 위해 쓰이는 대부분의 전력은 낭비되고 있는 실정이다. PC사용자의 상당수가 PC를 켜둔 채로 사용하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며, 특히 전체 PC사용자의 30-40%가 PC를 업무시간 이후인 밤과 주말에 사용하지도 않으면서 켜두고 있는 것으로 미국 환경청(EPA)은 밝히고 있다.
따라서 근본적으로 전기를 적게 먹는 컴퓨터를 만들거나, 적어도 켜두고 사용하지 않을 경우 전기소비를 줄일 수 있는 제품을 개발하는 것은 국가적으로 전기소비를 크게 줄일 수 있는 좋은 방법이었다.
이런 가운데 미국의 주요 컴퓨터 업체들은 지난해 미국 정부에 컴퓨터 및 모니터의 사용 전력을 기존 제품보다 50%이상 줄일 수 있는 내용을 담은 '에너지 스타 프로그램'을 마련, 미국정부가 이런 제품을 구매하도록 제안 했다. 이 제안은 컴퓨터로 인해 발생되는 전력 소비를 줄이기 위해 골머리를 않던 미 정부에 의해 환영을 받으며 받아들여졌다.
마침내 클린턴 대통령은 지난 4월21일 지구의 날 기념식에서 "미국 정부는 10월부터 에너지스타 로고가 부착된 PC만을 구매하겠다"고 천명한데 이어 지난 6월 17일 앨 고어 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EPA 주관으로 개인용 컴퓨터에 대한 에너지 스타 인증제를 알리는 행사가 열렸다.
에너지스타 인증제는 통상 1백50W가량 흐르는 컴퓨터를 켜둔 채 사용하지 않을 경우 일정시간이 경과하면 30W이하로 전류가 뚝 떨어지는 제품을 생산하는 컴퓨터업체는 EPA의 승인을 얻어 절전형 PC를 의미하는 에너지스타 로고를 부착할 수 있으며 이를 실시한다는 내용이 그 골자다.
미국 정부는 이어 지난 10월 18일부터 미 연방정부 및 주정부 관공서 학교 등에서 에너지스타 로고를 부착한 제품만을 구매하도록 함에 따라 우리나라를 비롯한 컴퓨터 생산국들이 미국에 컴퓨터를 수출하기 위해서는 에너지스타 로고를 부착할 수 있는 컴퓨터 개발이 요청됐다.
이것이 절전형 PC, 즉 국내에서 말하는 그린PC가 탄생된 배경이다. 따라서 절전형 PC는 환경을 보호하려는 미 정부와 컴퓨터 업체들의 공동 노력에 의해 탄생된 제품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은 우리가 개발한 그린 PC보다 결코 뒤지지 않는 제품을 생산하고 있으면서도 정작 그러한 제품에 대해 그린PC나 그린 컴퓨터 등의 용어를 함부로 사용하지 않는다. 단지 에너지 절약형 또는 절전형 PC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납댐으로 가득한 컴퓨터 인쇄 회로기판과 각종 금속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컴퓨터는 근본적으로 환경오염을 방지할 수 없기 때문인 듯 하다. 무엇보다도 그린 PC나 그린컴퓨터에 대한 엄밀한 규정이 없는 탓이다.
그린 PC의 핵심은 절전기능
절전형 PC를 보다 깊이 있게 이해 하려면 그 뿌리가 되는 미 EPA의 에너지스타 프로그램에 대해 알아보는 것이 전제 조건이다. EPA가 규정하고 있는 에너지스타 프로그램은 그리 복잡하지 않아 현재는 전류와 컴퓨터의 호환성, 생산자의 의무사항 등에 대해서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이 프로그램의 규정은 컴퓨터를 켜서 그것이 다시 자동으로 꺼질 때까지를 온(On), 스탠 바이(Stand By), 서스펜드(Suspend), 오프(Off)의 4가지 단계로 구분하고 있다. EPA는 이 규격에서 소비전력을 세번째 단계인 서스펜드에서 30W이하로, 꺼진상태인 오프에서 5W이하로 규정하고 있다. 또 이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체는 EPA와 함께 에너지절약이나 환경오염방지에 관심을 갖는 컴퓨터나 모니터 사용 고객들에게 이와 관련한 교육을 시켜야 할 것을 의무로 하고 있다. 여기에 그린PC는 절전기능을 추가함으로써 소프트웨어의 호환성에 영향을 미치지 않아야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절전형 PC는 일반 PC와 별종이 아니라 일반PC에 절전기능이 추가된 컴퓨터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
그렇다면 국내 업체들과 외국 업체들은 과연 어떤 방법으로 에너지스타 로고를 부착할 수 있는 절전형 PC를 만들까. 컴퓨터업체들이 PC본체에 채용한 절전원리는 먼저 PC를 켜둔 채 사용하지 않을 경우 부품 등에 전원이 차단되거나 전류가 적게 흐르도록 제품의 회로를 설계하고 있다.
먼저 컴퓨터에서의 절전방법은 PC를 사용 안할 경우 전기를 많이 먹는 CPU의 클럭 주파수를 낮추는 방법이 이용된다. 가령 486-25MHz 칩은 클럭 주파수가 25MHz인데 이를 8MHz로 낮추는 것이다. 486-66MHz의 CPU 역시 마찬가지. 클럭 주파수를 이처럼 낮추는 것은 마치 컴퓨터를 잠재우는 것과 같아 CPU가 일을 하지 않음으로써 전력 소비가 크게 줄어든다. 이렇게 되면 PC본체 내의 메모리나 VGA카드 등의 전력 소비량도 더욱 절감된다.
두번째로는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에 파워 다운 모드를 채용하는 방법이다. 즉 이것은 컴퓨터를 켜두고 사용 안할 때 HDD 스핀들 모터의 회전을 줄여 CPU처럼 HDD를 잠재우는 것이다. 이 방법은 이미 맥스터 시게이트 코너 등 외국 업체들이 2-3년 전부터 도입해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또 8MHz의 속도를 갖는 AT버스도 PC를 사용 안할 경우 코어 칩으로부터 명령을 받아 4MHz로 줄이며 보조기억 장치인 플로피디스크드라이브도 트랜지스터를 사용, 전력을 절감하고 있다.
TV화면과 같은 컴퓨터 모니터의 경우 통상 80-90W의 전류가 흐르는데 컴퓨터 본체를 일정시간 사용하지 않을 경우 빛을 화면의 옆으로 쏘아주는 수평동기신호를 차단하고 또 그 다음에는 화면의 위와 아래로 오르내리는 신호인 수직동기신호를 꺼준다.
컴퓨터를 켜서 정상적으로 가동하는 상태인 온 단계에서는 수직동기신호와 수직동기신호 전원이 모두 들어간다. 두번째 단계인 스탠바이에서는 수평동기신호의 전원은 들어가는 반면 수직동기신호가 차단되며 세번째인 서스펜드 단계에는 수평동기신호가 차단되고 수직동기신호의 전원은 들어온다. 마지막으로 TV처럼 꺼져있으나 리모콘 신호등을 받을 수 있는 오프상태에서는 수평 및 수직동기 신호를 모두 차단해준다. 그러나 화면은 꺼져 있더라도 컴퓨터의 키보드를 치면 화면이 금세 되살아나야 한다.
에너지스타 로고를 부착하기 위해서는 먼저 EPA에 가입해야 한다. 컴퓨터나 모니터를 생산하는 업체는 EPA가 정하는 소정의 양식에 따라 가입신청서를 내고 EPA는 이를 심사,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회원으로 가입된다.
EPA에 가입만했다고 해서 생산제품에 에너지스타 로고를 부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에너지스타 로고를 부착하려면 EPA규정을 충족하는 제품을 만들어 업체 스스로 EPA 규정을 충족하는지에 대한 테스트를 실시, 이 결과를 EPA측에 제출해 심사를 받아 인증을 얻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인증을 받은 제품에 대해서 비로소 에너지스타 로고를 부착할 수 있는 것이다.
이미 EPA멤버에 가입한 업체는 상당히 많다. 올해 봄인 4월 세계 시장의 절반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컴팩 IBM AST 등 미국 업체와 일본의 NEC NCR를 비롯한 전세계 38개 유력 컴퓨터 및 모니터업체들이 참여했다. 이후로도 전세계 업체들의 참여가 줄을 이어 현재 세계 대부분의 굵직한 업체들은 대부분 이에 참여하고 있으며 금년내에 거의 모든업체가 가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에서도 삼성전자와 삼성전관이 지난 4월 이미 가입했으며 그 이후 삼보컴퓨터 금성사 현대전자 대우통신 등이 추가로 참여했다.
1년에 1대당 1천6백25시간 켜둔 채 낭비
그렇다면 과연 전세계가 달려들어 만들고 있는 절전형 PC는 그렇지 않은 일반 PC에 비해 얼마만큼 전력소비를 줄일수 있을지도 큰 관심거리이다. 비교적 오래 전에 만들어진 PC는 2백W가량의 전기를 먹으나 최근에 만들어진 PC는 통상 1백50W 가량의 전기를 먹는다. 본체는 60-70W, 모니터가 80-90W를 사용한다. 그러나 에너지스타 로고가 부착된 제품은 EPA의 규정대로 본체와 모니터가 각각 30W 이하로 총 60W 이하의 전기를 사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일반 PC가 1백50W의 전기를 소모한다고 보면 그린 PC는 60W밖에 소모하지 않아 90W가 절감되는 셈이다. 그러나 이것은 컴퓨터를 사용할 때가 아닌 켜놓고도 사용하지 않을 경우에 대한 규정이다. 즉 PC를 사용할 때는 절전형 PC나 일반 PC의 전력소비와 별차이가 없다. 따라서 절전형 PC의 절전효과는 PC를 켜둔채 사용하지 않을 경우 효과가 큰 것이다.
이러한 컴퓨터가 갖는 절전효과는 PC사용 습관에 따라 큰 차이가 난다. 절전형 PC의 절전효과는 PC를 얼마만큼 켜두는지, 또 그중 켜둔채 얼마만큼 사용을 하는지가 중요한 변수이다. 그런데 PC사용자가 과연 하루에 몇 시간 정도 PC를 켜두고 있는지, 또 그중 실제 사용시간이 얼마인지에 대한 정확한 통계자료는 없다.
국내 한 업체의 조사에 따르면 기업체의 사용자는 하루 8시간을 켜두고 있으며 그 중 실제 사용시간은 1시간 45분이다. 따라서 공휴일을 제외한 실제 업무일수를 2백60일로 잡고 여기에 8시간을 곱하면 PC사용시간은 총 2천80시간이다. 그중 컴퓨터를 실제 사용하는 것은 1.75시간으로, 여기에 1년인 2백60일을 곱하면 4백55시간이다. 즉 1천6백25시간은 PC를 켜둔채 사용하지 않아 전기를 낭비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의 전기료는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일반적으로 1KWh당 회사용 60원, 가정용 1백원으로 평균 80원으로 볼수 있다. 1백50W를 사용하는 PC를 8시간 사용할 경우 1백50W 곱하기 2천80시간(2백60일)을 하면 3백12KW가 되며 이를 전기료로 환산하면 2만4천9백60원이다.
그러나 절전형 컴퓨터를 8시간 사용할 경우 그중 PC를 켜두고 사용하지 않는 6.25시간은 60W만 사용된다. 따라서 절전형 PC를 사용하면 연간 1백50W 곱하기 4백55시간(하루 실 사용 1.75시간)에다가 60W 곱하기 1천6백25시간을 하면 1백66KW가 된다. 일반PC를 사용할 때의 총 3백12KW에서 그린 PC를 사용할 경우의 1백66KW를 빼면 1백46KW 이다.
따라서 절전형 PC를 사용하면 일반 PC를 사용할 때보다 약 47%의 전기 소비를 줄여 연간 1백46KW의 전기를 절약할 수 있으며 전기료로는 1만1천6백80원을 절감할 수 있다. 국내 컴퓨터 보급대수를 전자공업진흥회의 추정대로 3백만대로 보고, 이것을 절전형 PC로 대체한다면 연간 4억3천8백만KW의 전력소비를 줄일 수 있으며 이에 따른 전기료 절감액은 3백50억원에 이른다는 계산이 나온다. 절전 효과에 못지 않게 이에따른 환경 오염 방지 효과를 거둘수 있음도 물론이다.
미국은 이같은 결과에 만족하지 않고 에너지스타 프로그램규정을 한층 강화한다는 소식이 들리고 있다. 민간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에너지스타 프로그램 강화방침은 내년부터 소비전력 기준치를 본체와 모니터 각각 15W로서 합쳐 30W로 규정하는 이른바 '슈퍼스타'규격 제정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문이다. 이에 대한 준비가 거의 없는 우리나라도 서둘러 절전형 PC에 대한 규정을 마련, 전력절감과 함께 환경보호에 힘을 써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