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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고리, 영광, 울진, 월성 등 4개 지역에 23기의 원자력발전소를 가동중이다. 원전은 전기와 함께 방사능을 가진 폐기물도 쏟아낸다. 경수로 원전 19기는 매년 약 1000다발, 중수로 4기는 약 1만 6000다발의 사용후핵연료를 배출한다.

10년이 지난 사용후핵연료 한 다발에서도 1시간에 약 100시버트(sv)의 방사선이 나온다. 사람이 쬐면 하루만에 사망할 정도로 위험하다. 발전을 마친 핵연료 다발은 원전에 설치된 임시저장수조에 보관한다. 물은 해로운 방사선을 막을 뿐 아니라, 아직 뜨거운 연료다발을 식히는 역할도 한다. 이를 습식저장 방식이라고 하며 5년 이상 이렇게 하면 핵연료 다발은 비교적 안정된 온도로 떨어진다. 우리나라는 1979년 고리에서 첫 번째 상용 원전을 가동한 이후 대부분의 사용후핵연료를 이렇게 보관해왔다.

제대로 된 저장고 없이 임시변통에 의존했던 이 방식도 이제 한계다. 한국수력원자력에 따르면 2013년 12월 말 사용후핵연료 저장량은 39만 2784다발이다. 총 저장용량의 75%가 찼다. 정부가 전력의 원전 비중을 29% 이하로 낮추겠다고 발표했지만, 현재 건설 중인 원전과 전력사용량 증가 등을 감안하면 곧 임시저장고는 꽉 차게 된다.

2016년, 2024년…언제 포화될 것인가

정부는 그동안 임시저장수조의 포화시점을 여러 차례 수정해 발표했다. 하루빨리 처분장 부지를 선정해야 했지만, 정치적인 부담 때문에 매번 ‘다음 정권으로~’ 연기했다. 그때마다 임시저장수조의 저장용량을 새롭게, 즉 늘려 계산해서 포화시점을 뒤로 늦췄다.



논의는 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원자력위원회는 1997년까지 사용후핵연료 중간저장 시설을 짓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이 합의는 지켜지지 않았다. 10년이 지난 1998년 위원회는 방사성폐기물 종합관리시설 부지를 2008년까지 선정한 뒤 2016년까지 사용후핵연료 중간저장고를 준공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익명을 요청한 원자력계 전문가는 “2016년 포화설은 정책 목표를 잡아 놓고, 역산으로 임시저장수조의 용량을 계산했기 때문에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즉 2016년에 중간저장소를 설치한다는 계획을 먼저 세우고 나머지 작업을 진행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난해 한국원자력학회 등이 발표한 자료에는 포화시점이 2024년으로 늦춰졌다. 현실적으로 사용후핵연료 중간저장시설이나 처분장 건설이 2016년까지 힘들기 때문이다. 한국수력 원자력 관계자는 “임시저장수조의 저장 간격을 핵반응이 일어나지 않는 수준에서 촘촘하게 좁히면 더 많이 저장할 수 있다”고 포화시점이 길어진 이유를 설명했다. 또 폐연료 다발 일부를 신규원전의 임시저장시설로 옮기면 시점을 늦출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렇게 하면 고리 원전은 2028년, 영광 2024년, 월성 2025년, 울진 2028년으로 포화시점을 늦출 수 있다. 원자력 전문가들은 기술 발달에 따라 2030년대까지 포화시점을 늦출 수도 있지만, 현재로서는 2024년이 실질적인 한계라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여하튼 임시저장 방식 계산을 놓고 정부는 ‘양치기 소년’이 됐다. 이번에 포화시점을 2024년으로 늦추는 것을 두고도 ‘말바꾸기’라는 비난을 들을까 두려워 발표하지 말자는 의견이 나왔다는 후문이다.

영구 처분, 중간 저장, 재처리…우리는 어디로?



아무리 방식을 바꿔도 임시저장 용량이 곧 한계에 이른다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지금이 사용후핵연료를 장기적으로 저장하는 방법을 찾아야 할 마지막 시점이라는 것이다. 사용후핵연료를 관리하는 방법으로는 ‘재처리 후 처분’ ‘직접 처분’ ‘위탁재처리’ 등을 꼽을 수 있다. 스웨덴, 핀란드, 독일 등은 직접 영구 처분하기로 했으며, 이중 스웨덴과 핀란드가 부지를 선정한 상태다. 사용후핵연료 양을 확 줄일 수 있는 재처리는 프랑스, 영국, 러시아, 인도 등 주로 핵무기보유국과 일본 등이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재처리는 핵무기를 만들 수 있다는 문제와 재처리된 연료를 사용하는 또 다른 원전 즉 고속증식로를 지어야한다는 부담이 있다. 네덜란드, 벨기에 등은 다른 국가에 맡기려고 했지만 비용과 운송 등의 문제로 사실상 중단했다.

우리나라는 영구처분장을 건설해 완전히 밀봉해버리거나 중간 저장시설에 옮겨 오랫동안 보관한 뒤 재활용하거나 처분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국내에서는 건식 재활용 방식인 ‘파이로 프로세싱’ 기술을 밀고 있지만, 미국의 반대로 아직은 실현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사용후핵연료를 어떻게 영구처분할 수 있을까. 핀란드는 고준위폐기물을 직접 처분한다는 원칙하에 2001년 ‘심지층 처분장’ 부지를 선정하고 2020년 준공을 목표로 지하 500m에 건설하고 있다. 스웨덴은 2009년 처분장 부지를 선정한 뒤 2015년경 건설에 착수해 2023년부터 운영할 계획이다.




이처럼 영구처분을 결정한 나라들은 지하 수백 m에 처분장을 건설하는 심지층처분 방식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이 결정이 성급할 수 있다는 의견이 많이 나오고 있다. ‘심층시추공처분’ 등 대안 기술이 많이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자력 전문가들은 우리나라는 일단 ‘중간저장’을 통해 시간을 번 뒤 선발국가의 동향을 벤치마킹하는게 효과적일 것으로 보고 있다(파트 2 참고).



또 건식 중간저장을 이용하면 생각보다 시간을 많이 벌 수 있다는 주장도 최근 나오고 있다. 강정민 KAIST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초빙 교수는 “기존의 건식 저장으로도 사용후핵연료를 수십 년 이상 저장할 수 있으며 최근에는 100~200년 정도까지도 가능하다는 연구가 있다”고 말했다. 더구나 사용후핵연료의 열량이 대체로 30년마다 반으로 줄어들기 때문에 100년이 지나면 원래의 10%로 줄어든다는 것도 중간저장의 장점이다. 사용후핵연료의 최종 목적지인 영구처분장 부지가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영희 가톨릭대 사회학과 교수는 “사용후핵연료 처분 방식은 10만 년이라는 시간을 염두에 둬야한다”며 “가능한 모든 기술적 대안을 고려해보고 결정해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존 원전 부지에 중간 저장 해야

중간저장시설은 새로운 부지를 선정하거나 현재 원전 부지 내에 만드는 방식이 있다. 어떤 방식이든 공론화를 통해서 지역사회와 시민들의 합의를 도출해야한다. 정부는 공론화위원회를 본격적으로 운영하고 현재 원전이 아닌 지역에 중간처분장 건설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현실성이다. 원전 등에서 사용한 작업복, 장갑, 폐필터 등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처리장을 위한 부지 선정에만 무려 19년이라는 긴 시간이 들었다. 이보다 훨씬 위험한 고준위폐기물은 얼마나 많은 시간과 사회적인 비용이 들지 가늠하기 힘들다. 공론화 1.5년, 부지선정 3년, 건설 7년 등을 감안해 최소 11년 이상이 걸릴 것이다. 게다가 사용후핵연료의 이동 경로도 갈등의 현장이 될 것이다.

기존 원전 부지에 건식 저장시설을 설치하고 중간저장을 하는 방식도 공론화 과정을 거쳐야 하고 지역 주민에게 보상금을 줘야한다. 그러나 새로운 부지 선정보다는 쉬울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지역 사회만 합의한다면 건설 시간도 줄일 수 있다. 실제로 여론조사에서도 원자력 발전소 인근의 지역사회가 저장시설에 대한 수용성과 이해도가 다른 지역에 비해 높은 것으로 나오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전한다. 이미 원자력 관련 시설에 일상적으로 접하고 있어 원전이 위험하다는 인식이 다른 지역에 비해 덜하기 때문이다.



“사용후핵연료 문제를 더 이상 덮고 가기는 어렵습니다. 이제는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사회적 합의를 거쳐 부지, 시설 등을 결정해야 합니다.”

환경부 장관과 국회의원을 지낸 김명자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 이사장은 과학동아 인터뷰에서 사용후핵연료 중간관리와 관련해 “그 동안 미뤄오면서 이미 상당히 늦었다”고 했다. 김 이사장은 2009년부터 1년여에 걸쳐 수행된 ‘사용후핵연료 관리대안 마련 및 로드맵 개발’에 참여하기도 했다.

“사용후핵연료 관리는 원전사업에서 특히 어려운 과제로서, 선진국에서도 상당한 시행착오를 거쳤습니다. 최종처분사업은 핀란드와 스웨덴 등 극히 일부 국가에서 추진단계에 들어섰고, 대부분의 국가는 관망하는 처지에 있습니다. 원전 수가 적은 나라는 임시저장수조에 보관하면 되니까 그리 시급한 문제는 아니지요.”

김 이사장은 우리나라는 현재 여건상 중간저장 정책을 확실히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외교안보상 재처리 여부를 결정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 더욱 복잡하며 독일은 원전 부지 외에 집중식으로 건설하는 방안을 추진하다가 반대운동에 부딪쳐 부지 내와 부지 외 방식을 병행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해외 사례를 보건대 결국 원전 부지 외에 ‘집중식’으로 하는 방안과 부지 내에서 다루는 ‘분산식 관리’가 검토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곳에 중간저장시설을 짓는 집중식 관리는 부지 선정에 몇 년이 걸릴지 불확실하고, 적합한 부지가 어디일지, 인센티브가 얼마나 될지, 원전 부지로부터 핵폐기물 수송은 어떻게 할지, 중수로와 경수로에서 나오는 사용후핵연료는 어떻게 따로 교체할지 등 어느 하나도 간단치 않은 과제라 지금까지와 질적으로 다른 리더십이 필요할 것이라고 김 이사장은 내다봤다.

그는 건식 재처리 방식, 즉 파이로프로세싱도 상용화까지 오래 걸리고 국제 기준으로는 재처리의 범주에 포함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수용이 어려울 것이므로, 한미원자력협정 협상에서도 보다 현실적인 접근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이 핵비확산을 기치로 재처리를 하지 않고 있으며, 최근 영국도 재처리를 하지 않는 방향으로 정책을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원자력 정책의 핵심은 결국 정부와 원전 규제에 대한 신뢰로 귀결됩니다. 정부가 신뢰를 얻으려면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실현성 있는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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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핵쓰레기 더이상 버릴 곳이 없다
PART1. 핵 쓰레기통이 넘친다
BRIDGE. 경주 방폐장 부지, 과연 ‘안녕’한가?
PART2. 지하 500m도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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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김규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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