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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3. 실험하지 않고도 화학반응 예측한다

Arieh Warshel 아리에 와르셸


올해 노벨 화학상은 복잡하고 큰 분자의 화학반응을 컴퓨터에서 계산하고 연구할 수 있도록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개발한 과학자들에게 돌아갔다. 미국 하버드대 화학과의 마틴 카플러스 교수, 스탠퍼드대 구조생물학과의 마이클 레비트 교수, 서던캘리포니아대(USC) 화학과의 아리에 와르셸 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세 과학자는 직접 실험을 하지 않고도 고분자의 움직임과 화학반응을 예측할 수 있는 컴퓨터 프로그램인 ‘참(CHARMM)’을 개발했다. 화학은 물론 생명과학과 소재공학 분야에 참이 미친 영향은 실로 크다. 어떤 프로그램이기에 노벨 화학상의 영광을 안겼을까.


지극히 복잡한 분자 움직임 예측

포켓볼 열다섯 개가 당구대 위에 놓여 있다. 큐대를 들어 흰 공을 치면 열다섯 개 공이 어떻게 움직일까. 분자 사이에 화학반응이 일어날 때 원자들은 당구대 위의 포켓볼처럼 복잡하고 어지럽게 움직인다. 수천, 수만, 때로는 수백만 개의 공이 3차원 공간에 놓여있다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X-선 회절기, 핵자기 공명 분광기, 극저온 고성능 전자현미경 등 실험기기가 개발되면서 간단한 결정과 나노 구조체는 물론 단백질이나 핵산 같은 복잡한 생체 분자의 구조까지 정확히 파악할 수 있게 됐다. 포켓볼로 치면 처음에 공이 놓인 위치를 밝힌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공을 쳤을 때 전체 공이 어떻게 움직이느냐 하는 문제다. 분자의 구체적인 기능을 알기 위해서는 전체 원자들의 움직임을 파악해야 한다.

과학자들은 이 지극히 복잡한 과정을 예측하는 데 컴퓨터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이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 분야에서 첫 번째 큰 업적이 미국 노스웨스턴대 화학과의 존 포플 교수와 UC산타바바라 물리학과의 월터 콘 교수가 만든 ‘가우시안’이다. 이 컴퓨터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은 양자화학 수준에서 화학반응을 예측할 수 있다. 분자구조만 알면 가우시안으로 슈뢰딩거 방정식을 풀어서 전자들의 상태와 에너지를 쉽게 계산할 수 있어 지금도 쓰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개발자들은 이 업적으로 1998년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하지만 가우시안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양자역학으로 식을 계산하기 때문에 원자가 100개 이하인 경우에만 문제를 풀 수 있다. 생체 분자 중에는 원자가 수만 개 이상인 고분자가 수없이 많다. 이런 고분자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연구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프로그램이 필요했다.

양자역학과 뉴턴역학의 만남

1970년 카플러스 교수 역시 이런 새로운 프로그램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당시 카플러스 교수는 산소 분자와 헤모글로빈의 결합을 연구하고 있었다. 헤모글로빈은 9000여 개의 원자를 가진 고분자다. 헤모글로빈과 산소가 결합할 때 구조가 어떻게 변하는지 알기 위해서는 시뮬레이션을 해야 했지만, 기존 가우시안으로는 불가능했다.

카플러스 교수는 고분자 계산에 필요한 자료를 찾아서 이스라엘 와이즈만 연구소를 방문했다. 당시 와이즈만 연구소에서 분자가 상호작용할 때 생기는 포텐셜 에너지 변화를 연구하고 있던 와르셸 교수는 양자역학과 뉴턴역학을 프로그램에 나눠 적용할 것을 제안했다. 자유전자인 파이 전자에는 양자역학을 적용해 분석하고, 원자간 결합에 이용되는 시그마 전자와 원자핵에는 고전물리학의 뉴턴역학을 적용해 분석하는 방법이다. 1972년 카플러스 교수와 와르셸 교수는 두 가지 방식을 결합한 분석방식을 발표했다. 이번 화학상의 업적인 참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이후 라이소자임 반응을 연구한 레비트 교수와 와르셸 교수는 한 발 더 나아가 1976년 크기와 상관없이 모든 분자반응을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 모델을 발표했다. 이로써 닫혀있던 새장을 활짝 열어준 것처럼 참은 훨씬 광범위한 연구분야에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이즈음이면 참이 거의 완성단계에 이르렀지만 아직 이름이 없어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이라고만 불렸다. 참이라는 이름이 정식으로 붙은 건 1983년 카플러스 교수가 논문을 발표하면서부터다.

현재 분자구조를 연구하는 거의 모든 연구실에서 참을 사용하고 있다. 신약 개발에서부터 단백질이나 핵산, 생체막과 같은 생체 분자 연구까지 쓰이지 않는 곳이 없다. 탄소나노튜브와 같은 나노 구조체의 분자 모델을 만들거나 실리콘 웨이퍼의 증착 반응을 연구하는 데도 참은 꼭 필요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원자들의 움직임을 컴퓨터안에서 훤히 들여다 볼 수 있다.

산소 분자가 헤모글로빈에 결합하는 과정은 참이 없었으면 밝혀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사람을 비롯한 척추동물의 적혈구 속에 들어있는 헤모글로빈은 몸속에서 산소를 운반한다. 과학자들은 1960년대부터 산소가 헤모글로빈에 결합하는 과정을 연구해왔지만 실험을 통해서는 밝힐 수가 없었다. 낮은 산소 농도를 유지해야 결합 경로를 관찰할 수 있는데 이 상태에서는 헤모글로빈이 자꾸 산소를 밀쳐냈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참이 등장하면서 해결됐다. 헤모글로빈에서 산소 분자가 분리되는 경로를 구한 다음, 역방향으로 시뮬레이션해 결합경로를 구할 수 있었다. 실험 조건의 제약으로 아예 얻을 수 없는 경로를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구한 것이다.


참은 계속 발전하고 있다


필자를 비롯해 카플러스 교수 연구실을 거쳐 간 학생과 연구원 대부분이 참 연구를 계속 하고 있다. 참의 초기 버전을 발전시켜 앰버(AMBER), 그로모스(GROMOS), 엑스-플로어(X-PLOR)와 같은 분자 모델링 소프트웨어를 만들었고, 유사한 프로그램들의 기초를 제공했다. 현재까지 연구자 80여 명이 소스코드를 개발하는 데 기여했고, 50여 개 연구실이 참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으며, 매년 열리는 참 개발 회의에서 참의 새로운 버전을 만들고 있다.

컴퓨터가 발전하는 만큼 참을 사용해 할 수 있는 연구도 다양해지고 있다. 70년대 중반 원자 892개로 이뤄진 BPTI라는 효소 억제제를 연구했다면 지금은 원자 10만 개가 넘는 리보솜을 연구하고 있다.

필자가 속한 한양대는 미국국립보건연구소와 하버드대, 미시간대와 함께 참을 개발하고 유지한다는 협약을 맺었다. 필요한 경우 분자계를 적절히 분할한 다음 병렬로 연결된 컴퓨터 네트워크에서 분산처리할 수 있는 코드가 이미 개발돼 있다. 공동 연구를 통해 컴퓨터 하드웨어의 성능을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코드를 계속 만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참은 컴퓨터 메모리가 허용하는 한 분자 크기에 제한받지 않고 시뮬레이션을 진행할 수 있다. 유기체의 모든 원자와 이를 둘러싸고 있는 물분자, 이온까지 포함해 실제에 가깝게 분자들의 화학반응과 역동적인 움직임을 시뮬레이션할 수 있다. DNA 합성효소, RNA 합성효소, 이온 채널, ATP 분해효소와 같은 인체 내 다양한 생명 반응 또한 연구할 수 있다. 좀 더 확장하면 세포 내 소기관이나 바이러스, 박테리아 연구에도 참을 응용할 수 있을 것이다. 참은 앞으로도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노벨 화학상을 받으신 걸 축하드립니다. 지금 소감이 어떠신가요?

상을 받은 순간부터 지금까지 극한 행복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정말 흥분됩니다. 아직도 꿈인 것 같네요.

교수님은 양자역학과 뉴턴역학을 한 시스템에 적용해 복잡한 분자 구조를 한 번에 계산할 수 있게 만드셨습니다. 두 역학을 조합하는 아이디어는 처음에 어떻게 나오게 된 건가요?

당시 효소를 연구하고 있었는데 양자역학 프로그램(가우시안)으로는 도저히 원하는 계산을 할 수 없었어요. 연구는 해야 되겠는데 프로그램은 없고, 할 수 없이 프로그램을 만들게 됐습니다.

1970년대부터 이론화학 분야를 계속 연구해오고 계십니다. 오랜 세월 연구하면서 어려움도 많이 겪으셨을 것 같은데요.

제출한 논문이 거절당하고 돌아온 적이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저는 항상 도전적이고 어려운 문제만 선택합니다. 연구의 모든 단계마다 장애물을 만나기 때문에 어려운 점을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습니다.

이번에 노벨상을 받은 연구는 교수님께서 오래 전에 연구하셨던 분야입니다. 최근에는 어떤 연구를 하고 있으신지요?

효소 설계, 분자 모터, 리보솜, 이온 채널 등 여러 가지 연구를 동시에 하고 있습니다.

혹시 한국 과학자와 함께 연구해 본 경험이 있으신가요? 한국 과학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1990년대 초 공영식 연구원(현 전북대 화학과 교수)과 함께 일한 적이 있습니다. 현재는 김일수라는 아주 재능 있는 박사후연구원이 우리 연구실에 있습니다. 이번에 한국을 처음 방문하는데 우수한 과학자들을 만날 기대에 부풀어 있습니다.

노벨상을 꿈꾸는 과학동아 독자들에게 한 마디 부탁합니다.

어려운 문제에 도전해야 그만큼 얻는 성과도 큽니다. 도전하세요.

 

“강연을 다니다보면 늘 받는 질문이 있습니다. 바로 어떻게 하면 노벨상을 받느냐는 질문이죠. 저는 늘 이렇게 대답합니다. 노벨상보다 더 큰 꿈을 꾸세요! 정말 중요한 것은 당신이 진짜 열정을 바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측하지 못한 결과를 수용하는 열린 눈을 가지세요. 자연은 종종 교과서나 논문 밖에서 새로운 사실을 이야기합니다.”

1993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영국의 분자생물학자 리처드 로버츠 박사는 이번 미래과학콘서트에 참여하게 된 소감을 묻는 기자의 이메일에 이렇게 답장을 보냈다.

“전 사실 상을 바라고 연구하지 않았어요. DNA인트론과 접합 메커니즘을 발견한 뒤로도 16년동안 아무 상도 못 받았지만 개의치 않았어요. 내가 하는 연구가 재미있었으니까요. 연구가 취미가 되는 순간 정말 행복한 삶이 펼쳐질 거라고 학생들에게 늘 이야기합니다.”

로버츠 박사는 자신이 상을 받을 거라는 생각을 전혀 못했었다며 심지어 “노벨상이 내 생애 첫 상”이라고 말했다.

아직 우리나라에는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가 없다. 그래서 노벨상에 대한 기대와 환상이 유독 크고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가 멀게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실제로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들을 만나보면 어떨까.

리보솜의 구조와 기능을 밝힌 업적으로 2009년 노벨 화학상을 받은 이스라엘 바이츠만연구소의 아다 요나트 박사는 노벨상 또한 하나의 상에 불과하다고 이야기한다.

“노벨상 발표를 처음 들었을 때 정말 흥분되고 기뻤죠. 하지만 제가 새로운 발견을 했을 때만큼은 아니었어요.”

노벨상 수상자와 일반인 사이에 단 하나 큰 차이가 있다면 자신의 연구를 온전히 즐겼다는 것뿐이다.


세계적인 석학들과 함께하는 토크콘서트

로버츠 박사와 요나트 박사를 비롯해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들이 한국을 방문해 강연을 펼친다. 고려대와 분자과학연구재단이 함께 준비한 ‘미래과학콘서트’는 세계 정상의 석학 열한 명을 초청해 과학 꿈나무들에게 노벨상의 꿈을 심어줄 계획이다. 10월 28일과 29일, 고려대 인촌기념관에서 열리는 이번 강연에는 노벨 과학상 수상자만 네 명이 참석한다. 특히 올해 화학상 수상자인 아리에 와르셸 교수도 수상 후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해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미래과학콘서트에는 사전 참가신청을 한 고교생 600여 명과 고려대 재학생, 해당 분야 과학자 등 1000여 명이 참가한다. 강연자들과 학생들의 토크콘서트도 마련돼 있다.


 


“한국인 노벨 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하는 방법이요? 더 우수한 학문적 성과, 해외 학자의 적극적 활용, 인내가 필요합니다. 특히 노벨상 조급증부터 버리는 일이 중요합니다.”

‘아시아의 매사추세츠공대(MIT)’라 불리는 명문싱가포르 난양공대(NTU)의 첫 외국인 수장인 버틸 앤더슨(64) 총장의 조언이다. 스웨덴 출신으로 1989년부터 노벨 화학상 위원회 위원, 노벨재단 위원 등을 역임한 그는 2006~2010년 노벨상 수상자를 최종 결정하는 노벨재단 평의회 9인 중 한 명으로 활동하며 노벨 화학상 수상자 선정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자신 또한 유명 화학자인 앤더슨 총장은 유럽과학연합회장, 유럽과 학재단(ESF) 최고위원, 스웨덴 스톡홀름 린셰핑대 총장 등을 역임하며 학자로도 행정가로도 화려한 이력을 지닌 세계 과학계의 거두다.

난양공대는 10월 28, 29일 고려대와 공동으로 노벨상 수상자 4명을 포함해 세계적 석학 11명이 참가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자연과학 학술행사 ‘미래과학콘서트’를 개최한다. 이번 행사에는 올해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USC) 아리에 와르셸 교수(73)도 참가해 각계의 관심이 뜨겁다.

앤더슨 총장도 미래과학콘서트의 연사로 등장한다. 행사 및 내한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는 앤더슨 총장을 싱가포르에서 만났다. 그는 “노벨상 수상의 비법은 ‘탁월한 연구 성과(excellence only)’라는 정답 외에 어떠한 지름길도 없다”며 “아시아 대학 및 학자들의 연구 수준이 많이 향상됐지만 아직 세계 정상에는 부족하다”고 쓴 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다음은 앤더슨 총장과의 일문일답.


오랫동안 노벨상 수상자 선정에 관여해왔다. 최근 노벨상 수상의 경향이 어떻게 바뀌고 있나.

“가장 큰 특징은 학문 간 융합이 활발해지고 이런 추세가 노벨상 수상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에 따라 노벨 화학상과 노벨 생리의학상의 구분 및 경계가 점점 옅어지고 있다. 두 분야의 최근 수상자 중 화학, 물리, 의학, 재료공학 등 다양한 학문을 결합한 연구로 성과를 거둔 사람들이 많다는 게 그 증거다. 심지어 두 분야의 수상자를 선정하기 전 화학상 위원회와 생리의학상 위원회 위원들이 ‘수상자가 겹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을 나눈 적도 있다. 융합 연구의 증가는 팀워크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굳이 노벨상 수상이 아니라 더 나은 연구 성과를 위해 자신과 다른 분야의 학자들과 교류하고 협력하려는 자세가 필요한 시대다.”


정부나 기업 등으로부터 막대한 연구비를 지원받는 학자들이 늘면서 소위 ‘돈 버는 기술’에만 매진하는 경향도 노벨상 수상을 가로막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

“동의한다. 탁월한 학문적 성과의 기본은 연구의 독창성이다. 1996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영국의 해리 크로토 교수가 대표적이다. 그는 자연계에서 탄소 원자로 이뤄진 분자가 다이아몬드와 흑연 두 가지 형태뿐이라는 주장이 세계 화학계를 지배할 때 ‘버키 볼(bucky ball)’이라 불리는 축구공 모양의 탄소 분자, 즉 풀러렌의 존재를 주장했다. 특히 그는 사람들이 버키 볼의 존재 자체를 믿지 않던 시절 이것이 지구뿐 아니라 우주에도 존재한다고 말해 큰 파장을 일으켰다. 크로토 교수를 ‘미치광이 해리(crazy Harry)’라며 비난하고 폄훼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결국 크로토 교수의 주장은 모두 사실로 밝혀졌고 화학계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독창적 연구의 힘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대부분의 노벨상 수상자들은 처음부터 노벨상이나 상업적 이용을 목적으로 연구를 시작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고 흥미를 갖는 주제에 천착해 연구를 하다보니 탁월한 성과를 거둔 사람들이다. 이런 태도를 본받을 필요가 있다.”



일각에서는 단일민족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한국문화의 특수성 또한 노벨상의 걸림돌로 작용한다고 평가한다.

“맞다. 자력만으로 노벨상을 타려고 애쓰지 말고 해외 인재를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 미국 국적 노벨상 수상자의 절반이 이민 2세대거나 다른 나라에서 태어난 사람들이다. 미국이 세계 최강국가가 된 것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각국의 우수한 학자들을 대량 흡수했기 때문이다. 한국도 더 많이 개방하고 더 많은 글로벌 우수 인력을 유치해야 한다.

그러려면 우선 대학에서부터 영어를 써야 한다. 이는 모국어 대신 영어를 공용어로 쓰라는 뜻이 아니다. 어차피 영국 왕실이 쓰는 영어가 아닌 다음에야 미국인들이 쓰는 영어도 다 ‘브로큰 잉글리시(Broken English·서툰 영어)’가 아니겠나. 나 역시 영어가 완벽하지 않지만 외국에서 연구하고 생활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 영어를 쓰라는 말의 핵심은 자신과 다른 언어, 문화, 생활방식을 지닌 사람들과 열린 마음으로 교류하고 협력하는 자세를 가지라는 뜻이다. 그러려면 의사소통이 가능한 정도의 영어가 꼭 필요하다.

개인적으로는 1980년대만 해도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강대국이 될 것 같았던 일본이 ‘잃어버린 20년의 덫’에 갇힌 이유가 국제 감각의 부재라고 생각한다. 자원도, 인구도 부족한 조그마한 도시 국가 싱가포르가 잘 사는 나라가 된 것도 오래 전부터 여러 인종들이 다양한 문화를 공유하는 풍토가 조성돼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 인도 등 주요 신흥국의 급부상이 향후 노벨상 수상자의 국적에도 많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나.

“노벨상 수상의 선정 기준은 오직 하나다. ‘탁월한 연구 성과’를 올린 사람만이 상을 탈 수 있다.

국적, 정치 및 외교적 요인은 전혀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자부한다. 아시아 주요 대학 및 학자들의 연구 수준이 많이 향상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아직 세계 정상이라고 불리기에는 부족하다. 영국 잡지 ‘타임스 고등교육(THE)’이 매년 10월 초 발표하는 세계 100대 대학 순위를 보라. 한국, 중국, 일본, 싱가포르 등에 있는 아시아 주요 대학의 순위가 과거보다 훨씬 높아졌지만 아직 탑20에 포함된 대학은 나오지 않고 있다. 어떤 나라가 노벨상을 받으려면 그 나라의 전반적 과학기술 수준이 높아지는 일도 중요하지만 임계점과 한계를 넘어 세계 최정상이라 불릴만한 연구 성과가 반드시 나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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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3. 화학상 - 실험하지 않고도 화학반응 예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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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원영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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