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체의 수많은 혈관처럼 얽혀 있는 광대한 산업 현장의 철 구조물들. 이 산업 현장에서 나는 수없이 땀방울을 흘렸다.”
조춘만 작가는 자신의 삶을 회고하며 말했다. 그는 1974년 18세의 나이에 산업 현장에 뛰어들어, 20여 년간 용접사로 일하며 중공업, 발전소, 제철소, 정유공장, 석유화학공단 등 국내외 현장을 누볐다. 그래서 그의 눈으로 본 산업 현장은 살아있는 유기체다. 사람의 땀이 말라 붙어있을 파이프라인이, 철근이, 콘크리트가 마치 혈관과 살갗처럼 생명력을 발산한다.
IK200300-온산공단
울산 온산읍 온산산업단지(온산공단)는 석유화학, 조선, 펄프 등 다양한 산업 분야가 공생하는 한국 산업의 심장이다. 2020년 온산공단의 전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IK183798-구평동
부산 구평동에는 인근 감천항으로 들어온 물류를 보관하는 창고와, 1차로 가공하는 공장이 밀집돼 있다. 구평동의 한 창고에 쌓여 있는 물류에서 조형미를 느낄 수 있다
IK183947-덕포동
조춘만 작가가 부산 덕포동에서 포착한 한국 의류 산업의 중심. 이곳에서 출발한 실타래의 여정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상상하게 된다.
IK191371-선박건조
거대한 선박이 그 본모습을 갖추고 있다. 용접공 출신의 작가는 “산업 현장에 있을 때는 몰랐던 구조물의 아름다움을, 한 걸음 물러나 바라보니 알 수 있었다”라고 말한다.
IK189916-석유화학(여천공단)
전남 여수 국가산업단지 석유화학공단(여천공단)의 곳곳을 잇는 파이프라인이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IK150312-석유화학
복잡하게 얽힌 파이프와 기계장치는 스스로 탄생하지 않았다. 철판 한 조각 한 조각을 이어 붙이고 조이면서 강철은 사람과 연을 맺었으리라. 그 역사를 떠올려본다.
IK235377-하우스모터
거대한 현장을 담던 작가의 최근 관심사는 작은 기계다. ‘기계해체’ 프로젝트는 친숙한 기계의 속내를 드러내 이것들이 탄생하며 맺은 인간과의 관계를 생각하게 한다.
조춘만 작가 인터뷰
산업의 풍경이 ‘나, 살아있노라’ 말을 걸 때
한국의 산업 현장을 담는 조춘만 작가의 ‘INDUSTRY KOREA’ 프로젝트가 올해로 25주년을 맞았다. 기계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작업은 거대한 강철 기계에서 우리 생활에 친숙한 작은 기계로 이어지고 있다. 용접사로 보낸 20여 년, 사진작가로 보낸 25년. 도합 45년을 산업 현장에서 보낸
조 작가와 2월 10일 e메일 인터뷰를 진행했다.

Q.용접사로서 바라본 산업 현장과 사진작가로서 바라본 산업 현장은 뭐가 달랐나?
거대한 중공업 현장 속으로 들어가면, 나 역시 작은 한 점에 불과할 정도로 미미한 존재가 된다. 젊은 시절 나는 예술이 무엇인지 아무것도 몰랐고, 오직 현장에서 배관 용접을 잘하고 싶은 생각밖에 없었다. 몸뚱아리 하나로 열심히 일해서 남들과 같이 살고 싶은 생각으로 일했다. 현장에서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 내 용접을 보고는 ‘우와, 이것은 예술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래서 ‘이것이 예술인가?’라는 생각을 했다.
40대 중반, 사진학과에 다니면서 지나온 인생을 되돌아보게 됐다. 지난날 (몸담았던) 산업 현장에서 내 손때가 묻은 강철 구조물을 되찾아 나서게 된 것이 사진 작업의 첫 출발점이었다. 한 걸음 물러나서 바라본 강철 구조물은 그야말로 예술이었다. 그제야 지난날 동료들이 말했던 예술의 의미를 깨닫게 됐다.
단 한 번도 눈여겨보지 않았던, 비바람과 눈보라와 뜨거운 연기를 견뎌왔던 강철 구조물을 소형 카메라로 촬영한다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대형 카메라를 구입해 촬영을 시작했다.
한 개의 세포가 분열해 완전한 인격체가 되는 것처럼, 철판 한 조각 또 한 조각을 이어 붙여 완성되는 기계의 탄생 과정. 진동과 열기를 내뿜으며 저마다의 방식으로 육지에서, 바다에서, 하늘에서 생존하는 기계들을 찬찬히 관조하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었다. 내가 용접했던 각종 배관들이 지금껏 잘 견디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지난 날의 감동이 찬찬히 밀려온다.
Q.작품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중공업 현장과 기계를 25년간 지속적으로 촬영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과거의 추억을 기록하기 위함만은 아니다. 강철 구조물은 인간의 부단한 노력과 두뇌로 만들어진 거대한 창작물이며, 인공적인 생명을 가진 존재로 생존하고 있다. 산업 구조물들이 단순한 기계적 요소를 넘어 인간의 삶과 연결된 중요한 존재라는 것. 이것이 내가 사진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핵심이다.
지난 시절 내가 현장에서 만들었던 강철 구조물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사라져 가는 것에 아쉬움을 느낀다. 이를 사진으로 남기는 것이 나의 의무이자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내 사진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 인간의 삶과 산업의 관계를 탐구하는 예술적 작업이다. 산업 현장을 통해 내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고, 그 속에서 발견한 기계의 미학적 아름다움과 의미를 표현한다. 이런 작업은 산업이 단순한 생산의 공간이 아니라, 인간의 삶과 깊이 연결된 문화적 맥락을 지닌 장소임을 일깨워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